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RIKING RED 1
2026년 F/W 시즌, 수많은 브랜드의 컬렉션을 관통하며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컬러는 단연 레드다. 이를 활용하는 방식 또한 다채롭다. 펜디, 알라이아는 레드 드레스를 통해 우아하면서도 강인한 여성상을 그려냈고, 블루마린과 스텔라 맥카트니는 스포티한 요소를 가미한 애슬레저 스타일로 색다른 해석을 제안했다. 한편 로마에서 공개한 발렌티노의 ‘인터페렌체Interference’ 컬렉션은 마지막 룩으로 올 레드 드레스를 선택하며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토리 버치와 시몬 로샤, N21과 같이 레드를 룩의 일부에 포인트 컬러로 활용하는 것도 훌륭한 대안이다. 가방과 슈즈, 벨트 등의 액세서리에 레드 포인트를 가미한 발렌시아가와 샤넬, 아크네 스튜디오의 착장 역시 일상에서 손쉽게 응용할 수 있는 좋은 예다.

SUPER POWER SHOULDER 2
몇 시즌째 패션의 중심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발휘해온 파워 숄더가 이번 시즌, 한층 과장된 실루엣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어깨 위에 쌓아 올린 볼륨은 하나의 조형 언어로 기능한다. 루이 비통과 릭 오웬스는 이를 한 점의 아트 피스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풀어내며, 실용성보다는 하우스가 축적해온 미학과 철학을 전면에 내세웠다. 반면 스모킹 슈트를 다시 호출한 생 로랑과 허리를 조여 어깨를 부각시킨 랑방, 견고한 재단의 오버사이즈 셔츠를 선보인 우마 왕 등은 보다 현실적인 균형 감각을 택해 트렌디한 실루엣을 자아냈다. 확장된 어깨선은 단순 유행을 넘어 동시대 여성의 태도와 감정을 형상화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었다.

CHECK IT OUT 3
F/W 시즌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체크 패턴.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그 활용 방식에서 브랜드 간의 뚜렷한 대비가 드러났다. 에르마노 설비노와 가브리엘라 허스트, 끌로에처럼 하나의 체크 패턴을 중심으로 클래식한 무드를 유지한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아크네 스튜디오, 드리스 반 노튼과 같이 한 컬렉션 안에서 깅엄·타탄·글렌 체크 등 다양한 패턴을 자유롭게 변주한 브랜드들도 있었다. 패턴의 크기에서도 극명한 차이가 나타났다. 장 폴 고티에와 에트로는 체크의 스케일을 촘촘하게 줄여 섬세한 질감을 강조했고, 루이 비통은 소재와 컬러의 대담한 대비를 통해 패턴의 존재감을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THE NEW MATERIALS 4
시즌이 거듭될수록 패션은 소재를 향한 질문을 더욱 대담하게 던진다. 디자이너들은 익숙한 질감을 모방하거나 해체하며 전통적인 소재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 보테가 베네타는 유리섬유를 활용해 퍼를 연상시키는 풍성한 실루엣을 구현했고, 파비아나 필리피는 롱 스티치 기법으로 실을 엮어 마치 실크 퍼처럼 보이는 추상적 질감을 완성했다. 부드러움은 더 이상 동물성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착시와 감각의 교란 속에서 재구성된다. 라텍스의 활용도 인상적이다. 로에베는 라텍스로 재탄생한 룩을 런웨이에 올리며 소재의 물성을 전면에 드러냈고, 생 로랑은 슬립 드레스를 실리콘으로 재해석해 관능과 긴장을 동시에 포착했다. 이처럼 소재를 향한 실험은 단순한 대체를 넘어, 패션이 감각을 다루는 방식 자체를 확장한다.

REFINED LINES 5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응축한 정제된 실루엣이 백과 슈즈의 문법을 다시 쓴다. 발등을 깊게 덮는 뱀프Vamp 펌프스는 넓은 어퍼로 룩의 무게중심을 차분히 붙잡아 발끝을 매끄러운 선으로 정돈한다. 루이 비통은 사슴뿔을 연상시키는 조형적인 굽으로 고요한 실루엣에 긴장감을 더했고, 아크네 스튜디오는 날렵하게 뻗은 앞코 라인을 통해 고전적인 펌프스를 동시대의 감각으로 끌어올렸다. 수평으로 길게 뻗은 이스트웨스트 백 또한 콰이어트 럭셔리의 또 다른 해답으로 합류한다. 마르니와 보테가 베네타는 형태와 소재의 변주를 거치며 실용성과 우아함이라는 두 가지 가치의 균형점을 찾았다. 과시 대신 절제, 장식 대신 구조를 택한 선택은 액세서리마저 하나의 태도로 완성한다.

