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8월호

목공예가 임형묵, 비정형의 감각

목공예가 임형묵의 손끝은 한때 완벽한 대칭을 좇았지만, 지금은 나무가 가진 본래의 결과 곡선을 더 자유롭게 살리는 데 몰두한다.

EDITOR 박이현 GUEST EDITOR 유승현 PHOTOGRAPHER 이기태

임형묵  목공예를 기반으로 다양한 오브제와 기물을 만드는 작가다. 서울 부암동 LHM스튜디오에서 나무를 깎고 자르며 유기적인 형태를 구현하고 있다. 대표 작업으로 ‘와瓦’ 시리즈와 ‘몽맹이’ 시리즈가 있으며 자투리 목재와 자연의 곡선을 최대한 활용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임형묵의 작업에는 유기적인 곡선이 흐른다. 반듯하게 떨어지는 선보다 손에 감기는 모양, 삐뚤삐뚤한 결이 더 편안함을 준다는 걸 그는 오랜 시간 나무를 만지며 배웠다. 처음부터 목공예를 꿈꿨던 건 아니다. 우연히 전공을 선택했고, 졸업 후에도 곧장 작가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목공예를 전공하고 나서 작가로 활동하는 선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인테리어 회사나 가구 디자인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현실 속에서 그는 일반 회사에 입사해 시간을 보냈다. “마음 한편에 도전해보지 않은 후회가 남더라고요. 유학을 준비하다가 포기하기도 했었고요. 그냥 이렇게 보내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결국 그는 다시 나무를 잡았다.

임형묵이 느끼는 목공의 매력은 제작과 디자인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손으로 직접 깎고 다듬으면, 기다릴 필요 없이 결과가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도자기처럼 가마에 넣고 꺼내는 시간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 “직접 만들어야 완성되니까 제 손길이 안 닿은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그가 만드는 물건들은 그래서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손으로 만든다는 건 결국 그 기물을 쓰게 될 사람의 움직임을 떠올리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위해 쓰임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실용의 영역까지 확장됐다. 병풍 작업도 그런 흐름에서 나왔다. 조선 시대 가구를 참고하되, 지금의 생활 방식에 맞게 새로 만든 것이다. 이삿짐 박스에 쓰는 반투명 플라스틱을 활용해 가볍고 투명하게 만들었다. 접어두면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펼치면 파티션이 되고, 옷걸이가 된다. “고전적인 형태에 현대적인 기능을 조금 더 부여한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작업 초기만 해도 그는 병풍처럼 반듯하고 정교한 것을 지향했다. 대칭이 맞지 않으면 용납할 수 없는 강박이 있었다. 하지만 부암동에서의 5년, 매일 자연의 곡선을 마주하며 조금씩 생각을 바꿔갔다. 어쩌면 삐뚤삐뚤한 것도 괜찮다는 걸 배운 시간이었다. 자연의 선을 따라 비정형 곡선을 작업에 담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시작점은 ‘몽맹이’ 시리즈였다. 2년 전 큰 가구를 만들고 남은 목재를 돌멩이 형태로 깎아 공예트렌드페어에 출품했다. 첫날부터 셀렉트 숍 대표가 작품을 모두 사겠다고 했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더 자신 있게 비정형 곡선 작업을 이어갔다. 동시에 나무를 더 온전히 쓰기 위한 고민도 깊어졌다. 나무는 죽어서도 인간에게 따뜻한 것을 준다는 사실을 늘 상기하며 작업을 시작한다. 그의 작업실에는 버리지 못한 자투리 나무와 조각들이 가득하다. 누군가 보기엔 비효율적일지 몰라도, 그는 그 조각들을 보며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한다.

