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12월호

ALL-4-ONE

‘탁월함Arete’을 이름에 새긴 4명의 연주 팀 ‘아레테 콰르텟’.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며 치밀한 앙상블을 선보이는 이들은 연이은 국제 콩쿠르 수상과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선정으로 ‘공명’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박재영

ARETE QUARTET

“금호아트홀 무대는 젊은 연주자들이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든든한 발판이 되어왔습니다. 어린 시절 무대에 서며 쌓은 경험은 연주자로서 자신감을 키워주었죠. 저희에게 금호아트홀은 편안하게 음악을 나누며 진심을 전하는 집과 같은 공간이에요.” _ 아레테 콰르텟

(왼쪽부터) 리더이자 첼리스트 박성현, 비올리스트 장윤선, 바이올리니스트 전채안 & 박은중.


2021년 프라하 봄 국제 음악 콩쿠르를 시작으로 2023년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 2024년 리옹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하며 국제 무대의 주목을 받은 아레테 콰르텟. 이들은 치밀한 앙상블과 현대적 해석으로 한국 실내악계의 차세대를 대표하는 현악 사중주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는 2013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제도(매년 한 명의 음악가를 선정해 활동 지원) 시행 이후 실내악단으로는 처음으로 상주음악가에 참여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고전에서 현대까지 실내악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 시대와 감정, 그리고 4명의 울림이 연결되는 지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제가 연주자라면 솔리스트에 더 끌릴 것 같은데요. 팀을 선택하게 만든 앙상블의 매력이 궁금합니다. 2명 이상이 함께 연주할 때 앙상블이라 부릅니다. 그중 현악 사중주는 음악적 균형을 가장 응축해낸 형태예요. 각기 다른 연주자의 목소리가 한 지점에서 만날 때 생기는 진한 울림은 혼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 세계입니다.


균형 잡힌 음악을 이루는 최소 단위라고요? 현악 사중주는 오래전부터 ‘지성인 4명의 대화’로 일컬어졌어요. 일반적으로 외성은 주제와 감정을 드러내고, 내성은 이를 받쳐 음향을 풍성하게 합니다.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는 각자의 음색을 지키면서 하나의 구조를 형성해요. 그렇기에 네 사람의 의견을 끝까지 맞대야 완결에 가까운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즉, 긴 토론과 실험 끝에 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과정 자체가 앙상블의 핵심이라는 뜻이에요.


악기별 역할은 고정인가요? 기본 역할은 있습니다. 첼로는 저음부, 비올라와 제2바이올린은 중간 음역, 제1바이올린은 주선율을 담당하죠. 그러나 실제 무대에선 고정적이지 않아요. 첼로가 선율을 이끌거나 비올라가 저음을 받치기도 해요. 이런 교차와 변주는 현악 사중주 특유의 유연성을 빚어냅니다.


2025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아레테 콰르텟. ⓒ Kumho Cultural Foundation


각자 지향하는 음악이 있었을 텐데, 서로에 대한 확신은 언제 생겼나요? 박성현·전채안 저희는 대학생 시절 앙상블 활동을하면서 호흡을 맞췄습니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음악을 대하는 감각이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걸 확인했죠. 브람스의 ‘피아노 트리오’가 대표적이었어요. 이후 윤선 씨가 들어오며 밸런스가 안정됐고, 은중 씨의 합류로 앙상블의 스펙트럼이 한층 풍부해졌습니다. 물론 의견 충돌은 항상 있습니다만,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끝까지 듣고 조율하다 보면 모두가 납득 하는 지점에 이르게 되더라고요.


