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CREATORS: THE ART OF MAK
디자인하우스가 걸어온 반세기의 철학 위에서 창간 25주년을 맞은 <럭셔리>는 한국 문화에 내재한 ‘막MAK’의 정신을 하나의 미학이자 태도의 언어로 정리하고자 한다. 이에 유연한 막 정신을 삶과 작업 속에 체화하고 있는 창작자 10인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미술가·음악가·배우 백현진부터 드라마와 연극, 영화를 아우르는 공민정, 무대와 런웨이를 오가는 기무간, 다양한 표정을 지닌 배우 옹성우, 음악의 진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그레이코드와 지인,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윤산하, 캔버스에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캐스퍼 보스만스, 다채로운 능력과 독보적 존재감의 대명사 수리, 가구와 공간을 잇는 문승지, 장르를 넘나들며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김아린까지. 이들의 기록은 우리 시대의 독보적인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캐 스 퍼 보 스 만 스

자신이 그린 글래드스톤 서울 전시장 벽화 앞에 앉은 캐스퍼 보스만스.
캐스퍼 보스만스 벨기에 롬멜 출신으로 현재 브뤼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조각, 벽화,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문장학, 민속학, 미술사 같은 방대한 문화적 서사를 현대적 맥락으로 재해석한다.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글래드스톤 서울 외벽에 있는 ‘콩’ 그림이에요. 길을 오가다 ‘저게 뭐지?’ 하고 궁금증에 멈춰 서서 한 번 더 보게 되는 광경을 상상했어요.
‘콩’ 그림은 아주 단순한 도상에서 비롯됐지만, 누군가는 카리아티드caryatid(건물의 상부 구조를 떠받치는 고전 건축의 조형 형태)를 떠올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서로 다른 정체성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번역되는 순간으로 읽을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복합적인 층위의 해석이 겹쳐지는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또 콩 이미지가 건물 자체에 성격을 부여하는 장치로 기능하길 기대했어요. 갤러리가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되기를 바란 거죠.
“‘막’은 병풍을 펼치듯, 혹은 양파 껍질을 벗기듯 여러 해석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캐스퍼 보스만스가 글래드스톤 서울 전시장에 벽화를 그리는 모습.
어릴 때부터 멀리 있는 서점에 혼자 가서 책 더미를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열네 살 무렵 토요일마다 설거지와 부엌 청소를 돕고 받은 품삯을 들고 안트베르펜에 갔습니다. 광범위한 분야의 서적을 더미째 사들여 방에 쌓아뒀어요. 그리고 페이지를 하나씩 해체하듯 들여다봤습니다. 이후 책에서 본 이미지와 설명을 실제로 확인하려 도시를 탐색했고요. 안트베르펜에는 교회나 오래된 건축 파사드에 지금은 거의 읽히지 않는 우화적 상징과 알레고리가 남아 있거든요. 저는 그것들을 해독해야 할 암호로 받아들였습니다. 미술사에 대한 호기심에서 나아가 제가 나고 자란 곳의 문화적 토양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그 태도가 제 작업의 출발점이었어요.
콩처럼 누구나 알아보는 이미지로 관객을 먼저 맞이하는 이면에 좀 더 깊은 언어인 문장학heraldry, 미술사적 모티프 같은 과거의 시각 체계가 자리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자라온 벨기에와 유럽에서는 문화사나 미술사가 정치적 목적과 함께 소비되곤 했습니다. 미술사 지식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고, 일종의 통과 조건으로 작동하는 일도 있었고요. 그런 환경에서 문장학은 저에게 다른 질서를 보여주는 체계였습니다. 문법은 간결하고 원칙은 분명했습니다. 오래도록 원형을 유지해왔다는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문장학은 자연을 설명하는 이치와 닮았어요. 새의 깃털이나 가슴, 머리 위 장식을 말할 때 쓰는 표현이 가문의 문장이나 크레스트crest(가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 장식)를 설명하는 언어와 맞닿아 있거든요. 더불어 퀴어로서 ‘가족’이라는 개념은 늘 민감한 주제였습니다. 문장학은 보통 혈통과 계보를 따지지만, 저는 그 안에서 왕조나 권력과 무관하게 가족을 상상하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 잠재력이 제가 이 시각 체계를 작업으로 가져오는 이유입니다.

‘Legend: Critter Pavilion,
Ostrich Caryatid’, 2024.

