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걸 모루와 망치 등 단순한 도구들을 통해 2차원의 금속판을 3차원의 입체 조형으로 제작하는 공예가이자 조각가다. 세 차례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 및 갤러리,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북극곰, 양, 여우 등 동물 형상의 조형을 선보이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관을 알려왔다.
공예는 ‘쓸모’를 전제로 한 예술이다. 인간의 손으로 기능을 품은 아름다움을 구현하며 긴 시간 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금속공예가 임문걸의 작업은 그 전제를 기꺼이 거슬러 오른다. 커틀러리나 주전자처럼 생활 기물을 만드는 일을 넘어 조형 예술로의 확장을 시도하며 수십, 수백만 번의 망치질을 통해 다양한 동물 형상을 완성한다. 그는 작업 초기 오브제 기반의 추상적 조형을 시도하는 해외 사례를 접하며, 한국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영역을 스스로 탐험하기 시작했다. 그의 조형물은 뚜껑을 열어 무언가를 담을 수 있지만 그 쓸모가 명확치 않다. 기능보다 형상, 쓰임보다 감응이 앞선다. 쓸모와 무용 사이의 경계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굳이 동물의 형상일 필요가 있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저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간결히 답했다. 어릴 적 뱀과 거미를 키웠을 만큼 동물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가볍게 작업을 시작했지만 이내 단순한 조형 이상의 존재에 대한 탐구로 작업을 확장했다.
“각각의 동물이 처한 삶이나 현실에 대해 알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이를 이야기하고 싶어졌어요. 다양한 산업에서 소비되는 야생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주제를 확장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동물을 만드는 것이 곧 나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이렇게 동물 형상을 계속해 만들면서 단순히 재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나 기억 등을 투사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근래는 동물을 만드는 동시에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을 거듭하며 존재, 자아, 기억과 같은 개념들이 점점 가까워진다고도 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공감의 형상화’라 명명한다. 작고 연약한 존재, 감정들을 금속이라는 단단하고 차가운 물질로 표현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 “제 작업은 내면의 생각이나 동시대 어떠한 존재에 대한 메시지를 금속을 통해 눈에 보이게 하는 일이에요. 형상이라는 건 단지 그릇, 껍데기일 뿐이죠. 저는 그 속을 채운 무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빈 공간 안에 제 생각, 감정들이 담기면서 각각의 동물 작업이 저를 대변한다고 느끼기도 해요.” 그의 작품 속 ‘비어 있는 무엇’은 작가 자신인 동시에, 작품 속 자신의 애장품을 모아온 공간이자, 작가와 관객이 교감할 수 있는 여백으로 자리한다.
공예가와 조형 예술가, 그 어디쯤에 있는 듯한 그는 요즘 그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작업을 고민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선보인 ‘발 쿨러’다. 동물의 발을 형상화한 기물에 실용성을 더한 것으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일상의 감각과 조형성이 만나는 지점을 실험했다. “조형과 기능, 두 키워드를 연결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어요. 그러다 ‘동물의 발이 기능적인 형태를 갖는다면?’이라는 상상을 하게 되었고, 식기장 정소영 대표님과의 대화 속에서 그 상상을 구체화할 용기를 얻어 ‘발 쿨러’라는 작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기능과 예술성 사이의 균형을 통해 일상에 스며들 수 있는 힘을 지닌 공예의 고유한 매력에, 내면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담아내고 이끄는 작가의 해석을 더해 기물 너머의 조형성, 상징성을 탐구하고 있다. 최근 그는 동물에서 사람, 식물로 관심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여전히 금속은 중심에 있지만, 그 안에 담고 싶은 존재는 더 다양하고 모호해졌다. “동물 형상은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이제는 조금 더 상징적이고 개념적인 형태로 나아가고 싶어요. 식물이나 사람도 좋겠죠. 더 나아가 내면을 시각화한 조각이나 기능과 상징이 함께하는 오브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INSPIRATION IN LIFE
임문걸의 보이지 않는 예술 세계를 이루는 요소들.
형상 안의 내면, 그 존재 자체에 집중하는 앤터니 곰리의 예술은 작가에게 예술적 지침을 제시한다.
반려견 언년이는 임문걸 작가에게 무한한 사랑을 알려주는 존재다. 야생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작업을 확장하며 언년이와의 일상이 더욱 특별해졌다.
동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담는 우국원 작가처럼 자신만의 조형 예술을 완성하고 싶다는 임문걸 작가.
생활용품을 예술적 오브제로 바꾼 알레시의 디자인을 보며 영감을 얻곤 한다. 유머러스한 디자인, 사용자와의 교감을 이끌어낸 요소 등이 매력적이다.
절제된 감정과 안정적인 음역대의 에이미 와인하우스 음악을 즐겨 듣는다. 그의 음악처럼 과도하게 감정을 터뜨리기보다 조율된 울림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
전통적 기물 제작 방식인 망치질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는 임문걸 작가는 그 무엇보다 자신의 도구들에 큰 위로와 영감을 얻는다. 금속 가위, 모루, 망치 같은 기본적인 도구들을 사용해 수없이 두드리고 자르며 작업을 하기에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에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올해 초 호암미술관의 의뢰로 제작한 공작새 조형이다. 보편적으로 꼬리가 화려하게 펼쳐진 공작새를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보다 모던하면서도 균형감 있는 조형감을 위해 날개를 접은 모습으로 제작했다.
1년여간 조형에 집중한 개인 작업을 이어가던 임문걸 작가는 어느 날 문득 기능성을 지닌 작품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 동물을 주제로 하는 동시에 기능과 조형성을 모두 지닌 작품을 만들고자 동물의 발을 선택했다. 쿨러를 시작으로 발 조형물을 덧댄 테이블, 책장 등 다양한 오브제를 제작하기도 했다.
간결하면서도 기능에 집중한 디자인, 단단한 내구성의 카시오 시계를 애정한다. 합리성에 근간한 브랜드 정체성 또한 오랜 시간 유지해 귀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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