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UVE CLICQUOT

뵈브 클리코 스토리텔링 프로젝트 #1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

디자인하우스 50년을 맞은 올가을, <럭셔리>와 뵈브 클리코가 브랜드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번 협업은 2027년 마담 클리코 탄생 250주년을 앞두고 그가 남긴 개척 정신과 대담함을 동시대 인물의 삶을 통해 다시 읽어보는 데 의의가 있다. 첫 번째 주인공은 디자인하우스 대표 이영혜. 스물일곱에 잡지사를 인수해 온·오프라인으로 디자인을 알려온 그에게 지금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가슴 뛰는 이유를 물었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이기태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에 합류한 뒤, 스물일곱에 잡지사를 인수해 디자인하우스를 이끌어왔다. <행복이 가득한 집>, <럭셔리>, <스타일H> 등의 매체, 서울리빙디자인페어와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을 통해 디자인의 가치를 생활과 산업 전반에 알려왔다.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으며, 2020년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


마담 클리코는 남편의 죽음 뒤 스물일곱에 메종을 맡았고, 대표님 역시 같은 나이에 부모님의 투자를 받아 잡지사를 인수했습니다. 젊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을까요? 젊어서만은 아니었어요. 누군가는 걸어가야 할 길이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제가 직접 들어설 수밖에요. 당시 잡지에 시간과 돈을 들이겠다는 사람이 전무했습니다. 비전이 없다는 말도 들었고요. 오히려 그럴수록 결기가 생겼습니다. 우리 분야에서 이름을 쌓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선배 두어 분을 찾아가 잡지사를 인수해달라고 간곡하게 설득하기도 했어요. 실무는 제가 다 하겠다고 했음에도 선뜻 받아들이는 분이 없더군요.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 투자를 받았습니다. 잡지사를 인수하고 나면 앞날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내 선택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마담 클리코 역시 유산을 비싸게 팔고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사업을 이어간 것은 메종의 가치를 알아봤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것을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1814년 마담 클리코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막혔던 교역이 재개될 조짐을 보이자, 경쟁자보다 먼저 러시아에 샴페인 1만550병을 보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사업에서 ‘타이밍’의 힘을 언제 가장 크게 실감하셨나요? 마담 클리코의 ‘결정하는 힘’이 역사를 썼네요. 월간 <디자인>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디자인이라는 좁고 작은 분야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더 넓은 시장을 찾았고, 그렇게 창간한 매체가 <행복이 가득한 집>이에요. 제목에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생활을 디자인하는 일이 곧 행복한 삶이라고 여겼어요. 어려움에 지느냐, 극복하느냐가 소멸과 진화의 차이 아닐는지. <행복이 가득한 집>을 준비하며 시기도 살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잘살고 싶다는 열기가 뜨거웠어요. 배부르게 먹는 데서 ‘무엇을 먹을까’로 관심이 옮겨가던 때였습니다. 먹을 것을 고르기 시작하면 다음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먹을까’가 됩니다. 그럴 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선보였으니 타이밍이 좋았던 거예요. <행복이 가득한 집>이 창간 8개월 만에 흑자를 내면서 <디자인>을 계속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인수한 <럭셔리> 또한 제게는 디자인과 멀리 떨어진 매체가 아니에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떠올려보세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디자인과 개념을 바꾸면서 유행을 이끌고, 브랜드를 오랫동안 각인시키잖아요. 디자인하우스의 여러 매체와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을 통해 디자인의 중요성을 꾸준히 알려온 것도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성취입니다. 디자인은 단순히 형태에만 머물지 않아요. 기업과 사회, 나아가 국가의 가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


젊은 여성 경영자라는 이유로 편견을 마주하던 시절, 부정적 시선을 성장의 자극으로 삼으셨다고요. 오늘날 ‘여성 개척자’라는 수식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신가요? 듣기 언짢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젊을 때는 약이 올라 그런 시선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더 열심히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는 비판도 약으로 삼게 되더군요. 억울할 때도 있지만 한 번쯤 저를 돌아보게도 합니다. 그렇다고 남의 말에 오래 매달리지는 않아요. 수습하고 일궈나가야 할 일이 워낙 많으니, 세간의 평가에 좌지우지되며 앉아 있을 여유가 없거든요. 저를 남의 잣대에 맡겨두지 않겠다는 소신도 있고요. 누군가 저를 개척자, 여장군, 대모라고 불러도 크게 들뜨지 않아요. 좋은 수식어라고 해서 비단옷을 입혀주는 건 아니니까요.



