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선 구조의 중심부로 향할수록 오데마 피게의 핵심 부서인 그랜드 컴플리케이션과 메티에 다르 아틀리에가 자리하는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
시간을 품은 건축, 미래를 향한 오데마 피게의 여정
스위스의 고즈넉한 발레 드 주. 구릉진 언덕 사이에서 오데마 피게는 시간을 새기는 예술을 넘어 시간이 머무는 공간을 창조하고 있다. 바로 모듈화된 매뉴팩처들이다. 최근 완공과 입주를 마친 ‘매뉴팩처 데 세뇰Manufacture des Saignoles’에는 르 로클 지역의 직원들이 자리 잡고, 르 브라쉬의 ‘매뉴팩처 데 포르주Manufacture des Forges’ 인근에는 새로운 건물인 ‘아크Arc’가 들어서고 있다. 이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유연성과 모듈성을 요한다. 특히 지속 가능한 접근 방식, 유연한 업무 문화를 지향하는 오데마 피게의 방향과 결을 같이한다. 또한 이 두 건물은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지역 유산을 존중하면서 혁신성을 지키고 있다. 르 로클의 매뉴팩처 데 세뇰은 마치 대지에서 자연스럽게 솟아오른 듯 계곡의 지형을 따라 부드럽게 어우러져 있다. 스위스 건
축사무소 쿠니크 드 모르시에Kuník de Morsier가 설계한 1만400㎡ 규모의 단층 건물이 여러 높이의 갈래로 나뉜 모습은 주변의 초원과 습지, 숲의 리듬을 고스란히 담아낸 결과다. 이 유기적인 설계는 대형 창에 설치된 전기 변색 유리, 세이지글라스SageGlass®를 통해 더욱 빛을 발한다. 자연광에 반응해 색이 변하는 이 유리는 외부의 빛이 더 환하게 공방을 밝히게 하고, 1년 내내 온도를 조절해 주변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이 ‘빛의 건축’은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학교에서 지속 가능한 건축 기법을 연구하는 마릴린 안데르센Marilyne Andersen 교수와 협업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건물의 진가는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190여 명의 직원들이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은 독창성과 소통, 유연성을 장려하는 구조로 업무 흐름에 적합하면서도 작업장 이상의 장소로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영감이 교차하는 유쾌한 삶의 공간이다. 이러한 철학은 르 브라쉬에 건설 중인 아크로 이어진다. 1만7000㎡의 U자형 곡선으로 미래를 감싸안는 이 건물은 세뇰의 정신을 한층 더 발전시킨다. 옥상에 조성된 녹화 지대는 곤충과 새들에게 안식처를 선사하며, 그 너머로 산길의 전경을 액자처럼 담아낸다. 이와 함께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목재 기반 난방, 광전지 패널, 산업 폐열 활용 시스템이 자연과의 공존을 실천하는 오데마 피게의 철학을 구현한다. 세심함은 건물의 모든 디테일에 스며 있다. 350m 곡선형 외관에 설치된 양식화된 금속 뼈대는 새들의 충돌을 막고, 홍수에 대비해 80cm 높인 지반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이 모든 설계는 겸손하게 자연에게 묻고, 조심스럽게 응답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결국 1875년부터 이어진 장인 정신이 21세기 지속 가능성과 만나는 이곳에서 오데마 피게는 하나의 진리를 증명한다. 진정한 럭셔리는 화려함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렇게 시간을 만드는 브랜드는 시간을 품은 건축으로 또 다른 유산을 새기고 있다.

전기 변색 유리를 통해 더 많은 빛을 공간 안으로 모으고 1년 내내 온도를 조절하는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

창립 150주년을 기념해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에서
진행 중인 전시

가문비나무 숲을 거니는 듯한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의 전시 공간. 원하는 메시지를 적어 직접 장식할 수 있다.
나선 속으로, 시간의 심장부를 걷다
비야르케 잉겔스 그룹(BIG)이 설계한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Musée Atelier Audemars Piguet’는 시간을 만드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가 건축으로 만나는 곳이다. 이미 시계 역사를 써온 오데마 피게의 박물관이라는 사실만으로 기대감이 증폭되는데,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초월적 공간이기도 하다. 1875년 쥘 루이 오데마와 에드워드 오귀스트 피게가 공방을 연 역사적 주택에 현대의 나선형 파빌리온을 연결해 이질적인 두 건물을 하나로 연결한 것은 일차원적인 증축이 아닌, 오데마 피게가 품어온 철학 그 자체다. 108개의 곡면 유리 패널이 470톤의 지붕을 떠받치며 만들어낸 나선은, 마치 시계의 스프링을 통과하듯 관람객을 자연스레 심장부로 이끈다. 이 구조를 해발 1000m 고지에 구현하기 위해 쉽지 않은 선택도 많았을 것이다. 건물은 계곡의 경사를 따라 각 층이 다른 각도로 기울며, 주변 풍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외벽을 따라 이어지는 황동 그물망은 빛과 온도를 조절하되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자연을 지배하지 않고 그 안에 깃드는 방식이다. 나선의 중심부에는 오데마 피게의 심장이 뛴다.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아틀리에에서는 한 명의 시계공이 648개의 부품을 6개월 이상에 걸쳐 조립하고 그 옆 메티에 다르 아틀리에에서는 보석 세공사의 손끝에서 하이 주얼리가 탄생한다. 두 공방 주위를 천문학적 컴플리케이션, 차임, 크로노그래프
시계들이 궤도를 그리며 도는 모습은 흡사 태양계를 연상시킨다. 그 중심에는 1899년 출시한 ‘유니버셀’ 회중시계가 있다. 20여 개의 컴플리케이션, 1168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이 걸작 앞에서 숨을 잠시 멈췄다. 독일 박물관 설계 회사인 아틀리에 브뤼크너Atelier Brückner가 설계한 전
시 공간은 악보처럼 흐른다. 크레셴도와 정점, 명상의 순간들이 리듬을 만들고, 그 사이사이 오토마톤과 키네틱 장치들이 간주곡처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방문객들은 새틴 브러시 마감을 직접 체험하고, 장인들의 손길을 유리벽 너머로 목격한다. 복원된 역사적 건물의 최상층에는 복원 아틀리에가 자리한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앤티크 시계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이곳에서 과거의 기술은 현재로 이어진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선형 건물은 미래를 향하지만, 이 공방의 작업대는 145년 전 그 자리에 있었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나선을 따라 걸으며 깨닫는다. 이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의 집이라는 것을. 과거가 전시되는 곳이 아니라 미래가 만들어지는 곳, 장인의 손이 여전히 움직이는 곳. 박물관이라는 이름 아래 현재와 과거, 기술과 예술의 완전한 조화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로비 천장의 거대한 나무뿌리는 호텔 데 오를로제의 정체성이자 발레 드 주 지역을 상징한다.