‘Legend: Critter Pavilion,
The Black Ball’, 2024.
민속적 형식이나 우화적인 도상도 반복해서 등장해요. 16세기 프랑스의 건축 이론가 조제프 부아요Joseph Boillot의 텍스트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 ‘Legend: Critter Pavilion, The Black Ball’(2024)을 예로 들어볼게요. 그는 건축 구조와 장식 요소를 설명하면서 동물 도상을 상징과 비유의 언어로 배치했는데요. 바탕에는 중세의 동물 우화와 자연사적 관념이 깔려 있습니다. 당시엔 새로운 지식도 종교적 세계관 안에서 해석됐어요. 사자는 동물의 왕, 수탉은 그에 맞서는 존재로 설정돼 종교적 은유로 확장되는 양상이었죠. 오늘날엔 비약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사자와 수탉처럼 대비되는 두 요소가 한자리에 놓이면 긴장감이 발생해요. 저는 그런 풍경 속에서 성숙한 사회가 종교적·정치적 권력과 타협하는 지점을 발견했습니다. 프랑스혁명 시기 수탉은 전혀 다른 정치적 표상으로 전환되잖아요? 이러한 이동성 때문에 저는 민속적 어법을 선택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건 두 개의 상반된 요소가 나란히 놓이면서 서로를 규정하는 역학이에요. 완전히 조화롭게 합쳐지지 않고 긴장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유지되는, 그래서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는 상태에 관심이 있습니다.
한국 문화에 ‘막’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미리 정해진 규범에 얽매이기보다 진행 중인 과정에서 감각적으로 판단하고 조정해나가는 태도를 뜻하는데요. 이런 ‘열려 있음’이 작가님이 상징을 다루는 방식과 공명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뤼네빌 파이앙스 도자기에 자주 등장하는 수탉을 그린 건 우선 미학적으로 적절한 해법이어서예요. 사자 카리아티드와는 다른 질감을 부여하고, 작품이 놓인 배경을 마치 도자기 파편처럼 보이게 하거든요. 동시에 그 도자기는 제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모티프의 의미를 독해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 끝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보고 피식 웃을 만한 개인적인 일화,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 득표를 늘려가는 오늘날 프랑스에서 갖는 고전적 의미, 조제프 부아요의 장식적 제안 등이 중첩되어 있죠. ‘막’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었는데, 제 작업과 무척 잘 어울리는 개념이네요. 우리 주변을 오직 이분법적으로만 규정하는 시선은 경직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일 뿐입니다. 무언가를 해석한다는 것은 병풍을 펼치듯, 혹은 양파 껍질을 벗기듯 막을 하나하나 거두며 진행하는 편이 제게는 편안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다채로운 읽기가 가능해야 그만큼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한국 문화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나요?
북유럽 오딘 신화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제게 한국의 구미호 전설이나 마늘을 먹는 곰과 호랑이, 까치와 호랑이 같은 장면은 낯설면서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내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서사가 시각적으로 전개되는 양식에서는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이 선보인 비틀린 해학과 사회적 비판을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었고요.
특히 ‘먹는다’라는 행위가 정체성을 형성하거나 사람이 되는 비유로 쓰인 기제는 다양한 문화권을 가로지르며 공명을 일으킨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정치적·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타 문화권의 내러티브를 다루는 일은 늘 신중하게 접근하려 해요.
한편 서울에서 목격한 특유의 ‘수평성’도 기억에 남아요. 유럽 문화는 종종 은유적이고, 배경지식이 있어야만 대화할 수 있는 폐쇄적 성격을 띠곤 합니다. 반면 서울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훨씬 직접적이더군요. 더욱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요. 일례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고려시대 3D 렌더링 영상은 아이와 어른 모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습니다. 세대에 따라 설명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장면에 통합하는 태도, 제가 느낀 한국의 수평성이란 바로 그런 부분이었어요.

글래드스톤 외벽에 그린 ‘콩’ 그림.

‘Mangiafagioli’(2026) 앞에 앉은 캐스퍼 보스만스.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단단한 소재’의 언어로 옮겨놓은 시도도 눈에 띄어요. 수정이 거의 불가능한 고전 기법인 ‘실버포인트silverpoint’에 키스 해링의 직설적인 외침, 재스퍼 존스의 은밀한 암호를 카메오처럼 기록했잖아요.
우리가 공부하는 미술사는 여전히 이성애 중심heteronormative이거나, 보수적 혹은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서술돼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은 시대를 막론하고 같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서구 미술사를 거부하기보다 그 안에서 제 자리를 점유하려 했습니다.
실버포인트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한 번 그으면 되돌릴 수 없는 속성은 퀴어 서사를 다루는 데 필요한 단단함을 전제로 합니다. 사랑을 에로틱하게 소비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언어로 남기는 것이 작업의 지향점이에요.
그렇다면, 전시장에서 관객이 어디서부터 사랑을 읽기 시작하면 좋을까요?
사랑에 빠진 새나 서로를 껴안고 키스하는 인물들을 찾아보세요. 1층에서 만날 수 있는 콩 모티프는 문장학에서 관계를 표현하는 규칙을 차용한 것입니다. 두 가문의 문장이 결합했다가 다음 세대에서 나뉘는 원리를 콩에 적용했어요.
대표적으로 파란색과 빨간색이 합쳐졌다가 다시 분할되는 과정으로 관계의 구조를 드러냈습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계보 이야기 같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로맨틱한 서사입니다. 관계가 맺어지고, 그 흔적이 다음 형태로 남는다는 점에서요. 지하에 설치된 시럽을 붓는 작업도 비슷해요. 사랑의 달콤함을 물질적으로 구현한 ‘사랑의 분수’로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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