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ART> 2025년

ART, PAPER, COUTURE

석분과 빛 사이에서 아이디어는 숨을 쉬고 현실이 된다. 창작의 흔적이 꿈틀대는 정현, 김지아나, 이인 작가 3인의 아틀리에를 찾았다. 
주름지고 접히고, 펼쳐지며 조각품이 된 의상 형상의 오리가미와 대담한 실루엣의 의상이 작가 3인의 작품과 어우러지며 
아틀리에 안에서 서로의 예술성을 증폭시킨다.  
PAPER ARTIST  송정민

EDITOR 이수연 GUEST EDITOR 정장조 PHOTOGRAPHER 김외밀

“나에게 아틀리에는 감정과 신경이 살아 있는, 가장 정직한 노동이 펼쳐지는 곳이다. 내 작품들은 침목, 아스콘, 석탄, 녹슨 철근 등 일상의 폐기물을 주로 사용해 완성된다. 혹독한 시련을 겪은 후에 쓸모를 다한 물질들이 소리 내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그래서 더 애잔한 모습들 속에서 가치의 본질을 되돌아보고 성찰해보기도 한다. 하찮고, 낮다고 생각되는 것을 들여다보면 더욱더 그 속에 힘이 있다. 세상에 하찮은 것은 결코 없는 것이다.” _ 작가 정현



모델이 착용한 가슴에 리본을 장식한 하트 셰이프 볼륨 드레스는 메종니카. 포인티드 토 슬링백 슈즈는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달 프린트 언밸런스 톱과 패브릭을 재활용해 만든 패치워크 디자인의 베일드 캡 모두 마린세르. 포인티드 토 슬링백 슈즈는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벨트를 부착한 종이로 만든 와이드 팬츠는 송정민 페이퍼 아티스트 작품.

모델 뒤의 작품은 오랫동안 기차 레일을 떠받치다 폐기된 나무 침목을 쪼개어 만든 것으로 세 작품이 연결된 것이다. 육중한 무게와 비바람을 묵묵히 견뎌온 침목과 인간을 연상시키는 형태가 인고의 세월을 버텨온 인간의 정신성과 존엄을 떠올리게 한다. 정현, ‘무제’, 2000~2001, 침목, 가변 설치



어깨에 리본 장식을 더한 네오프렌 소재의 슬리브리스 점프슈트는 아크네 스튜디오. 종이로 만든 넓은 챙 모양의 플로피 햇은 송정민 페이퍼 아티스트 작품.

모델 뒤에 놓인 작품은 작가가 여수의 장도해변을 거닐다 마주친 돌을 수집한 뒤 3D 스캔해 스티로폼 조각에 채색한 것. 발견된 장소에 따라 거칠게 쪼개진 것과 파도에 마모되어 둥글어진 것으로 나뉘는데, 각기 다른 형태를 결합함으로써 상반된 질감이 서로 충돌하도록 완성한 시리즈물이다. 정현, ‘무제’, 2023, 스티로폼에 채색, 가변 설치



퀼팅 디테일 맥시 롱스커트는 몽클레르 × EE72 by 에드워드 에닌풀. 옆면에 주름 장식이 있는 종이로 만든 베스트는 송정민 페이퍼 아티스트 작품.

모델 뒤의 작품은 불에 탄 나무로 만든 것. 불 속에서 나무가 반짝이는 광택을 지닌 숯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작가는 하찮아 보이는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존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정현, ‘무제’, 2022, 불탄 나무, 가변 설치




“나의 작업실은 창작의 고통과 희열이 공존하는 곳이다. 내 작업은 시작부터 끝까지 ‘흙’으로 귀결되는데, 시간을 거치며 변형되고, 때로는 깨져 파편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흙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빛을 머금은 채 반사하며, 또 다른 차원의 존재로 거듭난다. 흙먼지 속에서 시간의 결을 새기고, 빛의 결을 붙잡기도 하며, 존재와 부재를 질문하게 한다. 이곳에서는 실패도, 우연도, 깨짐도 모두 작품의 일부가 된다. 세상과 단절된 작은 우주이자, 다시 세상으로 열리는 문이기도 하다.” _ 작가 김지아나



모델이 착용한 보이 프렌드 핏 체크 재킷, 울 터틀넥, 비대칭 러플 스커트, 슬링백 슈즈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러플과 드레이프를 장식한 비대칭 롱 드레스, 레이스업 앵클부츠 모두 맥퀸. 오리가미 베레모는 송정민 페이퍼 아티스트 작품.

