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다회 라틴어 ‘futura(미래)’에서 착안해 이름 지은 예술 플랫폼 ‘푸투라 서울’을 이끌고 있다. 과거 사대부들의 생활 공간이었던 북촌의 유구한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적, 예술적 경험을 제시하는 전시 공간으로서 거듭날 수 있도록 푸투라 서울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안소니 맥콜 지난 50여 년 동안 시네마, 조각, 설치, 드로잉,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통해 ‘확장 시네마’를 중심으로 한 혁신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빛을 활용해 공간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설치 작품 시리즈 ‘솔리드 라이트Solid Light’로 잘 알려져 있다. 뉴욕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파리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베네치아 비엔날레Venice Biennale 등 세계 유수의 기관과 국제 미술 행사에서 꾸준히 초청받아왔다.
안소니 맥콜은 영화의 핵심 구성 요소인 빛과 시간을 주요 재료로 삼고, 관객 참여로 완성되는 구조의 작품을 선보여왔다. 이를 기반으로 지난 50여 년 동안 시네마, 설치, 조각, 드로잉,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확장 시네마Expanded Cinema’라는 혁신적 예술 영역을 구축했는데, 이번 전시는 거장이 이룩해온 이 예술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자리인 셈. 이를 증명하듯 전시장 내에는 36개의 화염을 점화, 소멸시키는 야외 퍼포먼스 영상 ‘불의 풍경Landscape for Fire’(1972), 5개의 스피커로 백색소음을 공간에 흐르게 한 설치 작품 ‘트래블링 웨이브Traveling Wave’(1972/2013), 이미지와 신문의 순환을 탐구한 ‘서큘레이션 피겨스Circulation Figures’(1972/2011), 몰입형 아트의 선구적 작품 ‘당신과 나 사이Between You and I’(2006) 등의 작품이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이자, 빛과 소리를 수평적으로 배치하는 대표작 ‘솔리드 라이트’ 시리즈를 수직적으로 변형한 작품이자, 실물 크기로는 최초로 구현한 ‘스카이라이트Skylight’(2020)를 전시하는 만큼 그야말로 초기 작업부터 최신작까지 그를 대변하는 작품들이 총출동한 것. 구다회 대표가 이끄는 예술 플랫폼 푸투라 서울은 여타 전시장처럼 가로로 긴 수평 구조의 화이트 큐브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고 무려 10.8m의 천장고를 자랑하는 수직 형태의 구조를 갖춰 관객으로 하여금 안소니 맥콜이 만들어낸 빛과 시간의 흐름을 보다 입체적으로 감각하게 한다. 특히 독특한 공간 구조 덕택에 ‘스카이라이트’ 작품은 데이비드 그럽스가 작곡한 사운드트랙과 함께 공간에 극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며, 관객에게 ‘시간 안에 머무는 경험’을 선물한다.
이번 한국에서의 개인전이 아시아 첫 전시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마치 일대기를 훑어보듯 초기 작품부터 최신작까지 고루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안소니 맥콜(이하 맥콜) 처음 푸투라 서울의 전시 공간을 마주했을 때는 사뭇 놀랐습니다. 천장 높이가 무려 10.8m에 이르는 공간을 갖춘 거의 유일한 전시장이 아닐까 했죠. 저는 이 특별한 공간에서 수직적으로 구성한 ‘솔리드 라이트’ 작업들을 전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새로운 영감의 장이 된 셈이에요.
구다회 (이하 구) 안소니 맥콜의 초기 필름에서부터 최근작까지를 아우르는 동시에 감상자가 물리적으로 ‘작품 안으로 들어간다’는 경험을 안겨주는 것이 전시의 핵심 키워드였어요. 특히 ‘스카이라이트’가 자리한 ‘100개의 시’ 전시실에 입장 시 10.8m 높이의 상부 진입구에서 작품을 바라볼 수 있을 텐데요. 푸투라 서울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맥콜의 작업이 ‘빛으로 그리는 조각’이라는 점에서 ‘위로부터의 시선’이 주는 전환적 감각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간 ‘솔리드 라이트’ 시리즈로 대표되는 안소니 맥콜의 작업은 수평 구조를 취한 형식이 많았습니다만, 푸투라 서울에서는 수직적 형태로 작품을 전시했다는 것이 관전 포인트로 보입니다.
맥콜 작품을 수평으로 놓을지, 혹은 수직으로 놓을지 구조를 짜는 것은 관람자에게 완전히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수평 작업은 관람객이 빛의 궤적 안에 들어가 포근하게 감싸 안기는 느낌을 주는 반면, 머리 위로 우뚝 솟아 있는 수직 구조의 작업은 원추형 막 표면의 다양한 틈새가 마치 출입구를 통과하듯 관람객이 빛 조형 내로 들어가도록 유도합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외부 전시 공간과 완전히 분리된 거대한 빛의 탑 안에 들어온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구 안소니 맥콜의 작업은 초기부터 수평적인 구조 속에서 시간과 빛을 다뤄왔습니다. 하지만 푸투라 서울에서의 전시는 수직적인 구조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분명 차별성이 있지요. 이는 공간의 물리적 조건이 제안한 변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객의 시선과 움직임을 새롭게 유도하기 위한 기획적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버티컬 구조는 관객의 몸 전체를 작품 속에 위치시키며, 조각과 영화, 퍼포먼스와 드로잉 사이의 경계를 다시 묻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거대한 거울 한 쌍과 찢어진 신문지로 구성된 퍼포먼스 기반 설치 작업 ‘서큘레이션 피겨스Circulation Figures’(1972/2011).