그의 작업실은 서울 부암동 골목에 있다. 매일 1시간씩 작업실로 출퇴근하기 위해 한강을 건너고 동네의 산길을 살핀다. 도시를 벗어난 듯한 이 풍경이 그에게 자연스러운 영감을 준다. “저는 깨끗한 도로 위에 쓰레기 하나가 떨어져 있거나, 능소화가 예쁘게 핀 집 앞에서 사람들이 인증 숏을 찍는 모습처럼 의도하지 않은 장면에 눈길이 가요.” 그는 뜻밖의 풍경에서 새로운 감각을 발견한다. 인터뷰 중에도 휴대폰을 열어 “문을 닫으시면 복을 받습니다”라고 적힌 유리문 사진을 보여주었다. 일상을 다르게 감각하게 되는 작은 순간들을 그는 스쳐 지나가지 않고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편이다. 임형묵은 자신이 만드는 물건들이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손에 쥐었을 때 편안하고,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형태. 그게 그의 작업이 지향하는 결이다. 궁극의 럭셔리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별일 없는 하루요. 아무 일 없이 소소하게, 무탈하게 보내는 게 저는 최고의 호사라고 생각해요.” 그는 보통의 하루를 가장 큰 소망으로 삼는다. 손으로 깎은 비정형의 선을 만들면서, 작업실 안팎의 유한한 시간을 소중히 쓰는 중이다.



INSPIRATION IN LIFE

임형묵의 공예를 섬세하게 만드는 조용한 영감들.



‘몽맹이’ 시리즈처럼 쉬이 버려지는 톱밥, 나뭇조각 하나까지도 소중히 작업에 활용하고 싶다. 더 쓰임새 있는 기물을 만들기 위해 옻칠을 배우기도 하는 등 다음 단계의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며 고민하고 있다.



작가는 작업 중 잘려나가는 부재들, 의도하지 않은 자투리 조각들에서도 형태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는 그 텍스처와 형태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작업의 또 다른 실마리를 찾는다.



기물의 쓰임을 고민하는 공예가로서 현대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을 때가 많다. 특히 애플의 아이팟은 쥘 때의 안정적인 손의 감각, 클릭 휠을 돌려 기기를 작동하는 방식 모두 만족스럽다. 터치 몇 번이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지금의 기기와 달리, 일련의 작동을 통해 기계와 물리적인 관계를 맺는 방식 또한 좋다.



유현준 건축가의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을 자주 본다. 공간과 건축을 다루는 관점이 인상 깊고, 생각의 유연함을 배운다. 최근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비정형 곡선에 끌리는 이유에 대해 다룬 채널의 한 콘텐츠에서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았던 시절, 콜드플레이의 노래를 들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작업을 할 때면 종종 콜드플레이의 음악을 틀어놓는다. 특히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들이 많은데, 그 감정선이 작업할 때 누군가를 떠올리는 마음과 맞닿아 있다. 한번은 할머니를 위해 윷을 만든 적이 있는데 누군가를 생각하며 기물을 만들 때면 손끝의 감각부터 달라짐을 느꼈다.



오래전부터 고가구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병풍은 현대 공간에서도 충분히 쓸 수 있는 가구라고 생각했다. 이삿짐 박스에 쓰는 반투명 플라스틱을 활용해 가볍고 투명한 병풍을 만들었는데 만족스럽다. 접어두면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펼치면 파티션이 되고, 옷걸이가 된다.



부암동에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산책은 일상이 됐다. 날씨가 좋으면 일부러라도 작업을 멈추고 밖으로 나선다. 산책을 하면서 자연의 선과 형태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최고의 책은 산책”이라고.



재활용 방수포로 만든 프라이탁 가방을 몇 년째 사용하고 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무거운 재료를 담아도 끄떡없다. 버려지는 자투리 목재를 활용해 이렇게 오래도록 쓰임새 좋은 기물을 만들고 싶은 생각을 품게 한다.



신당창작아케이드 레지던시 입주 시절 만난 김태연 작가의 작업도 큰 자극이 됐다. 폐기물을 재가공해 직물을 짜는 작업을 하는데, 소재를 유연하게 대하는 방식에서 생각의 전환을 배웠다. 나무 역시 한계 없이 다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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