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5월호

BRAND EXHIBITION - 일상의 색, 조선의 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창립 8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조선민화전>은 조선 서민의 삶과 미감을 담은 민화의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한다. ‘책가도’, ‘문자도’, ‘금강산도’ 등 시대를 관통하는 민화 작품 100여 점을 통해 전통 회화 속에 깃든 일상의 정서와 한국적 아름다움의 본질을 오늘의 시선으로 마주하는 시간이다.

EDITOR 박이현 WRITER 남미영


설화수, ‘진설크림’  설화수의 예술과 헤리티지를 오롯이 담아내 마치 하나의 달항아리를 연상시키는 셰이프가 인상적이다. 진귀한 진생베리의 강인한 생명력이 노화로 인해 무너진 피부 컨디션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안티에이징 크림.



아모레퍼시픽은 1945년 설립 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美’에 관한 끝없는 탐구의 여정을 걸어왔다. 1979년 ‘태평양 박물관’으로 출발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역시 미의 근원에 다가가고자 하는 브랜드 정체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무수한 아름다움의 스펙트럼 안에서, 한국에서 탄생한 ‘한국의 미’를 전파하고자 한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의 고미술과 여성 문화에 관한 전시는 물론, 2000년대 이후 국내외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넓히며 폭넓은 예술의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조선의 아름다움을 현대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 × 조선민화전


푸르스름한 벽면을 배경으로 단정히 쌓인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칸마다 실로 꼭꼭 여민 책의 모서리가 하나같이 열을 맞춰 단정히 쌓여 있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고급스러운 문방사우와 화려한 골동품, 꽃과 장신구가 책꽂이 곳곳에 자리해 감상의 즐거움을 준다. 이는 조선 후기의 궁중 화원으로 이름을 알린 이택균의 ‘책가도 10폭 병풍’이다. 조선 후기 궁중 화원으로 알려진 이택균은 책가도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난 3월 27일 개최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조선민화전>을 통해 국내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상가의 수십 배를 뛰어넘는 낙찰가로 판매되면서 그 소유주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고,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개되면서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다. <조선민화전>에는 이 외에도 6점의 책가도(책거리)가 선을 보이며 이전에 한자리에서 보기 힘들었던 귀한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금강산도 8폭 병풍’이 새롭게 공개되며 ‘호작도’, ‘운룡도’, ‘어변성룡도’ 등의 대표적인 민화 작품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다. 민화와 공예품 총 100여 점을 통해 조선의 문화와 예술을 만끽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예술은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철학적 사유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궁극적 작업에 가깝다. 무수한 아름다움의 스펙트럼 안에서 아모레퍼시픽은 한국에서 탄생한 ‘한국의 미’를 전파하는 브랜드로서의 사명을 <조선민화전>에 반영했다. 창립 80년을 기념해 기획한 이번 전시는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높아져가는 민화에 대한 관심에 부응하면서, 한국적 아름다움의 근간을 찾아가는 작업의 여정이다.



책가도에서 문자도까지, 병풍 속에 담긴 조선의 정서




<조선민화전>은 우리 예술에 대한 브랜드의 오래된 애정에 기반한 전시다. 조선의 서민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민화는 그 자유로운 화풍과 미감으로 인해 익히 알려진 정통 궁중회화와는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후기에 이르러 궁중 회화에도 도입되면서 책가도와 같은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했지만, 그 기원은 당시 서민의 날것의 삶과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일상의 자유로움을 포착한 대담함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이런 민화의 예술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관람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구성과 표현, 색채, 개성과 완성도에서 현대 감각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선별했다. 미술관이 소장한 이택균의 ‘책가도 10폭 병풍’과 ‘금강산도 8폭 병풍’이 새롭게 공개되었으며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제주문자도 8폭 병풍’,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백선도 8폭 병풍’과 개인 소장자의 작품 ‘수련도 10폭 병풍’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이 중 가장 근래에 화제가 된 이택균의 ‘책가도 10폭 병풍’은 세계적인 컬렉터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미카 에르테군의 소장품으로 12월 14일 크리스티 뉴욕지부에서 한화 약 7억4000만 원에 낙찰되었다. 추정가가 최대 약 3600만 원에 불과했던 해당 작품은 크리스티의 경매 수수료 26%까지 더한 최종 경매가가 당시 약 9억3000만 원에 달했다. 작품의 가치를 가격으로 환산하는 것은 다소 경솔한 판단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책가도를 특별히 아낀 정조 시절 궁중 화원이었던 이택균은 ‘책가도의 대가’라 불리던 인물로 그의 작품이 조선 민화사에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된 책가도는 각 폭이 분리된 10개의 패널로 이루어져 있으며 미카 에테르군이 소장한 유일한 한국 고미술품이기도 하다. 작품은 청나라를 통해 도입된 서양 회화의 기법인 원근법과 명암법이 반영되어 이전에 조선 회화에서 볼 수 없던 입체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제주의 자연을 표현한 제주 문자를 담은 ‘제주문자도 8폭 병풍’ 역시 국립해양박물관 소장으로 쉽게 만날 수 없는 귀한 작품이다. 양면으로 제작된 이 병풍은 앞면에 퇴계 이황이 쓴 목판본 글씨 10폭과 뒷면에 8폭의 ‘효제문자도’가 있다. 중앙에는 문자를, 상단과 하단에는 제주도에 자생하는 물고기와 자연을 배치해 3단으로 구성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전시에 등장한 병풍들은 8폭과 10폭 등 민화 작품으로서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조선 민화의 다채로운 면을 소개하는 전시인 만큼 작품의 소재도 다양하다. 세화歲畫로 인기가 높았던 호랑이와 까치를 그린 ‘호작도’, 길상적 존재로서 인식되어온 황룡을 그린 ‘운룡도’ 외에도 서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의 주요 장면을 6폭에 나누어 그린 ‘구운몽도 6폭 병풍’도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조선민화전>의 또 다른 특징은 작품과 관객 간의 거리다. 작품의 높은 가치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서민의 삶을 담은 ‘민화’를 관객에게서 멀리 떨어뜨려놓지 않은 것. 유리 칸막이 하나 사이로 고미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조선인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관람객과 작품 간의 물리적 거리까지 좁힌 것일까? 예술을 창작하지는 않지만 접근법을 달리함으로써 브랜드가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기간  2025년 3월 27일~6월 29일

주소  용산구 한강대로 100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홈페이지  apma.amorepacific.com

인스타그램  @amorepacific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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