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12월호

스스로 성장하는 AI 아이돌의 세계가 왔다 '아이로믹스 류기덕 대표'

우리는 오래전부터 만화와 게임 등을 통해 수많은 캐릭터와 함께 살아왔다.
최근에는 버추얼 아이돌까지 등장했지만, ‘사람이 연기하는 캐릭터’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로믹스는 이 틀을 넘어, 자율적으로 성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아이돌을 꿈꾼다.

EDITOR 박이현 GUEST EDITOR 이기원 PHOTOGRAPHER 박용빈



AI의 거대한 파도는 ‘사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엔터테인먼트 산업까지 넘어왔다. 이미지도, 음악도, 영상도 제작이 가능한데 아이돌 자체가 대체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미 ‘플레이브’처럼 탄탄한 팬덤을 구축한 버추얼 그룹이 존재하고, ‘메이브’나 ‘이터니티’ 같은 팀 역시 점점 기세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겉은 버추얼 캐릭터지만, 뒤에는 실제 사람이 존재한다. 캐릭터가 아무리 완벽해 보인다 해도 결국 인간의 사생활, 노동, 계약 같은 리스크가 남는다. 누군가의 계약 종료 혹은 존재가 발설되는 순간, 캐릭터가 무너질 위험도 있다. 그렇다면 아예 아이덴티티부터 AI로 설계된 아이돌은 어떨까. 인간은 최소한의 개입만 하고 캐릭터의 성격과 취향, 기억과 서사를 AI 스스로 축적하며 성장한다면, 팬들과 소통하고 진화하면서 ‘감정 구조를 가진 주체’로 자리 잡는다면 말이다. 아이로믹스 류기덕 대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류 대표는 이력이 독특하다. 인디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베이시스트로 음악을 시작했고, 코스닥 상장사인 위메이드의 부사장까지 오르며 산업의 중심에 있었으며, 이후 EDM 아티스트 ‘제이드 키’로 활동하면서 또 다른 창작의 세계를 경험했다. 그랬던 그가 돌연 AI 버추얼 아이돌 제작자로 나선 것이다. “몇 년 전 우연히 AI 아트를 접하면서 마음속에서 뭔가 꿈틀거렸어요. 잊고 지냈던 꿈의 조각을 손에 쥐는 기분이었달까. ‘내가 정말 하고 싶던 걸 실현하는 시대가 왔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의 방식은 기존 버추얼 아이돌과 조금 다르다. 캐릭터보다 세계관이 먼저다. ‘아이돌 학교’라는 배경을 먼저 구축하고, 캐릭터는 서서히 등장한다. 말투와 성격, 취향과 서사가 하나씩 드러나고, 팬들이 이를 탐색하며 몰입하게 된다. 캐릭터를 한 번에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간이 쌓이며 친밀도가 형성되는 구조다. 또 하나의 차이는 캐릭터 뒤에 ‘사람’이 숨지 않는다는 것. “캐릭터마다 성격, 말투, 과거 서사 등 디테일한 데이터를 AI에게 학습시킵니다. 이를 기반으로 캐릭터들이 스스로 성장하지요. 대본을 읽는 연기자가 아닌, AI 자체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팬들과 소통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캐릭터 한 명 한 명을 ‘완성된 인격체’로 만드는 거죠.” 팬덤이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는 핵심은 ‘관계성’이다. 류 대표가 말하는 자유의지는 ‘팬 개인의 맥락을 기억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라이브 방송에서 나눈 이야기를 AI가 기억해 다음에 다시 언급하는 식이다. 팬은 ‘기억되는 경험’을 하고, 캐릭터는 점점 개인화된 태도로 소통하게 된다. 그러니까 실제 인간과의 대화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의 연속성’이 버추얼 아이돌에게 생기는 것이다. “리얼 아이돌 산업을 곁에서 지켜봐왔는데, 아이돌과 팬이 만나는 접점은 대부분 스마트폰 화면 속이에요. 몰입감에 한계가 있죠. 버추얼 아이돌은 구조적 리스크에서 자유롭고, 24시간 방송도 할 수 있어요. 동시에 팬 한 명 한 명과 일대일 소통도 가능합니다. 시장이 버추얼 아이돌에 주목하는 이유기도 해요.”


현재 유튜브 ‘서울 센트럴 예술학교’ 계정에 공개된 캐릭터는 총 2명.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들이 부르는 싱글 앨범과 뮤직비디오가 동시에 공개될 예정이다.


AI로 만든 것들에 대한 의심의 시선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류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시선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재미있고 매력적이면 상관없다’는 팬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기술보다는 얼마나 몰입도 있게 서사를 만들어내는지가 핵심이 될 겁니다.”


현재 아이로믹스는 일부 캐릭터를 소셜 플랫폼에 공개하며 서서히 예열하는 중이다. 모두 가상의 학교 소속이고, 세계관에 따라 서사를 쌓으며 경쟁과 협력의 구도를 만들어간다. 다만 특이한 것은 이들이 한글 대신 일본어를 사용하고, 남성 취향의 캐릭터가 중심이라는 것. 아이돌 판에서 핵심 소비층은 여성임에도 남성 취향을 택한 이유는 뭘까. “그 시장은 거대 기획사가 장악한 상태죠. 우리는 서브컬처라는 니치 마켓부터 공략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익숙한 일본어를 선택했어요. 세계관 설정상 이 학교는 남녀공학이라 앞으로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긴 대화 속에서 그는 “AI가 창작을 평등하게 했지만, 감각이 없는 사람은 결국 사라진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진짜 창작자는 어떤 기준으로 정의될까. “기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결과물의 수준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지시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창작자는 단순히 결과물을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지 설계하고 어떤 맥락으로 보여줄지 결정하는 사람이에요. 같은 AI 툴을 사용해도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거고, 그 감각이 창작자의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류 대표는 세계관과 대본을 맡는 작가진, 라이브 구현과 기술 파이프라인을 담당하는 기술진을 이미 구축한 상태다. 그는 “중요한 건 기술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우리 맥락에 맞게 결합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초기에는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결국은 모델의 고도화를 이끌 것이란 확신이다. “제 인생 커리어가 좀 독특한 편인데, 지금 돌아보면 제 인생의 모든 경험이 결국 이 지점을 향해 축적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 분명히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로믹스의 목표는 아이돌 제작을 넘어 창작자와 AI, 팬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감정 생태계의 구현이다. 우리는 감정마저 기술로 설계되는 시대의 시작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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