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물과 노동자, 작가 사이의 관계, 공간에 대한 시선을 환기하는 모하메드 카젬의 ‘창 2003-2005’(2005).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근접한 세계>(~3월 29일)는 아부다비에서 개최된
단순한 교환 전시가 아니네요. 김은주 <근접한 세계>는 주제면에서 독립적이지만, 두 전시는 ‘근접성’이라는 개념을 공유해요. 여기서 말하는 근접성은 지리적 거리에서 나아가 관계와 경험, 아이디어의 간극에 대한 질문을 포함합니다. 전시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안에서 무엇이 과연 ‘가깝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를 묻습니다. 이와 더불어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을 전혀 다른 맥락의 공간인 서울에 놓고 다시 읽어보는 시도이기도 하죠. 전시장을 찾는 한국 관객은 자신의 정서를 바탕으로 작품을 마주하며 공통점과 차이점, 긴장감을 인지하게 되고, 이전에는 접해보지 못했던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거예요.
작가의 관점도 들어보고 싶어요. 전시 오프닝 때 퍼포먼스를 한 작가로서 근접성을 어떻게 작업 언어로 번역했나요? 모자 저는 제가 놓인 환경에서 마주치는 이야기들을 먼저 몸에 담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모으고, 자연에서 받은 인상도 몸을 통과합니다. 이후 표현을 시각적·감각적으로 옮길 도구를 고릅니다. 서사를 엮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다만 이야기의 출처가 된 사람들,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몫까지 대신 말하거나 결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몸을 ‘기록 장치’로 둡니다. 이 태도는 제가 흔들리지 않게 작업을 붙잡아줘요. 선택한 매체는 결과와 상관없이 가장 원초적인 감각과 그 위에 포개진 여러 목소리를 데려옵니다. <근접한 세계>에서 제가 정의한 근접성은 사람에 따라 아주 넓게, 아주 구체적으로 다가올 수 있어요. 저는 근접성을, 서로를 이해하려고 일상 속에 촘촘히 세워둔 작은 감각의 망으로 봅니다. 이번 퍼포먼스에서는 흰색 의상과 테이블보, 세라믹 그릇으로 이를 보여주었어요. 저는 흰색이 무언가를 견디는 바탕이라고 느꼈습니다. 닿고 번지고 남는 과정을 그대로 받아주니까요. 석류는 하나의 상징으로 고정되지 않습니다. 지리와 역사, 신화까지 따라오며 의미가 퍼지죠. 관객은 그 의미에 얼마나 가까이 닿아 있는지에 따라 자신만의 해석을 붙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붉은색이 흰 표면을 물들이는 장면도 중요했어요. 그러나 퍼포먼스를 강하게 한 건 관객의 동참이었습니다. 말이 없었기에 몸짓에 의지했고, 몸짓은 환대의 방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남은 것은 거창한 합의가 아니었어요. 과일을 향한 애정 같은 공통된 감정이었을 뿐이죠.

(왼쪽부터 MOZA ALMATROOSHI, MAYA EL KHALIL, KIM EUNJU)

안과 밖의 경계를 말하는 첫 번째 섹션 ‘회전의 장소’ 전경. 가장 앞에 보이는 작품은 샤이카 알마즈루의 ‘균형Ⅰ’(2017).
근접성이라는 접점이 아부다비에서도 유효했는지 궁금합니다.
<근접한 세계>는 총 3개의 섹션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마야 전시는 아랍에미리트 미술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하기보다 참여 작가의 개별적인 목소리를 살리는 데 무게를 두고 있어요. 그래서 관객이 아랍에미리트나 이슬람권을 떠올릴 때 스쳐지나가는 이미지나 관념을 생각하며 <근접한 세계>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인식 자체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첫 번째 섹션 ‘회전의 장소’는 집과 급변하는 외부 세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서두에 놓인 사적인 풍경, 우화적 장면, 균형이 흔들리는 순간 등은 관객에게 낯섦보다 감정의 결에 닿게 할 거예요. 두 번째 섹션 ‘지형이 아닌, 거리를 기록하기’는 지도 제작과 경계를 소재로 도시를 둘러싼 구조, 국가 간 선의 움직임, 보이지 않는 권력의 층위를 보여줍니다. 개인적인 감각에서 비롯된 시야가 더 넓은 구조로 옮겨진 셈이죠. 세 번째 섹션 ‘그것, 양서류’는 제도와 개인 작업을 오가며 활동하는 ‘양서류적 존재’의 예술가를 다룹니다. 기관과 스튜디오 사이를 이동하는 이들의 위치는 작업의 태도와 형식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데요. 이는 에미리트 예술 공동체의 혼종적 감각과 세대 간 연속성을 엿보게 합니다.

