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드래곤을 그린 ‘Übermensch’. 킬드런은 다양한 음악가들의 초상을 꾸준히 그려왔다.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가들의 개성과 감정을 포착한 것이 특징.
그대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
사운즈 한남 꽁떼비 갤러리에서 킬드런의 개인전

KILDREN
킬드런 국내외 음악, 패션 등 장르를 넘나드는 협업으로 이름을 떨친 현대미술가. 화 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미술에 빠져들었 고 일본에 건너가 도쿄 디자 인 전문학교에서 극사실주의 화풍을 본격적으로 공부했 다. 2012년 귀국한 이래 음 악과 예술을 넘나드는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다양한 분 야의 러브 콜을 받고 있다.

꽁떼비 갤러리에서 열린
킬드런 개인전
“전시의 출발점은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한남동이라는 근원적 공간이에요.
음악과 영화에서 받은 영감을 회화로 확장해 관람객에게 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선 기억을 전달하고자 했죠. 관람객이 킬드런의 작품을 통해 익숙한 존재와
공간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_ 꽁떼비 갤러리 정유현 대표
전시장에는 사카모토 류이치, 제프 버클리, 커트 코베인, 존 레넌, 제이지 등 장르 불문 세계적 아티스트의 모습이 즐비하다. 그만큼 음악가들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이며 음악은 그의 작업 세계를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이다. 특히 아이유, 지드래곤, BTS 같은 스타들을 그린 작업들이 유명세를 떨쳤지만 그렇다고 이를 일시적인 유행으로 소비하지만은 않는다. “작품의 임팩트가 강해서인지 많은 사람이 K-팝 관련 작품을 기억하곤 해요. 하지만 전체 작업에서 K-팝 아티스트를 다룬 건 극히 일부예요. 마지막으로 그린 건 지드래곤이었고, 그마저 BTS와 협업한 이후 4년 만이었어요”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음악에서 이미지를 잉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요. 시간이 지나 그 이미지가 충분히 익었다는 직감이 찾아오면 그 요소들을 끄집어내서 그리지요. 그렇다고 직감으로만 그리지는 않아요. 철저하게 정보를 찾아보고 검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최종 결과물을 표현해요”라며 자신의 생각을 이어갔다. 킬드런은 이런 영감을 색, 선, 공간의 형태로 옮기되 즉흥보다 분석과 직감의 균형을 중시한다. “그것이 색이 될지 선이 될지 공간이 될지는 모릅니다. 완성해봐야 알게 되죠”라는 그의 말처럼, 음악은 작품의 흐름을 결정짓는 출발점인 동시에 마지막 변수로서 역할을 한다. 킬드런의 손에서 탄생한 인물화는 강렬한 에너지를 담으면서도 섬세한 감정 또한 잃지 않는다. “인물 작업은 생동감과 무드가 살아 있어야 하고, 추상이나 반추상 작업에서는 공간성이 중요해요. 같은 색이나 면, 유사한 표현 기법을 적용해도 그 기술을 그대로 입힐 수 없는 작품들이 있어요. 제가 그린 완성작마다 느낌이 다른 이유죠. 인물 작업을 할 때마다 마음이나 선입견을 리셋하고 기법, 물감, 생각을 새롭게 만들어요. 무엇보다 그리는 대상을 향한 존경심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럼 작가가 인물을 선택하는 기준은 뭘까. 바로 ‘영감’이다. “제게 영감을 주는 사람을 앞에 세워요. 일반인이나 상상 속 인물일 때도 있지만 물리적 제한이 존재하죠. 세상의 모든 걸다 그릴 수는 없으니 결국은 제 인생에 영감과 영향을 준 귀인 들을 담아내고 싶거든요. 그게 바로 시대의 기록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대개는 공식 컬래버레이션 제안을 받을 때가 많고요. 다만 영감이 충분하지 않으면 제안이 와도 거절합니다.” 포즈 역시 고정된 공식을 따르지 않고 작업할 때마다 새로운 기준에 따라 정한다. 같은 인물을 그릴 때도 컬러나 구도 등을 바꾸거나 여러 각도에서 변주해 낯선 장면을 만들어낸다. “가까운 사람의 뒷모습을 떠올려보세요. 우리는 대부분 단면만 보고 살아갑니다. 저는 어딘가를 바라보는 동물의 뒷모습을 좋아합니다. 어떤 존재의 뒷모습에서 경외심과 우주를 느껴요. 여행을 떠나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미학적으로 고정된 피사 각을 살짝 트는 방식으로 낯설지만 익숙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해요.” 그렇게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은 캔버스 스케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조각가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 제 회화는 조각의 훈련이기도 하죠. 제가 의도한 시각적 연출은 작은 화면엔 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작은 캔버스로도 실험하고 있어요. 특정한 스케일을 고집하지는 않아요. 작품의 크기는 작품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둘 뿐이죠. 크기는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초상화 ‘Merry Christmas Mr. Lawrence’.

