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 매뉴팩처 오데마 피게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담긴 문화 세계가 펼쳐진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Musée Atelier Audemars Piguet’.
“전시관을 거닐다 보면 낯설고 먼 땅의 여행자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 어딘가 시적이다. 조심스럽게 미끄러지듯 거리를 누비면 마법은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
패트릭 브링리의 저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미술관이 사람들로 하여금 풍부한 사유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흥미로운 관점에서 풀어낸다. 그 사유의 촉발 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는 미술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미술관의 공간이다. 이탈리아의 화가 주세페 카스틸리오네가 화폭에 담았던 ‘루브르 궁전의 살롱 카레Le Salon Carré du Louvre’는 18~19세기 미술 전시 방법의 전형을 보여준다. 관람자의 머리 위로 쏟아질 것만 같이 벽면 전체를 가득 메운 아카데미즘적 작품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발산하기 바빴고 그 안에 공간과 관람자 간의 교감은 없었다. 살롱전에 출품된 수많은 그림을 효율적으로 심사하기 위해 고안된 이 전시 방법은 몇 세기 동안 이어졌다.
화이트 큐브
작품 자체에 집중하는 시간
1936년 3월 2일, 화려한 바로크 장식 아래에서 수많은 작품들로 인해 가려졌던 붉은색 벽체를 대체할 새로운 전시 공간이 뉴욕 맨해튼에 등장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대 디렉터 앨프리드 H. 바 주니어는 전시 <큐비즘과 추상 회화Cubism and Abstract Art>에서 흰 벽과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 작품에만 집중하는 ‘화이트 큐브White Cube’를 선보였다. 그는 오직 작품 자체의 시각적 효과에 관람자가 집중하길 바라며 화이트 큐브를 고안했다. 해당 전시 이후 화이트 큐브는 전 세계 현대미술 전시의 표준이 될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미술비평가 브라이언 오도허티는 그의 저서 <화이트 큐브 안에서Inside the White Cube>에서 화이트 큐브라는 공간이 조성하는 미술 작품과 관람자 간의 관계는 다분히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띤다고 지적한다. 관람자는 화이트 큐브 안에서 자신의 평상시 감각과 단절된 채 작품에 대한 사유와 감상에서 헤게모니를 잃는다고 본 것이다. 이에 예술가들은 화이트 큐브의 일방성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예술의 형식과 내용이 주변 맥락과 상호 소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화이트 큐브의 기능적 한계도 뚜렷해졌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큐레이션의 영역에선 공연장에서 영감을 얻어 행위 예술을 포용하기 위해 만든 블랙 박스, 화이트 큐브와 블랙 박스의 장점을 취합해서 만든 그레이 큐브 등 여러 대안적 공간이 시도되었다. 한편 건축의 영역에선 또 다른 차원의 해결책이 미술관 건축의 모습을 변화시켜왔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라시드 존슨Rashid Johnson의
전시 (~2026년 1월 18일) 전경.
ⓒ Solomon R. Guggenheim New York Foundation, Photo: David Heald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일방적 감상 방식에서 벗어나다
근대건축의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1959년 개관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통해 당시에 이미 영향력이 막강했던 화이트 큐브 전시 방법에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주변 환경과 단절된 채 하나의 입방체에서 다른 입방체로 이동하며 자신의 감각을 잃어가던 관람자들은 구겐하임 미술관 안에서 자연광으로 가득 찬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구축된 나선형의 긴 경사로를 걸으며 전시를 감상하게 되었다. 경사로의 바닥 판은 이동을 위한 통로이자 작품을 감상하는 전시 공간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간 후 경사로를 타고 내려오며 자연스레 전시를 관람하길 바랐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바닥 판이 갖는 약 3도의 경사가 관람자에게 과하지 않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미묘하고 불편한 감각을 유발한다는 것. 이는 화이트 큐브가 무의식적으로 걷고 감상해도 물리적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환경을 관람자에게 제공하는 것과 대비된다. 프랑스의 건축가 클로드 페랑Claude Parent과 철학자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는 그들의 건축 이론인 ‘기울어진 기능The Oblique Function’을 통해 수평의 바닥 판을 기울여 경사를 만드는 순간 취하게 되는 불안정한 자세로 인해 사람은 그동안 관성적으로 느껴왔던 수평선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완전한 의식 상태에서 불안정한 광경을 인지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구겐하임 미술관의 경사로는 만약 화이트 큐브 내에서였다면 육체와 단절된 채 반복되었을 작품에 대한 사유와 감상의 과정에 개입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의식을 재정비하고 본인의 위치와 동선에 따라 전시 공간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 게다가 아트리움 반대편의 경사로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려오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무작위적인 풍경은 관람자의 사유가 화이트 큐브의 일방적 감상 방식을 뛰어넘도록 유도한다. 결국 구겐하임 미술관은 화이트 큐브의 최면에 걸린 관람자에게 각성을 촉구한 셈이다.
