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5월호

이토록 따뜻한 문화 외교

새로운 럭셔리의 지형을 조명하고자 <럭셔리>는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주목한다. 첫 번째 행선지는 눈부신 자연과 손끝의 공예, 음식에 스며든 기억이 어우러진 진짜 럭셔리를 품은 나라 탄자니아다. 럭셔리의 본질을 정서의 언어로 번역하는 주한 탄자니아 대사 부인 차바 루완야 마부라를 만나 문화 외교의 새로운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이창화


킬리만자로산을 배경으로 한 목가적 풍경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 앞에 선 주한 탄자니아 대사 부인 차바 루완야 마부라.


차바 루완야 마부라  주한 탄자니아 대사 부인. 기업 홍보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그는 현재 한국에서 전통 요리와 의상, 공예 등을 통해 탄자니아의 감각과 정신을 전하는 문화 외교관으로 활약 중이다.



아프리카의 럭셔리한 감각이 성북동 언덕배기에 존재한다. 꽤 가파른 경사의 길을 걷다 보니, “걱정하지 마. 문제없어. 다 잘될 거야!”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가 붙어 있는 대문 앞에 다다랐다. 긴장의 끈을 살짝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은 정원에선 주한 탄자니아 대사 부인 차바 루완야 마부라가 밝은 미소를 띠며 “탄자니아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해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남편인 토골라니 에드리스 마부라Togolani Edriss Mavura가 2021년 9월 주한 탄자니아 대사로 부임하면서, 차바 루완야 마부라는 배우자로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한다. 기업 홍보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그가 내린 결론은 적극적인 문화 외교 활동. 이는 한국에 알려진 정보가 세렝게티 국립공원, 신비로운 푸른빛의 탠저나이트 보석, AAA 커피, 잔지바르 향신료, 킬리만자로산 정도에 국한된 사실을 발견한 것에서 시작됐다.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정서적 거리를 메우기 위해 그는 탄자니아 전통 요리와 패션, 공예를 소개하고, 여성과 자립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일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와 같은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후기는 하나로 귀결된다. “놀라울 정도로 한국과 탄자니아가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탄자니아 역시 웃어른을 공경하고, 공동체의 삶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중 한 가지 예가 탄자니아 전통 음식 덮개인 ‘카와Kawa’. 존중을 상징하는 카와는 음식을 귀하게 여기고, 음식의 미적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데 의의가 있다. 한국의 보자기와 참 많이 닮지 않았는가. 이처럼 지리적 배경은 다르지만, 공유하는 관습이 있다는 사실은 한국과 탄자니아가 정서적으로 얼마나 깊이 닿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따스한 온도를 가까이에서 느껴보고자 차바 루완야 마부라에게 탄자니아 문화의 이모저모를 물었다.




패션 스타일부터 하나의 소통 방식으로 다가오네요.

패션을 통해 탄자니아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저는 주로 전통 탄자니아 패턴을 활용해요.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옛 추억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탄자니아의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대표적 직물이 ‘마사이 숄Maasai Shuka’, ‘캉가Khanga’(치마처럼 두르거나 머리에 쓰는 화려한 무늬의 천), ‘키텡게Kitenge’(기하학무늬 등의 패턴과 강렬한 색상이 인상적인 전통 직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탄자니아 국경일이나 공식 정부 행사 같은 특별한 날에 마사이 숄에서 영감받은 드레스, 캉가나 키텡게 원단의 옷을 즐겨 입는데요. 개인적이면서 집단적인 기억을 반영하는 캔버스가 되는 덕분에 사람들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패션뿐 아니라, 마사이족의 구슬 공예, 마콘데족의 목조각 등 탄자니아 전통 수공예 또한 현대 디자이너나 예술가와 협업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먼저, 제가 종종 입는 탄자니아 패션 디자이너 키키Kiki의 ‘킬리만자로 드레스’는 전통 패턴과 현대적 실루엣을 결합해 과거와 현재, 국내와 해외를 잇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어요. 또 루이 비통은 2012년 S/S 컬렉션에서 빨강·파랑 체크무늬로 된 마사이 숄을 세계에 선보였고, 발렌티노는 2016년 봄 캠페인에서 마사이족의 구슬 공예와 부족 문양을 활용해 전통 탄자니아의 아름다움을 부각했죠. 나스린 카림Nasreen Karim의 ‘엔지파이Enjipai’ 주얼리 컬렉션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마사이 공예품을 글로벌 패션 무대로 가져와 풍부한 미학과 문화적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하거든요.




