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나 가전 같은 대형 폐기물을 버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다. 분리배출 스티커를 발급받아 붙이고, 날짜를 맞춰 정해진 곳에 직접 내놓는 그 과정이 얼마나 번거롭고 힘든 일인지. 특히 혼자 사는 1인 가구나 완력이 부족한 여성들이라면 더 문제다. 이런 불편을 해결하는 서비스가 대형 폐기물 배출 앱 ‘빼기’다. 사용자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간단히 대형 폐기물 배출 신고와 수거 신청을 할 수 있다. 스스로 문 앞까지 옮길 수도 있고, 사람이방 안으로 들어와 직접 폐기물을 옮겨줄 수도 있다. 품목 선택부터 배출 날짜 지정까지, 기존에는 주민센터에 방문하거나 귀찮은 절차를 거쳐야 했던 과정이 손 안에서 몇 번의 터치만으로 끝난다. ‘버린다’는 개념이 새로운 사용자 경험으로 바뀐 셈이다. “늘 궁금했어요. 생산되는 것에는 데이터가 있는데, 버려지는 것들에는 왜 데이터가 없는 걸까. 그게 창업의 시작이었어요.” 고재성 대표는 창업 전 데이터 전문가로 일했다. 글로벌 정보 서비스 기업인 톰슨 로이터의 데이터 사업부에서 일했고, 이후에는 병원 EMR(Electronic Medical Record) 시스템을 구축하고 의료 장비 유통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폐기물과는 썩 관련 없어 보이는 커리어지만 그는 늘 버려지는 것들의 데이터가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폐기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더럽고 불편한 느낌을 받잖아요. 뭔가 불법적인 느낌도 받고요. 그래서 폐기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브랜딩의 출발점이었어요. 로고에 산뜻한 컬러를 사용하고, ‘빼기’라는 직관적인 서비스 이름을 붙였죠. 모두가 매일 무언가를 버리며 살고 있는데, 버린다는 행위가 부정적으로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빼기’에 가장 호응이 큰 건 1인 가구다. 특히 30~50대 여성들에게 반응이 좋다. 크고 무거운 제품을 누군가가 대신 처리해주는 경험이 안도감을 주고, 재방문으로 이어진다. 개인 사용자들을 위한 서비스 외에 지자체와의 협업도 성과를 내고 있다. 고대표는 현재 70여 개 이상의 지자체와 공식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빼기’ 서비스를 공공 배출 시스템에 연동했다. 사용자가 앱에서 배출 품목을 선택하고 결제를 마치면 즉시 배출 번호가 생성된다. 사용자는 이 번호만 적어 붙이고, 수거 업체는 앱을 통해 실시간 배출 위치를 확인해 처리한다. 행정의 번거로운 절차가 줄고, 이용자는 보다 간편한 경험을 얻는다. “물론 어려움이 있었죠. 한국은 지자체마다 품목과 규격이 다르거든요. 저희는 전국 230개 지자체, 4000여 개 품목을 데이터 베이스화해 표준을 세웠어요. 없는 품목은 별도의 매칭 시스템 을 통해 대체안을 제안했습니다. 말은 쉽지만, 초기 몇 년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였어요.” ‘빼기’는 얼핏 보면 단순히 물건을 대신 버려주는 대행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 서비스는 누가, 언제, 무엇을, 어디서 버렸는지, 이후의 운송과 처리 과정까지 기록한다.
‘빼기’는 중고 거래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작은 물건의 거래는 아직
‘당근’이나 ‘번개장터’ 같은
앱이 대표적이지만,
대형 물건이라면 ‘빼기’에도
기회가 있다. 수거와 처리에
대한 인프라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
말하자면 제품의 생애 주기를 데이터로 저장하는 것이다. “침대 같은 가구를 생각해 보죠. 보통 10년 정도 쓰고 버릴 거예요. 그런데 가구 회사는 자신들이 판 침대가 언제 버려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의 데이터를 참고하면 폐기 주기와 지역별 특성, 연령대까지 알 수 있죠. 이걸 생산계획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폐기에 대한 데이터가 기업에는 제품 전략의 단서가 되고, 지자체에는 정책 개선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빼기’로 현재까지 투자 받은 금액은 약 65억 원. 투자 업계에서는 ‘시기를 정말 잘 만난 회사’라고 말한다. 폐기물 대란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리며 성장의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운으로 설명하기엔 구조가 단단하다. “우리의 본질은 핀테크 비즈니스입니다. 대형 폐기물을 간편히 배출하게 돕고, 잘 버린 사람에게는 리워드를 제공해요.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또 다른 형태의 매출 구조가 될 겁니다. 최근에는 폐기물 물류 거점이라 할 수 있는 고물상의 현대화를 계획하고 있어요.” 폐기물은 한국에서만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가 폐기물
로 골머리를 앓는다. 해외 진출 계획이 없을 리 없다. “한국만큼 폐기물 처리가 촘촘하게 설계된 국가가 별로 없어요. 동남아시아 쪽에는 아직 폐기물 관리법조차 없는 경우도 많고요. 한국에서 성과를 거둔다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형태로 관제 사업을 제공할 수 있고, 현지 처리장 현대화나 자산 관리 사업으로도 확
장할 수 있죠. 내년에 베트남에서 첫 발자국을 뗄 예정입니다.” 목표가 뭐냐고 묻자 고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시장을 혁신한 기업으로 ‘빼기’가 교과서에 언급되면 좋겠어요. 폐기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한 의미 있는 기업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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