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ART> 2025년

그림이 지은 집

그림이 놓인 자리마다 이야기가 피어난다. 컬렉터 윤혜준의 공간은 그렇게 예술로 채워지고 있다. 작품은 매 순간 고요한 울림으로 공간을 감싸며낯선 색과 형태로 일상을 부드럽게 물들인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이창화



중력과 시간 속 우연들이 만든 현재의 시각적 탐구가 흥미롭게 다가와 소장한 송민지의 ‘Park’(2024).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채소에 입힌 유머와 부엌의 기능이 병치된 풍경은 예술이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방식을 보여준다. 컬렉터 윤혜준의 컬렉션은 벽을 채우는 장식과 거리가 멀다. 작품은 가족의 일상 속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며 공간에 새로운 온도를 더한다. 컬렉팅은 어쩌면 누군가의 세계를 내 삶에 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들인 세계는 집 안 곳곳에서 가족의 시간 안에 스며든다. 아마 “가끔은 벽이 더 많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라는 컬렉터 윤혜준의 말은 많은 작품이 놓일 자리를 마련해 삶의 결이 바뀌는 순간을 더 자주 마주하고 싶다는 뜻일 테다.


존 소안John Soane의 뮤지엄이 연상될 만큼 다양한 미술품이 있는 공간이에요. 언제부터 컬렉팅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어릴 적 거실엔 늘 동양화가 걸려 있었어요. 1970년대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경제적 여유가 생긴 뒤 동양화를 중심으로 작품을 소장하셨죠. 금추 이남호, 남정 박노수, 이당 김은호, 청전 이상범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곁에 두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예술이 친숙해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러한 그림을 소중히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예술은 소유보다 더 깊은 가치가 있는 것’이란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요. 여담이지만, 얼마 전 아버지께 “경매에서 동양화가 저평가돼 안타까워요”라고 말씀드렸더니, “훗날 가치를 인정받는 날이 올 거야”라고 하시더군요. 본격적인 컬렉팅은 2018년부터 시작했습니다. 딸과 아들이 성장한 까닭에 자유 시간이 늘어났고, 그림을 감상하면 행복하던 지난날이 떠올라 본격적으로 미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림이 마음을 움직인 순간이 있었나요?

아버지께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한 가정집에서 그림을 한꺼번에 인수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 사모님이 작품 앞에서 눈물을 보이셔서 아버지께서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셨다고 해요. 결국 사모님께 가장 소중한 작품 한 점을 남겨두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지금도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씀하세요. 작품이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자 감정의 대상이라는 걸 아버지는 누구보다 잘 이해하셨던 것이지요. 저 역시 한 점의 그림이 한 사람의 역사이자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걸 어린 마음에 깨달았습니다.


무용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용과 미술은 서로 닿아 있으면서도 다른 영역인데요.

아버지는 제가 무용을 전공하는 걸 원하지 않으셨어요. 건강을 위해 취미로만 즐기길 바라셨죠. “정말 예술을 하고 싶다면 차라리 미술을 해라”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저는 학부에선 발레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선 무용 분석과 비평을 공부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면 학교 다닐 때도 갤러리와 미술관을 더 자주 찾았던 것 같네요. 아무래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겠지요. 그래서인지 지금은 미술만 바라보고 있네요.



(왼쪽부터) 1956년 김환기 화백의 파리 최초 전시 당시 석판화로 발간된 포스터(제목은 ‘삼각산’), 최수인의 ‘A Graceful Posture’(2023) & ‘Shyness’ (2024), 이재헌의 ‘얼굴 습작’(2020~2023) 앞에 앉은 윤혜준 컬렉터.


첫 소장 작품은 무엇인가요?

어느 날 한 갤러리스트가 자신의 컬렉션을 정리하는 자리에 저를 초대했는데, 그곳에서 이강욱 작가의 작품을 접했어요. 설명을 요청하자 “지금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후 회고전이 열리면 반드시 언급될 초기작”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상하게 뭔가 끌리는 구석이 있어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작가가 점점 주목받는 걸 지켜보며 마치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가 된 듯해 뿌듯했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작가와 인연을 맺으셨나요?

전현선 작가의 작업은 2022년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컬렉터: 수집의 기쁨> 전시에서 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작가의 이름이 생소했지만, 작품을 보자마자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작가의 화면은 자연의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하면서도,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밀도와 색채가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이후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에스더쉬퍼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고, ‘아트 바젤 2025’ 언리미티드 부문 선정, 에르메스 윈도 디스플레이 참여 등 세계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리키오 밍 히 호Michael Rikio Ming Hee Ho 작가는 아트부산 2025에서 선보인 솔로 부스 전시 <내가 모는 차의 이름은 다정함. 너는 그 옆자리에 있고, 우리는 천천히 길을 달리며 엽서를 보내고 사랑의 편지를 쓸 거야>에서 알게 되었어요. 작품에 녹아든 따스한 감성과 문장 하나하나가 전하는 정서에 큰 위로를 얻어 구매했습니다. 또 정지윤 작가의 작품은 ‘아트 컬래버레이션 교토 2024’에서 컬렉팅했습니다. 전시 기간 내내 고민을 거듭하다가 마지막 날 작품을 들이게 됐는데, 뜻밖에도 그 작품이 작가의 첫 판매작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그 작품이 팔리지 않았다면 미술을 포기했을지도 몰라요”라는 고백을 듣고, 한 점의 수집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김윤신,‘Song of My Soul 2009-38’, 2009


대부분 젊은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시는 것 같아요. 후원의 개념일까요?

