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던 해, 김현태 대표는 처음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취미 하나쯤 있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악기나 그림처럼 손재주가 필요한 영역보다 셔터만 누르면 결과물이 나오는 사진이 마음 편했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보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창작하는 감각이 주는 해방감이 중독처럼 다가왔다. 어느새 강의실보다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간이 흘러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예술계의 불편한 진실을 가까이에서 봤다. “ ‘소수를 위한, 소수에 의한, 소수의 리그’라는 인상이 강했어요.” 무명 아티스트가 작품을 알리고 수익을 낼 기회는 극히 적었다. 소수의 기득권이 쌓아 올린 벽은 높았고, 갤러리는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보다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작가로서 느낀 답답함과 구조에 대한 반감은 창업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작가 시절 가장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처음엔 독립 아티스트가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온라인 콘테스트 플랫폼을 구상했다. 그러나 예술계의 진짜 문제는 ‘수요’라는 걸 깨달았다. 작품을 보여줄 루트는 많아졌지만, 바쁜 일상에서 갤러리를 찾거나 예술에 관심을 두는 건 대다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예술은 평범한 이들의 일상과는 상관없는 사치재에 가까웠다. 그래서 발상을 전환했다. 예술을 예술 자체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성’을 더해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 매일 쓰는 물건에 예술을 입히면 소비자는 실용성을 얻고, 아티스트의 작품은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게 된다.
시작은 초라했다. 경험도 인맥도 없었다. 마케팅 예산이 없어 직접 전단을 만들어 붙였고, DM을 보내며 아티스트를 한 명씩 설득했다. 내세운 건 오직 진정성이었다. “가진 게 없으니 조건을 제시할 수도 없었죠. 작가들에게 저희의 비전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진심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마음이 통했는지 뚜누와 협업하려는 아티스트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티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두 가지입니다.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것과 수익이 나는 것.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하나 더 있을 것이다. 판매에 신경 쓰지 않는 것.
뚜누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상품으로 기획하고, 제조와 주문 처리, 수익 정산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한다. 아티스트는 창작에만 집중하고, 수익은 판매량에 따라 자동 정산되는 시스템이다. 아티스트가 전용 대시보드를 통해 자신의 상품 판매 현황과 수익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정산 과정이 투명하다 보니 작가들은 맘 편히 작품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렇게 제작된 상품들의 판매 추이는 어떨까. 특정 작가의 팬덤이 주를 이룰 것 같은데 오히려 ‘독특하고 실용적인 상품’이 구매를 이끈다. 재구매율은 30% 이상이다. 색감, 내구성, 디테일 등 품질 만족도도 높다. 일반적으로 이런 아트 커머스 상품은 작품의 유명세에 기대어 상품으로서의 디테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뚜누는 오히려 완성도에 집착한다.
“저는 뚜누가 기본적으로 제조업이라고 생각해요. 제품의 만듦새가 좋지 않으면 재구매로 이어지지 않거든요. 제품의 완성도에 엄청나게 신경을 씁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고객 의견을 수집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최대한 신속하게 개선하고 있어요.”
신기술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AI 큐레이션 서비스인 ‘스페이스 핏’은 고객이 자신의 공간 사진을 올리면, 작품 데이터와 소비자 행동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어울리는 작품을 추천해준다. 덕분에 구매 전환율과 만족도가 상승하는 추세다. “뚜누에는 수많은 상품이 있습니다. 장점이기도 하지만, 고객에게는 ‘선택의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죠. 이런 불편을 개선하고 싶었어요. 큐레이션 기술을 고도화해 서비스 전반에 적용할 계획입니다.”
성과는 숫자로 증명된다. 2024년 뚜누는 매출 32억 원을 달성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코로나 후 많은 아트 커머스가 주춤하는 가운데, 뚜누의 성장세는 오히려 가팔라졌다. 김 대표는 비결을 “고객과 기본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꾸준함”이라고 말한다. 대규모 광고보다 SNS 타깃 광고에 집중했고, 품질과 감성을 모두 갖춘 시그너처 상품 개발에 공을 들였다. 최근의 시리즈 A 투자 유치는 투자자들이 뚜누의 잠재력을 눈여겨봤다는 증거다.
김 대표는 뚜누가 ‘소규모 창작자를 위한 글로벌 커머스 플랫폼’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누군가 ‘아티스트적인 삶’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뚜누를 떠올리는 것 말이다. “모두가 ‘아티스트’가 되는 세상을 꿈꿔요. 그림이나 음악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표현하는 모두가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뚜누가 판매하는 상품의 일부. 소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품화할 작품을 선정하고, 카테고리별로 선호 색감과 스타일을 분석한다. 김 대표는 “사업의 본질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걸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뚜누의 주요 타깃이 선호하는 디자인은 ‘귀엽고 유니크하지만 너무 튀지 않는, 어디에 놔도 어울리는’ 스타일이라고.
이미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오면 매출이 더 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충분히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을 계약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아직 덜 알려진 아티스트들이 대중에게 다가가고 수익을 낼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뚜누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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