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5월호

걸작을 만드는 존재들, 후원자

뛰어난 예술 작품 뒤에는 언제나 좋은 후원자가 있다. 
마이케나스에서 시작해 메디치, 구겐하임과 록펠러를 거쳐 오늘날 국내 기업과 글로벌 브랜드까지.
시대를 따라 진화한 예술 후원의 발자취.

EDITOR 박이현 WRITER 백아영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이 소장한 제프 쿤스의 ‘Puppy’(1992). Courtesy Guggenheim Bilbao Museoa, © Jeff Koons.


예술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형태와 역할을 바꾸며 발전했다. 문명이 형성되고 권력과 자원이 집중되면서 예술을 후원하는 사례도 늘었다. ‘후원자patron’는 라틴어 ‘파트로누스patronus’에서 유래한 단어로, 보호자나 옹호자를 뜻한다. 이 개념은 로마 사회에서 권력자와 문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틀로 쓰였다.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투스 시대 정치가 가이우스 마이케나스Gaius Maecenas가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와 베르길리우스Vergilius를 지원한 사례가 있다. 기업의 문화 예술 후원을 뜻하는 단어 ‘메세나 mécénat’의 뿌리를 그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교회와 귀족 가문은 후원자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했고, 예술 양식을 형성하는 데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에르메스 코리아가 후원한 서울시립미술관의 ‘SeMA 공용 공간 프로젝트’ <에르네스토 네토 Ernesto Neto: 영원히 교차하는 춤> (2025) 전시 전경. ⓒ 서울시립미술관, Photo: 소농지.


개인 후원에서 공공 유산으로

14세기 피렌체에서 본격적으로 문화 예술에 헌신한 가문이 바로 메디치다. 은행업으로 부를 쌓은 조반니 데 메디치Giovanni de' Medici가 교회와 학문에 투자하면서 가문 후원의 틀을 잡았고, 아들 코시모Cosimo가 조직적이고 장기적으로 문화 후원에 앞장섰다. 코시모의 손자인 로렌초Lorenzo 대에는 르네상스 화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와 보티첼리Botticelli를 지원했다.

메디치의 후원 방식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예술가에게 매달 생활비를 지급해 생계의 불안을 덜고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 여기에는 은행업과 고리대금업으로 인해 얻은 부정적 이미지를 완화하고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메디치가 마이케나스의 전통을 상업적 부와 결합해 예술을 후원한 덕분에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문화 중심지가 됐고 피렌체를 대표하는 우피치 미술관 역시 당시 메디치 가문의 행정 공간에서 출발했다.


메디치 이후의 이름들

메디치는 예술가를 직접 후원하며 도시의 문화적 권위를 세웠고, 20세기에는 구겐하임 가문이 사적 컬렉션을 공공 문화로 전환하는 방식을 통해 그 전통을 이어갔다. 추상미술과 전위미술을 수집해 미술관 네트워크를 구축한 이들은 ‘현대의 메디치’로 불린다. 철강왕 벤저민 구겐하임Benjamin Guggenheim이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로 사망한 후, 딸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이 유산으로 작품을 수집해 베네치아에 미술관을 열었다. 그녀가 멕시코 예술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를 미국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건 유명한 일화다.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은 벤저민의 형 솔로몬 R. 구겐하임Solomon R. Guggenheim이 세웠다. 메디치 가문은 예술가 양성과 정치적 선전을 병행한 반면 구겐하임가는 20세기 현대미술을 제도화하는 쪽에 힘을 실었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록펠러 가문이 또 다른 후원의 역사를 썼다. 록펠러는 문화 예술과 자선 활동으로 이미지를 탈바꿈하면서 ‘미국의 메디치’라는 별명을 얻은 가문이다. 석유왕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의 며느리인 애비게일 올드리치 록펠러Abigail Aldrich Rockefeller는 맨해튼에 있는 땅을 내놓아 1929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설립에 참여하고 작품을 기증해 초기 컬렉션의 바탕을 마련했다. 그 후 애비게일의 둘째 아들이자 제41대 미국 부통령을 지낸 넬슨Nelson이 앙리 루소Henry Rousseau 등의 작품을 기증했고, 막내 데이비드David가 생전 1억 달러, 사후 2억 달러를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달해 총 3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생전에 기증처를 20년에 걸쳐 미리 정해두고, 사후 경매 수익도 여러 기관에 나누도록 설계해 새로운 자산 기부 문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세 가문의 후원 목적과 방식은 달랐지만 사적 자본으로 공공을 위한 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은 같다.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이 소장한 제프 쿤스의 ‘Puppy’(1992). Courtesy Guggenheim Bilbao Museoa, © Jeff Koons.


럭셔리 브랜드의 등장

이제는 럭셔리 브랜드가 재단과 미술관을 만들고 전시나 국제 아트페어에서 존재감을 키워 그 역할을 잇고 있다. 루이 비통 재단이 그중 가장 적극적이다. 미술관을 설립하고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할 뿐 아니라 자체 컬렉션을 탄탄하게 구축해 전 세계의 메종에서 선보인다. 현대미술가와 협업하고 청소년 예술 교육을 지원하는 등 후원 방식도 다채롭다. 그런가 하면 프라다 재단은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영화, 사진, 건축, 철학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는 다원 예술을 선보인다. 예술과 지식의 경계를 해체하는 방향성이 특징이다.

샤넬은 창작자 개인과 기관을 동시에 지원한다. 창작자에게는 상금과 멘토십을 제공하고, 문화 기관은 장기 프로젝트를 돕는다. 최근에는 베를린 국립현대미술관 함부르거 반호프와 3년 파트너십을 맺고 ‘샤넬 커미션’을 선보였다. 함부르거 반호프Hamburger Bahnhof는 샤넬 커미션과 함께 미국식 갈라 행사를 도입했는데, 2025년 독일 정부가 문화 예산을 12% 삭감해 민간 후원을 대안으로 삼았다는 후문이다.