사디야트섬의 변화를 기록한 타레크 알-구세인의 ‘미화’(2012), 두 번째 섹션 ‘지형이 아닌, 거리를 기록하기’ 중.

제도와 개인 작업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를 다루는 세 번째 섹션 ‘그것, 양서류’ 전경.
파라 알카시미Farah Al Qasimi, 모하메드 카젬Mohammed Kazem·크리스티아나 데 마르키Cristiana de Marchi, 아티스트 트리오 RRH, 3팀의 작가가 섹션별 기획자로 참여한 점이 눈길을 끕니다. 김은주 이러한 방식은 <근접한 세계>에서 매우 긴요한 부분이에요. 저는 아랍에미리트 내부의 이야기를 잘 모르기에 각 세대에 속한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시에 직접 관여한 과정이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저 또한 마야와도 세대가 다르고요. 활동 시점과 작업 환경이 각기 다른 3팀의 게스트 큐레이터가 지닌 차이 덕분에 전시의 밀도가 한층 두터워졌습니다. 각 팀은 자신이 겪어온 사회적 변화와 제도적 환경, 문화적 분위기를 작품 선정에 반영했습니다. 그결과 세대별로 이어져온 질문과 태도가 하나의 전시 안에 나 란히 놓일 수 있었죠. 또 예술가가 큐레이션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전시는 외부의 해석이 아닌 내부의 경험에 기반한 감각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참여 작가 47명(팀)의 활동 시기가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폭넓게 걸쳐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세대가 모인 시간의 층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마야 <근접한 세계>는 세대를 나눈 전시와는 거리가 멀어요. 참여 작가 가운데 에미라티 작가가 33명이라는 점도 하나의 정체성을 강조했다기보다는, 섹션별 게스트 큐레이터들이 함께 활동한 동료들을 불러오며 생긴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첫 번째 섹 션을 맡은 파라 알카시미가 자신과 자주 소통하는 작가들을 초대한 까닭에 에미라티 작가 비중이 높아졌고, 아티스트 트리오 RRH가 기획한 세 번째 섹션 역시 본인들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작가들을 포함하며 유사한 양상이 나타났어요. 역사적으로 바라보면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 안에는 세대 차이를 언급할 수 있는 요소들도 존재합니다. 1970~1980년대에는 작가 대다수가 이탈리아, 프랑스, 이집트, 이라크 등에서 전통 회화와 조각을 중점적으로 공부했어요. 그런데 한편에선 하산 샤리프Hassan Sharif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 개념 미술과 아르테 포베라를 접하며 기존 미술의 틀을 깨는 시도도 등장했죠. 당시 이들의 실험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2000년대 이후 샤르자 비엔날레Sharjah Biennial의 변화와 지역 미술 인프라 확대가 겹치면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여기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 2003년 샤르자 비엔날레를 진두지휘한 셰이카 후르 알카시미Sheikha Hoor Al Qasimi 공주예요.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젊은 세대는 국제 교육 경험과 지역 제도에서의 활동을 모두 갖춘 것이 특징입니다. 이들의 작업이 한데 놓인 덕분에 전시는 여러 시기의 태도와 형식이 겹쳐지는 형태로 완성되었고요.
