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1월호

비워둔 자리에 피어난 것들

단추를 다루며 작은 것의 완성도를 따지던 사람이 있다. 두양문화재단 오황택 이사장은 그 눈으로 가구와 인더스트리얼 오브제, 포스터를 골라 이함캠퍼스를 채운다. 공산품이 오가던 감각 위에 이제는 자신이 발견한 디자인과 사물들을 쌓아 올리고 있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이창화

Gaetano Pesce, ‘Poltrona scultorea mod. Piede della serie UP7’, 1969(B&B Italia)


이함캠퍼스는 ‘빈 상자(이함以函)’와 ‘배움의 공간(캠퍼스campus)’이 만나 탄생한 공간입니다. 빈 상자에 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감각을 조금이라도 더 섬세하게 가다듬고자 했습니다. 1980년대 일본에 갔을 때가 여전히 생생합니다. 한국에서는 캐러멜을 비닐에 단순히 말아 파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일본에서는 모찌 같은 작은 간식에도 겹겹이 포장을 입히고, 내부에는 카드와 안내문까지 넣어 작은 선물처럼 꾸미더군요. 그때 경험을 통해 기준을 정하는 쪽은 소비자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고르는 사람의 기대치가 높아지면 생산하는 쪽도 수준이 올라가는 법이라는 확신을 얻었죠. 미술 안에서도 일상과 가장 가까운 영역은 손과 몸에 직접 닿는 그릇, 의자, 포장 같은 디자인이라고 보았고요. 그래서 이함캠퍼스의 축을 디자인에 두었습니다. 빈 상자에 채우고자 했던 것은 사 물의 형태와 기능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감각, 즉 좋은 것을 알아보고 요구할 줄 아는 눈이었어요.


‘이함’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지인이 호를 하나 지어보자고 제안하면서, 어떤 이미지를 담길 원하는지 물은 적이 있어요. 당시 떠올린 것이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빈 그릇이었습니다. 비어 있어야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 ‘이함’입니다. ‘함’에는 상자와 그릇이라는 의미가 있어 제가 구상하던 모습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지금도 언제든 낯선 것까지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해요.


네모난 콘크리트 구조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무언가를 흡수하는 듯한 건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이함’ 같다고 할까요? 건축의 언어는 건축가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요구한 내용은 단순했어요. 안도 다다오의 작품을 보러 일본에 자주 갔는데, 노출 콘크리트 특유의 고요하고 단정한 분위기에 강하게 이끌렸습니다. 그래서 김개천 건축가에게 ‘재료는 노출 콘크리트, 전체 이미지는 미니멀리즘’이라는 방향만 전달했죠. 상자형 매스를 어떻게 조합하고, 그 사이로 빛과 사람의 움직임을 어떻게 흐르게 할지는 건축가의 해석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오황택 1978년 단추 회사 ‘두양’을 설립했다. 2013년 재산 의 80%를 기부해 두양문화재단을 세운 뒤 2015년에는 청 년 인문학교 건명원을, 2022년에는 문화 예술 공간 이함캠 퍼스를 열었다. 특히 이함캠퍼스에선 본인이 컬렉팅한 가구, 포스터 등을 전시로 기획해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건물은 1997년에 설계가 나오고 1999년에 골조가 완성됐지만, 개관은 2022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제 성격이 느긋한 탓도 있고.(웃음) 애초에는 여느 미술관처럼 회화에 초점을 맞춘 공간을 구상했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이함캠퍼스만의 개성이 드러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금세 알게 됐어요. 니스만 봐도 워낙 훌륭한 회화 컬렉션이 도시에 자리 잡고 있잖아요. 이러한 역할은 그들에게 맡기고, 저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빈티지 오브제를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이들이 공간의 정체성을 확립해줄 요소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 컬렉션에 집중하게 됐죠. 국내에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운 미술관이 드물다는 점도 이를 밀어준 요인이었고요.


