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11월호

막Mak CREATIVE!

디자인하우스가 50년을 맞아 장충동 사옥 전체를 전시장으로 내놓았다.
18팀 26인의 창작자가 저마다의 ‘막’을 펼치는 전시 <막MAK>이 10월 27일부터 11월 25일까지 열린다.

EDITOR 김민지 PHOTOGRAPHER 이우경, 차가연

막사발, 막걸리, 막국수, 막춤. 우리가 익히 알고 자주 쓰는 이 단어들에는 공통된 접두사가 붙어 있다. ‘막’. 사전은 이 말을 ‘거친’, ‘닥치는 대로 하는’의 뜻으로 풀지만, 한국인에게 ‘막’은 그보다 훨씬 넓은 감각을 품은 말이다. 서툴고 투박해도 일단 해보고, 실패해도 연연하지 않고 다시 고쳐 시도하는 유연함이 있다. 정답을 기다리기보다 먼저 손을 움직이고, 남의 것과 우리 것을 스스럼없이 섞어 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배짱도 있다. 막사발의 무심한 곡선과 막걸리의 거친 단맛, 막국수의 소박한 한 그릇에는 계산보다 직감을 믿었던 사람들의 손길이 배어 있다.

1976년 출발한 디자인하우스가 50년을 맞아 꺼내 든 단어가 바로 이 ‘막’이다. <월간 디자인>, <행복이 가득한 집>, <럭셔리>, <스타일 H> 등 매거진과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등을 일궈온 디자인하우스는 50년 기념 문화 캠페인의 이름을 ‘막, 크리에이티브!’로 정했다. 그리고 그 캠페인의 중심에서 기념 전시 <막 MAK>이 10월 27일부터 11월 25일까지 서울 장충동 디자인하우스 사옥에서 열린다.


왜 지금, ‘막’인가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는 캠페인을 시작하며 쓴 글에서 ‘막’을 한국인의 기질과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로 꼽았다. 주저하지 않고 일단 해보는 정신과 용기, 그것이 ‘막 정신’의 긍정적인 얼굴이라는 것이다. 전통과 새로운 문물, 남의 것과 우리 것을 스스럼없이 섞고 접합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힘. 그는 이것을 한국 문화가 세계의 대세 문화로 성장할 수 있었던 DNA라고 믿는다.

물론 ‘막’에는 조심해야 할 뜻도 있다. 아무렇게나 막말을 하거나 급한 성정으로 막 나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막 해본 수많은 경험에 어느 순간 감각이 더해질 때 남다른 디자인과 예술이 태어나고, 그것이 곧 벤처 정신의 바탕이 된다는 것. 디자인하우스가 강조하는 것은 이 건강한 실행의 힘이다.


전시장이 된 업무 공간

이번 전시에는 따로 마련된 화이트 큐브가 없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장충동 사옥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자 전시장이다. 평소 기획과 회의, 마감이 쉼 없이 이어지던 업무 공간이 한 달 동안 작품과 창작자의 감각으로 채워진다. 사옥 입구에서 출발해 로비와 정원, 회의실, 카페로 이어지는 17개 공간을 하나의 동선으로 엮었다. 관람객은 사옥의 흐름을 따라 자유롭게 걷는다.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지나 문을 열 때마다 ‘막’은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건축과 작품, 그 사이를 거니는 관람객의 경험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점이 이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이다.

사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막’이 한 가지 모양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답은 모두 달랐지만, 망설이기보다 먼저 손을 움직였다는 점만은 같다. 전시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작품과 ‘막’을 콘셉트로 만든 그릇, 디자인과 공예 상품은 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처음으로, 낯설게, 용감하게 걸어온 시간의 끝에서 디자인하우스가 고른 마지막 키워드는 ‘다시 처음처럼’이다. 앞으로의 50년도 그렇게, 다시 한번 막 시작해보려 한다.


전시 동선

디자인하우스 50년 기념 전시 <막MAK>

기간 2026년 10월 27일(화)~11월 25일(수)

장소 디자인하우스 사옥(서울시 중구 동호로 272)

관람 시간 평일 10:00~18:00

예매 네이버 예약



대한민국 최고의 창작자들, <막> 모이다


01 막 콘셉트로 만든 로고, 3종 포스터, 외벽 디자인 일상의실천

일상의실천이 만든 디자인하우스 50년 포스터.