공예와 회화 작품도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조지 릴랑가George Lilanga를 존경해요. 전통과 현대 기법이 어우러진 화려하고 유쾌한 그의 예술 세계는 현대 아프리카 미술에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팅가팅가TingaTinga’(아프리카 자연을 강렬한 원색으로 간결하게 그리는 화풍) 작가들도 늘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어요. 탄자니아 전통 미학을 현대 예술에 어떻게 녹여내는지를 살펴볼 수 있거든요. 대사관저에도 다양한 작품이 있습니다. 예로, 제 남편이 좋아하는 작품은 ‘음핑고 조각Kinyago Cha Mpingo’인데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탄자니아의 정신이 녹아 있어 공동체와 단결의 가치를 상기하게 합니다.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이 우리를 탄자니아인으로 만드는가?’라는 질문도 스스로 하게 만들고요.


세렝게티, 잔지바르 해안, 응고롱고로 화산분지 등에서 누릴 수 있는 ‘탄자니아식 럭셔리’는 무엇일까요?

따스한 포옹, 반가운 미소, 웰니스, 자연과의 교감 등 탄자니아는 여러분께 잊을 수 없는 시간을 선사합니다. 세렝게티, 잔지바르의 자연에 몰입하면 환경에 대한 경외심이 들고, 현지인의 전통을 체험하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정서적 연결이 생길 거예요. 또 킬리만자로를 등반하거나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탐사하는 모험은 내면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문화적으로 감동받은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경복궁에서 궁중 음식을 경험했을 때예요. 조선 시대의 섬세한 식기를 직접 보면서, 어떻게 과거가 현대 한국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달았어요. 한국의 역사 보존 노력에도 큰 감명을 받았고요. 당시 ‘전통을 존중하는 것은 우리 정체성의 형성과 발전을 돕는 핵심’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부인의 일상을 하나의 식재료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시나몬이요. 시나몬은 단순한 향신료가 아니라, 다른 음식의 풍미를 살리고, 우리의 소화를 돕는 약재예요. 시나몬이 주는 포근함과 안락함은 제가 누군가와 관계 맺는 방식과 닮았어요. 시나몬이 다른 맛과 조화를 이루듯, 저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되 본연의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동시에 제가 몸담은 공간과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힘을 전파하고자 해요.


앞으로 더 실현하고 싶은 문화 교류의 모습이나 계획이 있다면?

탄자니아와 한국이 맺고 있는 인연을 연구·보존·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춘 문화 교류 사업을 구상 중이에요. 우리 뿌리에서 온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줌으로써 서로의 다양한 문화 지형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어요. 최근 출간한 동아프리카 음식과 배경을 설명하는 책 은 일종의 초대장 역할을 합니다. 아프리카·아시아·아랍·유럽 등 다양한 문화의 영향이 녹아 있는 동아프리카 음식을 통해 탄자니아 특유의 문화적 상호작용이 얼마나 독특한지 보여주고 싶어요. 한국이 자국의 유산을 철저히 기록하고 보존해온 데서 영향을 받아 출간했습니다.



탄자니아의 숨결이 깃든 공예 작품

시각을 넘어 감각으로 다가오는 탄자니아의 미감, 대사관저 내에 퍼지는 고요한 울림을 따라가본다.



킬리만자로 기슭의 삶Life at the Foot of Kilimanjaro  전통 복장을 한 인물들은 지역 고유의 풍부한 문화를 상징한다. 전통 가옥과 전통 의상을 입은 지역 주민들이 빚어내는 따스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얼룩말 그릇Zebra Bowl  장난스러운 포즈와 독특한 흑백 줄무늬가 특징인 얼룩말 목조각. 장식용 그릇을 담을 수 있어 기능적 측면까지 더했다. 그릇의 자연스러운 나무색과 얼룩말의 몸통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COOPERATION  육은아(희림건축)

목록으로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