EAR DRAMA 6
런웨이 위에서 옷만큼이나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한 것은, 이목구비보다 크다고 할 정도로 거대한 이어링이었다. 생 로랑은 귓불을 넘어 귓바퀴 전체를 감싸는 디자인으로 시각적 영역을 확장하며 스테이트먼트 이어링의 정수를 보여줬다. 미우미우는 볼을 감싸는 볼드한 플라워 모티프 실루엣으로 얼굴 라인을 극적으로 부각시켰고, 짐머만은 고대 유물을 연상시키는 메달 펜던트를 이어링으로 재해석해 주얼리를 예술품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레이스처럼 가벼운 소재와 대비되는 주얼리의 묵직한 질감은 룩의 밀도를 빈틈없이 채운다. 이는 단순히 귀에 거는 장신구를 넘어, 스타일에 서사를 부여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RETURN OF DECORATION 7
미니멀리즘의 영향 아래 장식이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과거와 달리, 이번 시즌은 디테일의 귀환을 선언하듯 풍성한 장식으로 가득 채워졌다. 절제 대신 과감함을 택한 디자이너들은 주얼 장식과 태슬, 프린지, 아플리케 등 다채로운 요소를 통해 스타일에 감각적인 서사를 불어넣었다. 로에베는 퍼 트리밍이 더해진 유려한 드레스로 부드러운 움직임과 관능적인 실루엣을 강조했고, 디올은 정교한 주얼 장식을 리드미컬한 패턴으로 풀어내며 빛의 리듬을 직조했다. 준야 와타나베는 인형을 매단 착장으로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드러냈으며, 화려한 데뷔 쇼로 시선을 집중시킨 뎀나의 구찌는 온몸에 크리스털과 비즈를 촘촘히 세팅해 움직일 때마다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이제 옷은 더 이상 정적인 대상이 아닌 몸의 움직임과 함께 완성되는 하나의 장면이 된다. 개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 이처럼 대담한 장식적 디테일은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가 된다. 룩 위에 더해진 작은 요소 하나하나는 강렬한 존재감을 남기며 새로운 스타일링 코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FLOWERS IN DIALOGUE 8
청초한 로맨티시즘의 외피를 벗은 꽃은 이제 대담한 패턴으로 다시 태어나며 단순한 장식의 자리를 넘어선다. 꽃은 더 이상 평면적인 모티프가 아니라, 구조와 볼륨을 통해 공간을 점유하는 조형적 존재로 확장된다. 소재의 변주를 통한 촉각적인 탐구 또한 눈에 띈다. 샤넬은 레진과 프린지 장식을 활용해 꽃의 잔상을 재해석하며, 마치 정원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감각을 직관적으로 드러냈다. 이처럼 꽃은 감상의 대상이 아닌 강렬한 시각과 촉각을 동반한 하나의 언어로 작동한다.

THE BEAUTY
BEHIND 9
여성의 보디라인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보디 컨셔스 트렌드는 그간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2026년 F/W 컬렉션에서는 한층 더
과감한 변주가 포착됐다. 한 가지 눈여겨봐
야 할 부분은, 시선이 머무는 지점이 더 이
상 앞모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시즌 다수의 브랜드에서 등을 과감히
드러내는 디자인을 통해 관능의 방향을 전
환하며 미학의 수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 중심에 구찌가 존재한다. 피날레에 등장
한 케이트 모스는 도발적인 백리스 드레스
를 입었고, 화이트 골드 위에 10캐럿 다이아
몬드를 세팅한 ‘G 스트링’ 언더웨어를 드러
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노출은 계산된
연출로 기능하며 실루엣에 긴장감을 더함
과 동시에 강한 존재감을 남긴다.

DRESSED IN
NATURE 10
인간은 오랜 세월 자연의 생명력을 예술로
승화시켜왔다. 이를 늘 곁에 두고 소유하고
픈 열망은 오늘날 패션계에서도 선명하게
이어진다. 디올은 수련 연못을 무대로 옮겨
와 그 정취를 백과 슈즈, 커스텀 주얼리까지
확장하며 서정적 미학을 완성했다. 비베타
는 우아한 백조의 형상을 아이웨어 프레임
에 적용했고, 준야 와타나베는 블랙과 골드
비즈로 조개의 입체감을 살린 백을 브라 톱
으로 콜라주해 과감한 조형미를 뽐냈다. 로
에베 또한 문어와 바닷가재를 백의 클래스
프와 키 링으로 구현해 위트를 더했다. 자연
의 작은 요소까지 패션의 문법으로 재탄생
한, 런웨이 위 작은 생태계를 탐험하는 재미
가 쏠쏠하다.
© LAUNCHMETRICS/SPOT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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