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10월호

사람과 지구를 위한 리더십

<럭셔리>는 국내에서 활약하는 각국의 여성 리더들을 통해 글로벌 럭셔리의 새로운 지형을 조명하고자 한다.
다섯 번째 주인공은 딜로이트Deloitte 아시아퍼시픽 파트너이자 지속 가능성·기후대응 리더,
그리고 주한 영국 부대사의 배우자로 한국에 거주 중인 니콜라 위어다.
기업의 ESG(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 구조Governance) 전략을 이끄는
동시에 외교 무대에서도 문화적 다리를 놓는 그녀의 삶은, 럭셔리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게 만든다

EDITOR 김민지 PHOTOGRAPHER 이기태

니콜라 위어 딜로이트 아시아퍼시픽 파트너 & 지속 가 능성·기후대응 리더로, 국제 경험을 바탕으로 ESG를 전 략의 핵심으로 이끄는 전문가이며 주한 영국 부대사의 아내다.


영국의 소박한 가정에서 자란 니콜라 위어는 부모에게서 강인함과 도전 정신을 배웠다. 아버지는 정비사로 시작해 고위관리자가 되었고, 어머니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화학 회사를 일군 개척자였다. 그 곁에서 자라난 딸은 ‘한계는 스스로가 만든다’는 믿음을 자연스레 체득했다. 더럼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케임브리지 지속 가능성 리더십 연구소에서 대학원 과정을 이어나갔다. 이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에서 경험한 쓰나미 피해 현장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압도적인 파괴와 불평등 앞에서 깨달은 것은 분명했다.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 그 후 남편과 함께 탄자니아, 모잠비크, 네팔 등 여러 나라를 거치며 국제 업무를 이어갔다. NGO, 정부, 민간 부문과 협력한 경험은 ESG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삶과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과제임을 몸소 깨닫게 했다.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딜로이트의 사회 투자 프로그램과 유럽 지역의 지속가능성 분야 총괄을 맡았고, 팬데믹 시기에는 푸드뱅크 지원과 지역사회 회복력 강화를 위해 앞장섰다.

현재 그녀의 무대는 아시아다. 30개국 10만 명 이상의 인력을 아우르는 딜로이트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속 가능성 분야 총괄로 활동하며, 한국에서는 파트너로서 기업과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과제에 대응하고 있다. 동시에 주한 영국 부대사의 아내로서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양국의 정서적 교류를 이어가는 역할도 맡고 있다. 니콜라 위어에게 리더십은 성과나 수치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사회의 불평등을 줄이고,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며, 다음 세대를 위해 나은 환경을 남기는 과정 그 자체가 리더십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녀가 정의하는 럭셔리는 화려한 물질이 아닌 시간, 균형, 의미다.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 문화와 예술이 주는 영감, 그리고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내는 태도 속에서 그녀는 오늘도 새로운 럭셔리의 지형을 그리고 있다.



© Kat Austen



© Kat Austen

캇 오스틴이 한국에서 선보인 작품 ‘How to Touch a Dragonfly’.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는 기후 위기와 생태학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분야와 미디어를 융합해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을 선보인다. Photo: Kang Seongbin

딜로이트의 ESG 부문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나요?

ESG 부문은 규제 보고와 공시 지원부터 탈탄소화, 에너지 전환 같은 시스템 차원의 과제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탈탄소화가 가장 어려운 분야인 항공 산업의 지속 가능한 항공연료 확대, K-팝 등 음악·라이브 투어링 산업 전반의 지속 가능성 접목, 디지털 혁신 투자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러한 활동의 중심에는 ESG를 단순히 ‘좋은 일 하기’가 아니라 기업 전략의 핵심으로 본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대응하지 않았을 때의 비용이 대응할 때의 비용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죠. 한국 역시 폭염, 홍수, 대기오염 등으로 이미 생활 전반에 이상기후의 영향을 받고 있지요. ESG는 기업과 사회가 함께 번영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며, 저희의 역할은 그 변화를 책임 있게 실현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ESG 접근에는 어떤 특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아시아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기후 위기에 직접 노출돼 있습니다. 동시에 혁신의 무대이기도 하지요. 아시아의 선택이 세계 넷제로Net-Zero 달성(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은 ESG를 자선이 아니라 생존과 성장을 위한 전략, 즉 글로벌 경쟁력으로 본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한국 사회가 앞으로 더 주목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은 글로벌 무대에서 더 큰 도약을 앞두고 있으며, 이제는 여성 리더십을 본격적으로 조명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여성들의 상황은 제 세대 영국 여성들이 겪었던 어려움과도 닮아 있습니다. 여성 리더십이 경제적 성과를 가져온다는 증거는 이미 충분하며, 세계 13위 경제 규모의 한국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제입니다.


