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6월호

산업디자이너 최중호, 변주의 기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시대라지만, 최중호 디자이너는 변주와 융합을 통해 이전에 없던 디테일과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새로운 디자인 지평선을 열어왔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우경

최중호  2008년 최중호 스튜디오를 설립한 뒤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산업 디자인을 근간으로 제품, 공간, 가구 디자인은 물론 디자인 컨설팅,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등 점차 활동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삼성전자, 3M, 아메리칸 스탠다드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으며, 미국 IDEA, 독일 iF 등 여러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바 있다. 가장 효율적이고도 본질적인 결과물을 디자인하는 것이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디자인 화두이자 철학이다.




최중호는 산업디자인을 근간으로 프로덕트와 공간 디자인을 넘나드는 전방위적 디자이너다. 국내 리빙 디자인 신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태동하던 10여 년 전, 그는 취업 대신 무작정 공장들을 찾아다니며 플로어 스탠드를 제작했고 청사초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의 조명은 국내외 디자인 웹 매거진에 소개될 만큼 화제를 모았다. “당시에는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디자이너가 되는 유일한 길처럼 여겨졌어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고 동경하던 해외 디자이너들이 그러하듯 제 이름을 걸고 작업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작가주의 디자인을 지향한 건 아닙니다. 산업디자인의 맥락에서 양산에 용이한 제품을 깊이 고민했거든요.”

이후 자신의 이름을 건 최중호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다채로운 브랜드와 협업하며 전자제품, 가구, 패키지 등을 디자인해 작업의 너비와 폭을 키워왔다. 워낙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했기에 스튜디오만의 명확한 조형 언어가 없다는 고민을 할 때도 있었으나 2018년 SK 디앤디 기획의 공유 주거 프로젝트 ‘테이블t’able’이 변곡점이 되었다. 그는 공유 주거의 커뮤니티 라운지를 작업하며 거리를 떠올렸는데, 모두가 향유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두 공간의 공통점과 그 안에서 피어난 스트리트 컬처 감수성을 가구와 공간 디자인에 녹여내고자 했다. 또한 같은 기간 라이마스, 카레클린트 같은 국내 2세대 리빙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활발히 진행하면서 이전에 없던 협업 문화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했다.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만남이 단발적인 성과를 내며 바로 호감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노력이 쌓이면 유의미한 결과가 뒤따를 거라 봐요. 브랜드, 디자이너가 각각 지닌 팬덤의 특징, 문화가 합쳐지면서 더 좋은 디자인이 탄생할 거라 믿거든요. 어려서부터 힙합, 농구 등 흑인 문화를 좋아해왔는데 이들의 커뮤니티, 레이블, 피처링 문화 등에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그만큼 그의 디자인 세계에선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일관되게 흐른다. 리빙 디자인 신에서 기성의 문법처럼 여겨온 반듯한 제품, 공간 사진을 패션 룩 북처럼 자연스러운 무드 컷으로 촬영하거나, 브랜딩 전반에 음악, 패션 분야의 프로세스를 적용하는 식이다. 또한 디자인 작업에도 특정한 스타일에 매몰되는 대신 다양한 문화와 장르를 유연하게 엮어내고자 한다. “어느 클라이언트, 브랜드를 만나든 그들이 원하는 기능과 판타지를 구현하는 데 흥미를 느껴요. 클라이언트와의 밀도 높은 대화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죠.” 그는 단순히 예쁜 장식을 더하기보다 각 공간과 제품이 지닌 기능과 구조적 본질을 파악하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정서적 기대치를 물성화하는 일에 몰두한다.

이렇게 지난 10여 년간 경계 없는 디자인 활동을 펼쳐온 최중호 디자이너는 올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스테인리스스틸을 중심으로 날것의 감성을 강조해온 국내 리빙 브랜드 레어로우의 총괄 디렉터를 맡게 된 것. 단순한 제품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의 시각언어, 콘텐츠 전략, 협업 생태계까지 통합적으로 기획하고 조율하는 새로운 역할이다.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 10팀이 레어로우의 신제품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 ‘10 COLORS’ 역시 그 일환이다. 전반적인 디렉팅을 맡은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 리빙 브랜드가 더욱 견고한 정체성과 팬덤을 갖춘 문화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길 기대한다. “퍼렐 윌리엄스나 니고처럼 자체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동시에 패션, 리빙 등의 브랜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는 거죠. 지금은 디자이너로서 가지고 있는 구조적 심미안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동시대 트렌드를 명확히 읽어내 비주얼, 콘텐츠, 제품으로 풀어내는 전방위적 감각을 탑재한 전문가가 필요한 때라 느껴요. 새로운 시대의 부름이자 도전이죠.”



INSPIRATION IN LIFE

경계를 깨부수며 독자적인 커리어를 이어온 최중호 디자이너의 동력들.



최근 최중호 작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은 친한 동료 디자이너들이다. 해당 사진을 촬영한 포토그래퍼이자 그래픽디자이너인 이상필은 단순히 디자인을 해내는 것을 넘어 비주얼 전반의 디렉터로 탁월한 재능을 지녀 최중호 스튜디오와 꾸준히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버질 아블로와 같은 맥락에서 경계를 두지 않고 활동하는 퍼렐 윌리엄스 역시 최중호 디자이너에게 뮤즈로 자리한다. 브랜드의 높낮이, 범위를 생각하기보다 그 안에 자신만의 긍정적인 바이브, 디자인을 담아낼 방법을 고민하는 태도가 멋지게 다가온다고.



독일 산업디자이너 콘스탄틴 그리치치 Konstantin Grcic를 좋아한다. 패셔너블하면서도 활용도가 높은 플로스의 ‘메이데이 램프 Mayday Lamp’는 이미 여러 대 소장했을 정도다.



하이엔드 패션부터 리빙, 스트리트 컬처까지 폭넓은 영역을 아우르며 활동해온 버질 아블로를 보며 줄곧 영감을 얻곤 했다. 기존에 존재하던 것의 3%만 바꿔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버질 아블로의 3% 접근법을 자주 상기한다.



본질적 기능만이 강조된 거리의 사물, 구조 등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학창 시절부터 흑인 음악, 패션을 즐겨온 최중호 작가.



1980~1990년대 자유롭고 개성이 강한 디자인, 문화에서 힘을 느낀다. 무엇이든 손수 얹고 눌러야 작동되는 아날로그 형태가 좋아 모아둔 레트로 아이템들.



유니보디 형태의 요즘 스마트폰보다 꺾이고 열리며 자유롭게 디자인되었던 과거 휴대폰에서 새로움을 느낀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비된 5성급 호텔보다 캐릭터가 느껴지는 3, 4성급의 부티크 호텔을 좋아한다. 그중 에이스 호텔은 전 세계 지점을 둘러보고 싶을 만큼 애정하는 곳이다.



CONTRIBUTING EDITOR  유승현

목록으로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