관람자는 전시 공간을 통해 작품의 맥락과 만나고 그에 대한 사유의 영역을 넓힌다.
결국 미술관 건축의 현대사는 화이트 큐브에 대한 극복의 역사다.

관람자가 언제 방문하느냐에 따라 같은 작품도 다르게 해석하고 사유하게 되는 미국 텍사스의 킴벨 아트 뮤지엄Kimbell Art Museum.

킴벨 아트 뮤지엄
매일 똑같지 않은 해석과 사유
화이트 큐브가 관람자의 감각을 무장해제할 수 있는 이유는 전시된 작품이 모든 외부 환경으로부터 차단되고, 관람자는 항상 일정한 조도 아래에서 변함없이 빛나는 흰색의 벽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킴벨 아트 뮤지엄의 디렉터인 리처드 브라운Richard Brown은 이러한 전시 환경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자연광의 유입이 미술 전시와 감상에서 물리학적, 생리학적,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열 것이라 확신했다. 따라서 그는 자연광으로 촉발될 현상들, 즉 미술관 내부에서 바깥 풍경을 볼 때 느끼는 심상, 눈부심, 작품 훼손 우려 등 설계 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목록화했다. 결과적으로 리처드 브라운은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과 자신이 보러 온 미술 작품이 여전히 현실 세계의 일부이며 순환하고 변화한다는 것을 인식하게끔 하는 심리적 효과를 추구했다.
미술관 설계자 후보 중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이 리처드 브라운의 미술관 비전을 구현할 혁신적인 건축가로 선정되었다. 이 도전적인 실험은 태양의 광량이 풍부한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이루어졌다. 태양광을 오롯이 받을 미술관 지붕의 디자인은 자연스레 이 프로젝트의 주요 관심사이자 정체성이 되었다. 루이스 칸은 천장 자체가 밝게 빛나는 전시 공간을 원치 않았다. 대신 지붕 가운데 길고 가늘게 찢어진 틈새 사이로 자연광을 유도하고 그 밑에 설치한 곡면의 알루미늄 차폐 장치가 빛을 다시 위로 반사해 노출 콘크리트 천장 면에 은은하게 투영하는 개념으로 디자인을 발전시켰다. 루이스 칸이 고안한 지붕 시스템은 두 번에 걸친 반사를 통해 간접광을 전시 공간에 유입하는데, 이는 빛이 어디서 투과되고 반사되며 배제되는지를 예측하는 원시 광선 추적을 통해 테스트되었다. 기둥에 의해 지지되는 한 모듈의 볼트vault(아치arch를 길게 압출한 형태) 지붕의 경간(스팬)은 길이 30m에 너비(폭) 6m다. 이러한 장 스팬의 구조로 미술관은 자유로운 전시 공간을 얻었으나 구축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미술 작품에 무해한 형태의 자연광을 내부 공간에 아름답게 유입시키고, 구조적으로 도전적인 거리를 극복하는 지붕을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루이스 칸은 이 지붕 형태의 실마리를 사이클로이드cycloid 곡선에서 발견했다. 포스트 텐션Post-tension 강선이 인입된 사이클로이드 볼트는 안정적으로 장 스팬의 공간을 구축하고 노출 콘크리트의 천장 표면은 계절과 시간대, 그리고 날씨별로 변하는 태양빛을 은은하게 반사해 관람자로 하여금 기존 미술관에서는 겪어본 적 없는 전시 분위기를 선사한다. 외부 환경의 변화와 관계없이 언제나 같은 감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화이트 큐브와 달리 이곳에서는 관람자가 언제 방문하느냐에 따라 같은 작품도 다르게 해석하고 사유하게 된다. 킴벨 아트 뮤지엄에서 전시 벽체와 천장은 더 이상 무미건조한 배경이 아니다. 이들은 분위기를 통해 관람자와 작품, 그리고 외부 환경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루이지애나 뮤지엄
미술과 함께 명상을
구겐하임 미술관과 킴벨 아트 뮤지엄은 화이트 박스의 공간 원칙이 교조주의적으로 지켜지던 20세기 엘리트 미술계의 한복판에서 수많은 반대와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술관 건축의 진일보를 이룬 사례다. 덴마크 훔레베크에 위치한 루이지애나 뮤지엄의 설립자이자 디렉터인 크누드 옌센Knud W. Jensen의 의도는 처음부터 기존의 권위주의적인 패러다임을 넘어 새로운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덴마크의 중산층을 대상으로 그들이 언제든 방문해 현대미술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거주지’와 같이 편안한 미술관을 만들고자 했다. 1956년에 외레순 해협이 내려다보이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일품인 대지를 매입한 크누드는 덴마크의 젊은 건축가 빌헬름 볼레르트Vilhelm Wohlert와 외르겐 보Jørgen Bo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설립자의 비전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미술관을 제시하는 것이었으므로 그 공간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 또한 파격적이었다. 