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에서 열린 <디자인 디스코 클럽> 전시 전경.

수작업 고급 가구 전문 메이커 메종 루이 마리 뱅상Maison Louis-Marie Vincent에서 설치 작품 ‘르 라비랑트’를 위해 특별 제작한 거울.
IMMERSIVE EXPERIENCES
이번 파리 디자인 위크에서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공간 전체를 감각적으로 점유하는 ‘몰입형 전시’였다.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작품의 일부가 되어 경험을 통해 메시지를 체득하도록 이끄는 방식이 각광을 받았다.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Lafayette Anticipations’에서 열린 <디자인 디스코 클럽Design Disco Club>은 디스코라는 특정 문화 코드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해 조명과 음악, 가구, 퍼포먼스를 결합했는데, 큐레이터 크리스토퍼 데쉬Christopher Dessus는 약 40명의 젊은 디자이너 외에도 마린 세르, 장 폴고티에, 뮈글러 같은 패션 하우스를 초청해 클럽이라는 공간의 집단적 에너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했다. 어두운 딥 블루 바닥 위에 반짝이는 조명과 반사 소재를 더한 전시 디자인속 관객들은 춤추고 앉고 머무르며 공간을 완성하는 행위자가 되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오텔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에서 전개된 제레미 프라디에-조노Jérémy Pradier-Jeauneau의 대규모 설치물 ‘르 라비랑트Le Labyrinthe’다. 18세기 건축의 클래식함을 품은 장소에 등장한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미로를 형상화한 구조물을 통해 공간적 경험을 제안한다. 관객은 작품 속을 직접 걸으며 길을 찾는 참여자가 되면서 방향감각, 기억, 지각의 한계를 시험하게 된다. 특히 오텔 드 라 마린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이 설치물은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긴장감도 만들어낸다.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던 공간에 현대적 미로를 도입함으로써 권위적 공간 속 일종의 해방된 움직임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몰입형 경험은 이번 디자인 위크의 첫 번째 키워드로, ‘보는 전시’에서 ‘경험의 전시’로의 전환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가죽의 대체재로 떠오른 버섯 균사체의 신소재 ‘레이시’를 적용해 만든 가구와 소품들.

컬러풀한 금속, 대리석, 유리의 다채로운 활용을 볼 수 있는 빅토리아 윌모트의 ‘컬러스케이프’ 컬렉션 전시.
MATERIAL INNOVATION
두 번째로 두드러진 것은 ‘재료와 제작 방식에 대한 혁신’이다. 환경적 책임과 기술적 탐구가 동시에 요구되는 시대,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재료 탐색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디자이너 빅토리아 윌모트Victoria Wilmotte는 ‘컬러스케이프 Colorscape’ 컬렉션을 통해 제목 그대로 색과 재료가 만들어내는 컬러풀한 풍경을 선사했다. 전통적으로 흰색이나 회색의 고급 석재로 인식되는 대리석에 다양한 색을 적용해 조형적 요소를 확장한 컬렉션은 대리석을 단순한 구조적 재료를 넘어 빛과 색에 반응하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하게끔 했다. 또 다른 재료인 금속은 표면을 접거나 주름지게 하는 방식으로 가공해 빛의 반사와 그림자의 변화를 강조하게 만들어 금속이 가진 강도는 유지하면서 시각적 유연성을 부여했다. 거기에 무라노에서 제작한 유리를 거울 형태로 만들어 반사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내부의 기포나 색채의 흐름을 드러내며 회화적인 효과도 보여주었다. 이렇게 ‘컬러스케이프’는 대리석, 금속, 유리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재해석해 조형적·시각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 컬렉션이다.
혁신적인 소재를 강조한 또 다른 사례로 마이코웍스MycoWorks의 버섯 기반 바이오 소재 ‘레이시Reishi’를 건축적 스케일로 확장해 선보인 전시


파리의 환상적인 뷰를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는 RH 파리의 루프톱 레스토랑 ‘르 프티 RH’ .

프랑스 은세공 브랜드 크리스토플에서 제안하는 올해의 크리스마스 장식.
URBAN & CULTURAL NARRATIVES
세 번째 축은 ‘도시와 문화적 이야기의 재해석’이다. 파리라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전시장이 된 이번 행사에서 건축과 유산, 지역 문화를 탐구하는 전시는 단연 이목을 끌었다. 샹젤리제 대로에 새롭게 문을 연 ‘RH 파리’가 대표적 사례다. 7층 규모의 이 복합 공간은 역사적 건물을 레노베이션해 탄생했으며, 가구 전시뿐 아니라 디자인 도서관, 레스토랑, 루프톱 공간까지 아우른다. 석회석 벽과 청동·황동으로 장식한 대형 문, 그리고 화려한 금빛으로 장식한 건물 내부에는 RH의 시그너처
가구들이 배치됐다. 갤러리 안에는 2개의 레스토랑, ‘르 자르댕Le Jardin RH’과 ‘르 프티Le Petit RH’가 고급스러운 미식의 순간을 선사하며, 루프톱에서는 에펠탑을 마주한 칵테일 한잔으로 파리의 풍경을 음미할 수 있다. 건축과 디자인 서적을 갖춘 도서관과 세계 최고의 바텐더로 불리는 콜린 필드Colin Field가 큐레이팅한 바 & 라운지는 방문객에게 다층적인 문화적 경험 또한 제공한다. 미국 가구 브랜드 RH가 유럽에 처음 선보이는 이번 시도는 단순한 쇼룸이 아닌 디자인과 예술, 환대가 교차하는 새로운 체험의 장이었다. 미국의 거대 자본이 제안하는 쇼핑과 문화, 예술이 유려하게 교차하는 이곳에서 파리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다.
프랑스 은세공의 상징인 크리스토플은 파리의 가장 화려한 호텔 중 하나인 ‘오텔 드 크리용Hôtel de Crillon’에 특별한 빛을 더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미리 구현하며 로비와 살롱, 트리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은빛과 금빛 장식을 더해 유서 깊은 하우스가 지닌 ‘프렌치 아르 드 비브르Art de Vivre’의 세련된 감각을 전한 것. 특히 파티시에 마티외 카를랭Matthieu Carlin이 제작한 부슈 드 노엘은 호텔의 건축을 섬세하게 재현했고, 옆면에는 크리스토플의 아이코닉한 ‘말메종 임페리알’ 모티프를 장식해 금세공 예술과 미식의 만남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아티스트 마티아스 키스Mathias Kiss와 주얼리 디자이너 샤를로트 슈네즈Charlotte Chesnais의 협업 작품, 은빛
오너먼트와 한정판 오브제까지 더해져 방문객들은 럭셔리와 문화적 상징성이 겹겹이 쌓인 우아한 세계 속으로 초대되었다. 파리지앵 럭셔리의 진수를 경험하게 하는 일종의 무대가 펼쳐진 것이다. 이처럼 도시와 문화적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전시들을 통해 관람객은 디자인이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건축, 역사, 문화와 긴밀히 얽혀 있음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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