디자이너 권준호, 김경철이 함께 이끄는 일상의실천은 그래픽 디자인을 기반으로 브랜딩, 출판, 전시, 공간, 문화 프로젝트를 넘나드는 소규모 공동체다. 동시대 현실에서 디자인의 역할을 질문하며 평면에 머무르지 않는 방법론을 탐구해왔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아트 디렉터, 타이포잔치와 공공디자인페스티벌 큐레이터를 맡았다.


전시 전시의 첫인상은 사옥 바깥에서 시작된다. 포스터의 메인 그래픽은 서로 다른 형태와 패턴, 질감이 자유롭게 결합된 조형적 글자 ‘막’이다. 규칙보다 직관을, 정답보다 실험을 상징하며 ‘막 저질러보는’ 창작의 에너지를 시각화했다. 다채로운 색과 패턴에는 디자인하우스가 50년간 소개해온 창작자의 스펙트럼을 담았다. 영문 로고타입 ‘Mak’은 세리프와 산세리프를 결합해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표현한다.




02 사옥 감나무 정원에 펼친 작은 정원 레오킴

행복작당에서 선보인 소나무 작품.


디자이너 레오킴은 자연의 순리와 시간 속에서 식물과 꽃의 관계를 탐구하는 플라워 아티스트다. 전통 화예의 미학을 바탕으로 식물 고유의 선과 여백, 질감과 순환성을 살린 설치 작업을 선보여왔다. 인터플로라 월드컵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으며, 플라워 디자인 브랜드 비욘드앤 BEYOND N을 이끌고 있다.


전시 사옥에 올라서자마자 마주하는 감나무 정원 안에 또 하나의 작은 정원이 펼쳐진다. 레오킴에게 비움은 채움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봄에 비워진 가지가 꽃으로 채워지고, 겨울이면 다시 온전히 비워지듯, 채움과 비움은 자연 안에서 이어지는 균형이다. 미리 정해둔 모습보다 자연의 순리와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그는 ‘막’을 발견한다.




03 헌 옷 자투리로 막 차린 생일상 김은하

피자를 형상화한 ‘Bon appetit!’ 시리즈.


디자이너 김은하는 폐의류를 해체하고 재구성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패브릭 아티스트다. 천의 색과 무늬, 질감을 회화의 재료처럼 활용한 입체 설치 작업을 주로 하고 있으며, 버려지는 옷에 남은 시간과 기억을 새로운 형태로 되살린다.


전시 지천명을 맞은 디자인하우스의 생일상. 김은하는 조선 왕실 잔칫상인 고임상 高排床의 격식에 헌 옷과 원단 자투리를 가져왔다. 유과, 약과, 옥춘 같은 전통 음식과 마카롱, 케이크 같은 오늘의 음식이 패브릭 오브제로 재해석돼 한 상에 오른다. 색색의 탑에는 ‘막’과 ‘복 福’을 새기고, 그 위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상화를 얹은 현대판 고임상을 선보인다.





04 6인 6색으로 꾸민 디자인 의자와 그들의 소품 박스 다다친구들

6명의 다다친구들.


디자이너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온 여섯 친구의 모임이다. 나이와 전문 영역을 넘어 서로의 작업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가 ‘다재다능하다’는 뜻으로 ‘다다 多多’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건축집단 MA를 이끄는 건축가 유병안, 50여 년간 무대와 화면을 넘나든 배우이자 사진작가 박상원, ‘포토 랭귀지’를 구축해온 사진작가 김용호, 건축과 조경을 아우르는 건축가 최시영, 크리에이티브 컨설턴시 프럼 대표 김명진, 여기에 영화 〈서편제〉 음악을 만든 음악가이자 화가 김수철이 함께한다.


전시 여섯 사람에게 카르텔의 ‘루이 고스트 체어’가 한 점씩 주어졌다. 같은 의자에서 출발하지만, 여섯 사람은 자신의 삶과 작업,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를 해석한다. 그 앞에 놓인 긴 테이블도 여섯 상자로 나뉜다. 각자의 삶에서 가지고 온 물건과 기억을 펼쳐놓아 자리마다 서로 다른 세계가 만들어진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해온 18팀, 26인의 창작자가 참여하는 이번 전시. 지난 50년 동안 디자인하우스와 함께 성장해왔고,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해나갈 이들이 각자의 ‘막’을 통해 디자인하우스의 지난 반세기와 다가올 내일을 그려낸다.



