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ART> 2025년

CRAFTING RARITY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경은은 ‘귀함’이란 시간을 들인 정성과 일상 속 쓰임, 그리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지속 가능한 구조라고 정의한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이우경(인물)

김경은  건축사무소 ‘서아키텍츠’에서 17년간 소장을 역임했다. 건축과 예술에 대한 깊은 조예와 관심을 바탕으로 2023년부터 하우스 오브신세계 헤리티지 프로젝트 총괄을 맡고 있다.



<담아 이르다> 전시에서 선보인 김수연 작가의 작품.


‘가장 귀한 것을 선보이다’, ‘귀한 것을 잇다’는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의 철학을 담은 문장입니다. ‘귀함’의 기준은 오늘날 라이프스타일 문화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나요?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 프로젝트는 2년 전 신세계 그룹의 제안에서 출발했습니다. ‘선물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생활 속에 녹여내자’는 게 취지였어요. 네 세대의 추억을 간직한 국내 최장수 백화점이자, 오랫동안 해외의 귀중한 문화와 품목을 소개해온 상징적 장소인 신세계에서 한국의 전통과 미감을 고객에게 전하고자 한 것이죠. 그때부터 전국을 돌며 각종 페어와 전시를 보고 장인들의 작업 환경을 살폈어요.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이 올해 진행한 두 개의 전시입니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 대부분은 “익숙하면서 신선하다”, “실제로 만지고 즐길 수 있어 좋다”라고 말씀하세요. 미술관·박물관과 달리 이곳에선 마루나 온돌처럼 한국적인 생활 방식을 체험할 수 있거든요. 가족이 마루에 모여 TV를 보거나, 등받이에 기대어 바닥의 포근함을 만끽하는 풍경이 떠오르지 않나요? 이렇게 전통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고, 삶 속에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귀함으로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개관전 <담아 이르다>와 현재 진행 중인 전시 <여름이 깃든 자리>(~9월 16일)에 관해 질문을 드릴게요. 두 전시 모두 소재와 기술을 보여주는 것에서 나아가, ‘마음을 전하는 법’과 ‘계절의 감각’을 이야기하는 데 방점을 찍습니다.

두 전시의 공통점은 방문객이 자신의 하루에 접목하는 상상을 유도했다는 거예요. <담아 이르다>는 ‘마음을 귀하게 전하는 법’을 주제로 선물의 포장과 전달에 깃든 정성을 시각화한 전시였습니다. 포장지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을 넘어, 전통 소재인 보자기를 매개로 ‘상대에게 시간을 들여 정성을 기울인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어요. 그런 의도에 공감하셨는지 “포장도 선물의 한 부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라는 관람객의 소감을 많이 들었습니다. <여름이 깃든 자리>는 여름의 분위기를 대나무로 구축한 기획이에요. 통풍이 뛰어나고 질감이 시원한 대나무는 여름철 생활 문화와 잘 어울립니다. 이에 발, 부채, 찻상 등 계절 소품을 공개하는 것은 물론, 오늘날 라이프스타일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함께 갖추었죠. 전시장을 둘러보며 “대나무가 이렇게 세련되게 변할 수 있을지 몰랐다”, “집에 두고 싶다”라는 반응을 여러 번 들어 뿌듯했습니다.


두 전시는 전통 소재를 풀어낸 공간 연출에서부터 개성이 두드러집니다.

보자기를 ‘마음을 담는 그릇’으로 바라본 <담아 이르다>는 전통성과 실용성을 다룬 전시였습니다. 소재, 색감, 문양이 다른 보자기를 한자리에 모으고 포장법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와 톤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죠. 전통 보자기 포장법을 배우는 워크숍을 운영해 관람객들이 우리의 보자기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고요. 장인의 기법으로 만든 작품과 디자이너의 현대적 소품을 나란히 두어 과거와 현재의 미감이 공존하는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여름이 깃든 자리>의 경우 실내에는 발·파티션·테이블웨어·트레이 등 아이템을 배치해 바람길과 그림자가 드리우는 여유를 묘사했고, 중앙에는 대나무 구조물과 낮은 가구를 들여 계절의 감각이 공간 전반에 번지도록 했습니다.



<여름이 깃든 자리> 전시 전경.


향후 전시도 계절성을 기반으로 준비할 계획인가요?

