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통과 업무·관광
거점으로서 잠재력을
지닌 서울역 북부 역세권에
들어오는 만다린 오리엔탈.
서울 하이엔드 호텔 시장의 경쟁이 객실 밖으로 번지고 있다. 청담동의 회원제 클럽, 용산공원 인근 복합 단지, 서울역의 스파 등 새로 들어설 호텔마다 내세우는 사용자 경험이 다르다. 용산의 로즈우드Rosewood와 서울역 북부 역세권의 만다린 오리엔탈Mandarin Oriental 진출 계획이 공개된 데 이어, 지난 9월에는 신세계프라퍼티가 청담동 옛 프리마호텔 부지에 아만 서울Aman Seoul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광화문과 명동, 강남으로 대표되던 고급 숙박 시장에 새로운 거점이 더해지는 셈. 미식과 웰니스, 레지던스와 회원제 클럽 등 호텔이 제안하는 경험도 숙박에만 머물지 않는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8월 서울을 찾은 외국인 방문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1.6% 증가한 1156만 명에 이른다. 카드 소비액은 59.9% 늘어난 7조7813억 원. 명동에 집중됐던 소비는 성수와 도산공원 주변으로 퍼졌고, 지출 분야도 쇼핑을 넘어 의료·웰니스와 미식으로 넓어졌다.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 앤드 웨이크필드Cushman & Wakefield가 추산한 2025년 서울 3~5성급 호텔 객실 점유율은 79.2%다.

5000세대가 넘는 대규모 단지가 될 압구정 3구역.
같은 서울, 서로 다른 풍경
글로벌 호텔 브랜드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서울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공간에 담아낸다. 압구정 3구역 재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HBA 레지덴셜Residential의 디자인 디렉터 조셉 다브로Joseph d’Abbro는 한국의 탄탄한 디자인 문화와 장인 정신, 세계 여러 도시를 경험한 소비자의 안목에 주목했다. 서울이 글로벌 럭셔리의 기준과 이를 향유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다브로의 분석.
아만의 도심 진출에는 단골 고객의 목소리가 작용했다. 브랜드 관계자에 따르면 ‘아만정키Amanjunkies’라 불리는 이들이 리조트뿐 아니라 대도시에서도 아만을 찾길 원했다고. 이러한 수요는 도쿄와 뉴욕, 방콕으로 영역을 넓힌 배경이 됐다. 아만 서울은 호텔과 49세대 레지던스, 아만 클럽을 갖춘 지상 38층 건물로 이뤄진다. 한강 전망을 살린 건축에 한국의 차 문화와 장인 정신을 반영하고, 소재와 실내 분위기까지 세심하게 조율할 계획이다. 도심 한복판에서도 프라이버시를 지키며 쉴 수 있도록 소재 선택과 실내 분위기 조성에도 공을 들인다.
흥미롭게도 선정릉 맞은편에 들어설 메종 델라노 서울Maison Delano Seoul은 사교 문화에 무게를 싣는다. 1995년 마이애미에서 출발한 델라노 브랜드의 정체성을 서울에 이식하는 듯하다. 호텔 기업 에니스모어Ennismore가 2023년 공개한 계획에는 객실 81개, 레지던스 52세대와 회원제 클럽, 선큰 가든, 루프톱 수영장이 담겼다. 눈여겨볼 것은 한국 전통 정자에서 착안한 ‘파크 파사드’. 건물 외벽과 안뜰을 나무와 녹지로 감싸도록 설계했다.
