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7월호

본투스탠드아웃 임호준 대표, 몰래 나가서, 우리끼리 놀자

향수는 보통 취향으로 소비된다. 어떤 이에게는 습관이고, 어떤 이에게는 기억이다. 하지만 향수로 질문을 던지는 브랜드가 있다면 어떨까. 본투스탠드아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질문이자 실험이길 원하는 브랜드다.

EDITOR 이호준 GUEST EDITOR 이기원 PHOTOGRAPHER 박용빈

‘K-뷰티 열풍’은 이제 다소 진부한 소재다. 한국 화장품이 잘나간다는 걸 모두가 안다. 하지만 K-향수는 얘기가 좀 달랐다. 국내에서 제작되는 니치 향수들의 성장세가 조금씩 이어지고 있는 상황, 그중 본투스탠드아웃은 성장의 방향과 기울기가 모두 남다르다. 첫 제품 출시 3년째에 접어드는 지금 전 세계 50여 개국, 주요 오프라인 매장에 진출하더니 올 6월에는 삼청동에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까지 오픈했다. 경복궁 옆에 있는 지리적 특성을 살린 매장에는 궁중 미술과 고미술의 흥취가 고스란히 담겼다.

“저는 브랜드가 예술적인 결과물로 보이길 원하기 때문에, 그런 맥락이 있는 동네를 선택하고 싶었어요. 삼청동은 ‘캐릭터가 있는 동네’잖아요. 궁을 옆에 둔 동네의 문화적 정취, 예술적인 분위기 같은 것들이 마음에 들었죠. 그래서 강남은 아예 고려하지 않았어요. 성수는 너무 상업적이었고요.” 이 브랜드는 여러 면에서 의문을 자아낸다. ‘본투스탠드아웃’이라는 브랜드 네이밍부터 남성적이고 강한 인상이라 향수 브랜드로는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브랜드의 핵심 키워드도 1980~1990년대 록 밴드를 연상시키는 ‘반항’이다. 여성적이고 우아한 느낌을 강조하던 기존 향수 브랜드들과는 시작점이 완전히 다르다.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브랜드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브랜드명이 곧 메시지가 돼야 했죠. 듣는 순간 의미가 와닿고, 뉘앙스가 느껴지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선언적인 이름을 붙였습니다. 직관적으로 기억되고,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반항이라는 키워드 역시 마찬가지예요. 팬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극단적인 아이덴티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반항’이라는 단어가 그걸 잘 드러내더군요.” 브랜드의 실험 정신은 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 마이 쿠키Be My Cookie’, ‘네이키드 런드리Naked Laundry’ 등 기묘한 이름을 단 향수 라인업은 코냑이나 금속 같은 테마까지 과감하게 향으로 풀어낸다. 비누처럼 가벼운 향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이런 향 자체가 꽤 충격적일지도 모른다. “향수는 창의성에 돈을 지불하는 제품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조향사들에게 ‘이거 진짜 해도 돼?’ 싶은 걸 요청해요. 예컨대 ‘비 마이 쿠키’는 구릿한 냄새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중동권에서는 굉장히 인기가 있어요. 대륙별로 선호하는 향이 다르죠.”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자기 안의 감각이 환기되고, 정서적으로 해방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삼청동 스토어를 준비하며 원했던 임 대표의 생각이다.


냄새에 대한 접근 방식은 문화에 따라 다르다. 서구권이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향을 추구한다면, 동양권은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향을 선택한다. 그는 이런 차이를 본능처럼 이해한다. 자신의 성장 환경 속에서 체득된 감각이다. 임 대표는 북미와 유럽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후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담당 분야는 화장품과 소비재였다. “향수를 너무 좋아해서 일부러 이 섹터를 골랐어요. 개인적으로 구매한 향수가 지금까지 1000개가 넘는 것 같아요. 평소에는 냄새만 맡고 다니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야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처럼 낯선 향수 브랜드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로레알이다. 론칭 직후 향수를 접한 로레알 럭스L’Oréal Luxe 회장이 투자 검토를 지시했고, 2년간의 실사 끝에 로레알 그룹의 벤처 캐피털인 볼드BOLD에서 전략적 투자를 이끌어냈다. “사실 꼭 투자가 필요했던 건 아니었어요. 우리는 자생 가능한 구조였거든요. 하지만 로레알에서 저희를 좋아했어요. 단기 수익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실험 정신을 보고 판단한 것 같아요.”

본투스탠드아웃은 K-뷰티 브랜드로는 드물게 런던 해러즈와 셀프리지스, 파리 프렝탕과 사마리텐 등 유럽의 고급 백화점에 입점하는 데 성공했다. 뚫기 힘들다는 유럽의 명품 유통망을 하나씩 돌파한 셈이다. 올해는 파리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밀라노, 뉴욕, 도쿄, 암스테르담 등 글로벌 주요 도시로 직접 진출할 계획이다. 본투스탠드아웃을 소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 같으냐고 물으니 그가 이렇게 답했다.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소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 브랜드가 파티에서 슬쩍 다가와 ‘따분한 파티에서 몰래 빠져나가 우리끼리 놀자’고 말하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됐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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