그렇다면 은중 씨는 어떤 편인가요? 흔히 ‘막내 온 톱’이라고 하잖아요.(웃음) 박은중 초반에는 선배들의 경험을 따라가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제 견해를 피력하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이렇게 접근해 보면 어떨까요?” 하면서 제 생각을 명확히 제시하는 일이 잦아졌어요.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며 다듬어간 다이내믹했던 곡을 하나 꼽는다면? 전채안 ‘2025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마지막 무대의 곡인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제16번 F장조’가 기억에 남습니다. 청력을 잃고 생의 마지막에 쓴 곡이라 그런지 담담한 태도가 음악 전반에 배어 있는데, 이를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이 컸어요. 슬픔으로만 다가가기엔 음악의 온도가 너무 다르고, 그렇다고 감정을 배제할 수도 없고···. 박성현 베토벤의 전기 작품은 구조적 완성도가 두드러지고, 후기는 감정의 결이 섬세해요. 그런데 의외로 이 곡은 전기 음악이 연상돼요. 분명 전하고자 한 말이 있었을 텐데, 베토벤만 알고 있는 답이 없는 질문이겠지만 이를 찾아가는 여정이 연주의 본질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윤선 씨와 은중 씨는 어땠나요? 장윤선 처음엔 물음표였어요. 음도 그리 복잡하지 않은데 이상하게 어려웠거든요. 그야말로 혼란스러움이었죠. 지금은 전기 곡과는 다르다는 걸 점점 깨닫고 있습니다. 박은중 오히려 처음엔 쉬운 줄 알았는데, 파고들수록 난도가 치솟더군요. 아마 활을 놓기 직전까지 “어렵다”라는 말을 하며 연주할 것 같습니다.(웃음)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서 아레테 콰르텟이 정한 주제는 ‘공명’입니다. 장윤선 작곡가들은 유독 현악 사중주에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새겨왔어요. 공명은 타인의 정서와 행동에공감해 여운을 잇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저희는 저희만의 관점보다 작곡가의 세계에 먼저 다가가 그들의 언어를 읽고 청중에게 전달하는 매개가 되고자 합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 장윤선(비올라), 박은중(바이올린), 박성현(첼로), 전채안(바이올린).


이번 시즌 프로그램은 시대를 순서대로 나열하기보다 현악 사중주가 각 시기마다 어떻게 다른 ‘소리의 언어’를 만들어왔는 지에 초점을 맞춘 듯합니다. 역시 공명과 맞닿아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며 음악의 표현 방식이 세분화됐고, 똑같은 조성과 박자를 써도 작곡가마다 전혀 다른 소리의 언어가 탄생했어요. 저희는 연대기보다 작곡가가 처한 환경과 감정이 어떻게 음악으로 변환됐는지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흐름 위에 쌓인 울림이 오늘의 음악으로 이어지는 궤적을 그려보고자 했죠. 4명이 각자의 해석을 나누며 한 방향으로 일치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금호문화재단의 신뢰와 관객의 응원에 힘입어 뜻깊은 무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올해 1월에 선보인 하이든의 ‘현악 사중주를 위한 십자가 위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 중 ‘라르고’가 흥미로웠습니다. ‘왜 오르간 소리가 들리지?’라는 혼잣말을 할 정도로요. 아다지오 부분도 인상적이었는데, 피치카토로 가볍게 시작했다가 바이올린 선율이 피어오르며 긴장감이 조성된 까닭에 침묵과 잔향이 팽팽했어요. 박성현 하이든의 작품을 준비하면서 여러 논문과 자료를 참고했어요. 조성은 단순한 음의 배열이 아닌, 작곡가가 메시지를 담기 위해 선택한 언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특히 바로크 시대의 고유한 정서를 이해하고 나니, 그 시대의 피치와 악기 조건으로 연주해야 비로소 본바탕에 다가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크 활을 사용했고, 바이올린의 어깨 받침을 빼 당시의 소리와 질감을 최대한 재현했습니다. 전채안 저희가 다루는 악기는 서양음악의 전통 위에 놓여 있어요. 현대적 감각에 기대는 것도 좋지만, 악기가 어떤 배경에서 태어나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들여다보려 해요. 바로크는 그러한 전통의 출발점이었고, 저희는 시대정신을 존중하며 연주하려고 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차원적으로 현악 사중주라고 하면 카랑카랑한 소리를 기대하는데, 아레테 콰르텟의 연주는 종종 바흐 ‘코랄’의 눅진한 선율이 떠올라요. 베토벤 ‘세리오소’를 연주할 때도 그렇고요. 순화된 내면의 파열음이라 할까요? 저희는 무엇보다 작곡가의 속뜻을 세밀히 읽으려 합니다. 특정 조성이나 화음을 선택했다면, 여기엔 작곡가가 원하는 감정의 결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하이든은 이를 잘 대변하는 인물이죠. 저희는 개별 악기의 개성을 내세우는 대신, 작곡가가 의도한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을 목표로 해요. 4명이 동일한 호흡과 압력으로 소리를 낼 때 악기 간의 경계가 사라지며 예기치 못한 밀도와 일체감이 생깁니다. 바로 그 응집된 울림이 아레테 콰르텟이 추구하는 사운드예요.


