2023년 7월호

바닷속에서 찾은 믿음, 클라우디아 콤테

클라우디아 콤테는 굳건한 신념으로 구축한 예술의 장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소재와 장르의 경계는 흐려지고 사회를 울리는 묵직한 내러티브가 자리한 공간 속으로.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창화

클라우디아 콤테  스위스 모르주에서 태어난 클라우디아 콤테는 현재 스위스 바젤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대리석과 나무를 활용한 조각 작품과 대형 설치 프로젝트를 주로 선보인다. 올해 열리는 뒤스부르크 렘브루크 미술관, 멕시코시티 라고알고 문화센터와 푸에르토 에스콘디도 카사 와비 전시를 포함해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순백의 갤러리가 바다로 변했다. 흰 벽으로 둘러싸인 화이트 큐브가 푸른색으로 물들고 이내 일렁이는 파도처럼 몽롱하게 굽이치는 검은 곡선이 그 위로 내려앉았다. 선인장 같기도, 산호초 같기도 한 묵직한 대리석 부조까지 함께 자리해 마치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5월 말, 청담동에 위치한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마련한 전시 <머린 와일드파이어 & 언더워터 포레스트Marine Wildfire & Underwater Forests>를 처음 마주한 인상이다. 이번 전시는 스위스를 기반으로 벽화와 조각, 설치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작품 활동을 전개해 온 클라우디아 콤테의 첫 번째 서울 개인전이자, 아시아에서 열리는 첫 전시다. 콤테는 주로 나무와 대리석이라는 밀도 높은 소재를 사용해 섬세함이 돋보이는 조각 작업을 선보여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를 단순히 조형 작가라고 치부하는 것은 다소 섣부른 판단이다. 심해나 사막 등 자연을 무대로 한 대규모 야외 설치 작업부터 날씬한 좌대에 놓이는 작은 조형에 이르기까지 조각에 근간을 둔 다양한 장르와 규모의 작품 활동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개인전은 콤테의 행보를 집약하는 자리이기에 더욱 뜻깊다. 전시장의 화이트 큐브를 하나의 벽화 작품으로 승화해 그간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차례 선보여온 역량을 십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전시장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푸른색이 점점 짙어지며 실제 바다를 거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벽화 작업 ‘언더워터 와일드파이어Underwater Wildfire(blue gradient)’는 갤러리라는 전시 공간을 예술의 일부로 치환한 작업이다. 이처럼 하나의 작품이 된 전시장 속에서는 고대의 대리석 부조에서 영감을 받은 콤테의 조각 신작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마치 프레임처럼 사각형으로 재단한 카라라 대리석 중앙부를 선인장과 산호를 떠올리게 하는 유기적이고 입체적인 형태로 구현한 조각이 그 주인공. 작품의 모서리에는 환경과 관련한 신문 헤드라인 문구를 인용해 새겨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이전부터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사회와 환경에 관한 경각심을 전하던 콤테가 고안한 흥미로운 방법 중 하나다.



작년에 진행한 설치 프로젝트의 모습. 역동적인 곡선을 두른 작품과 거친 자연의 조화가 멋스럽다.


아시아에서의 첫 개인전인 동시에 한국에서 열리는 첫 번째 전시다. 소감이 어떤가?

아시아에서의 첫 시작을 대한민국 서울에서 하게 되어 기쁘다. 서울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처음 방문한 것인데, 도시가 갖고 있는 개방적인 에너지가 내게 범상치 않게 다가왔다. 특히, 여러 미술관을 방문했는데 전시의 수준과 각 건물의 건축미에 놀랐다. 지금 한국 예술계의 위용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전시명이 <머린 와일드파이어 & 언더워터 포레스트Marine Wildfire & Underwater Forests>이다. 프레임 형태의 부조 작품의 모서리에 새겨둔 문구와도 연결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부조 작품의 모서리에는 환경에 관한 신문, 잡지 기사의 헤드라인에서 발췌한 문구의 일부를 새겨두었다. 모두 기후변화와 관련된 현재의 재앙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조각 작품과도 주제적으로 긴밀한 연결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기사들을 이제껏 여러 차례 읽어왔지만, 그럼에도 긍정적인 변화는커녕 인간과 동식물이 공존하는 환경은 계속해서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었다. 개개의 작품명과 전시명 모두 발췌한 문구를 보며 영감을 얻어 지은 것이다. 부조 작품들은 산호와 선인장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제작했는데, 바다처럼 표현한 벽화 작품과 부조 작품을 아우를 수 있도록 지구온난화, 산호 폐사, 해양 생물 불법 포획, 가뭄, 삼림 벌채, 생물 다양성 감소 등 숲과 바다와 관련된 환경 이슈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제목을 지어봤다.


