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아일랜드 대사관저에서 만난 미쉘 윈트럽.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는 아일랜드 작가 리스베스 멀카히Lisbeth Mulcahy의 작품.
미쉘 윈트럽 2022년 주한 아일랜드 대사 부임 이후 아일랜드의 지속 가능한 가치와 문화를 한국에 전하며, 양국 간 문화·경제 교류를 활발히 이끌고 있다.
푸른 초원 위로 부드러운 바람이 스치고, 바다의 숨결이 실려온다. 아일랜드의 삶은 언제나 자연과 깊이 맞닿아 있다. 그 속에서 피어난 문화와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은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품격을 지닌다. 이 철학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이를 한국과 나누고자 매일 성심을 다하는 이가 있다. 바로 주한 아일랜드 대사 미쉘 윈트럽이다. 개발 협력과 식량 안보·농업, 기후변화 분야에서 20여 년의 경력을 지닌 아일랜드 외교관이다.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 니카라과, 영국을 누빈 그는 소농 지원을 통해 지속 가능한 농업 발전과 식량 안보를 지원하는 NGO 팜 아프리카Farm Africa 디렉터 시절부터 ‘지속 가능성’을 삶의 축으로 삼아왔다. 2017년부터는 아일랜드 외교부에서 아프리카 국제협력정책 국장을 역임하며 보건·식량 안보·성평등·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공적 개발 정책 수립을 총괄했다. 2022년, 대한민국의 아일랜드 대사로 부임해 어느덧 한국 생활 4년 차. 부임 이후의 행보는 단순한 ‘국가 홍보’ 차원에 머무르지 않았다. 아일랜드가 가진 진정한 가치를 몸소 경험하게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동물 복지와 지속 가능한 농축산, 세대를 이어온 장인 정신, 유서 깊은 브랜드를 한국에 소개하며, 식탁 위에서부터 문화와 예술의 장까지 양국을 잇는 새로운 대화를 열어왔다. 2023년, 아일랜드 총리와 무역사절단을 맞이한 시간은 그의 외교 여정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전쟁기념관의 아일랜드 기념비 앞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일랜드인들을 기린 그 순간, 두 나라의 거리는 수천 킬로미터가 아닌 ‘가치’로 환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 공감대는 일상과 예술, 나아가 삶을 바라보는 철학 전반으로 이어진다. 그는 아일랜드 문학제와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서로 다른 배경의 창작자들이 만나 영감을 주고받는 순간을 수없이 목격했다. 문화와 지속 가능한 가치로 연결된 아일랜드와 한국. 그는 오늘도 그 연결을 더욱 단단히 다지고 있다.
직접 보고 느낀 한국과 아일랜드의 문화적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이었나요?
두 나라는 모두 식민 지배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어 문화와 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합니다. 가족의 중요성, 교육에 대한 높은 가치, 굶주림의 역사에서 비롯된 고유의 음식 문화, 분단의 역사(북아일랜드는 영국에 속해 있으며, 30년간의 유혈 내전을 겪었죠) 등 많은 가치를 공유합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경제가 빠르게 변모했다는 점에서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교훈이 많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아일랜드 사람들은 한국인에 비해 훨씬 여유롭다는 거예요. 아일랜드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아일랜드 식문화는 동물 복지와 지속 가능한 농축산 방식, 투명한 이력 추적 시스템으로 유명합니다.
말씀하신 부분은 아일랜드 식문화의 핵심이며, 엄격한 식품 안전 체계도 포함됩니다. 이를 한국 시장에 전달할 때는 특히 ‘브랜드의 진정성’에 중점을 둡니다. 아일랜드의 성공적인 식품 브랜드는 대부분 유서 깊은 가족 경영 기업이에요. 이러한 진정성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신뢰하고, 안전하며, 천연 재료를 사용하고, 건강에도 좋은 제품이라는 확신을 줍니다. 또한 대다수가 유기농이며,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첨가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건강에도 좋지요. 이러한 특징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점점 더 크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 아일랜드산 쇠고기의 한국 수입이 공식적으로 재개되었죠. 무려 20년 만이에요.
오랜 시간 공을 들였던 터라 매우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아직 대형 마트에서 흔히 볼 수는 없지만, 머지않아 일부 부위를 고급 매장을 통해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일랜드산 쇠고기는 자연 상태에서 풀과 다양한 식물을 먹여 키우기 때문에 독특한 풍미가 있어요. 한우보다 기름기가 적지만 건강을 중시하고 믿을 수 있는 고기를 원하는 소비자라면 분명 좋아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희는 물론, 아일랜드의 모든 축산 농가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브랜드 쿠셴데일Cushendale은 1204년 시스터션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최초로 양모 공장을 세운 이래 8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도 순수 아일랜드산 양모를 사용해 수작업으로 제품을 만든다.
