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의 남열해수욕장. 국내 서핑 스폿 중 남쪽 스웰의 파도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 중 하나다.
서핑은 생각보다 격렬한 레저라고 하던데?
파도를 온몸으로 느끼는 전신운동이니까. 보드에 누워 파도가 이는 지점까지 나아가는 ‘패들링’부터, 보드 위에 서는 ‘테이크오프’까지, 동작 하나하나가 체력을 엄청나게 소모시킨다. 게다가 물 위에서 즐기는 스포츠인 만큼, 보드 하나에 의지해 중심을 잡아야 해서 금세 녹초가 된다. 배우려 도전했다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자나 깨나 파도 생각뿐일 거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추천할 만한 서핑 스폿이 있다면?
무엇보다 파도의 질이 좋고, 파도가 자주 발생해야 한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해안이 바로 좋은 서핑 스폿이다. 새롭게 발견된 곳도 여럿 있지만, 대표적인 스폿은 이미 많은 이에게 알려져 있다. 양양의 죽도해수욕장, 제주의 중문해수욕장, 서해의 만리포, 부산의 송정해수욕장 등은 이미 포화 상태다. 그래서 덜 알려진 곳을 소개하고 싶다. 가장 먼저 전남 고흥의 ‘남열해수욕장’을 추천한다. 남쪽에서 밀려오는 스웰swell이 좋은데, 특히 태풍이 올라오는 여름철에는 파도가 매우 좋다. 한산하고 이국적인 풍경도 자랑할 만하다. 포항의 ‘용한리해수욕장’ 역시 영일만 방파제 왼쪽으로 힘 있는 파도가 일어 사계절 내내 즐기기 좋다. 제주 ‘월정리해수욕장’은 북쪽 스웰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매력을 지닌다. 파도가 자주 치진 않지만,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파도를 탈 수 있어 낭만이 있다.
서핑에 필요한 장비는 어떤 것이 있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파도를 탈 수 있는 서프보드다. 방향 전환을 도와주는 핀fin은 물론 보드와 몸을 연결하는 리시leash도 필수다. 핀은 보드 바닥에 달린 지느러미 형태의 장치로,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생겼다. 파도 위에서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를 조절할 때 필요한 저항을 만들어준다. 핀의 개수에 따라 ‘싱글 핀’, ‘트윈 핀’, ‘트러스터’, ‘쿼드’ 등으로 나뉜다. 모양과 재질도 다양하고, 가격 역시 천차만별이다. 초보자라면 저렴한 싱글 핀이나 트러스터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또한 보드와의 마찰력을 높이는 왁스가 필요하며, 수온에 따라 적절한 서핑 슈트를 착용해야 한다. 서핑 워치도 초보자에게는 유용한 아이템이 될 수 있다.
보드 바닥에 달린 지느러미 형태의 장치인 핀. 개수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서프보드도 종류가 다양한가? 어떤 기준으로 나눌 수 있나?
처음 접하는 보드는 보통 9피트(약 2.7m)대의 롱 스펀지 보드다. 부력이 좋아 파도를 잡기 쉽고, 밸런스도 좋다. 실력이 늘면 다양한 보드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취향에 맞는 차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 다이내믹한 무빙이 가능한 쇼트 보드, 우아하면서도 파워풀한 롱보드, 패들보드, 미드랭스 보드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보드의 선택은 개인의 취향뿐 아니라 파도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보드 종류가 다양한 만큼, 초보자에게 적합한 보드로는 어떤 것을 고를 수 있나?
보통 길이에 따라 7피트(약 2m) 미만의 쇼트 보드, 7~8피트의 펀 보드, 8~10피트의 롱보드로 구분한다. 초보자에게는 일반적으로 롱보드를 권한다. 체격이 큰 남자라면 더욱. 수면에 닿는 면적이 넓은 만큼 부력이 커서 쇼트 보드보다 타기 쉽다. 숙련자가 되어 작은 보드를 타면, 더 경쾌하게 파도를 즐길 수 있다. 그렇다고 입문하기도 전에 보드를 사려는 건 운전면허도 없으면서 차 먼저 사려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렌털 숍에서 빌려 타다가 중고를 구입해 실력을 키우는 것이 좋다. 보드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자기에게 잘 맞는 형태를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급할 필요 없다. 그래야 엉뚱한 보드를 비싼 가격에 사는 사태를 피할 수 있다.
