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TIMEPIECE 2023

WATCHMAKING ARCHITECTURE

시계 브랜드의 철학이 스며든 6개의 건축물. 뛰어난 워치메이킹과 건축은 예술과 공학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GUEST EDITOR 유현선

공空 사상이 빚어낸 대학 도서관ROLEX

유명 대학교에는 대개 기업의 이름을 붙인 건물이 있다. 세계 최상위 26개 대학 중 하나인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학교(EPFL)의 롤렉스 러닝 센터도 그 예에 속한다. 오랜 기간 EPFL과 함께 연구한 롤렉스가 기부한 도서관 겸 학습 공간이다. 일본의 건축 듀오 가즈요 세지마와 니시자와 류에의 건축사무소 SANAA에서 디자인을 맡았다. 기호, 선, 점 등으로 표현한 평면 다이어그램을 단순하면서도 추상적인 건축으로 승화하는 작업으로 2010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팀이다. 롤렉스 러닝 센터 역시 모든 공간을 물리적 경계 없이 하나로 연결했다. 유럽 최대 규모의 과학 도서관과 다목적 홀, 카페 등이 오직 오르막과 내리막으로만 완만하게 구분될 뿐이다. 이런 내부 설계가 외형에도 반영되어 건물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롤렉스는 러닝 센터의 존재 자체가 브랜드의 전통과 혁신, 그리고 창의성을 대변한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학교의 롤렉스 러닝 센터 전경.




플랑레우아트의 랜드마크 VACHERON CONSTANTIN

스위스계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는 자하 하디드, 프랭크 게리와 함께 기존 건축의 구조를 분해해 비대칭이나 부정형 등으로 새롭게 조합하거나 나열하는 해체주의 건축의 거장으로 꼽힌다. 2005년, 창립 250주년을 맞아 바쉐론 콘스탄틴 본사 및 조립 매뉴팩처를 스위스 제네바에 속한 플랑레우아트의 랜드마크 수준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건축가이기도 하다. 천공 강판이 외벽을 부드럽게 덮으며 형태와 재료, 질감의 차이는 물론 조도와 온도를 중재하는 ‘사이 공간in-between space’을 창조하는 베르나르 추미의 ‘인벨럽envelop’ 디자인은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동시에 독특한 매스를 완성했다. 2015년, 10년 만의 증축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상징적인 디자인은 유지하면서도 건물의 크기를 2배 이상 키우고 구성도 달리해 매뉴팩처 단지의 효율과 통일성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베르나르 추미가 설계한 바쉐론 콘스탄틴 본사 및 매뉴팩처. 2015년 증축해 2개의 건물로 이뤄졌다.




날개 펼친 영국 워치메이킹BREMONT

닉과 자일스 잉글리시 형제가 2002년 설립한 브레몽은 영국 시계 브랜드다. 파일럿 워치로 시작한 브랜드답게 기본적으로 항공과 공학, 모험을 추구하며, 정확성이 뛰어난 시계를 뜻하는 크로노미터 제조에도 집중하고 있다.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에 등장한 시계도 브레몽이었다. 2021년에는 영국 런던 근교 헨리온템스에 3251m2 규모의 본사 및 통합 매뉴팩처를 새롭게 설립했다. 비행기 날개 단면의 모양인 ‘익형’을 뜻하는 에어포일airfoil을 대지에 고정한 것 같은 건물 디자인에서 ‘더 윙The Wing’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브레몽은 새로운 매뉴팩처의 날개를 펼치자마자 시계의 엔진인 무브먼트까지 자체 제작에 가까운 수준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아울러 크로노미터도 대규모로 생산해 영국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머린 크로노미터의 전통을 더욱 견고하게 계승해나갈 예정이다. 영국 워치메이킹의 진정한 부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더 윙’에서 만날 수 있는 브레몽 부티크.




반 시게루 최대의 역작SWATCH GROUP

스위스 베른주에 위치한 비엘Biel은 스와치와 오메가, ‘시테 뒤 탕’ 뮤지엄, 그리고 스와치그룹의 본사가 위치한 도시다. 스와치그룹의 브랜드가 그렇듯, 각각의 건물은 그 특성이 모두 다르다. 스와치그룹은 각 부문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통합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기존 도시환경과의 조화, 지속 가능성 역시 함께 풀어야 할 숙제였다. 종이나 나무 등 자연적 소재로 효율적이고 독창적인 건축을 선보이는 반 시게루의 설계가 해답이었다. 스와치그룹 본사는 무려 총길이 240m, 너비 35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목조 구조물로 아예 새롭게 태어났다. 4600여 개의 목재 빔을 결합한 그리드 셸 구조는 목재 프레임으로 골조를 짠 오메가 매뉴팩처의 파격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구불구불한 고치 모양의 외형은 자연스럽게 아치 모양 파사드를 그리며 뮤지엄과 연결되었다. 통합, 조화, 혁신, 스위스그룹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건축의 언어가 대변하고 있다.


목재 그리드 셸 구조로 완성한 스와치그룹 본사. 스위스의 흔한 목재인 가문비나무를 사용했다.




워치메이커에게 바치는 건축적 헌사 AUDEMARS PIGUET

오데마 피게의 건축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020년 스위스 르브라쉬 본사의 ‘매뉴팩처 데 포르주’에 브랜드 뮤지엄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를 개관한 데 이어, 2021년에는 하이엔드 무브먼트를 제작하는 르 로클의 ‘르노 & 파피’ 공방을 ‘매뉴팩처 데 새뇰’로 탈바꿈시켰으며, 새로운 건물 ‘아크Arc’의 주춧돌을 쌓기도 했다. 공통점은 오데마 피게의 시계처럼 전위적이면서도, 주변 환경을 배려한 건축이라는 것. 뮤지엄은 지형과 경관을 살리기 위해 나선형 유리 파빌리언으로, 매뉴팩처 데 새뇰은 초원, 습지대, 숲에서 영감을 얻어 다양한 높이의 갈래로 이뤄진 모듈형 단층 건물로 완공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각 건물의 목적을 철저히 따르는 설계임이 드러난다. 생산 기지인 매뉴팩처는 제조 공정의 흐름과 자연 채광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뮤지엄은 내부 공간을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해 마치 헤어스프링 속을 탐방하듯 관람할 수 있다.


비아르케 잉겔스 그룹(BIG)이 설계한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




샤프하우젠의 신전 IWC

IWC는 창립 150주년을 기념해 고향인 스위스 샤프하우젠에 1만3500m2에 이르는 거대 매뉴팩처를 열었다. 건축가 출신의 CEO 크리스토프 그레인저 헤어가 직접 설계한 건물이다. 그는 바우하우스의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의 모던 파빌리언 양식에서 착안해 브랜드 정신인 ‘샤프하우젠의 정교한 공학’을 웅장한 건축으로 구현했다. 더불어 여러 지역에 흩어졌던 11개의 부서를 집결해 IWC 역사상 처음으로 부품, 무브먼트, 케이스를 한곳에서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모든 작업 과정은 1100m2의 탁 트인 공간에서 논리 정연하게 흘러간다. CEO는 그 압도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공개하는 가상 매뉴팩처 투어와 팬 투어 프로그램까지 도입했다. “모든 방문객이 증인이 될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새로운 매뉴팩처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스위스 샤프하우젠의 IWC 매뉴팩처. 이메일(visit@iwc.com)로 팬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