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5월호

BRAND EXHIBITION - 작가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아이콘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레이디 디올’ 백은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허물며 브랜드의 유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우국원을 비롯한 11인의 작가가 참여한 제9회 ‘디올 레이디 아트 프로젝트’는 디올의 상징을 창작의 캔버스로 삼은 대담한 실험이다. 이는 전통의 보존이 아닌, 시대와 나란히 걷는 혁신의 방식으로 디올이 만들어가는 문화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EDITOR 박이현 WRITER 남미영


디올, ‘레이디 디올’ 백  무슈 디올이 늘 지니고 다니던 행운의 부적을 상징하는 메탈 참 장식이 특징인 ‘레이디 디올’ 백. 직각으로 떨어지는 정사각형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방 전체에 브랜드의 시그너처 까나쥬 스티칭을 더해 퀼팅 질감을 구현했으며, 탈착 가능한 숄더 스트랩을 함께 제공해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1995년 전설적인 배경 아래 탄생한 이후 ‘레이디 디올’ 백은 줄곧 하우스의 상징적 존재로 꼽혀왔다. 파리를 방문한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위해 당시 영부인이었던 베르나데트 시라크 여사가 디올에 제작을 요청해 선물했다는 탄생 신화를 품고 있는 레이디 디올. 오늘날까지도 메종의 시그너처 아이콘으로 꼽히는 이 아이코닉한 백은 크리스챤 디올의 ‘바’ 재킷과 마찬가지로 거대 패션 하우스를 지탱하는 영원성을 상징하는 불변의 아이템이다.



예술을 입은 패션 아이콘, 디올 레이디 아트 프로젝트

구름을 끼고 있는 병풍처럼 펼쳐진 산 아래 오솔길을 밀짚모자를 눌러쓴 작은 여인과 아이가 지팡이를 쥐고 걷고 있다.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 위 붉은 기와집 위로 비즈로 만든 흐드러진 벚꽃과 꽃나무가 여행자들을 환영하는 듯하다. 멀리서 보면 채색 산수화 같은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자수와 비즈로 이루어진 이 동화 같은 풍경은 작가 우국원이 ‘디올 레이디 아트 프로젝트’의 아홉 번째 에디션에 참여하며 선보인 작업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디엄 사이즈의 백 2점과 스몰 사이즈 2점, 마이크로 버전 1점까지 총 5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검은 가죽이 밤하늘이 되고, 그 위로 빼곡하게 박힌 크리스털과 비즈가 별이 되는 작품은 그 아래 잔디 언덕에 누워 별을 바라보는 여자와 아이 그리고 강아지의 모습이 한 편의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구상적 요소에 팝아트적인 미학을 더하는 우국원의 작업은 늘 그렇듯 허구와 현실 사이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디올 레이디 아트 프로젝트’는 올해로 9회를 맞았다. ‘레이디 디올’ 백이라는 하우스의 상징적 아이콘을 예술가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이 흥미로운 작업은 2016년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주도하에 출범한 프로젝트다. 매년 전 세계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손을 거쳐 재해석되는 레이디 디올의 새로운 모습은 오래된 아이콘에 신선함을 불어넣고, 전통과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16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마크 퀸을 포함한 7명의 작가가 참여한 첫 번째 에디션을 발표한 뒤로 ‘디올 레이디 아트 프로젝트’는 줄곧 패션과 예술의 완벽한 협업을 상징하며 신선한 반향을 일으켜왔다. 프로젝트에 참여해온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작업 과정과 그 결과물은 레이디 디올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확장했다. 2025년 아홉 번째 에디션 작업에 참여한 작가는 한국의 우국원 외에 대니얼 매키니Danielle Mckinney, 주이 아인 냔 죽Duy Ahn Nhan Duc, 리앙유안웨이Liang Yuanwei, 본 스팬Vaughn Spann, 사라 플로레스Sara Flores, 애나 웨이언트Anna Weyant, 제프리 깁슨Jeffrey Gibson, 페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 하얄 포잔티Hayal Pozanti, 황유싱Huang Yuxing까지 모두 11명. ‘디올 레이디 아트 프로젝트’에 처음으로 합류한 한국인 아티스트는 2023년 일곱 번째 에디션 제작에 참여한 김민정 작가다. 우국원은 지난해 8회 에디션에 참여한 하종현, 이건용에 이어 레이디 디올을 재해석한 네 번째 한국 아티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그간 유화 작업과 드로잉을 위주로 한 작업을 선보여온 우국원은 “물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즐긴다. 작업을 하면서 물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시도해보고 있다”라고 직접 밝혔을 정도로 회화적 실험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백 에디션만이 아니라 순수 회화 작품도 함께 공개한 그는 물감을 두껍게 쌓아가거나 긁어내면서 마티에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을 통해 고유의 스타일을 드러냈다. 패션 또한 사람들에게 가까운 예술의 한 장르로 느껴진다는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자신이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회화적 실험과 새로운 스타일을 레이디 디올에 반영했다. 물감으로 채색할 수 없는 것들을 자수와 비즈로 표현했고, 이전의 그 무엇과도 다른 질감으로 레이디 디올을 재탄생시켰다. 그야말로 레이디 디올의 ‘뉴 룩’인 셈이다.




전통 위에 피어나다


아이러니하게도 럭셔리 브랜드가 영속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변화가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바 재킷과 달리 아티스트의 캔버스가 될 조건을 갖춘 레이디 디올은 ‘디올 레이디 아트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됨으로써 전통의 상징이자 동시에 혁신의 중심이 되었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파리와 유럽에 한정하지 않고 전 세계 대륙에 걸쳐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했고, 이는 브랜드의 중심을 지켜가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영리한 행보로 비춰졌다. 디올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예술가에 대한 조건 없는 지지와 신뢰를 제공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창작 과정에 개입하지 않고 전권을 제공해 하우스의 오랜 상징을 재해석하는 범위를 무한대로 넓힐 수 있게 한다. 덕분에 때로는 실용성을 배제하고 조형물에 가까운 모습으로 해석된 작품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하우스 문화에서 나올 수 없는 신선한 결과물이 탄생하면서 새로운 문화 아카이브를 공고히 쌓아가고 있다. 아티스트들의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거대 브랜드의 아이콘을 마음껏 분석하고 해체한 뒤 자신의 미감과 철학을 투영한 재해석을 거치면서 낯선 창작의 모험에 뛰어들 기회이기 때문이다. 예술에 비해 대중과의 거리가 가까운 패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작업을 알리는 과정 역시 현대의 아티스트들에게 인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그래서 디올의 협업 방식은 다른 브랜드와 예술이 결합하는 방식과 닮은 듯 묘하게 다르다. 말없는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하지도, 브랜드를 전면에 앞세우지도 않으면서 대등한 방식으로 창작을 지원하고 결과의 열매를 함께 공유하는 것. 전통에 생명을 불어넣고, 예술에 힘을 실어온 ‘디올 레이디 아트 프로젝트’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공개  2025년 1월 17일

주소  강남구 압구정로 464 하우스 오브 디올

홈페이지  www.dior.com

인스타그램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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