이들의 작품을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공간과 어떻게 조화시키려 했나요? 김은주 서울시립미술관은 본디 법원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와는 결이 상이한 시간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작업을 한 전시안에 펼칠 때는 작품을 설명적으로 배치하기보다 서로 이질적인 감각이 나란히 놓일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야 한다고 보았어요. 작품을 구성하는 과정에서는 특정 지역을 즉각적으로 연상시키는 이미지에 기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대신 에미라티 작가들이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작업에 주목했죠. 지형과 거리를 주제로 하는 섹션을 제외하면, 하나의 상징으로 수렴하지 않는 흐름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작가들이 내는 다양한 목소리가 한 공간에 모이면 파편화될 위험이 있잖아요. 김은주 맞아요. 자칫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에 관객이 전시를 따라가는 데 기준이 될 일종의 내비게이션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전시장을 둘러보시면 섹션마다 벽면 텍스트의 색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하실 수 있을 텐데요. 첫번째 섹션을 예로 들면, 분홍색으로 된 문단은 해당 구간에서 파라 알카시미가 구축한 세계를 설명해요. 또 그가 직접 초대한 작가들의 이름 위에는 분홍색 띠가 있고요. 이런 표식이 모든 관객에게 꼭 필요한 정보로 다가오진 않겠지만, 전시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는 보조 장치의 기능은 할 것입니다.
“제 퍼포먼스는 언어적 교환이 전혀 없기에 많이 걱정했습니다. 모든 것이 제스처에 의존하기 때문이죠.
관객들은 저에게 말을 걸었지만, 제가 표정으로만 반응하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집단적인 관대함의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_ 모자 알 마트루시

<근접한 세계> 오프닝 때 모자 알 마트루시가 진행한 퍼포먼스 ‘Evergreen’.
섹션들을 잇는 듯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어요. 구체球體 작품은 긴장감을 조성하고, 나침반으로 구성된 작품은 개인의 방향성을 말하는 것 같았달까요? 마야 말씀하신 작업들은 다음 섹션에서 다뤄질 정서나 주제를 미리 암시하거나, 앞선 섹션에서 형성된 감각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요. 김은주 학예사와 제가 고민했던 지점이기도 하죠. 안과 밖의 경계를 말하는 첫 번째 섹션 ‘회전의 장소’에서 샤이카 알마즈루Shaikha Al Mazrou는 줄에 매달린 테라코타 구체 작품 ‘균형Balance Ⅰ ’(2017)을, 샤이카 알케트비Shaikha Al Ketbi는 그네를 영상으로 표현한 ‘그네Swinging’(2020)를 출품했는데, 이는 긴장과 불안을 끌어 올리며 어떤 사건이 임박한 듯한 기운을 만들어냅니다. 두 번째 섹션 ‘지형이 아닌, 거리를 기록하기’에서 타레크 엘카수프Tarek Elkassouf는 모두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통해 방향성을 묻고, 사디야트섬의 변화를 기록한 타레크 알-구세인Tarek Al-Ghoussein의 사진은 ‘미화beautification’라는 제목 아래 인간의 개입이 환경에 남긴 자국을 짚습니다. 더불어 모하메드 카젬의 ‘창The Window 2003-2005’(2005)은 고층 건물들이 점차 수평선을 가리는 모습을 따라가며 건물과 노동자, 작가 사이의 관계, 공간에 대한 시선을 환기합니다. 세 번째 섹션 ‘그것, 양서류’는 언어를 다룬 작업들을 선보입니다. 그중 하산 샤리프가 미술비평가 핼 포스터의 책
