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11월호

BETWEEN BOY AND MAN

시간은 그를 소년에서 남자로 이끌었지만, 눈빛엔 여전히 투명한 빛이 머문다.
밝은 에너지와 경험에서 비롯된 단단함이 한 얼굴에 공존한다. 
마흔의 윤시윤은 이제 ‘성장’보다 ‘균형’을 이야기한다.

EDITOR 남정화 GUEST EDITOR 조혜나 PHOTOGRAPHER 김외밀

울 혼방 하운즈투스 재킷은 에트로.


오늘 촬영장에서 보인 다양한 얼굴이 인상적이었어요. 소년에서 진짜 남자로 넘어가는 낯선 온도라고 할까요. 영 포티, 나쁘지 않죠.(웃음) 얼굴이 늙는다는 개념보다 ‘여유’가 조금씩 자라난 느낌입니다. 다만 팬분들이 사랑해준 ‘피터 팬’ 같은 감수성은 잃지 않으려 해요. 마음속의 원더랜드는 변하면 안 되니까요.


최근 2년 동안 스스로에게 가장 자주 던진 질문은 무엇인가요? ‘배우로서 다음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였어요. 결국 연기는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일에 가깝더군요.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이 해석이 맞을까?’ 고민하면서 시도하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에게 맞는 배우의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브라운 베레모, 체크 패턴 롱 코트, 어저스트 벨트 스트레치 팬츠, 크로커다일 프린트 카프스킨 몽크 스트랩 슈즈 모두 엠포리오 아르마니.


핀 스트라이프 스포츠 코트, 레이어드 오버코트, 팬츠 모두 톰 브라운.


방송에서 본 ‘시윤 하우스’의 정리 철학이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나의 집’은 저를 환영하는 스위트룸이어야 해요. 문을 여는 순간 ‘내가 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오감으로 느껴지는 공간이랄까. 잘 정돈된 집은 일상의 피로를 비워내고, 제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 안정감이 결국 연기의 컨디션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요즘 가장 예민하게 감지하는 감각은 무엇인가요? 기온과 향,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기억이에요. 일교차가 큰 요즘, 낮과 밤의 옷이 달라지듯 할 일의 경계도 자연스레 달라지죠. 여행을 갈 땐 집에서 쓰는 인센스를 꼭 챙깁니다. 낯선 숙소가 금세 ‘내 공간’이 되니까요. 여행지에서 사온 티셔츠를 집에서 입기도 해요. 기억이 일상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거든요.


그레이와 레드 콘트라스트 레이어드 브이넥 니트, 빈티지 스트라이프 플레어 팬츠 모두 렉토.


콤팩트 니트 탱크 톱은 렉토. 블루 재킷과 블랙 팬츠 모두 골든구스.


최근 몸이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사실 ‘몸을 보여주자’가 아니라 ‘성실에 도전하자’였어요. 방송에 비칠 때 부담도 크지만, 한 번 얻은 신뢰를 지키기 위해 계속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변화가 제게는 ‘가능하다’는 표식이에요.


배우 16년 차, 공백 전후로 달라진 ‘연기의 문법’이 있을까요? 이번에 데뷔이래 처음으로 연극 무대를 서면서 ‘배움엔 끝이 없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그래서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론화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지금이 오히려 제게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더 공부하고, 더 열려 있어야 하니까요. 요즘은 후배들의 작품을 많이 봅니다. 선배의 잘함은 용기를 주지만, 후배의 잘함은 자존을 흔들죠. 그 불편함을 통과해야 성장하더군요.


11월 21일 방영 예정인 <모범택시 3> 특별 출연의 의미가 궁금해요. 그동안 마라톤 같은 주연을 주로 맡았는데, 이번엔 단거리 스퍼트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한 에피소드를 이끄는 강한 캐릭터, ‘인텔리전트하지만 사이코패스인 변호사’로 모든 에너지를 쏟았어요. 이제훈 배우님과 팀의 호흡이 뒷받침되니 가능했죠. 앞으로는 ‘윤시윤이 또 뭘 하려나?’라는 궁금증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저도 제 다음 모습이 궁금합니다.


페가소 스트라이프 셔츠, 면 자카르 베스트, 코듀로이 벨벳 스트레이트 레그 팬츠 모두 에트로.


아이보리 카디건 터틀넥, 니트 톱, 팬츠 모두 아뇨나.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연극 <사의 찬미>가 남긴 건 무엇이었나요? 관객의 눈을 마주하며 하는 연기는 카메라 앞 연기와 전혀 달라요. 실수하면 끝, 되돌릴 수 없는 긴장 속에서 믿음으로 뛰어들어야 하죠. 첫 공연 전날 가장 걱정했던 건 ‘관객석이 비면 어쩌지?’였어요. 그런데 첫날부터 비행기까지 타고 와주신 팬들이 객석을 가득 채워주셨죠. 그 모습을 보니 ‘이제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팬분들의 응원이 완충재처럼 저를 받쳐주더군요. 그 덕분에 진심으로 즐겁게 열정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향과 음악은요? 저를 상징하는 향은 룸 스프레이라고들 하더군요.(웃음) 집에 있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요. 최근엔 딥티크의 제품을 자주 씁니다. 음악은 재즈와 클래식을 즐겨요. 사카모토 류이치의 연주곡처럼 여운이 남는 곡들, 가사 없이 멜로디 사이에 제 이야기를 채울 수 있는 음악들요. 영화음악도 듣는데 듣다 보면 영화 원작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지금,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간다면? 스포츠 영화 속에 들어가고 싶네요. 전반전이 끝나고 로커 룸에서 후반전을 기다리는 장면,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채로 다음을 준비하는 그 순간이요. 거친 숨을 고르며 다시 뛰어오를 준비를 하는 느낌. 지금 제 상태가 그래요.


롱 개버딘 트렌치코트는 버버리.


앞으로 욕심나는 장르나 역할이 있나요? 크게 멀리 보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한 걸음에 집중하고 싶어요. 다만 ‘듣는 귀’를 더 키우고 싶습니다. 멜로드 라마나 가족극처럼 사람과 사람의 호흡이 전부인 작품들. 멜로드라마는 상대의 연기에 몰입할 때 터지는 리액션이 진짜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연기를 꼭 해보고 싶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 ‘럭셔리’는? 좋은 의미로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효율과 성과에서 잠시 비켜선 여유의 시간. 가을 햇살 아래 한강에서 의자 펴고 책 한 페이지를 느리게 읽는 일, 집에 있었다면 네 페이지는 넘겼을 시간을 기꺼이 ‘낭비’하는 감성. 물질보다 오래 남는 건 그런 기억 같아요. 불필요한 낭비가 아닌, 감성의 낭비. 그게 진짜 럭셔리 아닐까요?


이번 화보로 전하고 싶은 기운이 있다면요? 삶의 기로에서 피어나는 여러 얼굴들, 조금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철부지 같은 표정이 남아 있는 지금의 제 모습. 마흔의 윤시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지금 계절처럼 과도기의 매력. 그 사이의 온도를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HAIR 졸리 MAKEUP 한빛 STYLIST 한현영 COOPERATION 골든구스(519-2937), 렉토(1522-7720), 버버리(080-700-8800), 아뇨나(3449-5942), 에트로(3446-1321), 엠포리오 아르마니(3479-6017), 톰 브라운(080-867-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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