미쉐린 3스타 셰프 에마뉘엘 르노가 위탁 운영하는 르 고강 레스토랑은 초원과 주방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땅과 하나가 된 듯한 지그재그 형태의 호텔은 전 객실이 초원을 향한다.
지그재그로 그려낸 시간의 여정
발레 드 주에 BIG가 세운 ‘호텔 데 오를로제Hotel des Horlogers’는 이름처럼 ‘시계 장인을 위한 호텔’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1857년 이곳에 자리했던 ‘호텔 드 프랑스’를 리뉴얼한 이곳의 각 슬래브는 계곡을 향해 점점 낮아지며 자연과 연속되는 길을 지그재그 구조로 그려낸다. 이는 일반적인 호텔 건축 코드를 거부하고, 산 능선의 리듬을 따라 건물이 풍경의 일부가 되도록 한 선택의 결과다. 8715㎡의 공간은 이렇게 땅과 하나가 된다. 이러한 건축 철학은 내부로 이어진다. 간결한 로비 천장에는 화이트 컬러의 나무가 매달려 있어 라크 드 주 호수 수면에 반사되는 숲을 보는 듯한, 혹은 땅 아래에서 나무의 뿌리를 올려다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지그재그 구조를 따라 이어지는 통로는 50개의 객실을 하나로 연결하며 전 객실의 대형 창문은 예외 없이 초원을 향한다. 여유롭게 풀을 뜯는 소들의 망중한이 일상으로 완전히 들어오는 듯한 광경은 비현실을 넘어선다. 현지의 가문비나무 내장재와 콘크리트가 어우러져 현대적이면서도 따뜻한 공간은 스위스 건축사무소 CCHE와 AUM 협업의 결과물로,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를 완성했던 손길이 다시 한번 발레 드 주에 닿은 셈이다. 미식 또한 이 땅의 언어로 말한다. 미쉐린 3스타 셰프 에마뉘엘 르노Emmanuel Renaut가 위탁 운영하는 세 곳의 식사 공간에서 메뉴의 70%는 현지 식재료로 채워진다. ‘르 고강Le Gogant’ 레스토랑의 대형 창은 초원뿐 아니라 주방까지 투명하게 공개한다. ‘바 데 오를로제’에서는 리주 숲의 식물로 만든 시그너처 칵테일을, 프라이빗한 ‘라 타블르 데 오를로제’에서는 매일 바뀌는 시식 메뉴를 경험할 수 있다. 호텔 자체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와 허브가 식탁에 오르고, 수입이 불가피한 커피는 발레 드 주에서 로스팅한 뒤 생분해성 캡슐에 제공한다. 지속 가능성은 장식이 아니라 본질이다. 미네르지-에코® 인증을 획득한 이 호텔은 현지 목재 기반 원격 난방 네트워크로 온수와 난방을 공급받고, 126개의 광전지 패널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객실의 코스메틱 제품은 모두 친환경 디스펜서로 제공해 폐기물을 67% 절감하며, 타임 씨앗이 든 연필은 사용 후 심으면 허브로 자란다. 심지어 지하수를 현지에서 보틀링해 수송 에너지를 줄이고, 유기 폐기물은 바이오매스로 변환되어 다시 에너지가 된다. 모든 선택이 순환을 그린다. 100년 이상 발레 드 주와 제네바를 잇는 ‘슈맹 데 오를로제(시계공의 길)’의 중요 정류장이었던 호텔 드 프랑스를 2003년 오데마 피게가 매입하고 2022년 완성한 지금의 모습은, 과거를 존중하되 미래를 향하는 오데마 피게 정신의 또 다른 구현이다. 지그재그로 하강하는 건물의 선을 따라 걸으며 깨닫는다. 1857년부터 이어진 환대의 전통이, 이제 지속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다시 쓰이고 있음을.
COOPERATION 오데마 피게(543-2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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