(왼쪽) 이영혜 대표가 자신의 일상과 취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세 가지 가구를 골랐다. 첫 번째는 ‘ 한강을 바라보는 2인용 소파 ’다. 아침 해를 바라보며 명상하고, 하루를 시작하기 전 잠시 자신에게 집중하는 공간이다. (오른쪽) 두 번째로 선택한 ‘식탁 ’은 집 안 공간에 맞춰 우리나라 의 가장 럭셔리한 재료라 믿는 옻칠로 제작 했다. 오래 곁에 두고 사용하는 물건에 대한 그의 취향이 담겨 있다.


마담 클리코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리들링 테이블riddling table’은 샴페인 병을 기울여 꽂고 조금씩 돌려서 효모 침전물이 병목에 모이게 해 제거하기 쉽게 만든 장치입니다. 별도의 상품을 하나 더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 자체를 혁신한 셈인데요. 디자인하우스에도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일하는 방식을 바꿔온 대표님만의 ‘리들링 테이블’이 있나요? 마담 클리코는 알수록 멋진 분이에요. 샴페인이라는 오묘한 세계에 선뜻 들어서서 대담하게 이끌어간 솜씨에 경의를 표합니다. 샴페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접하고 나니 사람들이 샴페인을 그토록 귀하게 여기는 이유가 이해되더군요. 샴페인을 기품 있는 잔에 따르고 좋은 음식을 곁들이는 것도, 한 잔이 완성되기까지 쌓인 시간과 정성에 예를 갖추는 행위이겠지요. 디자인하우스에서는 최근 교정·교열에 AI를 활용해 기자들의 업무 부담과 소요 시간을 덜어보려 하고 있어요. 월례 회의에는 외부 강사를 초청합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됐으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함께 공부하자는 의미예요. 평소에는 출퇴근을 체크하지 않지만, 월례 회의가 있는 날만큼은 출석표까지 둬요. 또 서울리빙디자인페어나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개막식에서는 테이프 커팅 같은 관례적인 의식을 생략합니다.


디자인하우스를 “남 잘되게 해주는 회사”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생산자와 소비자, 디자이너와 시장을 잇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가능성을 어디에서 발견하시나요? 예로, 벤처 투자를 할 때는 시장성, 규모, 독창성 같은 요소부터 따집니다. 디자인하우스도 사업 초기 단계의 기업에 소규모로 투자하고 있어요. 반년이나 1년 뒤 다시 찾아와 사업을 설명할 때는 우리가 건넨 피드백이나 조언을 얼마나 열린 자세로 받아들였는지 유심히 봅니다. 피드백을 대하는 태도에서 자기 방식만 고집하는지, 다른 의견도 품을 수 있는지가 드러나요. 미디어에 누군가를 소개할 때는 조금 다릅니다. 자기 일에 진심인지, 얼마나 몰두하는지, 얼굴과 자세가 정직한지 정도면 충분합니다. 지면에서 소개한 뒤 성장한 사례도 많았어요. 잡지에 실린 경험이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소개한 인물과 작업을 접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독자입니다. 어쩌면 독자들도 미처 알지 못하던 사람과 작업을 찾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사람과 독자를 이어주는 일, 즉 다리를 놓는 일이 서로 잘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꼽은 것은 ‘ 책상'. 저녁과 주말, 편한 옷차림으로 다시 일에 몰두하는 집 안의 또 다른 사무실이다.


이제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무대를 베트남으로 넓힐 예정입니다. 수십 년의 경험이 쌓인 지금도 대표님께 ‘처음의 감각’을 불러오는 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처음 리빙 페어를 기획한 건 독자들의 전화 때문이었습니다. <행복이 가득한 집>이 나오면 일주일쯤은 기자들이 문의에 답하느라 많은 시간을 써야 했는데, 대부분 ‘몇 페이지에 나온 물건을 어디서 얼마에 살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어요. 지금처럼 앱이나 영상으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던 때였잖아요. 잡지에 판매처를 안내해도 충분하지 않더군요. 종이 매체만으로 답하기 어려운 궁금증은 실물을 보여줌으로써 풀어주고 싶었어요. 당시 이런 전시가 대개 기업 간 거래를 위한 B2B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애초에 독자를 위한 전시였으니 B2C였던 셈이지요. 해본 적 없는 일이어서 몇 달을 고심하며 준비했습니다. 첫해부터 ‘디자이너스 초이스’를 선보였는데, 같은 물건도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면 공간과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이러한 기획을 할 때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베트남 진출을 준비하면서도 먼저 이 질문부터 했어요. “베트남의 생활에는 지금 무엇이 필요할까?”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인 하노이’라는 이름을 가져간다고 해서 현지의 삶에 점령군처럼 나서면 안 됩니다. 아무리 K-리빙을 내세워도 생활의 주인은 베트남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지나온 길 가운데 현지에 맞는 것을 골라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브랜드의 기회를 넓히면서, 아시아 디자인까지 아우르는 자리로 키워가려 해요. 아직 첫걸음이지만 제대로 풀어내면 잘될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뜁니다. 새 일을 앞둘 때 느끼는 설렘은 여전하네요.