11월 말 발매된 아레테 콰르텟의 첫 정식 음반. 2021년 ‘프라하의 봄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을 기념해 ‘체코’를 주제로 정했다. 레오시 야나체크의 현악 사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와 2번 ‘비밀 편지’ 전곡, 요세프 수크의 옛 체코 성가 ‘성 바츨라프에 의한 명상’ Op. 35a로 구성된다.


이제부터는 개인 질문을 드려볼게요. 성현 씨는 한 인터뷰에서리더로서 일이 많아 우스갯소리로 재분배를 원한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더불어 제1바이올린으로서 채안 씨는 전체 구조를 조율할 때 어떤 부분을 신경 쓰나요? 박성현 재분배는 팀원 전체가 책임감을 갖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날 이후 예전보다 더 자주 만나 방향성을 공유했는데요. 서로가 서로를 세심하게 챙긴 결과, 최근 팀의 리듬이 부드럽게 정돈되면서 결속이 다져졌습니다. 전채안 하나의 음악을 향해 나아가더라도, 길이 좁아지면 오히려 음악이 평면적으로 들릴 수 있어요. 그래서 리허설에선 각 파트가 제 소리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제1바이올린은 선율을 이끌고, 첼로는 화성의 기둥을 세우며, 비올라는 그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죠. 제2바이올린은 내성을 받치거나 선율에 합류하고요. 작품마다 포지션이 달라지기에 전체의 균형이 흔들리지 않도록 큰 틀에서 조율하려고 합니다.


윤선 씨는 바이올린에서 비올라로 악기를 바꾼 이유가 무엇인가요? 유튜브 채널에서 바이올린 레슨으로 화제가 됐었잖아요.(웃음) 또 미세한 균형을 잡는 제2바이올린이자 팀의 막내로서 은중 씨가 즐기는 틈이 있다면? 장윤선 앙상블을 워낙 좋아했어요. 레슨보다 실내악 수업이 더 기다려질 정도로요. 그러다 성현 오빠가 슈베르트 현악 오중주를 제안하며 비올라를 맡겼는데, 그게 전환점이 됐습니다. 연주를 거듭할수록 비올라의 저음이 편안하게 다가왔거든요. 소리의 폭과 색채가 제 성격과 잘 맞았어요. 바이올린은 조금 작게 느껴진 반면, 악기 크기도안정감을 주었고요. 저의 결정을 믿고 기다려준 팀원들에게 지금도 고맙습니다. 박은중 집에 누나가 셋이어서 팀의 분위기가 낯설지 않아요. 실수를 해도 다들 웃으며 넘기고, 모르는 건 차근차근 알려주세요. 가끔은 팀의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일부러 고집을 부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성현 형이 중심을 단단히 잡아줍니다. 덕분에 팀 안에는 따스한 웃음과 안정감이 공존한답니다.


앞으로 탐구해보고 싶은 작곡가나, 언젠가 꼭 연주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박은중 내년은 슈만 서거 1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저희가 애정하는 작곡가라서 그의 현악 사중주 전곡을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정리해 음반으로 남기고 싶어요. 예전에 슈만 전곡 리사이틀을 진행한 적이 있지만, 그때보다 성숙해진 해석으로 마주해보려 합니다. 멘델스존과 벨러버르토크의 전곡 프로젝트도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자 해요.


이번 상주 시즌이 끝난 뒤, 아레테 콰르텟이라는 이름 앞에 새롭게 붙길 바라는 수식어가 있을까요? 그동안 ‘신예’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어느덧 팀을 결성한 지 6년이 됐어요. 이제는 이러한 수식어 없이 ‘아레테 콰르텟’이라는 이름만으로 존재감을 증명하는 팀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4명이 각자의 색깔을 유지한 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음악뿐 아니라 태도에서도 변치 않는 유대감과 에너지를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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