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의 고결함을 닮은 난초
난초는 오랜 시간 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귀한 식물로 여겨져왔다. 동양에서는 사군자 중 하나로 선비의 고결함과 절제된 정신을 상징했고, 서양에서는 귀족들이 희귀한 난초를 수집하고 온실에서 정성껏 가꾸는 것이 하나의 문화이자 안목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난초는 꽃이 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번식도 쉽지 않다. 쉽게 피고 지지 않기에 그만큼 기다림이 필요하고, 그 과정을 함께하는 사람의 태도와 감각이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그 시간을 기꺼이 들이고, 그 아름다움을 오래 지켜볼 수 있는 여유. 그것이 난초가 품은 럭셔리이지 않을까. 난초의 전통적인 의미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변용하며 다채로운 형태로 소개해온 ‘초난’의 조부경 대표에게 좋은 난초를 들이는 법에 대해 물었다.
조부경 처음 풍란을 보고 난초의 매력에 빠진 후 브랜드 ‘초난’을 창립했다. 공간적 제약이나 관리의 어려움 등으로 난초에 거리감을 두는 이들을 위해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 난초를 선보이고 있다.
난초를 크게 동양란, 서양란으로 구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난초를 구분하는 보다 정확한 기준이 있나요?
난초를 ‘동양란’, ‘서양란’으로 구분하는 건 문화적, 유통적 구분에 가까워요. 식물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자생 환경에 따라 착생란(나무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형태)과 지생란(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형태)으로 나뉘는 편입니다. 전체 난초의 약 70%가 착생 형태고요. 생장 방식에 따라서는 줄기가 위로 자라는 단경성, 옆으로 퍼져나가는 복경성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대표님께서 뽑는 난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요즘 많은 분이 식물을 공간에 들이고 있어요. 자연과 연결되고, 편안함을 찾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해요. 난초는 유려하게 뻗은 잎과 입체적인 구조 덕분에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지요. 공간에 여백과 정돈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요. 또 생명력이 강하고 자라는 속도가 느려 형태가 오래 유지되죠. 덕분에 잦은 손질 없이도 오랜 시간 깔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꽃이 피면 그 아름다움을 비교적 오래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변화가 빠르지 않아요. 공간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차분함과 안정감을 더해주죠. 공간의 멋과 사람의 감정까지 편하게 정돈해주는 힘. 그게 난초의 진짜 가치라고 생각해요.
좋은 난초를 고르는 팁이 있다면?
먼저 뿌리와 잎의 상태를 확인해보세요. 난초는 뿌리와 잎을 통해 공기와 수분을 흡수하며 살아가기에 이 두 부분은 생육의 핵심이에요. 뿌리는 수분 상태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데, 마르면 흰색, 물을 머금으면 연녹색을 띠며 질감이 단단합니다. 검거나 무르고 끈적한 뿌리는 과습의 신호예요. 잎은 끝이 마르지 않고 윤기 있으며 두툼하고 탄력이 있어야 건강한 상태입니다.
난초는 꽃피우기 어려운 식물이라 관리 역시 까다로울 것이라는 편견도 있을 텐데요.
난초는 꽃이 피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환경 조건이 맞지 않으면 꽃을 잘 안 피우기도 해요. 하지만 난초는 본래 환경 적응력이 매우 뛰어난 식물이에요. 다만,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들이 필요한데요. 충분한 햇빛, 적당한 일교차, 휴식기 조절 같은 것들이 적절히 갖춰져야 해요. 환경이 너무 일정하면 굳이 지금 꽃을 피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꽃이 피지 않는다고 건강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천천히 꽃을 피울 힘을 기르는 중일 수도 있죠. 예부터 난초에 꽃이 피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꽃이 피었을 때의 기쁨이 크고 기다린 시간이 값지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난초를 선호하는 편인가요?
작고 간결한 미니 난초, 이끼 볼, 분경, 오브제 형태의 목부작 난초가 인기를 끌고 있어요. 공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자연을 곁에 두는 듯한 분위기와 조형적 포인트를 더해주는 데 효과적이죠. 또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대부분 무독성인 난초는 안전한 반려식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난초 관리에 꼭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나요?
난초의 뿌리는 일반 식물보다 굵고, 벨라멘층이라는 스펀지 같은 조직이 있어서 물을 빠르게 흡수하고 저장할 수 있어요. 다만, 흙 대신 통기성이 좋은 바크나 수태 등에 심고 ‘충분히 말리는 시간’을 두어야 합니다. 항상 축축한 상태를 유지하면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해 썩을 수 있으니 심어둔 소재가 충분히 말랐는지 확인한 뒤 한 번에 넉넉히 물을 주세요. 빛은 밝은 간접광이 좋고, 통풍이 잘되는 창가 근처에 두는 게 좋아요. 실내가 건조할 경우에는 자갈을 깐 트레이에 물을 채우고 그 위에 화분을 올려두거나, 유리 돔을 활용해 습도 조절하는 걸 추천합니다.
처음으로 난초를 구입하는 이들에게 제안하고픈 품종이 있다면?