주한 영국 부대사의 배우자와 딜로이트 파트너의 역할 균형은어떻게 맞추고 계신가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입니다. 아이들에게 강하고 자율적이며 친절한 롤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동시에 20년간 파트너로서 뛰어난 팀원들과 함께 ESG라는 역동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것은, 제가 인류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남편의 배우자로서 외교적 자리를 함께하는 일 또한 큰 축복이에요. 한국 사회 곳곳의 인사들을 만나고, 국제 관계와 무역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지요.


한국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문화 교류 경험은 무엇인가요?

한국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적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문화협회를 통해 가족과 함께 한복을 입고 한국 패션쇼 런웨이에 올랐던 순간은 한국과 영국의 문화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또 주한영국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TEDxSeoul 무대에서 한국이 글로벌 기후 대응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했던 경험도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예술과 문화는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나요?

저에게 예술은 단순히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삶과 리더십의 나침반 같은 존재예요. 회화와 조각, 설치 작품에서 얻는 영감은 직업적 과제와도 연결됩니다. 특히 네팔에서 가져온 구리 만다라는 매 일 균형과 성찰을 일깨워주는 작품입니다. 불교에서 만다라는 혼돈에서 명료로, 무지에서 지혜로 나아가는 길을 표현하는데, 제게는 리더십의 여정을 비추는 상징과도 같습니다. 변화의 금속인 구리로 만들어진 만다라는 ESG가 걸어온 여정의 도전과 기회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영감을 주는 예술가나 작품이 있나요?

영국 조각가 앤터니 곰리에게서 큰 영감을 받습니다. 그의 조각은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드러내며, 의도적으로 녹슬고 풍화되면서 주변과 대화합니다. 현재 뮤지엄 SAN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는 한국에서 그의 작품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예요. 제 친구인 캇 오스틴Kat Austen의 작업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서울에서 전시가 열렸었 는데, ‘How to Touch a Dragonfly’는 잠자리의 세계를 통해 기후와 생물 다양성 위기를 탐구하며, 자연과 인류가 얼마나정교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작품이었습니다.


파트너님에게 ‘진정한 럭셔리’란 무엇인가요?

럭셔리와 지속가능성은 이제 분리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미래의 럭셔리는 장기성과 책임을 담보해요.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게 만들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을 존중하며, 지구에 최소한의 영향을 남기는 제품과 라이프스타일이 바로 진정한 럭셔리입니다. 저에게 럭셔리는 ‘덜하지만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지속 가능성은 럭셔리를 더욱 고귀하게 만들고 깊이와 진정성, 더 큰 무언가와의 연결을 부여하지요.



영국 부대사관저에서 찾은 니콜라 위어의 취향과 시선

사진과 예술품 속에 묻어나는 그녀의 시선은 단순한 장식을 넘어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좌)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앨버트 왓슨Albert Watson의 사진 도록. 2022~2023년에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렸을 당시 구입한 것이다.
우) 집에서 소중히 여기는 작품 중 대다수가 네팔에서 가지고 온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카트만두에서 구입한 구리 만다라는 가장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 불교에서 만다라는 우주를 축소한 상징으로, 외부 세계에서 내면으로, 혼돈에서 명료로, 무지에서 자비로 이끄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자택이 있는 북촌에는 작은 갤러리들이 많아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 출신 작가로 서울에서 8년간 활동 중인 작가 조앤 케인 Joanne Kane의 ‘구름’. 2024년 남편을 위해서 직접 의뢰해 만든 작품이라 더욱 특별하다.




평소 뱅크시의 자유로운 표현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약혼 당시 남편에게 선물한 판화인 ‘풍선과 소녀Girl with a Balloon’. 보통 희망과 가능성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이 작품은 변화의 순간이 얼마나 연약하면서도 강력한지를 상기시킨다.



건축물 사진을 수집해 재조립하는 콜라주 방식으로 독특한 사진 작품을 선보이는 원범식 작가의 <건축조각Archisculpture 070bw>. 2023년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아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구입한 작품이다.




6월 20일부터 뮤지엄 SAN에서 만날 수 있는 앤터니 곰리 상설관 ‘GROUND’ 전경. 니콜라 위어는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그의 작품에서 깊은 영감을 받는다. 사진 제공: 뮤지엄 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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