전시의 백미는 벽화 ‘언더워터 와일드파이어’다. 갤러리의 화이트 큐브 전체를 작품화했는데, 굽이치는 검은 곡선과 그러데이션으로 칠한 푸른 벽이 마치 바다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선사한다. 어떠한 작품인지 설명해줄 수 있나?

갤러리 공간 전체를 덮고 있는 벽화는 공간의 가장 밑층에서 시작해 위층으로 퍼지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파도와 아지랑이, 해조류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검은색 곡선이 솟아오르고 흰색 벽은 서서히 산뜻한 파란색으로 물드는 듯한 모습이다. 전체적으로는 잔잔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생동감 있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관객들이 생태적인 인상을 주는 강렬하고도 평온한 공간 속을 거닐면서 동시에 작품 속에 녹여둔 메시지를 오감으로 느끼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몰입감이 필수적인데, 벽화와 같은 거대한 위용을 지닌 작품이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이곳, 전시장인 셈이다.


조각의 경우, 초기작부터 대리석과 목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주로 선보여왔다.

자연으로부터 파생된 소재를 작품에 접목하고 싶었다. 대리석은 심해 토양에 쌓인 조개껍데기로 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구의 판 운동으로 인해 강한 압력을 받아 만들어진다고 한다. 대리석의 원형이 탄생하는 과정은 수백만 년, 즉 인간이 헤아리기 어려운 시간을 거친다는 점에 크게 매료됐다. 얼핏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소재지만 그 안은 조개와 지구의 생명으로 가득하다는 점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목재는 따뜻하다는 점에서 대리석과 대조적일 수 있지만 이 또한 오랜 시간을 거쳐 나무가 자라야만 탄생하는 재료다. 두 소재 모두 지구라는 테두리 안에서 기후와 환경 그리고 시간의 변화를 고스란히 간직해온 결과이기에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 또한 고려한 것이다.



마치 푸른 바다를 거니는듯한 착각을 선사하는 클라우디아 콤테의 전시장 풍경. 대리석 부조와 함께 공간 전체를 작품화한 것이 인상적이다.


대리석은 절단과 재단 등의 까다로운 작업을 거쳐야 하기에 특히나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작품을 제작하는지 궁금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결합한 방식을 고안해 활용하고 있다. 손으로 직접 나무를 조각해 3D 모델링 작업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시킨 다음, 이탈리아 카라라 대리석 산지에서 작업하는 대리석 장인들과 함께 이를 실제로 구현해내는 방식이다.


전시명과 작품명은 물론, 이를 알지 못하더라도 당신의 작품을 마주한다면 정치, 사회, 환경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내러티브를 뚜렷이 파악할 수 있다. 과연 예술이 인간과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내가 모든 예술과 작가들을 대변할 수는 없다. 다만 예술과 인간, 사회는 균형을 이루며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가 작품을 통해 꾸준히 얘기하고자 하는 기후 위기 같은 환경적인 문제는 인간과 사회를 계속해서 위협해오고 있으며, 이는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는가?

현재로서는 레이철 카슨부터 제인 구달, 그리고 그레타 툰베리, 아야나 엘리자베스 존슨, 조앤 맥아더 등 기후 활동가들과 생명 학대에 대항하는 이들에게 많은 귀감을 얻는다. 모두 환경을 올바르게 다루기 위해 일어서는 여성들이다.


올해 준비 중인 작품 활동이나 전시가 있나?

가장 먼저 아트 바젤 주간을 앞두고 바젤 마르크트플라츠Marktplatz 부근에 위치하는 백화점인 글로부스Globus의 외벽을 크게 활용한 공공예술 프로젝트인 ‘Waves, Cacti and Sunsets’을 선보이려 한다. 사막의 풍광과 석양 그리고 선인장을 소재로 만든 3개의 이미지를 활용한 작품이다. 흑백으로 구성한 넓은 패턴의 설치 작품과 건물의 높이를 반영한 선의 흐름, 그리고 연속적인 파도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활용해 설치하는 대형 프로젝트 작품이다. 이어 덴마크에서도 설치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로스킬데Roskilde 페스티벌에서는 ‘MEWE’라는 글자를 이루는 통나무 설치 프로젝트를 선보일 계획이며, 이 외에 취리히와 베를린에서도 각각 다른 공공 예술 작업을 공개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한국에서의 전시와 함께 앞으로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어느 때보다 숨가쁜 1년이 되지 않을까 싶다.



COOPERATION  글래드스톤 갤러리(6218-0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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