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12월호

빛나는 움직임의 시

무용에 담긴 창의와 미학, 열정을 공유한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이 막을 내렸다.
뜨거웠던 3주간의 공연은 무대 위 조명이 식기도 전에 내년을 기대하게 하는 창작과 전승, 교육의 장이었다.

EDITOR 남정화

<카르카사>의 한 장면. © Claudia Crespo


1920년대 파리, 방돔 광장 근처의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한 편의 발레가 막을 올렸다. 객석에 있던 루이 아펠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에 매료됐다. 발레리나의 튀튀가 공기를 가르며 만들어내는 우아한 곡선, 포인트 슈즈가 무대를 스치는 순간의 긴장감, 그리고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가벼운 도약. 그 모든 순간이 그에게는 살아 있는 시였고, 빛나는 보석과도 같았다. 그 순간 무용에 대한 경외심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창조의 영감으로 피어났다. 1940년 초, 반클리프 아펠 메종은 최초의 ‘발레리나’ 클립으로 무용을 향한 열망을 한 점의 작품으로 선보였다. 가볍게 날아오르는 듯한 자세, 흐르는 듯한 튀튀스커트의 주름, 그리고 골드와 다이아몬드로 표현된 무용수의 얼굴. 이 작품은 출시되자마자 수집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빠르게 메종을 대표하는 시그너처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무용과 메종 협연의 시발점이 됐다.


© Umberto Favretto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 Save The Last Dance for Me>는 이탈리아 민속무 용인 폴카 치나타를 연구 해 탄생시킨 작품이다.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되 어 유구한 역사를 지닌 폴 카 치나타는 사랑을 고백 하기 위해 무릎을 구부린 채 빙글빙글 도는 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춤을 추 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기, 여성들을 향해 남성들이 추던 춤으로 기교와 지구 력, 힘이 필요하다.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미래 헌신

1950년대, 반클리프 아펠은 전설적인 안무가 조지 발란신을 만나 새 국면을 맞는다. 프레셔스 스톤을 향한 두 사람의 열정은 곧 예술적 파트너십으로 발전했고, 1967년 4월, 발란신의 걸작 <주얼스>가 뉴욕에서 초연됐다. 그러나 반클리프 아펠의 열정은 오직 발레에 국한되지 않고 무용 그 자체로 확대되어 2020년,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이라는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출범하며 무용을 향한 헌신을 공고히 했다. 창작, 전승, 교육의 가치에 뿌리를 둔 이 프로그램은 안무 유산 을 공유하고 새로운 창작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와 단체를 지원한다. 2022년 런던을 시작으로 홍콩, 뉴욕, 교토에서 개최한 이래, 전 세계 무용 예술가들에게 국제적인 무대를 제공하며, 현재 15개국 45명의 주요 파트너와 함께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올해 15주년을 맞은 이 프로그램이 드디어 서울에 당도했다. 그 어느 때보다 방대하며 수준 높고 탄탄한 프로그램으로. 총 9개 작품, 18개의 무대로 펼쳐진 3주간의 여정은 움직임으로 빚어낸 미학으로 서울을 휘감는 듯했다. 시인 존 드라이든의 말처럼 그들의 “춤은 발의 시詩”였고, 반클리프 아펠의 빛나는 보석이 무대 위에 시어로 떠오른 듯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반클리프 아펠과 무용의 깊은 관계성을 증명해보인 이벤트임이 자명했다.


<마지막 춤을 나를 위해> © MAK


전승의 가치, 춤이 살아 있게 하는 힘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의 안무가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Alessandro Sciarroni에게 전승의 가치와 럭셔리의 의미를 물었다.


서울에 대한 첫인상은 어떤가요? 서울에 도착한 지는 사흘 정도 되었는데, 특유의 경쾌함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시의 리듬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만큼요. 하지만 이틀이 지나고 나서는 그 리듬 속에 함께 스며든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에 정말 큰 열정을 느꼈습니다.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지만 제주도에서 일주일을 보낼 예정이죠. 이 경험이 개인적으로 혹은 예술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될지는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보통 1년 정도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깨닫게 되니까요. 하지만 분명히 이번 여정을 통해 무언가를 가져가게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교토, 런던을 거쳐 한국에서도 공연을 선보이게 되었는데, 한국 관객에게서 어떠한 해석을 기대하나요? 무엇을 기대한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처럼 제가 완전히 새로 창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전통을 무대 위에 선보일 때, 저는 그것을 관객에게 항상 매우 존중하는 방식으로 전하려고 합니다. 제가 바라지 않는 것은 그것이 같은 문화를 가지지 않은 관객의 눈에 ‘이국적인 것’으로 비치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무용수가 추는 춤, 즉 그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 사이에 진정한 교류가 생기길 기대하죠.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 페스티벌의 진정한 가치는무엇인가요? 우리가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과 오랜 시간 좋은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우리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 하나는 ‘전승’입니다. 저의 안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해요. 이번 작품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공동체 안에서 전승되어온 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창작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그 전통에 접근할 때, 저는 그 공동체에 존중을 표하고 그 전통 무용에 무언가를 ‘되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습니다.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도 단지 두 시간 안에 춤을 완전히 배워보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 그보다는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죠. 하지만 그 춤을 ‘살아 있게alive’ 하고, 그 기억을 ‘현재에 체화’시키며 사람들이 느끼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가치는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이 지향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하기에 더없이 중요하죠.


마지막으로 당신이 생각하는 ‘럭셔리’란? 제가 하는 일과 관련해 ‘럭셔리’를 생각해본다면, 진정한 럭셔리는 시간을 들여 어떠한 일에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춤이나 민속무용을 떠올려보면 그 전통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왔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춤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섬세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습니다. 부수적일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기나긴 시간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럭셔리 아닐까요?



COOPERATION 반클리프 아펠(1877-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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