‘풍란’이라는 작지만 단단한 생명력을 지닌 식물을 보고 난초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한국, 일본, 중국 남부에 자생하는 착생 난초로 잎, 뿌리, 꽃까지 모두 감상의 대상이 될 만큼 미학적입니다. 화분뿐 아니라 목부작, 유리 테라리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출할 수 있고, 실내에서도 사계절 관리가 수월해 입문자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난초예요.
품 안의 작은 자연, 분재
흔히 화분에 식물을 심는 것을 ‘분식盆植’이라 부르며, 대부분 잎사귀 모양이나 빛깔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관엽식물을 활용한다. 반면 이와 다른 형태인 ‘분재盆栽’는 흙이 담긴 그릇에 식물을 옮겨 담되, 자연 풍경과 비슷하게 축소한 것을 의미한다. 분재에는 소나무, 이끼, 수형樹形이 아름다운 나무 등이 두루 사용되며 자연을 소재로 예술적인 부분을 극대화한 공예에 보다 가깝다. 나아가 분재는 자연을 손안에 품는 일련의 방식인 동시에 일상의 속도를 천천히 되돌아보게 하는 도구의 역할도 수행한다. 이러한 덕택에 분재가 놓이는 공간의 호흡은 보다 고르고 천천해진다. 분재가 일상에 주는 기쁨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숍 ‘에세테라’의 분재가 최윤석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분재의 매력을 가늠해보길 바란다.
최윤석 분재 문화를 탐구하고 만드는 ‘에세테라’를 운영하는 분재가. 에리카 방 디렉터와 함께 일상의 미학과 영감을 더하는 분재를 제작, 큐레이팅하고 있다.
질문을 드리기 전, 분재라는 단어에 사용된 한자를 살펴봤습니다. ‘화분에 나무를 심는다’는 뜻이더군요. 분재를 정의하는 기준이 있나요?
분재는 단순히 나무를 작게 기르는 기술이 아닙니다. 묘목을 식재하고 이끼, 돌 등의 다양한 소재로 경치를 담아내어 자연을 손안에 품는 방식이자 일상의 속도를 천천히 되돌아보게 하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자라나는 가지를 자르고, 방향을 틀고, 뿌리를 다듬으며 나무와 시간을 함께하며 살아갑니다. 자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축소한 분재의 특성상 오랜 기다림과 정성을 쏟아내야 하지만 조금씩 채워져가는 분재에 오롯이 집중하다 보면 마치 작은 세상을 완성한 듯 황홀함을 느끼게 되죠. 결국 분재는 ‘살아 있는 조형’이며, 시간이 빚은 풍경을 담은 가장 작은 정원이라 생각합니다.
나무의 수형이나 크기 등 분재의 종류를 구분하는 기준 역시 세분화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은 크기에 따라 소품, 중품, 대품 등 세 갈래로 나뉘고, 식물의 종류로는 침엽수와 활엽수로 분류하곤 합니다. 수형에 따라 여러 갈래로 분화되기도 하는데요. 대략적으로는 분재의 기본 수형으로서 줄기가 곧게 자란 나무 모양을 의미하는 직간直幹, 나무 수심의 위치가 화분 밑보다 아래로 늘어져 있는 듯한 나무 형태인 현애懸崖, 나무 수심의 위치가 화분 밑과 같거나 화분 밑에서 약간 위로 올라온 형태인 반현애半懸崖 등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기암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의지하고 사는 나무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들보다 저는 ‘나무가 주는 분위기’로 나누는 편이에요. 굽은 등처럼 노년의 지혜를 담은 나무도 있고, 곧게 뻗은 줄기로 강직함을 말하는 나무도 있죠. 나무를 보며 느끼는 인상과 이야기, 그것이 분재를 구분 짓는 또 다른 기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에서 분재는 어떠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분재는 공간을 채우기보다는 여백을 만들어줍니다. 여백이 만드는 공간의 틈새로 집중이 생기고, 고요함이 깃들죠. 거창한 인테리어 없이도 분재 하나만으로 공간의 호흡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기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분재는 ‘살아 있는 시간’을 들여놓는 일이에요. 생명이 있는 존재가 공간에 들어오면 그 안에 흐르는 시간과 활기는 분명 달라집니다.
좋은 분재를 고르는 팁이 있다면요?
기술적으로는 균형감, 근장根長의 노출, 가지의 배치 등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나무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가’입니다. 인위적으로 형태를 잡아 굴곡진 나무보다는 작은 몸에 스스로 계절을 보낸 시간과 생명의 흐름이 담긴 분재가 좀 더 자연스럽고 멋스러운, 좋은 분재라고 생각해요. 나무를 들이는 이의 마음도 좋은 분재를 만드는 조건이 됩니다. 분재에 깃든 생명을 존중하고 애정하는 마음이, 그 분재를 가장 멋지게 만들어줄 테니까요.
요즘 분재의 트렌드는?
최근에는 크고 화려한 수형보다는 실내 공간에 어울리는 작고 섬세한 형태, 그리고 일상 가까이 둘 수 있는 분재가 인기를 끌고 있어요. 특히 손바닥 위에 올릴 수 있는 ‘콩 분재’처럼 미니멀하면서도 독립적인 존재감을 지닌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죠. 분재가 하나의 장식이 아니라, 생활 속 풍경이 되어가는 흐름이라고 읽히는 사례입니다.
COOPERATION 초난(chonan.kr), 에세테라(547-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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