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12월호

예술, 패션, 디자인이 만난 복합 축제의 장

복원된 그랑 팔레의 유리 천장 아래에서 열린 첫 회의 실험적 시작을 넘어선 아트바젤 파리Art Basel Paris 2025.
예술과 패션, 디자인, 도시가 한데 섞인 새로운 소비와 경험의 서사를 만들며 파리를 유럽 미술 시장의 실질적인 중심으로 부상시켰다.

EDITOR 김민지 WRITER 양윤정

무라카미 다카시와 루이 비통이 준비한 협업전 ‘아티카퓌신Artycapucines VII’ Art Basel Paris 2025, © Adrien Dirand Louis Vuitton Malletier


Art Basel Paris 2025, © Adrien Dirand Louis Vuitton Malletier


뜨거운 거래의 시작

첫날부터 거래는 뜨거웠다. 총 206개 갤러리가 참여한 가운데, 하우저앤워스Hauser & Wirth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품을 2300만 달러(약 334억 원)에 판매했고,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는 루스 아사와Ruth Asawa의 조각을 750만 달러(약 109억 원)에 거래했다. 페로탕Perrotin, 카멜 메누르Kamel Mennour, 타데우스 로팍Thaddaeus Ropac 등 주요 갤러리들 또한 강세를 보이며 파리가 런던과 바젤을 잇는 유럽 미술 시장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는 확신을 남겼다. 이번 에디션에서 눈에 띈 흐름은 ‘Oh La La!’ 같은 기획 프로그램이 단순한 사이드쇼가 아니라 페어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출발점이 됐다는 사실이다. 페어 시작 3일 후인 24일에 공개된 루이크 프리장Loïc Prigent이 연출한 이 섹션은 ‘패셔너블’을 의미하는 ‘아 라 모드À la mode’라는 주제 아래, 미학적 전략으로 패션적 유머와 쇼맨십을 활용해 마지막을 향해가는 페어 일정 속 부스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참여 갤러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옷과 몸, 스타일의 사회적 함의를 탐구했는데, 파리의 갈레리 템플롱Galerie Templon은 1970년대에 제작한 벤Ben의 풍자적 텍스트 작품 ‘Je peut tout me permettre(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를 다시 걸며, “패션과 자유의 언어는 얼마나 가까운가”를 되묻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패션이 올해의 주제가 되면서 아트바젤 측은 공식 SNS 계정에 패션 인플루언서의 컬렉팅 내용을 담은 영상, 아트바젤용 OOTD(Outfit Of The Day) 같은 의외의 대중적 콘텐츠를 소개하는 변화도 꾀했다. 이런 시도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보수적 관점도 있지만 점점 흐려지는 예술과 패션, 대중문화와 컬렉터 사이 경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해석 또한 팽팽했다.


미우 미우의 설치 퍼포먼스 ‘헬렌 마튼의 30 블리자드’.


패션이 만든 새로운 장면

아트바젤 파리의 파트너사이자 공식 후원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브랜드 또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회사인 루이 비통이다. 루이 비통은 아티스트 협업 프로그램을 매해 아트페어 내에서 전개함으로써 단순한 후원 이상의 문화적 참여를 하고 있다. 올해는 일본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새로운 협업, ‘아티카퓌신Artycapucines VII’ 컬렉션을 공개했다. 전시의 중심에는 8m 높이의 거대한 문어 조각이 자리했고, 촉수로 감싸인 공간 안에 배치된 가방들이 빛을 받으며 반짝였는데, 패션 쇼케이스가 아니라 거대한 설치미술이자 브랜드의 미학을 예술적으로 정의하는 완벽한 자리가 되었다. 아트바젤 파리의 ‘퍼블릭 프로그램 파트너’로는 또 다른 패션 브랜드, 미우 미우가 자리한다. 미우 미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한 조각·영상·퍼포먼스를 결합한 퍼포먼스 작업 ‘헬렌 마튼Helen Marten의 30 블리자드Blizzards’를 선보였다. 30개의 캐릭터적 물성과 퍼포머들이 공간을 유영하듯 연출된 연극적 구성은 일상 사물의 조각들과 결합되어 공동체와 상실 같은 정서를 다층적으로 탐구했으며, 시각적으로 눈길을 끌면서 기록하도록 유혹하는 퍼포먼스였다. 관객을 수동적 관찰자로 남기지 않고 정서적 개입을 유도하며, 감정적으로 이입된 관객들은 예술성 외에도 작품에 사용된 의상, 컬러, 공간, 로고의 노출 등을 통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렇게 두 번의 성공적인 퍼블릭 프로그램 진행으로 미우 미우는 이제 파리 아트위크 기간 중 대중이 가장 경험하고 싶어 하는 전시의 기획자로 자리 잡았다. 무료로 진행하는 공공 아트 전시는 매장 방문에 비해 문턱이 낮고 교양 있어 보이며 인스타그래머블하기까지 하니까.