개관 후 3년, 반응은 어떤가요? 아직 이름이 덜 알려진 탓에 규모만 놓고 보면 기대보다 관람객이 적습니다. 그렇다고 흥행을 숫자로만 평가하지는 않아요. 누군가 찾아와 전시를 경험한다는 건 그만큼 멋진 작업을 보여줄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나 숫자라는 목적에 맞춰 서둘러 운영하는 방식과는 선을 그으려 합니다. 이함캠퍼스가 지향하는 컬렉션의 방향과 밀도에 대한 확신을 원동력 삼아, 전시 퀄리티를 꾸준히 유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평가가 뒤따르지 않을까요?


(위부터) 가에타노 페세의 ‘Poltrona scultorea mod. Piede della serie UP7’(1969), ‘Pratt Chair #7 (Blue)’(1984), ‘UP5&6 (La Mamma)’(1969).


철과 인더스트리얼 오브제를 주로 보관하는 수장고 ‘INDI 1940’.


오늘 제일 먼저 방문한 장소가 ‘INDI 1940’이라는 이름의 수장고였어요. 컬렉팅 초기에는 철과 인더스트리얼 오브제를 모으셨다고요? 녹슨 철만 보면 그냥 끌렸습니다. 붉게 변색된 표면, 시간이 스며든 질감이 주는 생명력 때문에요. 기계장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톱니와 축, 레버가 얽힌 구조가 멋있어 보였거든요. 이 같은 산업 오브제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유럽을 다녔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시장에서 물건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상인들도 가게를 닫고 창고도 비어갔고요. 그래서 가구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기계든 의자든 결국 디자인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이어지는 흐름이었기에 대상만 달라졌을 뿐 방향은 동일했어요.


폴란드 포스터를 대량으로 수집해 전시까지 개최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어요. 저에게는 포스터도 디자인의 한 분야예요. 폴란드에 가구를 보러 갔다가 어떤 상인이 1950년대 포스터를 소개한 적이 있어요. 거친 갱지에 인쇄했음에도 화면이 놀라울 만큼 강렬했습니다. 구도는 단순했지만, 상징이 명확하고 색이 살아 있어 눈앞에 있는 것들을 몽땅 샀지요. 이후에도 제안이 이어져틈날 때마다 폴란드를 오가며 모았습니다. 현지에서도 “1950년대 포스터를 찾으려면 당신에게 연락해야 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규모가 커졌어요.

수장고를 둘러보니 동일한 의자가 여러 개씩 쌓여 있더군요. 아주 마음에 들어서 산 것만은 아닙니다. 예전에는 전시와 판매를 동시에 고려해 들여왔어요. 가격이 괜찮을 때는 일부는 전시용으로, 일부는 나중에 판매할 용도로 여러 개를 한꺼번에 주문했죠. 전시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가격이 높더라도 개수가 많든 적든 망설이지 않고 구매했고요.


발데마르 시비에르지Waldemar Ś Świerzy, ‘선셋 대로’, 1957


결국 컬렉팅 기준은 이사장님의 눈이군요. 저의 컬렉팅은 자료를 끝까지 파고드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어요. 눈앞의 물건을 보고 ‘이런 기특한 발상이라니!’라는 반응이 오면 결정을 내립니다. 이름값은 당대 사람들이 붙인 평가에 가깝습니다. 동시대에는 외면했지만, 훗날 높이 평가된 사례가 미술과 건축에 무수하지요. 그래서 유명세는 우선순위에서 뒤쪽으로 밀어둡니다. 쇼핑할 때도 브랜드 로고는 잘 보지 않아요. 상표를 가려두어도 손이 가는지가 중요합니다. 널리 알려진 작업 가운데 실제로 보면 아름다움이 더욱 선명해지는 작품들도 있어요. 그런 경우는 이유가 분명하니 기꺼이 들입니다. 다만 ‘유명해서’가 아니라, 제 눈을 설득했을 때만 고릅니다. 이제는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건 희귀하다. 이건 보편적이다” 정도는 가늠할 수 있는 눈은 생긴 것 같아요.