오랜 시간 이어온 대표님의 방식은 어느새 디자인하우스의 문화와 전통으로 자리 잡았을 거예요. 그러나 개척 정신이 계속 살아 있으려면 다음 세대가 앞선 세대의 성공 공식까지 의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후배들이 과감하게 깨뜨렸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요? 도발적이지만 멋진 질문이네요. 저를 깨뜨려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자산도 시대의 문법이 바뀌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어요. 제가 해온 것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겠지요. 왕왕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를 스스로 묻습니다. 급변하는 사회에는 회사에 적합한 구조와 인재상을 파악하고, 이를 움직이게 할 관리력이 필요해요. 그 능력을 우리 회사의 가치에 맞게 발휘해야 합니다. 디자인하우스의 IP를 종이 매체에만 두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펼쳐나갈 메타인지 역시 갖춰야 하고요. 회사 밖의 사람과 자원에 문을 열고, 파트너십과 네트워크를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대신 아무리 기존 공식을 깨뜨리더라도 우리가 축적해온 지식 자산인 콘텐츠만큼은 든든한 토대로 남겨야 합니다.


1972년 탄생한 뵈브 클리코의 ‘라 그랑 담’은 마담 클리코의 유산과 피노누아 중심의 양조 철학, 예술가와의 협업 등을 끊임없이 재해석해온 샴페인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오랫동안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발견하고 기록해온 <럭셔리>가 지금 여기에서 다음 세대에 건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말하려는 건 크리에이션, 곧 창조성이에요. 디자인하우스는 <디자인> 창간 50주년을 맞아 ‘막’이라는 접두어를 내세운 문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일단 해보자는 뜻이에요. 일단 해보고 고쳐나가면 됩니다. 우리 막걸리, 막사발이 그렇잖아요. 물건을 대충 만들거나 일을 성글게 하자는 얘기는 아니에요. 새것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 무언가를 덧대고 변형해야 창조성이 생깁니다. 창조의 근간에는 ‘오리진origin’이 있어요. 기계도 대량생산도 없던 시절, 선조들이 해온 것을 부모가 이어받아 다음 세대에 가르쳐주었습니다. 오랜 시간 풍토와 쓰임에 맞춰 다듬어진 결과가 오리진입니다. 그래서 원형부터 공부해야 합니다. 원형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면 다른 재료를 대입하거나 색을 달리할 수 있어요. 갓 쓰고 양복 입듯이 옛것에 지금을, 외국 것에 우리 것을 붙여보자는 겁니다. 안 되면 다시 하면 되지요. 계속 시도하고 정제해나가는 것이 한국 브랜드가 해외의 유수한 럭셔리 브랜드와 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LEE YOUNGHYE’S CHOICE

뵈브 클리코 ‘라 그랑 담 2018’에 곁들이는 정갈한 한식부터 꽃과 식물이 어우러진 공간까지. 한국적 미감과 섬세한 취향이 깃든 이영혜 대표의 선택.



상큼한 오이무침과 단맛이 과하지 않은 도라지정과. 의외로 우리 음식과 샴페인과 잘 어우러진다.



한국적 여백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이영혜 대표의 집. 꽃과 식물, 골동품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BARBE NICOLE CLICQUOT PONSARDIN

마담 클리코(1777~1866). 스물일곱에 남편을 잃은 뒤 메종의 경영을 직접 맡은 그는 전쟁으로 교역이 막힌 상황에서도 러시아 시장 진출을 밀 어붙였고, 리들링 테이블을 발명해 샴페인 제조 방식에 혁신을 이뤄냈다. 이 테이블은 지금도 샹 파뉴 전 지역에서 샴페인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마담 클리코의 초상화. 샴페인 만드는 기술을 발명한 덕분에 ‘샴페인의 대모’로 불린다.



‘리들링 테이블’은 효모 침전물을 병목에 모아 제거하기 쉽게 만든 장치다. 마담 클리코가 발명했다.



뵈브 클리코의 시그너처인 ‘옐로우 레이블’. 브랜드를 상징하는 옐로우 패키지와 풍성한 기포가 돋보인다.



COOPERATION 엠에이치 샴페인즈 앤드 와인즈 코리아(2188-5100)

* 경고 :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산 위험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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