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지우는 도시를 전면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무심하게 방치된
건물의 후면, 여러 사람의 손길이 닿아
매끌매끌해진 표면처럼 시간의 흔적을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
서지우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조형물로 구현하는 작가다. 어린 시절 건축가를 꿈꾸었으나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따라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는 한때 그 꿈을 잊지 못하고 목조 주택을 짓는 목수로도 활동했다. 팬데믹 기간,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도시 곳곳을 오토바이로 달리며 도시의 사라지는 장면들을 발견한 것이 그의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전화 카드가 여전히 꽂힌 공중전화기, 광고지를 붙였던 테이프 자국이 덕지덕지 가득한 전봇대, 신축 건물들이 늘어선 도심 속 무심하게 자리를 지킨 옹벽까지. 무엇이든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이란 도시에서 홀로 시간이 멈춘 듯 서 있는 것들에 시선이 머물렀다. 작가에게 그것들은 단순한 도시의 건축
적 골조가 아니라 사람들의 손길이 켜켜이 쌓인 시간의 밀도이자 멈춤처럼 느껴졌다. 이후 이러한 관찰의 축적을 현장 조사, 드로잉, 수집, 제작의 과정을 통해 조형 언어로 옮기는 시도를 이어갔다. 그는 도시라는 유기체가 품은 기억과 물성에 주목하며 지난 5년간 다양한 전시 및 작업을 선보여왔다. 작가가 거주하는 서울 세검정 일대에서 채집한 폐기물을 여러 조형물로 선보인 2023년 개인전 <이 마을에 사는 지우가 무엇에 귀 기울이는가>가 대표적이다. 서울시 종로구의 부암동과 홍지동, 신영동, 구기동, 평창동을 아우르는 지역 ‘세검정’이라는 이름은 1623년 인조반정 당시 ‘검을 씻은 정자’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 서지우 작가는 이 같은 지역의 이면에 숨은 시대성과 장소성을 탐구해 작품으로 구현했다.

작업이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작가는 점차 도시의 시간성을 학제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리서치를 통해 시대성과 구조를 분석하는 방식은 한층 밀도 높은 탐구의 작업으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설명적인 언어에 갇힌다는 피로감도 뒤따랐다. 작업에 대한 고민의 갈피를 찾은 건 올해 초 일본 요코하마에서의 레지던시 체류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국의 도시에서, 휴대폰 로밍조차 하지 않은 작가는 “분석하지 않고, 그저 걷고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도시의 역사를 학술적으로 살피고 작업으로 완성하던 프로세스에서 벗어나, 피부에 닿는 감각을 더 신뢰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작가는 도시에서 러닝을 시작했다. 요코하마의 강가를 따라 달리면서 도시를 찬찬히
살피고 몸으로 감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레지던시 체류 이후 서울로 돌아온 뒤 그는 홍제천 일대를 달리며 지역 주택 단지의 면면을 살폈다. 이 러닝 루트에서 관찰한 ‘주택의 뒷면’을 조형 언어로 옮긴 작업을 지난 9월 김명찬, 성유진 작가와 진행하는 그룹전 에 선보였다. 주택들의 잘생긴 전면부와 달리, 무심한 생김새의 후면, 유리창에 가득한 물 얼룩 등 도시의 내밀한 삶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고. 작가는 그 뒷면이야말로 “사람의 손길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자리”라고 덧붙인다. 최근 작가는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각에 대해 골몰한다. 느리지만 촘촘하게 축적된 감각은 그가 도시와 관계 맺는 방식이자 그 자체로 도시의 기억이 되기도 한다. 9월 25일 피크닉에서 개막하는 전시 <힐튼서울 자서전> 역시 사라진 힐튼서울 호텔의 문고리를 수집해 조형,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작가 스스로는 호텔이 운영되던 때 방문해본 기억은 없으나, 마감재가 모두 철거돼 골조만 남은 공간을 보며 오히려 호텔이 처음 준공하던 당시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그 경험은 호텔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설치 작업으로 이어졌다. 올해 말에는 대만 레지던시에 참여할 예정이다. 작가는 “다시 어떤 도시에 닿게 될지 궁금하다”며 자신이 감각하게 될 공간과 여정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의 다음 감각은 이미, 또 다른 도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INSPIRATION IN LIFE
서지우 작가가 삶과 작업에서 마주한 장면들.
독일의 현대미술가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는 전쟁과 역사, 신화 등을 다룬 대규모 회화,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상처를 작업으로 풀어내는 방식과 수십 미터 규모의 조형물을 통해 개인의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태도에 감명을 받았다.
Cercle et carré-Eclats(1981) Ⓒ Ville de Genève,
Musée d'art et d'histoire Ⓒ 2025 ProLitteris, Zurich
스위스 출신의 키네틱아트 작가 장 팅겔리Jean Tinguely의 작업을 애정한다. 그의
작품은 쇳소리와 사슬, 톱니바퀴가 요란하게 작동하는 장면을 통해 산업 시대의 공기를
직관적으로 경험하게 하기 때문. 작가 또한 이러한 감각의 작업을 선보이고 싶다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전집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애독자다. 책 곳곳에 담긴 지역들을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큰
리서치가 된다고. 책 속에 나열된
공간의 정보를 넘어 문장 곳곳에
묻어나는 삶과 일에 대한 생각에도
큰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가 가장 애정하는 밴드 산울림. 음악뿐만 아니라 앨범 재킷 제작 일화에 인상이
깊었다. 밴드는 동네 아이들의 낙서를 그대로 살려 앨범 커버로 사용했는데 삶의 우연성과
예술가로서 감각할 수 있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태도에 감탄했다.
작업 특성상 옷에 무언가를 묻히거나 얼룩지기 쉽기에
튼튼하면서도 그 자체가 멋이 되는 워크 웨어와 워크
슈즈를 선호한다. 실용성과 스타일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대표적인 예로 레드윙 슈즈를 꼽았다.
가방 하나를 구입해 지난 10년간
사용했다는 서지우 작가. 무언가를
잘 구입하지 않는 성향이지만 작업
특성상 거리에서 재료를 채집하고
이동하는 일이 잦은 탓에 새 가방을
구하게 되었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카일Kail의 제품으로
가벼우면서도 확장에 용이한
실용적인 디자인 그리고 한국의
여러 산 이름을 제품명으로 쓰는
방식에 매료되었다.
요코하마 레지던시에 머물며 처음 시작한 러닝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작업에 영향을 주었다. 서울로 돌아와 홍제천을 달리며 건물의 뒷면을 관찰하게 되었고
이는 그룹전 의 신작으로 이어졌다. 서지우 작가가 관찰한 주택의 뒷면.
서지우 작가는 최근 휴대폰 사용 시간을
급격하게 줄였다. 물리적 세계를 감각해
작업을 이끌어가는 작가로서 비물질 세계에
영향을 받는 것이 싫었기 때문.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무언가를 대기해야 할 때면
가방 속에 늘 가지고 다니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서울 도심을 자유롭게 누비며 사라지는 장소들을 기록하는 데
오토바이가 큰 역할을 했다. 기동력을 높여주어 작가에게 관찰의
폭을 넓히는 도구로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