한국 시장에서 특히 성공을 거둔 아일랜드 제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플라하반Flahavan’s의 오트가 좋은 사례입니다. 한국은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출 시장입니다. 죽, 디저트, 빵, 쿠키 또는 간단한 영양식 아침으로도 활용할 수 있죠. 그 외에 아일랜드 위스키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일랜드에는 증류소가 네 곳뿐이었지만 현재는 마흔 곳이 넘습니다. 유니크한 캐스크 피니시부터 부드럽고 풍부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맛까지, 아일랜드 위스키는 독창성과 다양성이 돋보입니다. 한국 위스키 애호가들도 이런 장인 정신과 개성을 점점 높이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네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가 태어난 더블린의 상징이자 대중문화, 노래, 문학 속에 깊이 스며 있는 브랜드죠. 소비재 외에도 자동차 및 가전 부품, 의료 기기, 첨단 농기계 부품을 제조·수출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 개발 서비스 등 한국 기업과 다채로운 협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열렬한 팬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노벨 문학상을 네 번이나 수상할 정도로 영문학의 나라로 손꼽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일랜드는 전통적으로 스토리텔링이 강한 나라입니다. 켈트 신화 속 영웅담과 신들의 이야기는 수 세기 동안 노래와 시로 전해졌고, 이는 아일랜드인의 언어 감각과 서사 구조에 깊이 스며들었죠. 최근에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맡겨진 소녀>를 집필한 클레어 키건의 문학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올 9월에는 서울도서관과 함께 아일랜드 문학제를 개최합니다. 아일랜드에서 두 명의 훌륭한 작가가 방한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대사관과 서울도서관의 SNS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외교와 국제 무대에서 여성 리더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를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여성 리더들은 전반적으로 경청 능력과 감정 지능, 그리고 성찰적인 태도에서 뛰어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여성 아일랜드 대사들뿐 아니라 서울 주재 각국 여성 대사들(우리는 스스로를 ‘서울 시스터즈’라 부릅니다)에게서도 뚜렷하게 나타나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세계 무대에서는 이런 공감형 여성 리더십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G20이나 G7 정상회의 단체 사진을 보면 여전히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외교와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여성 리더십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여전히 남성 중심 구조가 강하고요. 저는 앞으로 이 변화가 가속화되기를 바라며, 제 경력 안에서도 그 변화를 직접 목격하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믿고, 삶의 모든 순간에 ‘진짜 나’를 드러내며,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아일랜드 대사관저에서 발견한 문화와 취향의 모자이크
미쉘 윈트럽 대사의 일상에 깃든, 아일랜드와 세계를 잇는 물건과 기억들.
미쉘 하튼Michelle Harton 한국과 아일랜드 민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작품 속에서 비교하며, 한국과 의미 있는 문화적 인연을 쌓아오고 있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 ‘Waiting for the Sparrows’는 한국 전래 동화인 ‘호랑이 꼬리’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힘은 세지만 어리석은 호랑이가 영리한 토끼에게 속아 넘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플라하반Flahavan’s 2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아일랜드 대표 오트 브랜드로, 한국은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출 국가다. 평소 오트밀로 빵이나 쿠키를 구워 즐겨 먹는다.
<더 아이리시 쿡북The Irish Cook Book> 재료 본연의 풍미를 살린 아일랜드의 음식 문화와 레시피를 집대성한 책.
아프리카에서 머물던 당시 구입한 에티오피아의 민속공예품. 나무 소재이며, 뚜껑이 있어 곡식이나 가루류 등을 보관할 수 있다.
안틱햄Antic-Ham 한국 출신 작가로 콜라주, 실크스크린, 사진, 드로잉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아티스트 북을 제작한다. 지금은 아일랜드의 아킬Achill섬에 거주하면서 아일랜드의 생활을 일러스트로 기록하고 있다.
메소브Mesob 에티오피아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조 오브제. 뚜껑을 열어 접시나 빵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아프리카에서 일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아일랜드 클레어주 모허 절벽Cliffs of Moher 모허 절벽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 대서양 절벽 위를 걷는 특별한 하이킹 코스로, 아일랜드 서해안의 장대한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