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5월호

BRAND EXHIBITION - 론 뮤익이 던지는 조각적 질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개최한 론 뮤익의 회고전은 ‘극사실주의’와 ‘스케일의 충격’을 통해 실존에 대한 심연의 질문을 던진다. 섬세한 인체 묘사와 왜곡된 크기를 통해 인간 내면의 불안과 삶의 본질을 직면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들은 일상적 장면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의 깊이를 끌어올린다.

EDITOR 박이현 WRITER 남미영


까르띠에, ‘팬더’ 주얼리 워치  옐로 골드 버전은 블랙 래커 다이얼 주위에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23개를 세팅했다. 팬더 무늬는 블랙 래커로, 코는 오닉스로, 눈은 차보라이트로 표현했다. 화이트 골드 버전은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1103개를 세팅해 눈부신 광채를 자랑한다. 오닉스 팬더 무늬와 코, 에메랄드 눈을 더해 완성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1984년 당시 까르띠에 CEO였던 알랭 도미니크 페랭이 설립한 이래 현재까지 약 50개국 출신 350여 명의 작가들과 협업해왔다. 발족 당시의 신념 그대로 론 뮤익을 비롯해 사라 지, 차이궈창, 한국 작가 이불 등 혁신적인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들의 창작을 위한 지속적인 후원을 이어오는 중이다. 작업에 필요한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과 더불어 공동 작업을 통해 신작 커미션을 제공하며, 이들이 세상에 알려지도록 지원함으로써 세계로 뻗어나가게 하고 있다.



심연에 질문을 던지는 표상, 까르띠에 × 론 뮤익


옆으로 누워 잠이 든 중년 남자의 얼굴은 약간 눌려 있다. 일상의 피로가 느껴지는 이마의 옅은 주름과 하루 사이에 자란 듯한 짧은 수염들이 턱을 덮고 있고, 살짝 열린 입술 사이로 숨소리가 들릴 듯하다. 조각가 론 뮤익의 자화상 ‘마스크 II’는 극사실주의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혼돈을 일으키지 않는다. 두상의 사이즈가 무려 가로 118cm, 세로 77cm에 달하기 때문이다.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발길을 옮기는 순간 관람객들은 두상의 뒷부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스크 II’라는 작품명처럼 속이 빈 마스크의 형태로 제작된 것이다. 론 뮤익의 작품은 관람객이 이와 유사한 낯선 감각을 계속해서 경험하게 한다. 그는 조형물을 제작할 때 리얼리즘과 사이즈라는 두 가지 요소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충격을 창조한다. 이는 실제로 굉장히 유효한 형태로 작용한다. 사물의 크기와 외양은 감정적 반응을 즉각적으로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외의 형태로 나타날수록 그 진폭은 크고 빨라진다. 고요한 전시장 속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6m 크기의 여인과 마주친다거나, 천장까지 쌓아 올린 100여 개의 거대한 해골 더미를 마주하는 순간 느끼는 복잡한 전율은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힘든 것이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디테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공동 주최한 전시 <론 뮤익>(~7월 13일)은 현대미술의 상징적 조각가 중 한 사람인 론 뮤익의 아시아 최대 규모 회고전이다. 30여 년간 꾸준히 작업을 발표하며 미술계에 새로운 질문과 충격을 선사해온 그의 시기별 주요 작품과 스튜디오 사진 연작, 다큐멘터리 필름까지 총 24점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극 사실주의 조각가’, ‘스케일의 거장’이라 불리는 론 뮤익은 현대미술에서 조각 장르의 확장을 이끌어낸 인물로 꼽힌다. 속눈썹 한 가닥부터 혈관이 비치는 선연한 피부에 이르기까지 그의 조각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디테일을 통해 관객을 가까이 끌어당긴다. 인류의 실존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생生과 사死의 경계에서 삶을 고찰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강렬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는 익숙한 모습의 인체 조각 사이즈를 실제보다 축소하거나 과장되게 확대한다. 잠자리에 누워 생각에 잠긴 여인, 잠이 든 남자의 얼굴,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여인 같은 평범한 일상이 강렬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이들 작품은 작가가 1997년 사치 갤러리의 전을 통해 데뷔하며 선보인 ‘Dead Dad’와 맥을 같이한다. 실제보다 축소된 사이즈의 극사실적인 노년의 남자를 묘사한 작품으로 단숨에 현대미술계의 총아로 떠오른 그는 2001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출품한 ‘Boy’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으며 거장의 대열에 들어섰다. 스케일의 왜곡이라는 극적인 방법을 통해 표상 너머의 것을 사유하게 하고자 하는 론 뮤익의 의도는 너무나 강렬해서 외면할 수 없다. 작품 속 인물의 행동은 평범하다.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단지 왜곡된 사이즈 때문만은 아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담긴 응시, 터질 듯한 불만으로 가득한 눈동자, 감긴 눈꺼풀 너머 느껴지는 피로감이 가득한 얼굴과 마주한 관객은 자신의 익숙한 고민과 불안을 떠올리며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실존에 던지는 질문


세상에 알려진 론 뮤익의 작업 대부분은 인체 조각 시리즈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작품은 따로 있다. 그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함께하며 제작했던 2017년작 ‘매스Mass’다. 길이 약 1.5~2m에 달하는 100여 개의 거대 해골 더미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인체 조각이 전해온 삶의 사유를 압도하는 성찰을 제시한다. ‘매스’는 론 뮤익의 커리어에 전환점을 만들어낸 새로운 작업 방식으로, 이전의 작업을 통해 전해온 주제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해골이라는 도상은 누구나 인지할 수 있고 시각적으로 익숙하지만, 생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불편함을 불러일으킨다. 친숙하지만 이질적이며 회피하고 싶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이 상징적인 거대한 더미는 실존의 의미에 대한 커다란 질문을 던진다. 우리 자신이면서 낯선 것. 삶이 스러진 뒤에 남은 표상은 그 어떤 표정도 없이 침묵하고 있지만 존재만으로 자아와 생명, 노화와 죽음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기간  2025년 4월 11일~7월 13 일  

주소  종로구 삼청로 3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홈페이지  www.mmca.go.k

인스타그램  @mmca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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