강북에서는 두 호텔이 대규모 복합 개발 사업과 함께 추진된다. 먼저, 만다린 오리엔탈은 서울역 북부 역세권을 선택했다. 그룹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크리스 올리코프스키Chris Orlikowski는 편리한 교통과 업무·관광 거점으로서 잠재력을 이곳의 강점으로 꼽았다. 2030년 개관을 목표로 객실과 스위트룸 총 128개를 계획했으며, 실내디자인은 앙드레 푸가 맡았다. 21층 전망 레스토랑과 4개 층에 걸친 스파가 주요 시설. 스파에는 한국의 치유 문화와 현대적인 뷰티·회복 프로그램을 접목할 예정. 올리코프스키는 한국의 예술과 공예,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서도 브랜드 특유의 아시아적 정체성을 살리겠다고 밝혔다. 2027년 개관하는 로즈우드 서울은 용산 옛 유엔군사령부 부지에 조성되는 ‘더 파크사이드 서울’의 일부다. 약 250개 객실에 일곱 곳의 레스토랑·바, 약 4500㎡ 규모의 웰니스 시설 ‘아사야’를 더한다. 종합 설계는 KPF, 실내디자인은 스페이스 코펜하겐이 맡았다. 단지에는 레지던스와 리테일, 야외 공간이 조성된다. 인근 이태원 상권까지 둘러볼 수 있어 호텔 안팎으로 여행 일정을 넓히기에 좋은 입지다.


호텔과 49세대 레지던스, 아만 클럽을 갖춘 지상 38층 건물로 이뤄질 아만 서울.
숙박과 생활을 잇는 서비스
새 호텔들이 제안하는 변화는 공간 구성에만 그치지 않는다. 고객과의 관계를 투숙 이후까지 이어가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아만은 호텔에서 시작된 인연을 레지던스와 회원제 클럽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택했다. 아만 관계자는 “아만을 차별화하는 것은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가 구축해온 커뮤니티의 힘”이라고 말한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아만을 이용하던 고객이 서울에서는 레지던스 소유자나 클럽 회원이 될 수도 있다. 호텔에서 경험하는 세심한 응대와 웰니스 프로그램을 일상 속으로 확장하고, 전 세계 회원과의 교류도 이어간다는 취지다.
호텔에서 축적한 서비스 노하우는 고급 주거 시설의 설계에도 활용된다. 다브로는 방문객을 맞이하는 동선부터 거주자의 필요를 미리 파악하는 서비스, 생활 방식에 맞춰 편의를 높이는 기술까지 주거 디자인에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참여하는 압구정 3구역 재개발 프로젝트는 5000세대가 넘는 대규모 단지. 입주자의 편안함과 사생활을 함께 지키는 일이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 호텔식 도착 공간과 웰니스 시설, 입주민 교류 공간 등을 설계에 반영했다. 그는 공용 시설이 다양해진 서울의 고급 주거 시장을 두고 “다음 단계는 더 많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제공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시설의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생활 습관에 맞춘 서비스와 사생활 보호 사이의 균형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변화는 신규 브랜드나 고급 주거 프로젝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새 브랜드들이 서울 진출을 준비하는 동안 기존 특급 호텔도 객실과 식음료·문화시설 재정비에 나섰다. 지난 8월 재개관한 더그랜드롯데 서울은 메인 타워 객실 수를 737개에서 590개로 줄이는 대신 객실당 면적을 넓겼다. 더 플라자 호텔은 지난 9월 영업을 중단하고 2029년 재개관을 목표로 대규모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재개관 후에는 최고급 객실과 다이닝을 강화하고 옥상정원은 시민에게 개방한다고. 새 호텔이 복합 시설로 영역을 넓힌다면 기존 호텔은 공간의 질과 쓰임새를 다시 다듬는 모습이다.
청담동의 갤러리와 부티크, 용산의 이태원 상권, 서울역의 광역 교통망은 저마다 다른 여행 동선을 만들어낸다. 새 호텔들이 문을 열면 여행자는 객실 서비스는 물론 주변에서 어떤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까지 따져 숙소를 선택하지 않을까. 서울의 하이엔드 호텔 경쟁은 이제 ‘어디서 머물 것인가’에서 ‘도시를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로 옮겨지고 있다. 훗날 서울의 숙박 지도가 얼마나 다채로워질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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