모자 작가는 그동안 작업에서 ‘먹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다뤄 왔어요. 오프닝 때 선보인 퍼포먼 ‘Evergreen’에서도 관객의 참여가 필수였죠. 처음엔 서로 어색한 분위기였는데 점점 친밀해지더군요. 모자 먹는 행위가 의도적으로 설정된 상황 안에 놓이면 반응의 스펙트럼이 넓어집니다. 즐거움에서 불편함까지 표정이 다양하게 바뀌죠. 오늘날 음식은 시대성이 있는 주제예요. 덧없으면서도 교환이 일어나는 통로가 되거든요. 누군가 먹지 않으면 작업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때 관객은 ‘내가 움직여야 한다’라는 압박을 각자 감당 가능한 방식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각자의 속도로 소화하고요. 그 과정에서 옆 사람 의 망설임이나 용기가 전염됩니다. 그래서 타인과 같이 완성하는 작업에는 특유의 해방감이 남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관객을 만난 순간도 제게 큰 울림을 주었어요. 언어적 교환이 없는 퍼포먼스라 부담이 컸지만, 사람들은 제가 표정으로만 응답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단적인 너그러움이 공간을 채웠어요. 특히 문화체육관광부장관님의 참여는 현장의 어수선함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됐고, 뒤따른 참여를 부드럽게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뜻한 편지와 전통 디저트 선물처럼 누군가가 이 시간을 받아들인 흔적은 오래 남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섹션 ‘그것, 양서류’에 있는 하산 샤리프의 ‘사전Dictionary’(1981)에서 성능경 작가의 작품이 떠올라 인상적이었습니다. ‘근접성’ 개념이 와닿아서 그랬나봐요. 김은주 하산 샤리프의 작업과 한국 작가의 실험 작업은 접근 방식에서 공명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제가 비교하고 있었던 지점은 성능경 작가보다는 오히려 백남준의 ‘줄이 달린 바이올린’(1961) 같은 퍼포먼스 기반의 작품이었어요. 백남준이 바
이올린을 끌고 다니며 진행한 퍼포먼스는 행위와 실험을 동시에 담아내는데, 이는 과정 전체가 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과 사진은 결과물이지만, 그 전에 존재하는 ‘행위 과정’이 작품의 본질이라는 의미예요. 이미지가 생성되기 전까지의 몸의 움직임, 반복행위, 물질을 다루는 과정 전체가 실험의 기로입니다. 한국과 아랍에미리트라는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비슷한 실험이 이루어진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에요.

제도와 개인 작업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를 다루는 세 번째 섹션 ‘그것, 양서류’ 전경. 전시 공간 바닥과 벽면에 설치된 RRH의 ‘오, 그대들이여’(2019~2022)는 물질, 몸짓, 연구가 하나의 살아 있는 사유의 장으로 작동한다.
한국 관객과 아랍에미리트 관객은 각각 전시에 어떻게 접근했나요? <근접한 세계>가 관객에게 남길 바라는 지점이 있다면? 김은주 아랍에미리트 관객은 K-팝, K-드라마, K-영화 등으로 이미 한국 문화에 친숙해 한국 미술을 비교적 부담 없이 받아들입니다. 반면 한국 관객은 갈등이나 종교, 여성의 권리 같은 미디어에서 반복된 이미지를 안고 전시장에 들어서고요. 그래서 <근접한 세계>는 사전에 알고 있는 정보의 양보다 전시 를 경험하며 사고가 조금씩 움직이는 순간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아랍에미리트 관객은 익숙한 문화적 맥락 안에서 작품을 받아들이고, 한국 관객은 낯선 환경 속에서 궁금증이 하나씩 생겨나는 것이죠. 그런 호기심이 쌓여 더 알고 싶다는 감각으로 확장된다면 전시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가 한국 관객에게는 관심이 탐색으로 넘어가는 계기로 남길 바라요.