모델 뒤에 놓인 작품은 흙이 지닌 무한한 조형적 가능성에 이끌려 제작한 것으로, 빛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했다. 김지아나, ‘블랙 인사이드 블랙Black Inside Black 25-11_SE_SMB’, 2025, 포슬린·혼합 재료·스테인, 3000×1200×200mm



체크 패턴 브이 로고 재킷, 러플 디테일 블라우스, 레이스 스타킹 모두 발렌티노. 울 소재 햇, 블랙 & 화이트 이어링, 하운즈투스 패턴 슬링백 슈즈 모두 발렌티노 가라바니. 종이로 완성한 드레이프 장식 러플 스커트는 송정민 페이퍼 아티스트 작품.

종잇장처럼 얇은 포슬린 조각들이 고온의 불을 견뎌내고 새롭게 탄생했다. 모델 뒤, 천장에 걸린 작품. 김지아나, ‘레드 인사이드 레드Red Inside Red 25-50’, 2025, 포슬린·혼합 재료·스테인, 2910×2180×200mm 좌측 기둥에 세워둔 작품. 김지아나, ‘아이스버그 인사이드 스카이블루Iceberg Inside Skyblue 25-66’, 2025, 포슬린·혼합 재료·스테인, 910×730×140mm



셰브런 모티프가 특징인 반짝이는 해그피시 가죽 소재의 스커트는 펜디. 볼륨감 넘치는 오리가미 튜브 톱은 송정민 페이퍼 아티스트 작품.

작가는 부스러질 것만 같은 포슬린 조각들을 세상을 살아가는 근성이자 긴장, 그리고 상처라고 표현한다. 모델 우측에 놓인 작품. 김지아나, ‘옐로 인사이드 옐로 Yellow Inside Yellow 22-83’, 2022, 포슬린·혼합 재료·스테인, 2590×1940×185mm




“작업실은 <체험 삶의 현장> 그 자체다. 회사원에게 직장이 그렇듯 자신의 삶을 책임진다는 이유로 상처도 주고 위안도 주는 곳이다. 나는 작품에서 ‘먹’과 ‘모필’을 주로 활용하지만 너무 어렵거나 귀하게 대접하지는 않는다. 한국인으로서 동시대 미술이라는 그릇을 채우는 데 가장 전략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인 나는 분명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고 결과물을 전시하지만 그 의도를 누군가에게 그대로 설득시킬 수는 없다. 단지 작가의 고군분투로 완성된 작품을 통해 관객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면 그것으로 족할 뿐!” _ 작가 이인



모델이 착용한 오간자 롱 드레스, 레이어드한 울 보디슈트, 스킨 톤 앵클부츠 모두 케이트. 크리스털과 진주 장식 이어링은 발렌티노 가라바니.



하트 주얼 버튼이 특징인 더블브레스트 재킷, 보 디테일 셔츠 모두 발렌티노. 새틴 리본을 장식한 모자, 임브로이더리 장식 펌프스 모두 발렌티노 가라바니. 촘촘한 주름 장식이 멋스러운 오리가미 스커트는 송정민 페이퍼 아티스트 작품.

모델 뒤에 놓인 작품은 독도에서 주운 돌의 모습을 조선 시대 초기의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혼성해 표현한 것. 돌은 문명과 역사를 상징한다. 이인, ‘검은, 어떤 것-돌의 풍경’, 2025, 캔버스 위에 먹·혼합 재료, 2590×1940mm



울 소재 컷아웃 카디건 재킷, 레이어드 니트 스커트, 목에 두른 플라워 모티프 레더 네크리스 모두 알라이아. 스킨 톤 앵클부츠는 케이트. 종이로 만든 입체적인 원형 어깨 장식은 송정민 페이퍼 아티스트 작품.

모델 뒤에 자리한 작품은 주변 일상에서 본 사물과 그 너머를 기록해나간 먹 드로잉으로 계속 증식해간다. 이인, ‘검은, 어떤 것-사물 채집’, 2020, 한지 위에 먹, 300×240mm(63점), 토기 가변 설치



입체적인 플라워 장식 미니스커트는 YCH. 드롭형 이어링은 디올. 메탈릭 플랫폼 샌들은 크리스찬 루부탱. 물결무늬 소매가 특징인 종이로 만든 톱은 송정민 페이퍼 아티스트 작품.

