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9월호

건축가·골프 코스 설계가 오상준, 경계를 넘는 골프의 언어

아시아 골프 인문학 연구소 오상준 소장에게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닌, 삶의 태도이자 세상을 해석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그가 구축하고 있는 골프 문화는 코스를 넘어 사람과 자연,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EDITOR 김민지 PHOTOGRAPHER 이경옥


오상준  미국 워싱턴 대학교에서 건축학,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골프 코스 설계를 전공했다. 한국인 최초로 <골프 다이제스트>와 <골프 매거진>의 세계 100대 골프 코스 평가위원에 선정됐다. 현재는 골프를 인문학의 시선으로 조망하는 아시아 골프 인문학 연구소를 설립해 강연, 집필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오상준은 ‘골프의 문화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건축가로 출발해 골프 코스 설계가가 된 그는, 골프를 하나의 스포츠가 아니라 문화적 담론의 장으로 확장하는 데 힘써왔다. 또 골프와 인문학을 연결 짓는 국내 유일의 플랫폼인 아시아 골프 인문학 연구소를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와 골프의 인연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건축과에서 수학하며 자하 하디드, 렘 콜하스 등 당대 건축 거장들의 다학문적 사유 방식을 익혔다. 그러다 2000년대 초, 9·11 테러와 함께 예기치 않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뉴욕에서 건축 디자이너로 일하던 중이었는데, 테러 때문에 취업 비자 수속이 한없이 늦어졌어요. 심적으로 정말 많이 힘들었죠. 그 불확실성을 견디고자 시작한게 골프였어요. 필드에서는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가 있었거든요.” 당시 뉴저지의 퍼블릭 골프장에서 처음 시작한 골프로 인해 한국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 미국의 골프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글을 연재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코스 설계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에서 골프 코스 설계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가 대학 시절 내내 익혔던 다학문적 사고는 골프장을 자연, 사람, 역사, 예술이 어우러지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골프라는 행위보다 그 주변의 이야기가 늘 흥미로웠어요. 세계의 명문 클럽들, 역사와 전통이 깃든 설계자들의 철학, 그리고 자연을 배경으로 생겨난 커뮤니티 문화까지요. 기술이나 경기력보다 그 공간에 흐르는 시간과 인간의 이야기에 깊이 이끌렸죠.”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골프와 관련된 다양한 일을 도맡았다.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 클럽 설계 및 시공에 참여했고, CJ그룹 재직 당시에는 제주 나인브릿지 포럼 기획, CJ컵 토너먼트 운영 등 다양한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한국인 최초로 <골프 다이제스트Golf Digest>와 <골프 매거진Golf Magazine> 매체의 ‘세계 100대 골프 코스 평가위원’으로도 활약하며 전 세계 유수의 골프 코스들을 접하고 익혔다. 골프 인문학 연구, 국제 토너먼트 기획, 강연, 코스 설계, 브랜드 협업 등 그의 작업에는 언제나 ‘융합’이란 키워드가 흐른다. “골프에 문화적 요소를 접목시킨 스토리텔링과 연구를 통해 새로운 골프 문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기획하게 된 ‘더 골프 헤리티지’ 강의는 국내 최초의 인문학적 골프 클래스다. 단순한 스윙 코칭이나 기술 중심이 아닌 골프의 기원과 역사적 맥락, 정신적 가치, 골프와 사회현상의 관계, 골프 코스의 건축학적·미학적 가치 등을 다루며 역사·미학·철학을 아우른다. 스스로를 ‘성덕’이라 칭하는 그는 앞으로의 계획 역시 뚜렷한 방향성을 지닌다. 한국부터 영국까지 이어지는 ‘골프 실크로드’를 따라가보거나, 해외에서 주목할 법한 스토리 있는 골프장 설계를 계획 중이다. 모든 구상은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하면 골프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 그에게 골프는 일상이자, 사람이 행복해질 방법을 찾는 인문학적 대안이다. “골프 선진국들은 골프가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실천해왔어요. 골프를 직접 치지 않는 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으면서 지역사회에서 사랑받는 문화를 조성한 셈이죠. 반면, 한국의 골프는 비즈니스 수단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해요. 앞으로 한국의 골프 문화도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다양한 방면으로 노력하려 합니다.” 그는 이달 유럽 40개 골프 코스를 40일간 탐방한 여정을 담아낸 에세이집 <40개의 코스, 40일간의 여정>을 펴냈다. 이 책에는 골프장 그 자체보다 사람과 자연,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어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상준이 설계하는 골프 문화에는 오늘도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씨앗이 조용히 뿌려지고 있었다.



INSPIRATION IN LIFE

골프를 문화로 확장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설계하는 오상준 소장의 취향과 태도들.



수백 곳의 골프장을 경험한 그는 스코틀랜드의 로열 도녹Royal Dornoch 골프 클럽을 최고로 꼽는다. 포대 그린 설계의 시초이자, 천혜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골프와 관련된 총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영문판 e북으로 먼저 선보인 <40/40>은 최근 <40개의 코스, 40일간의 여정>이라는 제목으로 한글판을 출간했다. 네덜란드, 프랑스, 아일랜드, 영국에 자리한 유명 골프 코스 40개를 40일간 직접 순례하며 기록한 여정을 담았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골프 대회 중 하나인 매스터스 토너먼트와 관련된 다양한 수집품을 소장 중이다.



취미는 히코리 골프. 100여 년 전 만들어진 히코리 나무 골프채는 공이 나아가는 방향이 놀라울 만큼 정직하다는 점이 매력. 채가 부러지면 직접 수리를 해 사용하기도 한다. 지난해 세계 히코리 골프 대회에서 2위를 기록했고, 올해 10월 대회 준비에 한창이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러시아 브랜드 로모노소프 찻잔 세트. 평소 직접 요리해 지인들과 나누는 걸 즐기는 그의 주방에는 다양한 소품과 요리책이 가득하다.



20여 년 전 몬터레이 ‘페블 비치 골프링크스Pebble Beach Golf Links’에서 마주한 전설적인 골퍼 아널드 파머. 그는 생전에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이었다.



지금처럼 화소가 높은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전인 2000년대 초 구입한 마미야 중형 카메라. 골프 코스와 풍경을 직접 기록하기 위해 무거운 카메라를 이고 지며 골프 여행을 다녔다.



연구소 곳곳에서 프리츠 한센의 가구와 오브제를 발견할 수 있다. 절제된 미감과 실용성 모두를 중요하게 여기는 취향이 드러난다.



골프가 시작된 나라인 스코틀랜드는 위스키가 빠질 수 없다. 스코틀랜드 친구에게 선물받은 ‘스카치 몰트위스키 소사이어티’의 리미티드 에디션. 전 세계 263병만 생산된 희귀 위스키로, 특별한 추억이 깃들어 있다.



재즈를 즐겨 듣는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팻 메시니는 오랜 시간 애정해온 뮤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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