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7월호

PAIRING WITH ART

프레스티지 주류 브랜드가 축적해온 헤리티지와 장인 정신이 가장 럭셔리하게 발현되는 순간은 바로 예술과 조우할 때이지 않을까. 다양한 분야 아티스트의 창작 정신이 더해져 술 그 자체가 작품이 된 협업 사례를 모아봤다.

EDITOR 이호준

건축 언어와 위스키의 만남, 달모어


건축의 조형미, 그리고 위스키의 철학이 하나의 보틀 안에서 완성됐다. 달모어는 구마 겐고, 멜로디 르엉 등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예술의 창의성을 위스키와 엮어내며 감각의 지평을 확장하는 ‘루미너리Luminary’ 시리즈를 제작해왔다. 3년째 진행하는 이번 프로젝트의 세 번째 에디션 명칭은 ‘루미너리 No.3’. 베네치아 건축 비엔날레 2025에서 최초로 공개한 루미너리 No.3은 세계적인 건축설계 스튜디오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Foster + Partners의 건축가 벤 도빈Ben Dobbin의 손에서 탄생했다. 핵심은 단 2병만 존재하는 ‘루미너리 No.3–더 레어The Rare’다. 52년간 숙성한 이 위스키는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 버번 캐스크에서 시작해, 1980년 빈티지 칼바도스, 1940년 콜헤이타 포트, 40년산 페드로 히메네스 셰리, 토니 포트, 샤토뇌프 뒤 파프 등의 와인 캐스크를 거쳐 완성한 위스키다. 벤 도빈은 위스키 숙성과 건축적 구조 사이의 유사성에 착안해 ‘텐세그리티Tensegrity(긴장 구조)’ 개념을 활용한 청동 조형물을 설계했다. 병을 감싼 청동 조형물은 디캔터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시각적 착각을 자아낸다.



예술을 수놓은 샴페인, 페리에주에


페리에주에의 시그너처 샴페인, ‘벨에포크’가 아틀리에 몽테Atelier Montex의 정교한 바느질을 거쳐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샤넬이 사랑하는 최고급 자수 공방으로도 널리 알려진 아틀리에 몽테는 세심하고도 완성도 있는 구조 자수 기술을 바탕으로 ‘리벨륄Libellule’, 우리말로는 ‘잠자리’라는 제목의 환상적인 파인 주얼리 장식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단 10점만 제작되었으며, 그중 하나가 지난해 연말 한국에 단독 상륙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협업이 단지 고급스러운 외형을 만들기 위한 시도로만 읽히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주조와 조형, 테크놀로지와 수작업, 자연과 상징이 복합적으로 엮인 교차 지점에서 태어난 하나의 예술적 결실이기 때문. 2008년산 페리에주에 벨에포크를 감싸고 있는 리벨륄은 3D 프린팅으로 처음 형태를 잡고, 니켈 도금과 24K 골드 마감, 녹색 수작업 채색을 거친 후, 한 명의 장인이 75시간에 걸쳐 완성하는데, 이는 공예에 깃든 장인 정신과 샴페인에 담긴 예술성이 공존할 수 있는 것임을 몸소 보여준다.



작품이 된 코냑의 빛깔, 레미 마르탱


올해 5월, 프랑스 코냑 브랜드 레미 마르탱Rémy Martin이 세계적인 조각가 아니시 카푸어와 함께 제작한 ‘리미티드 XO 디캔터’ 및조각 작품을 공개했다. 이번 협업은 브랜드의 유산과 현대미술의 만남을 통해 코냑을 단순한 주류를 넘어 ‘감각적 오브제’로 확장한 프로젝트다. 카푸어는 이번 협업의 출발점을 유년 시절 기억에서 찾았다. 그는 “인도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가 레미 마르탱을 즐겨 마시던 모습이 떠올랐다”고 밝히며, 코냑의 빛깔, 향, 온도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은유처럼 각인됐다고 전했다. 그는 아버지를 향한 향수를 디캔터 디자인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디캔터는 불필요한 장식을 제거한 절제된 형태를 갖췄다. 그런 가운데 보틀에 담긴 코냑의 빛깔과 광택이 반사될 수 있도록 고려한 점에 눈길이 간다. 카푸어는 해당 디캔터를 두고 “XO는 그 자체로 빛을 반사하는 물질이며, 감정을 담는다”고 말하며, 코냑을 ‘빛과 시간의 조각’으로 해석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공개한 조형 작품은 작가의 대표 시리즈인 오목거울 형태로 제작됐다. 광택이 도는 오목한 표면은 주변을 왜곡하고 흡수하며, 관람자에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위스키의 공간화, 발베니


발베니가 2025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맞춰 건축 디자이너 새뮤얼 로스Samuel Ross와 함께 작업한 몰입형 설치 작품 ‘트랜스포지션’을 선보였다. 트랜스포지션은 밀라노 이솔라 지구에 자리한 ‘히스토릭 파운드리’ 공간을 무대로, 수증기와 빛, 구리 조형물, 물소리로 구성한 설치형 구조물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시작점은 바로 발베니가 수십 년간 축적해온 숙성 기술의 집약체이자 50년 이상의 시간을 거쳐온 위스키 컬렉션인 ‘더 피프티 컬렉션’. 새뮤얼 로스는 더 피프티 컬렉션에 대한 감상을 건축적 언어로 번역한 다음 공예와 기술, 재료의 물성을 조합해 이를 마치 하나의 공간처럼 구현했다. 작품 중앙에는 실제로 물이 흐르는 3개의 구리 파이프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각각의 구조물이 각각 15%씩 점진적으로 커지도록 설계해 위스키 증류 과정의 점진적 ‘강도’를 시각화했다. 위스키 제조라는 정교한 산업적 행위를 하나의 조형적 내러티브로 풀어낸 셈.