빌헬름과 외르겐은 건물의 대지 구획에서부터 평·단면 계획, 재료의 이용까지 많은 부분을 화이트 큐브와는 반대되는 방식으로 전개했다. 조각 공원에 넓게 펼쳐져 있는 건물의 순환 동선을 보면 그들이 미술관을 외레순 해협, 호수 그리고 숲 등 외부의 자연환경을 따라 배치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각 전시 공간의 미술 작품에 어울리는 자연을 큐레이션한 듯하다. 이러한 연유로 동선상 내부의 전시 공간과 외부의 자연이 만나는 지점마다 편안하게 앉아서 쉬거나 명상에 잠겨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북쪽 날개 공간에 전시된 자코메티의 조각 ‘걷는 사람Walking Man’의 배경으로는 2개 층고의 전창 밖 호수가 선택되었다. 또한 조각 공원에는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 ‘위대한 천재Le Grand Génie’가 숲속에 서서 양 측면이 유리로 열린 통로를 거니는 관람객들을 바라보고 있다. 두 조각 모두 전 세계 어딘가의 정형화된 미술관에서도 전시되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호수를’ 걷는 사람과 ‘숲속의’ 위대한 천재는 관람자로 하여금 ‘하얀 입방체’ 속의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감흥과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루이지애나 뮤지엄은 미술관 방문을 특별한 의식이 아닌 일상적인 삶의 연장으로 만들었다.

자코메티의 조각을 보며
쉬거나 명상할 수 있는
덴마크 훔레베크에 위치한
루이지애나 뮤지엄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나선형의 중심부에 자리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아틀리에의 앞에는
오데마 피게 역사상 가장
복잡한 시계인 ‘유니버셀’
(1899)을 중심으로 크로노그래프 시계들이
궤도를 따르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오데마 피게 뮤지엄
서사와 자연, 예술의 삼중주
지역적·시대적 맥락, 작가의 서사와 의도 등을 배제하고 오로지 작품 자체의 예술적 성취만을 평가하는 형식주의적 비평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대체적인 흐름은 보다 입체적인 감상과 비평을 요구한다. 작품과 그것을 둘러싼 여러 맥락이 합일을 이룰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2020년 6월, 스위스 르 브라쉬스에 오픈한 오데마 피게 뮤지엄은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다. 덴마크의 건축가 비야르케 잉겔스Bjarke Ingels가 설계한 이 뮤지엄은 앞서 설명한 3개의 미술관들이 화이트 큐브를 극복한 해법을 총망라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50년 동안 시계 장인들에게 영감을 준 르 브라쉬스의 자연은 단순한 주변 환경이 아닌 오데마 피게 시계의 탄생 배경과도 같다. 시계 무브먼트의 메인 스프링을 연상시키는 이중 나선 형태의 뮤지엄은 구릉지를 딛고 서 있으며, 전시 공간의 바닥 슬라브는 그 지형이 그대로 반영되어 여러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그리고 깊이감이 있는 황동 메시가 유리 패널의 상부에 설치되어 전시 공간으로 유입되는 르 브라쉬스의 태양빛을 조절한다. 마지막으로 지붕을 구조적으로 지탱하기 위해 특수 제작한 12cm 두께의 유리 패널 창이 아름다운 숲과 언덕의 풍경을 기둥의 가림 없이 관람객에게 선사한다. 이 세 가지의 디자인 해법은 아틀리에 브뤼크너Atelier Brückner의 무대 연출과 융합되어 오데마 피게의 서사를 펼친다. 관람객은 그 서사를 따라 걸어가면서 뮤지엄이 얹힌 대지의 지형을 두 발로 경험하고, 르 브라쉬스의 자연광이 연출하는 분위기를 느끼며, 오데마 피게의 창조의 원천인 자연 풍경과 그 창조의 결과물인 시계 작품이 중첩한 입체적 감상을 할 수 있다. 관람자는 전시 공간을 통해 작품의 맥락과 만나고 그에 대한 사유의 영역을 넓힌다. 결국 미술관 건축의 현대사는 화이트 큐브에 대한 극복의 역사다.
WRITER 이진규(건축가, 머릿돌에이스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