모델 뒤 작품은 작가가 올봄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을 보며 인생을 반추해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주춧돌 위의 한 마리 새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이인, ‘색색, 어떤 것-언제나 봄’, 2025, 캔버스 위에 아크릴물감·혼합 재료, 1460×2700mm




물성에서 철학까지, 경계를 넘는 세 작가

주변의 돌, 흙, 버려진 재료처럼 평범한 물성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3인의 작가. 인간의 삶과 죽음, 시간과 질서, 관계와 기억 같은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사물과 재료를 메타포로 활용한다. 다양한 형식을 넘나들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요소를 혼합하는 3인의 창조자를 소개한다.


작가 정현


1956년 인천에서 태어난 작가 정현은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해 1990년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조소 전공 석사를 마쳤다. 1992년 원화랑에서의 첫 개인전 <정현 조각전>을 시작으로 2025년 5월에 열린 청주시립미술관 전시 <정현: 낮은 물질들로 쓰여진 시>까지 30여 년간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다. 그의 작품은 본연의 역할을 마친 소재들로부터 출발한다. 침목, 폐목, 폐철근, 아스팔트 콘크리트, 잡석, 콜타르 등 한때 쓰임을 다하고 버려져 폐기를 기다리던 물질들이 주재료다. 작가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재료의 물성을 최대한 드러내는 방식을 택하며, 물질이 품은 에너지와 서사를 겉으로 폭발시키기보다 내면 깊이 침잠시킨다. 그의 드로잉은 조각의 준비 과정이 아닌 독립된 조형 언어다. 감정을 툭 던져놓은 듯한 밀도 있는 선과 면이 특징이며, 끈적이고 묵직한 콜타르를 통해 드로잉과 조각이 상호 공명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하반기 금호미술관,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인천아트플랫폼 등에서 그룹전을 개최하며, 10월 PKM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는 인간과 존재의 본질을 탐구해온 여정을 조망하고 신작을 공개할 예정이다.



작가 김지아나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 김지아나는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학사를, 몽클레어 주립대학교Montclair State University에서 석사를 마친 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흙을 매개로 빛을 그려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흙은 어떤 조형적 모습으로도 재구성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어 작가는 세라믹과 빛의 상호작용을 통해 회화·조각·설치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를 통해 물질과 감성, 철학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한다. 얇은 포슬린 조각들이 고온을 견디고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을, 작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근성과 긴장에 비유한다. 그에게 흙은 빛으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열망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수화 김환기가 고향의 정겨운 이들을 떠올리며 무수한 청색 점을 찍어갔듯, 김지아나의 흙 편들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현상계를 통해 보편적 미의 원리와 질서를 찾는 시도일지 모른다. 그에게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은 내면의 울림을 담아내는 동시에, 생명을 빚어내는 행위와 맞닿아 있다. 리 바우언스Lee Bauwens 갤러리, 포스코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최근 작가는 제24회 우민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다시 한번 작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작가 이인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 이인은 평면 회화를 중심으로 드로잉, 세라믹, 나무 오브제, 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며, 30여 년간 25회 이상의 개인전과 다수의 프로젝트를 통해 사유의 공간을 연출해왔다. 한국 전통 회화를 기반으로 존재론적 질문을 형상화해온 그는 ‘돌의 화가’로 불린다. 인간 소외와 실존 문제 등 철학적 주제를 독창적인 화법으로 풀어내며 화단의 중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작업은 동양과 서양,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질서와 본성을 파악해 경의를 표한다. 주변에 흔하지만 작위적이지 않고 강건한 조형적 질서를 지닌 돌과 닮은 인간의 삶이 그의 화폭 속에서 강렬한 붓 터치와 대담한 화면 구성으로 나타난다. 더 나아가 그는 이상의 시구절, 역사적 기록 등을 작품 속에 새겨 넣어 문학을 아우르는 또 다른 회화의 지평을 열고 있다. 그에게 작업은 일상 속 물상으로부터 느끼는 다양한 감정의 응축, 혹은 과거 기억에서 증류된 파편을 시각화하는 과정이다. 올해 4월 아트큐브 2R2에서 개인전 <수평선에서 만난 것들>을 개최했고, 현재 미국 LA 카운티 미술관(LACMA) 국제 기획전 에서 전시 중이다. 9월, 키아프 전시와 겨울 중국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앞두고 있다.



MODEL  장민영, 헌제  HAIR  이지혜  MAKEUP  김미정

COOPERATION  디올(3280-0104), 마린세르(051-745-2695), 맥퀸(6105-2226), 메종니카(516-0423), 몽클레르(0030-8321-0794),

발렌티노(2015-4655),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545-2250), 아크네 스튜디오(542-2290), 알라이아(6905-3413), 케이트(310-1325),

크리스찬 루부탱(6905-3795), 펜디(544-1925), YCH(070-4446-3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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