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5월호

EXHIBITION NEWS - 시누아즈리를 통한 페미니즘의 재정의

유럽 도자기의 역사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재해석한 전시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로버트 리먼 윙에서 열린다. 한국계 큐레이터 아이리스 문이 기획하고, 한국 작가 이수경이 참여한 전시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판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서사를 창조한다.

EDITOR 박이현 WRITER 이미선

“매우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전시입니다. 역사적인 유물과 현대 도자기를 함께 보여주는 전시는 많았지만, 18세기 서양 도자기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해석한 전시는 처음입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는 공포와 매혹이 공존합니다. 제 작업도 그 지점에서 시작되죠.” _ 작가 이수경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2017)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 전경. Photo: Eileen Travell, courtesy of The Met



전시에 출품된 이불의 ‘Monster: Black’(2011). Photo: Eileen Travell, courtesy of The Met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전경.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한국계 큐레이터 아이리스 문이 기획하고, 한국 작가가 참여한 전시 <괴물 같은 아름다움: 시누아즈리의 페미니즘 개정판Monstrous Beauty: A Feminist Revision of Chinoiserie>이 진행 중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의 산물 200만 점 이상을 소장하며 ‘살아 있는 예술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곳. 1889년 크로즈비 브라운Crosby Brown 컬렉션 기증품의 일부였던 악기 8점을 시작으로 15세기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 12세기 상감 칠기 상자, 고려 시대 국보급 불화 5점 등의 한국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998년부터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건희한국미술기금의 지원으로 한국관을 열어 운영 중이다.

시누아즈리chinoiserie는 16세기 중국 도자기가 유럽으로 수입되면서 시작된 장식적 스타일을 말한다. 중국 도자기의 섬세함과 투명함은 유럽인을 매혹했고, 그 위에 그려진 코발트블루의 이국적인 풍경과 상징들은 동양에 대한 환상을 강화했다. 이러한 미적 요소들은 가구, 섬유, 미술품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며 19세기까지 유럽 문화에 깊이 자리 잡게 된다. 이번 전시는 도자기의 역사를 살펴보는 전시로, 도자기가 유럽에 전달된 전근대 유럽을 비판적 시각에서 조명한다. 그들이 생각하던 이국적인 공상 속 아시아를 구현하는 시누아즈리 스타일이 어떻게 창출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아이리스 문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18세기 거울 속 만주 복장을 입은 여성을 발견하고, 시누아즈리가 자신에게도 깊은 개인적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처럼 강렬하고 자립적인 거울 속 여성, 이를 통해 시누아즈리가 자기 반영뿐 아니라 타인의 투영된 이미지를 탐구할 수 있는 매개체임을 깨닫고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도자기, 칠기, 비단 같은 동양적 사치품의 역사적 입문이 유럽에서 어떻게 동양 여성상을 만드는 데 기여했으며, 아시아와 아시아계 미국 여성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했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작품 200여 점이 한자리에 모인다. 오래된 유럽 도자기는 물론 아시아와 아시아계 미국 여성 작가들의 설치 작품도 소개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로버트 리먼 윙 중앙 아트리움에 전시된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다. 유럽에서 도자기는 완벽한 미적 청정함의 틀에 고정되어 있다. 반면 이수경 작가는 일본 전통 수리 기법인 ‘긴쓰기kintsugi’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고정된 이야기의 틀을 부수고 자기 삶의 조각들로 예상치 못한 작품을 만든다. 이를 통해 불완전체를 조명하고, 상처를 숨기지 않으며, 금으로 장식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여성성과 정체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서사를 제안하는 전시의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작업이다. 전시 마지막 장에 있는 패티 창Patty Chang의 대형 마사지 테이블 조각도 인상적이다. 아시아 여성과 성적 폭력 사이의 연관성을 비판하며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작품은 전시 종료 후 태평양에 침몰시켜 자연 속에서 새로운 형태를 이루도록 설계됐다. 전시 부제 ‘페미니즘 개정판A Feminist Revision of Chinoiserie’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는 시누아즈리가 단순히 아름다운 장식 스타일이 아닌, 서구 사회가 동양을 바라보는 방식을 왜곡하고 고정관념을 강화했던 역사적 맥락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이를 통해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여성 권력과 자율성의 새로운 서사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전시 전경. Photo: Eileen Travell, courtesy of The Met



“이번 전시에서는 20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됩니다. 역사적 미술품을 아시아와 아시아계 미국 여성 작가의 작품과 어우러지게 짝을 이뤄 전시함으로써 작품 사이에 대화를 형성하고 도자기의 이야기를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전하고 싶었습니다.” _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유럽 조형물과 장식 예술부 부큐레이터 아이리스 문



한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2019년부터 ‘파사드 커미션’을 진행 중이다. 미술관의 대표 현대미술 전시 시리즈로, 2024년부터 제네시스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파트너십에 의해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조각과 회화,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유토피아의 환영과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대해 탐구해온 작가 이불이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의 첫 번째 작가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올해 6월 10일까지 관람객은 5번가 파사드(건물의 정면 외벽)의 상징적인 ‘니시niche’에서 이불의 대형 설치 작품 4점을 만날 수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갈망해온 ‘완전성’에 대해 되묻는 신작들이다.



Attributed to the workshop of John Vanderbank(Flemish, 1683~1717), ‘The Toilette of the Princess from a set of Tapestries “After the Indian Manner”’,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좌) Medici Porcelain Manufactory(Italian, Florence, ca. 1575~ca. 1587), Ewer(Brocca), ca. 1575~1580,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우) Chelsea Porcelain Manufactory(British, 1744~1784), ‘Mother and Child, based on the print, “Le merite de tout pais”’, ca. 1749~1750



기간  2025년 3월 24일~8월 17일

주소  1000 Fifth Avenue, 82nd Street, New York, NY, 10028, US

홈페이지  www.metmuseum.org

인스타그램  @met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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