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에베, ‘멜론’ 백 2024년 가을·겨울 여성 컬렉션에서 선보인 클러치백으로, 작은 비즈와 레진을 빼곡하게 채워 완성했다. 로에베 특유의 장인 정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제품. 열매의 주름 하나하나와 덩굴, 이파리, 흙이 묻은 부분, 색깔까지 정교하게 살려 마치 금방이라도 나무에서 떨어진 듯 생동감이 넘친다.
공예에 대한 로에베의 애정은 브랜드의 정체성과 닿아 있다. 1846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작은 가죽 공방에서 기원한 로에베는 날것의 가죽을 무두질해 아름다운 공예품으로 만들던 과거의 기억을 여전히 브랜드의 DNA에 간직하고 있다. 1905년부터 스페인 왕실 납품 브랜드로 공인받은 뒤 왕족을 위한 고급 가죽 제품을 제작하며 ‘좋은 취향’에 대한 이해와 역사를 갖춰온 로에베는 손으로 완성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오랜 노하우와 철학을 쌓아왔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 로에베 재단 공예상
살짝 구겨진 채 굳어버린 종이처럼 혹은 섬세하게 일그러진 하얀 바위처럼 보이기도 하는 한지로 제작한 의자, 익숙한 전통 바구니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 구리로 만들어진 바구니, 연꽃 형상의 은 상감을 입힌 철로 만든 플래터, 클레이로 변형된 바구니 세공···. 다가올 2025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에 오른 최종 후보작들이다. 2016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의 제안에서 출발해 로에베 재단의 후원을 통해 시작된 이 공예상은 2017년 첫 시상식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다양한 분야의 공예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해왔다. 회화와 조각 등 순수 예술을 후원해온 다른 패션 브랜드와 달리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통해 실용을 추구해온 로에베는 ‘공예’라는 분야에 집중하며 유용한 아름다움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힘써왔다.
공예에 대한 이해와 높은 애정을 바탕으로 시작된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매년 전 세계 작가들이 모여들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올해 역시 133개 국가 및 지역에서 접수된 4600여 건의 작품이 모여 이 시상식이 갖는 명성과 권위를 실감하게 했다. 이들 중 최종 후보 30인만이 전시 기간에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 다가올 5월 30일부터 6월 29일까지 마드리드의 티센 보르네미사 박물관에서 전시될 작품은 30점. 이 중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한국 작가는 3명이다. 한지 공예를 통해 의자를 탄생시킨 이정인의 ‘A Soft Landscape’, 전통 바구니의 형태를 구리로 제작해 파격을 꾀한 류연희의 ‘BAGUNI’, 철로 만든 플래터에 연꽃 모양의 은 상감을 한 신선이의 ‘Embracing Lotus’는 지극히 전통적인 요소의 우아함과 기능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살려내고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한지, 바구니, 상감 같은 한국적 요소를 현대적인 디자인에 대입해 그 쓰임과 쓸모를 재발굴한 작품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집요하면서도 새로운 창의적 탐구의 과정에 감탄하게 된다. 이들 작품에서 엿볼 수 있듯이 로에베는 재단 공예상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소재와 기능을 아울러 전통을 재해석하고 현대화하는 과정을 얼마나 새롭게 탐구했는가에 주목한다.
이정인, ‘A Soft Landscape’, 2024, 한지, 밀가루 페이스트, 920×800×640mm, 한지 공예를 통해 탄생한 의자.
류연희, ‘BAGUNI’, 2024, 코퍼, 300×300×240mm,
전통 바구니의 형태를 구리로 제작해 파격을 꾀했다.
신선이, ‘Embracing Lotus’, 2022, 철, 순은, 래커, 320×320×150mm,
철로 만든 플래터에 연꽃 모양의 은 상감을 했다.
공예의 오늘을 비추는 거울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문 패널 사무총장 아나투 사발베아스코아Anatxu Zabalbeascoa는 “전통적인 수작업에서부터 최첨단 기술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은 다양한 방법과 툴을 사용한다. 일상적인 소재와 진귀한 소재를 선택하는 이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수용한다. 어떤 소재와 방법을 사용하는가를 넘어서 독창적인 방식으로 현대 문화를 만들어가는 아티스트들의 특별한 장인 정신에 주목한다”라고 그 기준을 말했다. 즉, 후보에 오르기 위한 기준이란 결국 수단이 아닌 장인 정신과 창의성이라는 의미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수상자는 전시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5월 29일 전시회 개막과 함께 발표된다. 총 5만 유로의 상금을 제공하는 이 영예의 수상자를 공정하게 가려내기 위해 디자인, 건축, 저널리즘, 비평, 미술관 큐레이션 분야의 저명한 인물 13인이 심사위원으로 선정된다. 로에베 문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공예라는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노력해온 브랜드는 그간 도자기, 주얼리, 섬유, 목공예, 가구, 옻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작가를 발굴해왔다. 이는 이 상이 여러 세대에 걸쳐 당대 최고의 공예를 압축적으로 보여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중과의 거리감에서 차이가 있을지라도 패션 또한 창작의 분야에 속해 있다. 2013년 조나단 앤더슨이 브랜드에 합류한 이래 예술, 디자인, 장인 정신을 강조하며 브랜드를 강화해온 로에베가 또 다른 창작 분야를 일관되게 후원해왔다는 사실은 설립 당시부터 로에베의 핵심적 특징으로 꼽힌 공유와 협력의 정신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손으로 일구는 아름다움에 대한 로에베의 끊임없는 집착과 예술적 표현에 대한 열정은 지난 3월 도쿄에서 열린 <크래프티드 월드> 전시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2024년 상하이에서 처음 공개된 <크래프티드 월드>는 올해 도쿄 하라주쿠에서 개최되었다. 스페인의 풍경과 소리로 시작되는 전시회에서는 관람객의 눈앞에 파리 패션쇼의 프런트 로가 펼쳐진다. 그리고 다양한 인터랙티브 전시실을 통해 스튜디오 지브리와 교토의 도자기 스튜디오 수나 후지타 등을 소개하며 로에베의 최근 컬렉션에 영감을 준 원천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공개한다. 두 번째 <크래프티드 월드>가 열린 하라주쿠는 로에베가 유럽을 넘어 진출한 첫 도시로 1973년에 매장을 오픈한 곳이다. 이 오랜 인연을 시작으로 로에베와 일본의 풍부한 문화적 대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도쿄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5월 11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기간 2025년 3월 29일~5월 11일
주소 도쿄도 시부야구 진구마에 6-35-6
홈페이지 craftedworld.loewe.com
인스타그램 @loe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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