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프 셔츠와 피케 셔츠는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에비에이터 디자인의 뿔테 안경은 보테가 베네타 by 케어링 아이웨어.
나 혼자 걷는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파급력을 실감하고 있다. 맡은 배역에 따라 이미지가 확연히 다른 편이라 그간 꾸준히 활동을 했어도 알아보는 이가 별로 없었는데 <나 혼자 산다> 출연 이후 먼저 인사해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너무 날것의 일상 그대로를 보여드렸나 싶어 살짝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나. 꾸밈없이 매일 밖에 나가 걷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매사에 감사한 하루하루를 이어나가는 것. 그게 내 모습인 걸. 9시간 산책을 함께해준 제작진과 애정을 갖고 시청해주신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자기 관리는 배우로 살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다. 매일 식단 관리와 걷기를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체중이 불어날 거다. 평소 적정한 중간 몸무게로 만들어놔야 어떤 배역이 들어와도 맞출 수 있다.
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 지금의 나는 눈앞의 결과가 좋든 안 좋든 그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믿는 굳센 마음이 있다. 물론 나 역시 오늘이 불안하고 내일이 두려운 시기가 있었다. 잘 풀리지 않는 현실을 걱정하며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했고. 그런데 나를 위로하고 위해주는 좋은 이들이 곁에 있기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숱한 고민과 잡념을 잊게 하는 걷기의 힘도 컸다. 걸으면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확실히 건강해졌고, 긍정의 기운이 삶에 깃들게 된 것 같다.
어깨에 두른 그레이 컬러 니트와 팬츠 모두 질 샌더. 클럽 마스터 디자인의 안경은 모스콧서울. 로퍼는 닥터마틴.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양말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배우의 시작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미래에 대한 꿈도 없이 그저 그렇게 지내다가 춤추러 자주 갔던 청소년 수련관에서 영화 <타이타닉>을 보게 됐다. 마음에서 뭔지 모를 동요가 일더라. 한 번뿐인 인생인데 스크린 안에 들어가 다양한 삶을 살아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러면서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했고 지금까지 이렇게 배우로 살고 있다. 대학 진학 후에는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았다.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좀 더 절실해야 할 이유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수십 편의 독립 영화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래도 늘 결핍이 있었던 것 같다. 더 잘하고 싶었고,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싶었다.
끝난 게 아니다, 낫아웃
독립 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안정적인 소속사에 들어간 뒤에도 마냥 일이 마음처럼 잘 풀리지는 않더라. 100번째 오디션에서 떨어졌을 때는 당장 배우 일을 그만둘 생각이었다. 배우의 자질이 아예 없다고 판단했으니까.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작품이 영화 <낫아웃>이었다. 야구의 룰도 모르던 내가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고교생 에이스 ‘광호’ 역을 맡았고 몸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절박한 광호의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너무나 힘들었는데 반대로 또 너무나 행복했다. 내가 얼마나 연기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를 알았거든. 누구의 평가도 어떤 판단도 중요치 않았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아도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포기하지 말라는 하늘의 뜻이구나, 생각했다.
10년의 전환점을 돌며
어느덧 데뷔한 지 10년이 됐다. 지금 와서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뭔가를 찾으려 발버둥치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게 뭔지도 모르면서 엉뚱한 가치를 좇아 헤맨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안다. 결국은 내가 나로서 올바로 서야 한다는 것. 내 삶이 성숙해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질 것이고, 작품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도 변화하는 것 아닐까?
선물 같은 순간
살아오면서 선물처럼 반갑고 고마운 순간들을 많이 만났다. 오늘처럼 좋은 사람들과 웃으며 일하는 하루도 뜻깊고. 나의 연기를 좋아하고 지지해주는 분들의 사랑과 관심이 내겐 가장 커다란 선물이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최근 찾아온 선물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면 어떨지. 수시로 밀려드는 삶의 파고를 겪어내는 동안 내 중심이 더욱 단단해졌고 자연히 사소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앞으로도 매일 감사하며 내가 가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고, 또 그에 대한 책임을 충실히 다하는 그런 날들을 그려가고 싶다.
오버핏의 재킷은 렉토. 티셔츠는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팬츠는 페라가모. 스니커즈는 골든 구스.
볼캡과 양말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새로운 얼굴을 상상하게 만드는 매력
신인 때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배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스타일링을 어떻게 하느냐,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고도 하고. 예전에는 나를 각인시키기 어렵지 않겠나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이제는 배우로서 큰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매력을 가졌다는 거니까. 앞으로 어떠한 역할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배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배우가 아닌 역할이 남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아니 그 사람이 정재광이었어?”라는 놀라움을 선사하는 배우로, 오래도록 사랑받고 싶다.
데님 재킷은 잉크. 핑크 셔츠는 타미 힐피거. 리넨 소재의 버뮤다팬츠는 디올 맨.
스니커즈는 반스.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STYLIST 에이미 HAIR 이봉주 MAKEUP 정윤미
COOPERATION 골든 구스(519-2937), 닥터마틴(070-4821-0227), 디올 맨(3480-0104), 렉토(790-0797),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511-7288), 모스콧서울(415-5546), 반스(310-5198), 잉크(519-9711), 질 샌더(6905-3530), 케어링 아이웨어(517-6060), 타미 힐피거(1544-3966), 페라가모(3430-7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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