이세이 미야케의 전시.


디자인 마이애미 파리에서 장 프루베 작품들을 선보인 라파누르 갈레리 다운타운 Laffanour Galerie Downtown 부스.


이탈리아 디자인을 대표하는 갈레리아 로셀라 콜롬바리Galleria Rossella Colombari 부스.


파리가 보여준 미래

아트 바젤의 파트너사가 아닌 브랜드들은 장외 행사를 기획해 똑같은 기회를 노렸다. 이세이 미야케는 일본인 건축가이자 아티스트 유진 칸가와Eugene Kangawa와 협업해 패션과 디자인, 공예의 경계를 탐구하는 전시 을 선보였고, 자크뮈스 또한 브랜드 아카이브를 현대미술적 설치 형식으로 재구성한 전을 통해 브랜드의 상상력을 고전적 맥락 속에 놓아 관객과 소통했다. 자신만의 미시적 신화 구축을 위해 고전 조각과 현대적 설치를 병치한 방식은 일 종의 ‘개인적 취향의 미술사관’을 만들었고, 브랜드의 시각적 아이덴티티가 문화적 레퍼런스로 굳어지도록 계획했다. 반면 은 텍스타일과 조명, 건축적 구조가 맞물려 만들어내는 감도 높은 몰입형 전시를 통해 많은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방문을 이끌어내며 큰 주목을 받았다. 원사나 짜임 같은 섬유의 기초를 전시의 중심 주제로 가져왔는데 관객들은 천을 통과하는 빛의 변화와 표면의 레이어를 따라 전시를 읽게 된다. ‘착용의 대상’이 아닌 ‘공간을 점유하는 조형물’로 재배치된 패션이 전달하는 현대미술적 감동은 신선했으며, 브랜드 홍보 이상의 배움과 철학, 미학을 이해하게 되는 ‘아트 위크에 어울리는 브랜드 전시’의 정답처럼 보였다. 그랑팔레 내부 전시장에서 펼쳐진 전시 및 판매 활동 외에도 아트바젤 파리와 동행한 디자인 마이애미 파리Design Miami.Paris의 역할도 주목해야 한다. 아트위크를 방문하는 전 세계 컬렉터들에게 색다른 수집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디자인 마이애미는 올해 역시 과거 칼 라거펠트가 거주했던 저택, 오텔 드 메종Hôtel de Maisons에서 디자인계의 수집과 대화의 장을 펼쳤다. 전시는 전통적 수집품부터 실험적 인터랙티브 작업까지 폭넓게 아우르며, 올해는 특히 현장에서 작품과 실물을 직접 만지며 체험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포착됐다. 실제 지난해에 비해 규모가 확장되고 애플과 제휴한 신진 디자이너 프로그램 같은 실험적 시도를 꾀하면서 기자들은 컬렉터블 디자인 페어가 이제 ‘성숙기’로 들어섰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페어의 성공은 파리 아트위크가 단지 회화, 조각만의 축제가 아니라 생활을 재구성하는 디자인이 컬렉션과 패션의 담론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음을 방증한다. 이렇듯 아트바젤 파리 2025는 ‘예술+패션+디자인+도시’가 교차하는 복합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파리라는 도시가 하나의 거대한 전시장이 되어 예술 작품은 갤러리 부스에만 갇히지 않고, 패션 하우스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발언을 확장했으며, 디자인 페어는 생활과 수집의 접점을 선명히 했다. 도시 자체가 예술을 생활화하는 이상적인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이번 페어는 향후 글로벌 문화 시장의 운영 방식과 창작의 사회적 위상을 바꾸는 신호탄으로 읽힐 것이다. 경험의 재구성에서 찾은 해법은, 예술은 팔리기 전에 체험되어야 하고, 패션은 착용되기보다 사유되어야 하며,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라 생활의 멋과 편의를 다시 짜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파리는 문화의 중심이라는 오래된 타이틀을 갱신했다고 봐도 좋겠다.


디자인 마이애미 파리 전경.


정원에 설치된 제임스 드 울프 James de Wulf의 ‘뮤지컬 핑퐁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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