말씀하셨듯, 전시의 백미는 천장고 10m가 넘는 ‘100개의 시’ 전시실에 자리한 작품 스카이라이트를 마주하는 순간입니다. 원래는 모형으로만 존재하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실제 크기로 구현됐다고요.
구 이 작품은 오랫동안 모형으로만 존재했는데 푸투라 서울의 ‘100개의 시’ 공간을 만나면서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10.8m의 천장고가 있는 구조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빛의 기둥이 온전히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해줍니다. 관람객은 그 빛 아래에 서서,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통과하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이 작업이 단순히 스케일의 실현에 그치지 않고, 공간과 작품이 서로를 완성시킨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개인전 역시 염두에 두었을 듯합니다.
맥콜 두 전시의 구성 형태는 판이합니다. 테이트 모던 전시에는 수평 구조의 ‘솔리드 라이트’가 자리했다면, 푸투라 서울에서는 수직 구조의 작업이 전시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테이트 모던은 연대기순 배열을 따르지만, 푸투라 서울은 서로 대조되는 작품들을 묶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전혀 다른 리듬감이 느껴진다는 점 역시도 차이가 있죠. 특히 전시장에 자리한 초기작 3점은 푸투라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안소니 맥콜의 작업 세계관의 근간은 영화를 만드는 일련의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 즉 시네마로부터 비롯됩니다.
맥콜 일반적으로 시네마는 시각적 움직임과 시간적 구성을 다루는 예술로 볼 수 있습니다. 조형예술과 조각이 연결되는 지점이며, 이 흐름은 지금도 제 예술적 사고의 주축으로 자리합니다.
구 영화는 단지 장르나 서사의 형식이 아니라, 시간과 감각을 조형하는 예술 언어입니다. 감각을 새롭게 전환시키고, 질문을 통해 사고의 틀을 흔드는 것이죠.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관객이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대표적인 예로 안소니 맥콜의 초기작 ‘Line Describing a Cone’을 들 수 있겠네요. 한 줄기의 빛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의 조각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인데요. 이는 ‘투사projection’라는 영화적 개념을 공간적 조각으로 전환시킨 매우 급진적인 시도였어요. 전시를 기획하면서, 푸투라 서울이 맥콜의 세계관을 더욱 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랐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Between You and I’(2006)는 맥콜의 예술적 탐구가 집약된 대표작이다.
10.8m 높이의 천장에서 바닥으로 나란히 투사되는 2개의 ‘솔리드 라이트Solid Light’ 형상은
서로의 흐름에 따라 겹치고 스며들며 변화한다.
푸투라 서울은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과 함께 마련한 개관전에 이어 안소니 맥콜과의 전시를 통해 ‘경험하는 예술의 장’의 모습을 갖춘 아트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안소니 맥콜 역시 인터랙티브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부터, 관객과 호흡하는 예술의 갈래를 펼쳐온 아티스트죠.
구 레픽 아나돌은 AI와 데이터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그의 작업은 북촌이라는 전통적인 장소성과 처음에는 대비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바로 그 간극에서 진짜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봤어요. 레픽 아나돌의 작업은 단순한 기술적 시도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감각, 공공성, 책임, 인간의 위치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끌어내게 해줍니다. 이어서 소개하는 안소니 맥콜은 1970년대부터 빛을 조각처럼 다루며 영화의 물리적 경계를 허문 작가로 기술과 삶, 예술 사이의 깊은 사유를 보여주지요. 그의 작품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시각 효과보다는 지각과 존재에 관한 조용한 질문에 집중되어 있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예술가가 어떻게 삶과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푸투라 서울은 예술이 삶을 반영하고, 흐름을 추적하며,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는 일임을 믿고 이를 지향하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서 미래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죠.
사실 인터랙티브 아트라는 개념이 정립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해당 장르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는 만큼 관객의 태도나 가치관 변화가 더욱 체감될 것 같습니다.
맥콜 기존에 분리되어 있던 매체와 장르들이 점점 더 뒤섞이고, 그 가운데 시간성을 기반으로 한 예술과 영화적 접근이 점차 부상하고 있습니다. 향후 10년간 이 변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묻는 것은 아직 열려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역시 인터랙티브 아트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랙티브 아트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구 인터랙티브 아트는 관객에게 작품을 ‘이해하는 것’보다 ‘감각하는 것’을 요청합니다. 특히 한국의 젊은 세대는 빠르게 시각 정보를 소비하면서도, 동시에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에 대한 갈증을 느끼죠. 저는 이 간극을 채우는 예술의 언어가 인터랙티브 아트라고 봅니다. 감정과 기억을 ‘생산’하게 하며, 일방향적인 수용자에서 공동 제작자로 전환시키는 힘, 그게 바로 인터랙티브 아트의 참매력이죠.
푸투라 서울은 현재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구 예술가와 관객을 ‘감각을 통해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전시와 더불어 음악, 무용, 공연 등 다양한 예술 장르와의 교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려는 이유죠. 빛과 소리, 움직임이 한 공간에서 뒤섞이며 새로운 감각의 층위를 만들어내는 맥콜의 예술 실험이 푸투라 서울이 그토록 바라는 미래의 한 장면일 테고요.
COOPERATION 푸투라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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