한때는 ‘내가 작품 하나쯤은 사드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불현듯 어쩌면 그런 태도가 작가의 진심 어린 작업을 나도 모르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많은 젊은 작가가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자신이 믿는 예술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잖아요. 그들의 진지하고 일관된 태도 앞에서 ‘후원’이라는 단어가 어딘가 우월한 시선을 전제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작가들이 꾸준히 자신만의 세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해요. 좋아하는 일을 진심으로 이어가는 자세가 존경스럽고, 그들의 여정을 오래 지켜보고 싶습니다. 김가윤 작가를 만난 경험이 특히 인상적이에요. 아트부산 2025 ‘다이브 서울’ 부스에서 작품을 마주했을 때 화면 전체에 감도는 기운에 매료됐거든요. 제 딸과 나이가 비슷해서 눈길이 갔던 것도 있지만, 직접 대화를 나눠보니 이유가 분명해졌어요. 놀라울 만큼 침착하고 사려 깊은 태도, 작업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묻어나는 명확한 사고에 내적으로 손뼉을 쳤습니다. 감각이나 기분으로 그린 그림이 아닌, 분명한 구조와 의도로 탄생한 결과물이란 확신이 들었죠.



데이비드 거스테인David Gerstein, ‘Dutch Bouquet’, 2020


자녀들과 또래인 작가들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예술이 세대 간 소통의 도구가 되나요?

아이들이 예술과 만나는 방식이 전공이나 진로를 위한 수단에 국한되지 않길 바라요. 그보다는 삶을 다층적으로 살펴보고,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감각으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제가 아버지 덕분에 예술을 일상의 감각으로 받아들인 것처럼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실기나 이론, 비평이나 미술사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을 체험하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어요. 딸과 갤러리에 방문했을 때도 무언가를 추천하거나 방향을 정해주기보다는 자신만의 속도로 전시를 둘러보게 했습니다. 그날 딸이 유독 오래 바라보았던 건 손희민 작가의 작품이었는데요. 흥미롭게도 나중에 딸이 대학 미술비평 수업에서 그 작품을 분석 주제로 삼더라고요. 한 작품이 한 사람의 언어로 재구성되고, 또다시 새로운 해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예쁘고 화려한 것을 선호하겠지’라는 막연한 관념이 깨졌어요. 예술이란 누구에게나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가와 말을 건네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앞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는 철저히 각자의 몫이라는 걸 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불, ‘Untitled - SI’, 2023


블로그에 전시 기록을 자주 남기시던데요?

처음에는 인스타그램에 전시 감상이나 갤러리 방문기를 올렸어요. 그런데 가족과의 일상이나 여행 풍경이 뒤섞이다 보니, 미술에 관한 기록만 따로 모아둘 공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아이들도 “엄마는 전시를 그렇게 자주 보러 다니는데, 따로 계정을 만드는 게 낫지 않아?” 하고 권유했고요. 그러던 와중에 한 강의에서 들은 “아무리 선명한 경험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라는 한마디가 머릿속에 오래 남더군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본 것들, 떠오른 단상을 잊히기 전에 글로 정리해두자는 결심을 한 게요. 그렇게 블로그를 열었고,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전시를 소개할 수 있는 나만의 아카이브가 되기를 바라며 하나하나 차곡차곡 정리해가는 중이에요.


요즘 끌리는 장르가 있다면요?

예전에는 구상화의 서사와 친근한 분위기에 끌렸다면, 요즘엔 추상화 쪽으로 감도가 옮겨가고 있습니다. 추상은 단숨에 정답을 주지 않아서 오래 사유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로, 최수인 작가의 그림은 시간이나 조명, 혹은 제 상태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는데, 그런 변화무쌍함엔 묘한 끌림이 있어요.



(왼쪽부터) 율리야 이오실존Yulia Iosilzon의 ‘Purple Lighting, Ferns’(2022), 전현선의 ‘Still life (2)’(2023), 하태임의 ‘Un Passage No. 234018’ (2023).


컬렉팅에 영감을 준 문장이 궁금합니다.

최연욱 칼럼니스트의 책 <나의 첫 미술 공부>에 있는 “유명한 작품들이 걸작인데, 걸작만 걸작이라고 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작품인데 그 앞에서 감동을 받는다면 나만의 걸작이다”라는 문장이요. 꼭 알려진 화가의 그림이 아니더라도, 오롯이 내 마음에 닿는 한 점이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말로 다가왔어요. 저도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무력함과 막막함에 가로막혔을 때 미술관에 있는 한 작품 앞에 조용히 오래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요. 아무 말 없이도 곁에 있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날 체감했습니다.


컬렉터님에게 시간이 흘러도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수집이란 어떤 것일까요?

작가의 이름이나 소속 갤러리보다, 작가의 태도와 작업에서 비롯된 온도를 먼저 들여다보려 해요. “지금 뜨는 작가를 선택해야 하지 않느냐”, “검증된 경로를 따라가야 안전하다”라는 말을 종종 듣지만, 저는 미술을 숫자나 트렌드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오래 남는 건 작품이 내 삶에 들어온 순간과 감정이에요. 왜 이 그림이었는지,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으면, 그 수집은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송승은, ‘잡을 수 없는 것들 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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