길이 8피트에서 10피트가량의 서프보드를 지칭하는 롱보드. 서핑 초심자가 사용하기에 제격이다.
서핑을 배우기에 최적의 계절은 언제인가?
파도를 탈 때 보드와 몸에 마찰이 생기기 때문에 래시 가드나 슈트를 착용하고 배우게 된다. 그런데 한여름엔 햇살도 뜨겁고 바닷물마저 미지근하다. 때문에 더위가 한풀 꺾이는 가을이나 아직 수온이 차가운 늦봄, 초여름을 추천한다.
바다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다면?
파도에는 주인이 없다. 그러나 순서는 있다. 파도가 일어나는 브레이크 존에서는 암묵적으로 로테이션이 지켜져야 하며 이를 어길 시에는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 있다. 심하면 큰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처음 찾는 스폿이라면 기존 서퍼들에게 인사를 잘 해야 한다. 서핑은 ‘로컬리즘’이 강한 레저다. 서핑 스폿이 있는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을 ‘로컬 서퍼’, 줄여서 ‘로컬’이라고 한다. 이들은 해당 스폿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존중하는 ‘로컬 리스펙트’는 서핑의 핵심 정신 중 하나다. 그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파도의 컨디션, 조류 때문에 서핑을 피해야 할 시간 등, 꼭 알아둬야 할 점에 대해 물을 때 아낌없이 조언해줄 것이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하는 규칙이다. 바다에서는 언제나 겸손하자.
파도 위를 미끄러지는 서퍼의 모습.
처음 서핑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팁이 있다면?
처음엔 누구나 다 넘어지고 허둥대고 물도 잔뜩 먹는다. 중요한 건 그 과정을 억지로 이겨내려 하지 말고 즐기라는 것이다. 파도는 통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기다리는 것이다. 천천히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파도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해외여행과 서핑을 겸할 수 있는, 서핑 트립 스폿을 추천한다면?
먼저 호주 누사의 ‘티트리 베이’를 꼽아보겠다. 해변 근처의 국립공원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고요하게 숨 쉬는 파도가 자리한 서핑 스폿이다. 서퍼들, 특히 롱보더라면 무조건 가봐야 할 명소로 꼽힐 만큼 자연과 서핑, 둘 다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필리핀 라 유니온의 ‘모나리자 포인트’ 역시 서핑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여행지이다. 서핑의 낭만에 매료된 이라면 이곳만 한 스폿이 없다. 부담 없이 탈 수 있는 파도, 따뜻한 사람들, 그리고 바다 너머로 지는 붉은 석양을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서핑과 힐링을 동시에 누리고 싶다면 느리고 여유롭게 흐르는 에메랄드빛 파도를 만날 수 있는 인도네시아 길리섬을 위시 리스트에 올려볼 것을 추천한다.
서핑 워치를 구비하는 것
역시 초심자에게 도움이 된다.
직접 꼽아보는 서핑의 매력은?
서핑의 매력은 인간이 만든 어떤 인공적인 구조물도 없이 지구가 품은 자연 그대로의 바다를 하릴없이 즐긴다는 데 있다. 거대한 자연이 선사하는 파도 위에 몸을 맡기고, 그 흐름을 읽으며 달리는 순간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그야말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는 셈이다. 해가 반짝이는 수면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파도에 올라타는 그 찰나의 순간,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유로움과 몰입감을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호주의 누사 국립공원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티트리 베이.
COOPERATION 김봉철·신주엽
(싱글핀 서프웍스·싱글핀 에일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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