저희는 계절성을 중심에 두되, 그저 사계절을 반복하는 것은 지양합니다. 한 번 다룬 소재라도 계절과 맥락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결의 서사가 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대나무나 한지처럼 한 전시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기 어려운 소재는 향후 다른 계절의 의례나 음식 문화와 결합해 또 다른 장면으로 펼쳐보려 합니다. 더불어 특정 의례나 주제를 심화하는 장기 프로젝트도 병행하고 있어요. 이렇게 하면 관객이 ‘이 시리즈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기대하게 되고, 같은 소재라도 매번 다른 해석과 전개를 만나는 여지를 열어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소재의 ‘채집-제작-사용-소멸’이라는 라이프사이클을 빗댄 듯합니다. 평소 소재를 리서치하고 아카이빙하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어머니께서 전통문화 보존 단체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설립 멤버 중 한 분이세요. 덕분에 어릴 때부터 동양의 문화와 기록 형식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자랐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궁금한 점이 있으면 먼저 어머니께 의견을 듣고, 관련 전문가에게 한·중·일의 쓰임과 표현 차이에 대해 자문했죠. 기록만으로 부족할 때는 소재가 활발히 쓰이는 현장에 가 실물을 살펴보고, 형태를 갖춰가는 여정을 관찰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을 때는 사진을 보내 감별을 받기도 하고요.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의 철학과 궤를 같이하는 장인이나 작품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 만나고, 기술의 완성도와 작업 방향을 점검합니다. 이후 최종 작품과 실험 중인 샘플, 부산물에서 가능성이 보이면 제작 실험으로 이어가고요. 아카이빙은 채집-제작-사용-소멸의 전 단계를 사진, 영상, 인터뷰로 기록해 다음 전시의 기획 근거로 활용합니다.


감상과 판매를 겸하는 전시 공간에서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는 어떤 철학과 기준으로 구성을 결정하나요?

문턱을 낮추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기프트 숍 상품의 가격대를 3만 원대부터 수백만 원대까지 다양하게 구성해 누구나 자신의 물건과 선물을 고를 수 있게 했어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어떻게 전하고, 어떻게 기억에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판매와 감상을 엄격히 구분하기보다, 일상 속 쓰임새와 재질의 미감을 지닌 물건들을 소장하고 싶게 만드는 방식으로 나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에요. 공간은 하나의 그릇처럼 운영해요. 일부 구역에는 장인의 작품을 두고, 계절이나 주제에 맞춰 재질과 색감을 주기적으로 교체합니다. 가령 왕골 방석, 고려 시대 직물 재현품, 짚풀·화문석 작품을 전시하면서도 그 옆에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생활 소품을 놓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관객은 오브제의 매력을 예술로 즐기고, 또 일상 속으로 들이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습니다.



<여름이 깃든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햇살 아래 펼쳐지는 대나무, 완초 공예품 피크닉.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의 활동은 장기적인 장인 생태계 지원 모델을 구상하는 것이 인상적이에요.

말씀하신 대로 일회성 후원 대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장인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합니다. 전시와 연계해 장인들이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재료 공급망을 마련하고, 젊은 세대가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교육과 워크숍을 열고 있어요. 공방 설립이나 제자 양성처럼 배움이 일어나는 환경에는 기부금을 투입합니다. 전시가 끝난 뒤에는 온·오프라인 판매 경로를 확보해 판매와 유통 기회를 넓히며, 이를 통해 장인과 지역사회의 사업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후원 문화가 충분히 뿌리내리지 않았기에 꾸준히 알리고 경험의 기회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통과 공예를 유통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결합할 때 마주한 어려움이 있었나요?

유통업의 속도와 공예의 리듬을 맞추는 일이 큰 도전이었어요. 장인의 제작 주기와 소량 생산은 일정과 물량 예측에 변수가 많아 론칭·프로모션·성수기에 맞춘 생산 계획을 다시 설계했고요. 내부적으로는 단기 매출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 장기적 브랜드 가치와 문화적 기여를 우선하는 기획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고객 측면에서는 전통 공예의 질감과 손맛을 유지하면서도 일상에서 편히 쓸 수 있는 균형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소재의 내구성, 관리 방식, A/S 기준도 세밀하게 정립했죠. 그 결과 마침내 브랜드와 장인의 내러티브를 온전히 담은 작품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를 이끄는 동안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기획자로서 감각이 달라지기도 했나요?

예전에는 완성도와 디자인의 완벽함에 시선을 두었다면, 이제는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손길, 흔적이 전하는 울림까지 살피게 됐습니다. 장인의 작업 현장에서 재료의 질감과 소리를 직접 느끼며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학을 발견한 덕분이에요. 고객이 전통 소재나 공예품을 접하는 순간이 단순한 구매가 아닌, 삶에 스며드는 풍경이 된다는 것도 실감했습니다. 이로 인해 기획자로서 판매를 위한 진열보다 기억을 남기는 구성에 무게를 두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공간에서 작은 물건을 고를 때도 제작의 배경과 손길을 떠올림과 동시에 제 공간에서 어떤 시간을 쌓아갈지 상상하게 되더군요.


디렉터님께서 정의하는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요?

가치와 의미가 세대를 거쳐 보존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이란 완성된 결과물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만든 사람과 과정,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환경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소재의 채집부터 제작, 사용, 소멸까지의 순환을 꼼꼼히 점검하고, 낭비를 줄이며, 이후로 이어지는 구조를 모색하고 있어요.



오브제의 매력을 예술로 즐기고, 또 일상 속으로 들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는 기프트 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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