모르는 상태에서 샀는데, 알고 보니 아주 유명한 작품이었던 일도 있었나요? 상인도 작가를 모르던 철근 의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철근을 여러 차례 휘어 다섯 겹으로 엮은 구조였는데, 발상 자체가 신선했고 가격도 부담이 덜해 두 점을 구매했어요. 그러다 뒤늦게 상당한 값에 거래되는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됐죠. 골판지로 만든 의자도 있습니다. 실용성은 떨어졌지만, 재료 자체를 전복하는 시도가 독특해 들였어요. 당시에는 유명세와 상관없이 “의자는 나무와 금속은 물론 다양한 재료로도 구현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알려진 의자들도 꽤 소장하고 있습니다. <1000 Chairs>라는 책에 실린 의자 상당수를 갖고 있다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정상화의 작품과 가에타노 페세의 가구를 나란히 놓은 전 4관.


(왼쪽부터) 가에타노 페세의 ‘Nobody’s Perfect Cabinet’(2002), ‘Sunset in New York’(1980).


가에타노 페세의 가구와 열렬한 사랑에 빠지셨다고요? 네덜란드에서 우연히 본 의자 하나가 출발점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의자가 견고함과 안정성을 우선시한다면, 페세의 작품은 유연한 구조, 생소한 소재, 과감한 색감이 한꺼번에 몰려와 전혀 다른 감각을 안겨주었어요. 본디 저는 절제된 색과 형태를 선호하지만, 오히려 낯선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와 컬렉팅했습니다. 이후 그의 책을 읽다가 “같은 재료만 쓰는 디자이너는 게으르다”, “나는 나만의 의자에 관심이 있다” 등의 문장에 공명했어요. 재료와 형식을 끝까지 바꿔보려는 태도가 저의 가치관과 맞아 1년 동안 여러 도시를 다니며 작품을 찾아 모았습니다.


전시장에 있는 페세의 가구와 김종학, 정상화 작가의 그림이 묘한 조화를 이루더군요. 그 그림들은 원래 집에 걸어두었던 작품들입니다. 한 시기에는 흑백과 미니멀한 구성에 매료됐지만, 김종학 작가의 강한 붓질과 풍성한 색을 보며 색이라는 세계가 새삼 와닿았어요. 정상화 작가의 작품은 얇은 색층이 포개진 화면이 인상적이어서 골랐습니다. 두 점을 이함캠퍼스 전시에 가져와 집 안의 방처럼 꾸미자는 아이디어가 나와 페세 가구와 함께 놓았는데요. 결이 다른 작품들임에도 한 공간 안에서 의외로 잘 어울리더라고요.


정말 원했지만 끝내 구하지 못해 아쉬운 작품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페세의 ‘골고다Golgotha’ 체어입니다. 예수의 수의를 의자 형태로 옮긴 작품으로 흰색 레진의 색감과 질감이 굳은 옷감처럼 보였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끌렸지만 가격이 너무 높아 포기했죠. 이후 다른 컬렉터 소개로 찾아간 곳에서 그 의자를 다시 만났는데, 더 비싸졌더라고요. 다른 작품과 묶음으로만 판매한다는 조건도 있었고요. 아무리 욕심이 나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컬렉팅에 영향을 준 문장이 있을까요? 일본에서 열린 가우디 전시에서 본 “아름다움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어요. 저는 정해진 평가를 따르는 대신 눈앞에서 어떤 형태와 색이 감각을 흔드는지를 잣대로 작품을 선택합니다. 제게 컬렉팅은 세상에 흩어져 있는 장면을 찾아내 곁으로 데려오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이사장님 말씀을 듣다 보니, 안목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저는 늘 제가 어떤 단계에 있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안목이라는 건 시대의 합의와 부합하는 개념이 아니니까요. 에펠탑이나 퐁피두 센터도 처음에는 거센 반대에 부딪혔지만, 오늘날에는 도시의 얼굴이 되었죠. 저는 그저 신선한 흐름이나 다음 시대와 닿아 있을 법한 작품에 끌립니다. 작품을 고를 때 역시 설명보다 시선을 붙잡는 지점을 따라가고요. 집 안에 평생 걸어둘 그림을 남에게 골라달라고 하는 건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내가 오래 바라볼 대상 아닌가요? 기준은 단순합니다. 내 마음에 먼저 와닿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지금까지 해온 걸음에 후회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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