200년의 증명, 더 글렌리벳


지난해 창립 200주년을 맞이한 더 글렌리벳. 두 세기를 지나온 시간을 보다 특별히 기념하기 위해 1824년 브랜드 창립 이래 처음으로 고숙성 싱글몰트위스키 시리즈 ‘더 글렌리벳 이터널 컬렉션’을 마련했다. 더 글렌리벳 이터널 컬렉션은 매년 위스키 숙성 연수를 1년씩 늘리며 5년간 순차적으로 출시하는 장기 프로젝트성 시리즈 에디션으로, 브랜드의 정통성과 혁신을 여실히 보여준다. 컬렉션의 첫 포문을 연 제품은 55년산 위스키인 ‘더 글렌리벳 55년’. 전 세계 100병 한정 출시한 더 글렌리벳 55년은 국내에는 단 2병만 소개됐다. 이번 에디션은 올로 로소, 페드로 히메네스, 팔로 코르타도 셰리 캐스크 숙성을 통해 깊은 풍미를 완성한 것이 특징. 건축가 마이클 한스마이어Michael Hansmeyer와 협업해 제작한 조형 패키지를 들여다보면 예술적인 면모 역시 갖췄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스모나이트와 로즈 골드 장식으로 완성한 반구형 케이스는 증류소가 위치한 스페이사이드 리벳강의 곡선을 기하학적 문양으로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 순차적으로 공개될더 글렌리벳 이터널 컬렉션 프로젝트는 향후 더 글렌리벳이 200년의 전통 위에 구축한 창의성과 조형미를 더욱 직관적으로 보여줄 예정.



화폭에 담긴 로열 헤리티지, 로얄 살루트


페르노리카의 위스키 브랜드 로얄살루트는 ‘시간의 깊이, 장인의 손길, 왕실의 유산’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한 병의 위스키에 담아내기 위해 예술과의 협업을 꾸준히 지속해왔다. 이번에는 프라이빗 멤버십 기반의 주류 큐레이션 플랫폼 르서클에서 〈Art LeCercle Vol.5〉 전시를 개최하고, 단 85병만 생산한 ‘로얄살루트 55’년과 예술의 접점을 제시했다. 협업 작가는 한국 현대미술가 김지희. 김 작가는 로얄살루트 55년에 담긴 시간과 장인 정신, 왕실 유산의 상징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전시의 대표작이자 자연의 순환, 사계절의 흐름에서 착안한 회화 시리즈 ‘Golden Throne of Eternity’는 로얄살루트 55년을 위한 맞춤 가구형 아트워크로 변신했다. 위스키를 담을 수 있도록 제작한 아프리카산 웬지 원목에 작가 특유의 시선으로 구현한 회화 6점을 구현한 것. 작품과 더불어 정교하게 디자인한 보틀에도 주목해보자. 영국 케언곰 국립공원의 식물을 모티프로 한 보태니컬 패턴을 적용했고, 영국 크리스털 하우스 다팅턴Dartington에서 수작업으로 제작한 플라곤에 위스키를 담아 눈길을 끈다.



목공과 유리로 완성한 위스키의 상징, 글렌그란트


글렌그란트가 ‘스플렌더Splendour 컬렉션’의 첫 번째 에디션을 출시했다. 스플렌더 컬렉션은 증류소가 보유한 가장 희귀한 원액을 예술적 오브제와 결합해 선보이는 리미티드 라인으로, 전 세계에 단 151병만 선보인 것이기에 더욱 가치 있다. 에디션을 구성하는 위스키는 1958년 증류되어 단 하나의 셰리 오크 캐스크에서 65년간 숙성한 것으로, 55.5도의 도수로 병입해 마호가니 컬러와 함께 블랙베리, 샌들우드, 오렌지, 오크 향이 복합적으로 펼쳐지는 것이 특징. 디캔터와 보틀은 목공예가 존 갈빈과 유리공예 스튜디오 글라스 스톰이 각각 제작했다. 뫼비우스의 띠 형태의 우드 디캔터는 자연의 순환과 위스키의 여정을 시각화하며, 받침대는 물의 흐름을 형상화한 것. 유리 보틀에는 히말라야 푸른 양귀비가 섬세하게 새겨져 있으며, 디캔터 제작에 사용된 목재는 글렌그란트 증류소의 빅토리안 가든에서 자라는 수종에서 채택한 것이라 뜻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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