프랑스에서 상업 브랜드 문화 후원의 초기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역시 파리에 미술관을 세우고 동시대 미술가를 중심으로 지원한다. 에르메스 재단은 장인 정신과 기술 전수를 중심에 두고 시각예술과 공연예술, 디자인 분야에서 교육과 창작 지원을 이어간다.



제네시스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트너십의 첫 번째 전시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 The Genesis Facade Commission: 이불Lee Bul, Long Tail Halo>(2024).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한국의 메세나

수 세기에 걸쳐 후원의 주체가 가문에서 기업으로 바뀌었다. 초기에는 기업 홍보가 주요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인재 육성과 예술 발전에도 힘쓰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문화재단과 금호문화재단은 40년이 넘는 꾸준한 행보로 한국 후원 문화의 체계를 세웠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문화는 국민의 것’이라는 철학으로 설립한 삼성문화재단은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을 보유해 고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방대한 컬렉션을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시각예술가의 해외 진출을 돕는 ‘파리 시테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명품 현악기를 무상 대여하는 ‘삼성 뮤직 펠로우십’, 피아노 조율사를 양성하는 ‘톤 마이스터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장애 예술가 단체 ‘로사이드’를 후원하는 등 소외계층 문화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가 설립한 금호문화재단은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금호아트홀, 금호미술관, 금호창작스튜디오를 설립해 클래식 음악과 미술 영재들을 지원하고, 금호영재·영아티스트 콘서트 시리즈와 금호음악인상, 금호악기은행으로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도왔다. 재단의 후원 덕분에 세계 무대로 도약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선우예권이 상금을 재단에 기부해 후원의 선순환을 보여주기도 했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현대자동차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현대자동차는 국립현대미술관(MMCA)과 함께한 ‘MMCA 현대차 시리즈’로 한국 중견 작가들의 이름을 미술계에 다시 각인했고,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휘트니 미국미술관 등으로 후원 영역을 넓혔다. 제네시스 또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테이트 모던에 한국 작가들의 이름을 내걸었다. 현대자동차는 10년 단위 장기 파트너십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메디치 가문과 닮아 있다. 이와 더불어 LG전자는 2027년까지 구겐하임 미술관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체결했으며, 국내에선 국립현대미술관과 손을 잡고 매년 한 명의 작가를 선발해 현대미술의 미래적 비전을 제시하는 장소특정적 신작을 소개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미래적 비전을 제시하는 장소 특정적 신작을 소개하는 MMCA×LG OLED 시리즈, 2025년 추수의 <아가몬 대백과_외부 유출본> 전시 전경.


공공 미술관을 움직이는 힘

한국의 공공 미술관과 박물관도 기업·브랜드의 후원으로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례는 ‘이건희 컬렉션’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은 소장 작품 2만 1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1000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는데, 이는 국내 기증 사례 중 가장 큰 규모다. 덕분에 정선의 ‘인왕제색도’ 같은 국보를 포함한 다양한 컬렉션을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을 시작으로 시카고와 런던 등에서 순회 전시할 수 있게 됐다.

후원회 세마인SeMA人[in]을 두어 기관 운영을 뒷받침하는 서울시립미술관도 눈여겨볼 만하다. 세마인은 지난 9년간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가 이사장을 맡아 에르메스 코리아 후원과 시디즈 뮤지엄 체어 지원 등을 끌어오며 기반을 구축했다. 이후 올봄 자리를 이어받은 고경모 유진투자증권 대표는 후원 구조를 관람객 참여 중심으로 확장하고 있다. “시민과 기업이 함께 호흡하는 모델을 강화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브랜드의 지원이나 전시에 필요한 실물 자산 후원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관람객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연스럽게 후원자로 유입되는 구조를 만들 계획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고 대표는 “청소년 교육, 소모임처럼 작은 참여부터 가능한 문화를 통해 후원 저변을 넓히겠습니다”라고 덧붙이며 누구나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는 후원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처럼 후원 주체와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후원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 예술가들이 생계 걱정 없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창의성을 실험해볼 프로젝트, 협업으로 얻는 네트워크 등이 창작을 지속하는 힘이 된다. 꾸준한 후원이 곧 새로운 예술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마이케나스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예술가 옆에는 언제나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후원자가 있었다.



앞줄 왼쪽부터 네오밸류 본부장 송옥자, 더블유자산운용 대표이사 김우기, 디토인베스트먼트 대표 전병국

가운뎃줄 왼쪽부터 디자인하우스 대표 이영혜,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김홍남,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최은주

뒷줄 왼쪽부터 DSC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윤건수, 디아이코퍼레이션 본부장 임우석, 하나증권 전무 김태성, 서울시립미술관후원회 실장 현선영, KT알파 대표이사 박정민, 유진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 고경모, 엘씨엠코스메틱 이사 이상진

그리고 함께하는 이사진 모네상스 대표 강신장, 콥틱 이사 김남희,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 김정태, 보스턴컨설팅그룹 대표 박성훈, 앰배서더호텔그룹 회장 서정호, SK그룹 부회장 서진우, IMM인베스트먼트 부사장 윤원기, MBK파트너스 부회장 윤종하, 재능대학교 총장 이남식,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최정환, 도시와 사람 회장 하창식


서울시립미술관후원회 세마인SeMA人[in]

지난 9년간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가 기반을 구축했고, 올봄 유진투자증권 고경모 대표이사 사장이 자리를 이어받아 후원 구조를 관람객 참여 중심으로 확장하고 있다.

목록으로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