‘Ylang Ylang 2’. 신세계백화점과 컬래버레이션한 작품으로 FKJ의 음악 ‘Ylang Ylang’에서 영감을 얻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 같은 마음으로
‘킬드런Kildren’이라는 이름에는 ‘늙지 않는, 영원히 진보하는 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자기 복제를 두려워하던 시절에 만든 이름이에요. 공부를 멈추고 지금 가진 것만으로 살아가는 예술가의 모습이 얼마나 쓸쓸한가를 자주 생각해요. 제 이름은 일종의 다짐이에요. 매 순간 제 상태를 상기하는 거죠. 아직은 본명보다 학구열에 취한 킬드런으로서 조금 더 살아야 할 때가 아닐까요?”라는 말에서 킬드런이 갖는 의미와 맞아떨어지는 그의 행보가 엿보인다. 한결같이 신선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낯선 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도 킬드런의 장점이다. “좋든 싫든 새롭게 태어 나는 음악, 영화, 패션에 관심을 둡니다. 특히 음악은 병적으로 찾아 들어요. 새 취향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모든 장르를 접해보는 편이죠. 제 삶에서 오래된 취향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주 점검해요. 여행도 자주 하고요. 그렇다고 트렌디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트렌드를 알고 가는 것과 모른 채 가는 건 분명히 다르잖아요. 특히 창작자는요.” 이렇게 그는 취향을 뛰어넘어 변화하는 문화에 자신을 노출시킨다. 작가는 그동안 다양한 협업이나 브랜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런 활약 속에서도 예술가로서의 중심은 변하지 않았다. “가장 저답게 가려고 해요. 저다운 것을 하되 힘을 빼고 직감을 믿는 거죠. 이런 태도 말고는 정답이 없어요. 제 경험상 다른 마음이 과하게 들어가면 남모를 갈등에 빠지기도 하더라고요. 오히려 어렵고 부담되는 프로젝트일수록 가장
근원적이고 맑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킬드런의 장인 정신에 가까운 정교함은 작품에 높은 가치를 더한다. 그에게 럭셔리한 아름다움이란 곧 진정성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유행을 타지 않고, 그 사람만의 아이덴티티와 질감이 있는 것,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 순간적 효과나 인상을 주기 위해 기교에 빠지지 않는 고집, 인생 전체가 녹아 있는 예술. 이런 것들이 진짜 럭셔리한 감각과 퀄리티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이의 취향이 다르니까요. 진정한 의미의 럭셔리는 결국 ‘가장 자신다운 것을 인생을 걸고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자신의 작업을 관통하는 가치를 언급했다.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킬드런은 “이번 초대전은 오랜만에 개최한 전시예요. 전시를 극도로 잘 안 합니다. 그러니 관심 있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제 마음은 단순하고 아이 같았습니다. 조각과 추상 작업도 오래 준비하고 있어요. 완성되는 시점에 함께 선보이겠습니다. 조금 더 멋지게 하려다 보니 시간이 걸리네요”라며 웃었다. 킬드런은 11월 28일 낙원상가 작업실 ‘이들스’에서 그가 컬래버레이션한 첫 와인 출시를 기념한 아트 토크를 열고, 신세계백화점 미디어 파사드 전시를 연말까지 이어간다. “곧 CU편의점 전 지점에 첫 와인이 공식 출시돼요. 두 번째 와인도 이미 작업해두었어요. 내후년에는 초대전이 아닌 형식으로 4년만의 개인전을 준비 중이에요. 서울 작업실과 함께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인근에도 작업실과 갤러리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계획이 많습니다”라며 쉴 새없이 바쁜 계획을 밝혔다.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서 꾸준히 자신만의 생태계를 확장해가고 있는 킬드런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다음 프로젝트를 기다릴 독자들에게 따스한 인사를 남겼다. “좋은 날, 좋은 마음으로 웃으며 다시 뵙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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