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5회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에 출품된 바이올린을 심사하고 있는 박지환 제작가.
사진 제공: Wieniawski Society
2025년 ‘제15회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 심사위원 명단에 박지환 제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그는 세계 3대 모던 현악기 제작 콩쿠르라 불리는 폴란드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 이탈리아 ‘크레모나 트리엔날레 현악기 제작 콩쿠르’, 독일 ‘미텐발트 국제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에서 각종 메달과 더불어 제작 점수 최고점에 수여되는 최고 제작가상을 수상한 현악기 제작가다. 서울시립교향악단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고등학교 때까지 트럼펫을 연주했고, 2005년 현악기 제작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크레모나에 있는 ‘국제 스트라디바리 현악기 제작학교(IPIALL)’에 진학했다. 졸업 후 공방에서 일하다 2015년부터 크레모나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공방을 열고 바이올린, 비올라 등 다양한 현악기를 제작하고 있다. “2016년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에 2대의 바이올린을 출품했고, 1위와 2위를 동시에 수상했어요. 최고 점수를 받은 제작가에게 수여하는 최고 제작가상도 받았고요. 이 소식이 한국에 전해지면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어요. 실력에 비해과하게 포장된 느낌이었거든요. 그 후 바이올린 제작을 집중적으로 공부했습니다. 교과서는 스트라디바리였고요.” 실력을 키우기 위해 그는 각기 다른 스트라디바리 모델 2대를 동시에 제작했다.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와 협업해 구조나 치수에 미세하게 변화를 주면서 결과를 테스트하고 분석해 기록으로 남겼다. 길고 지루했던 그 5년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정해진 틀 안에서 깊이를 더하는 작업
“바이올린 제작은 클래식 음악과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즐긴다는 것은 수백 년 전 곡을 만든 작곡가의 의도와 그 시대의 음악 스타일을 즐긴다는 것을 의미해요. 따라서 새로운 형태나 소리를 만드는 것보다 세월이 주는 깊은 울림과 음색에 더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악기 제작가들은 더 나은 소리를 찾아 긴 세월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성공적인 사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예를 들어 현악기는 바로크 시대 귀족들을 위한 실내악 연주에 주로 사용됐다. 작은 홀에서 적은 수의 악기로 연주하기에 강하고 큰 소리는 필요하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계층이 서민으로 확대됐고, 산업도 변화를 겪는다. 작은 규모의 실내악 연주를 넘어 넓은 홀에서 공연하는 콘서트 형태의 연주가 성행하기 시작했고, 바이올린 소리가 오케스트라 소리를 뚫고 나와 홀 구석구석으로 전달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에 따라 현 세팅도 기존의 낮은 장력에서 높은 장력으로 변화가 필요했다. 바이올린 형태는 그대로 유지한 채 현을 거는 구조에서 장력을 높이는 방식이 고안됐다. 오래된 악기에도 이러한 방식을 적용했고, 그 결과 현대에서 바로크 시대의 현 세팅과 지금의 현 세팅이 공존하게 됐다. “일을 하면 할수록 클래식한 매력에 빠져들게 돼요. 재료가 나무이다 보니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도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그 지점에서 충분히 클래식 악기의 새로운 매력을 찾을 수 있죠. 동시에 이는 악기 제작가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제작가마다 일정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재료가 나무인 것이 걸림돌이 되거든요.” 재료를 선택하는 기준이 깐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지환 제작가는 바이올린의 경우 몸통 앞판은 가문비나무를, 뒤판과 옆판, 헤드에는 주로 단풍나무를 사용한다. 나무를 선택할 때는 조직의 밀도, 나이테, 무늬, 건조 상태 등을 살펴야 한다. 오래 건조한 나무를 찾아 발품 파는 일도 흔하다. 좋은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해외든 지방이든 열 일 제쳐두고 달려가곤 한다.

제작 중인 첼로 옆판.

2016년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 금메달 수상작.
시대를 초월한 소리를 꿈꾸며
클래식 음악이 정해진 규칙 안에서 연주자가 깊이를 더하는 장르이듯 클래식 악기 제작도 정해진 틀 안에서 제작가가 깊이를 더하는 일이다. 요즘 박지환 제작가는 연주자와 교류를 통해 좀 더 사용하기 편하고 좋은 소리를 내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그가 크레모나에 머무는 이유이기도 하다. 크레
모나는 걸어서 30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도시다. 대부분이 농지인 곳에 250개가 넘는 현악기 제작 공방이 모여 있다. 400여 년 전부터 악기 제작 기술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자연스럽게 도제 문화가 정착했고, 다양한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활동하며 교류하고 있다. “악기 마감도 중요하지만, 최근에는 보다 성숙한 제작가가 되기 위해 소리에 좀 더 집중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악기를 만들면 새로운 주인에게 보내기 바빴는데, 이제는 여유분의 악기를 소유하고 크레모나를 찾아오는 연주자들에게 제 악기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렇게 세계의 연주자들과 교류하면서 소리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할 생각입니다.” 장인의 손에서 태어난 명바이올린은 연주자의 손끝에서 성숙해진다. 나무 구조가 안정되고 소리의 길이 열리는 300~400년 무렵이 바이올린의 전성기다. 현악기 제작가의 전성기도 여느 직업에 비해 늦다. 적어도 30년 이상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야 비로소 전성기를 맞는다. 박지환 제작가는 종종 악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한다. 그 맑은 혼이 악기에 깃들어 연주자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수백 년 동안 연주될 불멸의 현이 탄생하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공방으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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