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4월호

친환경 퍼포먼스, 달리는 예술

가슴 뛰게 만드는 엔진 사운드에서 전기모터의 정숙함으로 옮겨간 순간, ‘럭셔리’의 개념은 진화한다. 고성능과 지속 가능성을 모두 품은 예술 작품 같은 슈퍼카들이 지금 이 순간 새로운 시대의 문을 두드린다.

EDITOR 박이현

ROLLS-ROYCE, BLACK BADGE SPECTRE


새벽의 고요를 가르며 롤스로이스 ‘블랙 배지 스펙터’가 우아하게 도로 위를 미끄러진다. 거친 엔진의 포효 대신, 은은하고 정숙한 움직임은 마치 미래의 문을 여는 열쇠처럼 신비롭다. 그리고 어둡게 빛나는 차체를 스치는 도심의 불빛은 꿈결을 연상시킨다. 이토록 화려한 풍경은 롤스로이스가 전통과 혁신을 뛰어넘어 또 다른 장을 써 내려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만 같다. 기계적 완벽성과 탁월한 엔지니어링의 정수로 일컬어지던 롤스로이스는 이제 ‘조용한 혁명’이라 부를 만한 거대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건 지난 2월 공개된 순수 전기 모델 ‘스펙터’의 고성능 버전인 블랙 배지 스펙터의 스펙. 역사상 가장 강력한 롤스로이스라 불리는 이 차의 최고출력은 659마력(485kW), 최대토크는 1075Nm(약 109kg·m), 제로백은 4.3초다. 하지만 더욱 주목할 점은 전기 구동을 통해 브랜드의 탄소 배출을 상쇄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럭셔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친환경이 곧 타협을 의미하지 않음을 증명하려는 것일까. 블랙 배지 스펙터는 롤스로이스의 전설적인 멀린 항공기 엔진에서 영감을 얻은 두 가지 혁신적인 주행 모드를 선보인다. 스티어링 휠에 자리한 ∞ 버튼을 누르면 즉각적인 페달 반응과 659마력의 출력을 제공하는 ‘인피니티 모드’, 브레이크와 액셀을 동시에 밟으면 폭발적인 가속을 발휘하는 ‘스피리티드 모드’가 바로 그것. 이에 따라 운전자는 감각적이면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경험할 수 있다. 또 판테온 그릴과 환희의 여신상, 더블 R 배지 등 롤스로이스를 대변하는 요소에 검정 미러 광택 마감을 적용, 진보한 스펙터의 성격을 드러낸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단순한 수치에 있지 않고, 그 이면에 깃든 철학과 가치를 통해 부각된다. 롤스로이스가 전동화를 대하는 방식은 브랜드의 고유한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미래로 나아가는 여정에 가깝다. 이를 통해 롤스로이스의 럭셔리란 1차원적인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삶을 예술로 승화하는 하나의 표현임을 다시금 일깨운다. 소리 없이 도로를 누비면서 동시에 확연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롤스로이스 블랙 배지 스펙터, 전통과 혁신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라 해도 절대 과장이 아니다.

블랙 배지 스펙터

최고출력 659마력 최대토크 1075Nm(약 109kg·m) 최고속도 250km/h 제로백 4.3초



FERRARI, F80


페라리의 심장은 예나 지금이나 거친 포효의 엔진에 있다. 시대 흐름이 전동화와 친환경으로 급격히 이동 중인 오늘날, 페라리는 고유한 유산을 지키면서 변화를 수용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페라리의 신형 슈퍼카 ‘F80’이다. 기존 차량을 존경하고 위대한 혈통을 계승하는 것은 물론, 페라리의 최첨단 기술과 성능을 자랑하는 F80은 ‘GTO’, ‘F40’, ‘F50’, ‘라페라리 아페르타’ 같은 상징적인 차량의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예측된다. F80은 3.0리터 V6 트윈 터보엔진과 3개의 전기모터가 합작해 최고출력 1200마력을 발휘하며, 최대토크는 850Nm(약 86kg·m), 정지 상태에서 100km/h에 도달하는 시간은 단 2.15초다. 이 폭발적인 수치만큼이나 놀라운 점은 페라리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퍼포먼스’를 이룩했다는 사실. 페라리가 최초로 도입한 전기 터보(e-터보) 기술은 터빈과 컴프레서 하우징 사이에 장착해 저속 구간에서 발생하는 터보 지연을 없애고, 중·고속에서는 최대출력을 발휘하도록 제작됐다. 또 GDI(가솔린 직접 분사)의 350바 인젝터(대기압의 350배에 해당하는 압력을 직분사하는 장치)는 연료·공기 혼합을 최적화하고, 다중 분사 전략으로 배기가스를 줄이면서 뛰어난 성능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흡기 통로는 유체 역학 디튜닝(성능을 일부러 낮춤)을 통해 저항을 줄이고 연소실의 난류를 강화했으며, 3개의 매트릭스 형태로 구성한 배기 라인은 배출 가스 기준(유로 6E-bis)을 준수하는 것을 넘어, 미래의 글로벌 배기가스 규제까지 대비했다. 디자인은 단순히 미학적 만족을 넘어 기능적 가치를 극대화한다. 특히 250km/h에서 1050kg의 다운 포스(차체를 노면에 밀착시키는 힘)를 생성하는 공기역학 설계 덕분에 운전자는 극단적인 속도에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단 799대만 생산되는 F80은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서도 지속 가능성과 고성능이라는 두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슈퍼카다. 전통적인 내연기관의 짜릿한 감성과 하이브리드 기술의 혁신을 예술적으로 결합한 F80은 성능과 친환경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아우르며, 시대의 요구에 우아하면서도 명징하게 답변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F80