모자 작가는 예전 인터뷰에서 “예술만으로는 망가진 것을 고칠 수 없다. 예술은 다른 시스템과 맞물릴 때 작동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번 전시처럼 관객의 참여와 환대가 작품을 성립시키는 상황에서 예술이 닿을 수 있는 범위와 의도적으로 멈춰야 한다고 느끼는 선은 어디라고 보시나요? 모자 예술가는 타인에게 잠시 멈춰서 들여다보자고 요청하는 사람입니다. 사회와 정치의 장면뿐 아니라 몸의 제스처, 지극히 개인적
인 상황을 되돌아보게 하죠. 예술은 질문을 던지고, 어떤 것을 강조하고, 사람들의 호응을 청하거나 흐름을 흔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항의하거나 동의하기도 하고요. 이런 움직임은 결국 ‘논평’에 가깝습니다. 일부 예술가는 직접 행동에 나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예술, 모든 예술가의 목적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수자원을 고갈시키는 농업의 현실을 작업 안으로 가져올 경우 함께 논의하며 해결책을 찾는 워크숍을 열더라도 과학·정부·학문의 시스템이 더해지지 않으면 금세 한계에 부딪힙니다. 반대로 학문과 과학, 행정의 영역도 메시지를 사회적·문화적 언어로 번역하고 확산하기 위해선 예술가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생태계와 마찬가지예요. 누구도 모든 해답을 혼자 쥐고 중심에 설 수는 없습니다. 한 주체가 답을 독점하려는 순간, 그 시도는 오히려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H. E. HUDA ALKHAMIS-KANOO
서울과 아부다비를 잇는 아부다비 음악예술재단 이사장 후다 알카미스-카누

후다 알카미스-카누 1996년 아부다비 음악예술재단과 2004년 아부다비 페
스티벌을 설립하며 아랍에미리트 문화 예술 생태계를 구축해왔다. 예술·교육·
여성 분야의 역량을 확장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대영제국 훈장·프랑
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등을 수상, 국제적으로 문화 예술 공로를 인정받았다.
1996년 아랍에미리트의 문화 예술 환경에서 어떤 필요성을 느끼셨기에 아부다비 음악예술재단(ADMAF)을 설립했나요? 제 삶은 늘 예술과 함께했어요. 아랍 문화의 중심지인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자랐고, 파리에선 고등교육을 받으며 유럽의 문화 예술을 깊이 접했습니다. 이후 아부다비 문화재단에서 일하며 예술이 도시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죠. 아랍에미리트는 건국 초기부터 국가 발전 중심에 문화를 두며 문화 기관을 세워왔습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저는 공동체 차원에서 창의적 활동을 끌어낼 수 있는 시민사회 기반의 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국가 차원의 문화 정책에 더해 시민과 예술가가 서로 만날 수 있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지요. 이것은 ADMAF라는 플랫폼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ADMAF는 음악을 중심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시각예술, 퍼포먼스, 교육 등을 아우르는 다학제간multi-discipline 플랫폼으로 확장했어요. 음악은 보편적 언어예요. 국경을 초월해 다채로운 문화권과 쉽게 접점을 형성할 수 있는 매체라서 아부다비와 세계를 잇는 데 적합했습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음악 분야에만 머물 구상은 아니었어요. 창의성은 칸막이 안에 가둘 수 없으니까요. 한 세대의 상상력을 키워놓고, 그 너머로 나아가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음악에서 전문성과 신뢰를 쌓은 뒤 이를 주춧돌 삼아 공연, 교육 프로그램, 시각 예술 등 다른 예술 분야로 활동 폭을 넓혀왔습니다. 아부다비페스티벌을 예로 들면, 국제 작곡가와 연주자의 공동 커미션 작업을 비롯해 공연, 교육, 전시, 토크 등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유기적 맥락 안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가가 시행하는 소프트 파워 전략의 핵심은 문화라고 자주 언급하셨습니다. 특히 ‘봉사being of service’ 개념을 강조하셨죠. 저에게 봉사는 하나의 에토스ethos, 다시 말해 삶의 태도예요. 책임감을 전제로 베푸는 행동이자 개인적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뜻합니다. 문화 예술을 에토스로 지원할 때 소프트 파워soft power는 목표로 설정되기보다 결과로 나타납니다. 예술가를 위한 성실하고 진심 어린 환경을 마련하면,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솔직해져요. 그런 진정성이 국경을 넘어 전달되는 순간, 소프트 파워로 번역됩니다.
최근 중동 지역에서는 국가 간 문화 교류와 협업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중동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되찾고 있다는 점이에요. 젊은 세대는 외부가 만든 틀안에 규정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가진 관점과 문화적 토대를 자신감 있게 정의하고 표현하는 단계에 와 있어요. 저는 이것이 중동 문화 교류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고 봅니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존재합니다. 외부에는 여전히 중동 문화를 고정된 이미지로 바라보는 시선이 남아 있고, 내부는 새롭게 등장하는 창작자들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하는 체계가 좀 더 단단해져야 해요. 이런 조건이 강화될 때 중동 지역의 문화는 훨씬 안정적이고 활발한 형태로 발전할 거라고 믿습니다.

(왼쪽부터) 후다 알카미스-카누 이사장, ‘2025 아부다비 페스티벌 어워드’를 수상한 이불 작가. 주한 아랍에미리트 대사 압둘라 사이프 알 누아이미. GS에너지 대표이사 허용수.
2024년 서울특별시와 체결한 업무 협약(MOU)은 ‘문화 교류 확대’라는 맥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MOU는 ADMAF의 장기적인 목표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아부다비와 세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흐름을 만드는 일이에요. ADMAF 설립 이후 파트너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으면서 ‘연결’이라는 사명을 실천해왔습니다. ‘조화로운 세계A World of Harmony’, ‘문화의 지혜The Wisdom of Culture’ 등 아부다비 페스티벌의 주제 역시 세계와 관계를 맺는 도시로서 아부다비의 역할을 보여주죠. 유산과 혁신이 균형을 이룬다는 점에서 서울은 아부다비와 공명하는 도시예요. 서울과의 MOU는 그동안 아부다비가 여러 도시와 맺어온 문화적 다리를 서울까지 확장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ADMAF는 국제 협업을 재단의 방향성과 미학을 반영하는 ‘선택의 결과’로 바라보는 것 같네요. 서울시립미술관과 협업을 결정할 때 발견한 공통점이 있나요? 서울시립미술관과 ADMAF는 같은 에토스를 공유해요. 유행이나 단기적 화제성보다는 성실함과 진정성을 중시하고, 어떤 프로젝트든 예술가의 시각을 중심에 둡니다(artist centric). 양국과 양국의 예술가,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기관 모두 세계화와 기술 변화 속에서 정체성과 뿌리내림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해온 역사가 있어요. 그래서 협업을 논의할 때 “우리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보다 “어떤 대화를 할 수 있는가?”를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이는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탄탄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서울미술관과의 협업에서 시각예술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시나요? <근접한 세계>와
한국 방문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오늘날 아랍에미리트는 르네상스에 가까운 활력을 갖고 있습니다. 시각예술, AI, 음악,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예전부터 공고하게 세워진경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들이 지속되고 있거든요. 그들의 에너지를 지원하는 든든한 기관과 후원자들도 존재하고요. 오랜 전통과 젊은 창작 에너지가 공존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아랍에미리트는 잘 맞습니다. 양국의 조합이 앞으로 더 많은 실험과
도전, 풍성한 교류를 이끌어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부다비에서 개최한
도시 간, 기관 간 협력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새롭게 확인한 지점도 있었나요? 저는 파트너십에는 시간, 맥락, 그리고 진정성이 필요하다고 늘 강조해왔습니다. 서울특별시, 서울시립미술관과의 만남은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고, 그래서 제 믿음을 확인하게 됐어요. 기관이 단순히 거래적인 기회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의도와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할 때 단일한 이벤트를 뛰어넘는 유산이 탄생합니다. 팬데믹 이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세계에서 저는 서울을 여러 차례 찾으며 한국과 아랍에미리트를 어떻게 다시 연결할 수 있을지, 도시와 도시, 기관과 기관이 어떻게 대화의 문을 열 수 있을지 다양한 논의를 나눴어요. 이번 협업은 그런 대화가 제도적 약속의 형태로 자리 잡은 사례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과의 협력에서 염두에 둔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동–동East–East’ 대화에 계속 집중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서구의 기준을 거치지 않더라도, 아시아와 중동사이에서 새로운 공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의 접점 형성은 하나의 출발점이었어요. 현재는 예술가·큐레이터 교류, 장기적인 기관 파트너십 등 여러 형태의 협업 방식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아직 개별 프로젝트를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시작된 이 흐름을 다른 아시아·태평양 지역까지 지속적으로 넓혀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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