최고출력 1200마력 최대토크 850Nm(약 86kg·m) 최고속도 350km/h 제로백 2.15초



PORSCHE, MACAN ELECTRIC


포르쉐는 언제나 스포츠카의 정수를 구현해온 브랜드였다. 엔진이 울리는 짜릿한 사운드와 정확한 핸들링, 그리고 감성을 일깨우는 주행 경험은 포르쉐가 지닌 고유의 아이덴티티다. 그러나 전 세계가 친환경과 미래 기술을 요구하는 현재, 포르쉐 역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화를 모색했다.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이 바로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 SUV ‘마칸 일렉트릭’이다. 마칸 일렉트릭은 스포츠 정신을 지키면서 탄소 배출을 줄인 점이 돋보인다. 터보 트림 기준, 최고출력 639마력(w/런치 컨트롤)의 힘으로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 3.3초가 소요되며, 최고속도는 260km/h, 최대 주행거리는 429km다. 이러한 주행 퍼포먼스에서 주춧돌 역할을 하는 건 800V 고전압 아키텍처를 갖춘 ‘PPE(프리미엄 플랫폼 일렉트릭)’다. DC 급속 충전 출력은 최대 270kW이며, 급속 충전기를 사용하면 약 21분 이내에 배터리를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공기역학 성능 또한 SUV임에도 공기저항 계수 0.25를 실현해 눈길을 끈다. 이는 포르쉐 액티브 에어로다이내믹(PAA) 시스템이 어댑티브 리어 스포일러, 프런트 에어 인테이크의 액티브 쿨링 플랩, 밀폐형 차체 하부 커버 등 공기 흐름을 최적화했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마칸 일렉트릭은 유선형 보디라인을 보존하면서 뛰어난 주행거리와 퍼포먼스를 확보했다. 실내는 미래지향적인 블랙 패널 콕핏을 중심으로, 첨단 디지털 디스플레이와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췄다. 넓은 윈도 면적을 통해 밝고 개방적인 실내 분위기를 조성했고, 운전석과 도어 패널에는 일체형 LED 조명을 적용해 충전 상태 표시, 운전자 보조 시스템과의 연계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 순수 전기 플랫폼 채택으로 2열 시트 뒤 트렁크 용량이 540리터까지 확장됐으며, 2열 시트 포지션도 최대 15mm 내려갔다. 이는 ‘스포츠카 제조사’라는 성격이 짙은 포르쉐가 실용성도 놓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포르쉐는 단순히 엔진을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운전 본연의 재미를 지키면서도 미래 기술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전동화 시대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그렇기에 마칸 일렉트릭은 친환경 기술과 짜릿한 퍼포먼스를 만족시키는 포르쉐다운 SUV라 할 수 있겠다.

마칸 일렉트릭(터보 트림 기준)

최고출력 639마력(w/런치 컨트롤) 최대토크 115.2kg·m 최고속도 260km/h 제로백 3.3초



ASTON MARTIN, VALHALLA


애스턴마틴의 슈퍼카 ‘발할라’는 이름부터 신화적이다. 북유럽 신화 속 신들의 안식처처럼 발할라는 도로와 트랙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운전자에게 짜릿한 경험과 감성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올 하반기부터 단 999대만 생산되는 차량은 브랜드의 역사를 바꿀 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닌 하이퍼카다. 발할라는 애스턴마틴 최초의 미드엔진 양산형 차량이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로, 브랜드가 추구하는 초고성능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담아낸다. 발할라의 핵심은 4.0리터 트윈 터보 V8 엔진과 3개의 전기모터가 결합된 혁신적인 파워트레인. 이 파워트레인은 총 1079마력, 최대토크 1100Nm(약 112kg·m), 제로백 2.5초라는 압도적 성능에서 더 나아가 최고속도 350km/h를 가뿐히 달성할 정도의 폭발적 잠재력을 지녔다. 발할라의 기획에는 애스턴마틴의 F1 팀이 직접 참여, 트랙에서의 경험과 첨단 기술을 아낌없이 투입했다. F1 기술에서 영감을 받은 능동형 공기역학 시스템은 240km/h부터 350km/h까지 일정한 다운 포스(최대 600kg)를 유지해 운전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와 함께 발할라는 지속 가능성을 위해 배터리 기술도 결합했다. 배터리의 효율적인 냉각 시스템은 언제든지 최상의 성능을 지속하도록 개발됐으며, 첨단 재생 제동 시스템은 제동 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회수해 주행에 활용하도록 설계됐다. 발할라는 성능만 강조한 하이퍼카가 아니다. F1 기술을 응축한 카본 모노코크 구조는 초경량이면서도 뛰어난 강성을 제공하고,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은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의 제동력을 발휘해 드라이빙의 완성도를 높인다. 발할라는 애스터마틴이 지닌 클래식한 감성과 F1 기반의 혁신 기술, 그리고 친환경 동력의 만남이 만들어낸 결정체다. 브랜드의 미래를 이끌 상징으로서 발할라는 자동차 문화의 경계를 다시 한번 뒤흔들 준비를 마쳤다.

발할라

최고출력 1079마력 최대토크 1100Nm(약 112kg·m) 최고속도 350km/h 제로백 2.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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