05 민화와 골동 가구로 만든 어느 무명씨의 방 손란

무명씨에서 만날 수 있는 책가도.


디자이너 손란은 광고 기획자로 일한 뒤 청담동에 고미술 갤러리 ‘무명씨’를 열었다. ‘세상에 이름 없는 것은 없다. 우리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할 뿐’이라는 뜻처럼, 오래된 물건에 깃든 이름과 가치를 발견해 오늘의 생활 속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전시 책가도와 토기, 골동 가구가 방에 놓여 있다. 오래된 물건에는 누군가의 손길과 생활의 흔적, 여러 세대의 시간이 쌓여 있다. 손란은 고미술품을 과거에 묶어두지 않고 오늘의 방으로 불러들여 현대의 감각으로 다시 관계를 맺는다. 오래된 물건의 ‘가치’가 오늘의 ‘같이’가 되는 순간이다.





06 버려진 것에서 막 해보는 감각, 여기저기, 이것저것 박길종

박길종의 ‘산과 집’.


디자이너 박길종은 2010년부터 길종상가, 박길종, 박가공의 이름으로 활동해온 디자이너이자 제작자다. 개인 의뢰부터 미술관, 박물관, 브랜드 협업까지 폭넓게 작업한다. 구상과 디자인에 그치지 않고 직접 제작하고 설치해 결과물을 완성한다.


전시 <월간 디자인> 2024년 9월호에 시안으로만 실렸던 자전거 거치대가 실물이 되고, 양산되지 못한 테이블도 다시 만들어졌다. 디자인하우스 카페에서 버려진 테이블 3개와 여러 프로젝트에서 남은 재료도 한데 모였다. 남은 것과 만들지 못했던 것을 막 조합해 두서없이 늘어놓으면, 여기저기서 온 이것저것이 다시 이것저것이 된다.





07 가구와 음악, 패션으로 만든 공간 최중호

최중호스튜디오에서 디자인한 무니토의 ‘스타르타’ 소파.


디자이너 최중호는 산업디자인을 기반으로 제품과 가구, 공간을 넘나드는 디자이너다. 2008년 최중호스튜디오를 설립해 다양한 기업, 브랜드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최근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션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전시 최중호는 ‘막’을 서로 다른 감각과 문화가 충돌하며 낯선 장면을 만드는 에너지로 본다. 새롭게 선보이는 ‘New Perception’ 시리즈 가구와 직접 디자인한 스피커, 그래픽과 스트리트 기반의 디테일이 한 공간에 뒤섞인다. 가구를 보는 전시이자 음악을 듣는 공간이고, 패션과 거리의 감각이 공존하는 풍경이다.





08 서로 다른 시대의 가구와 작품을 연결해 만든 공간 이길연

노스텔지어 힐로재. ⓒ 박찬우


디자이너 이길연은 길연 디자인 스튜디오를 이끄는 공간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터다. 패션 VMD로 일을 시작해 공간 디자인으로 영역을 넓혔고, 사람의 삶과 공간이 맺는 관계를 탐구해왔다. 소재 본연의 질감과 시간의 흔적을 존중하는 공간을 만든다.


전시 이길연은 20여 년간 곁에 두고 아껴온 서로 다른 시대의 가구와 작품을 삼베로 감싸고 옷핀으로 이었다. 세월의 흔적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 서로 다른 것들이 만드는 조화를 보여준다. 켜켜이 쌓인 삼베의 결은 디자인하우스의 50년을, 수많은 옷핀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온 인연을 상징한다.





09 사방탁자를 변형해 만든 가구, 또 다른 균형 백종환

대구간송미술관 미인도실.


디자이너 백종환은 공간을 중심으로 건축과 가구, 제품까지 영역을 넓혀온 디자이너다.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WGNB를 이끌며 “같은 것을 보되 다른 생각을 하자”는 태도로 익숙한 사물과 공간을 새롭게 바라본다. 준지와 폴렌느의 플래그십 스토어, 푸투라 서울, 대구간송미술관 미인도실 등을 작업했다.


전시 백종환은 전통 사방탁자를 ‘공간을 조직하는 시스템’으로 보고 구조를 줄이거나 늘렸다. 삼방탁자는 세 점이 만드는 간결한 구조 안에서 새로운 긴장을 찾는다. 오방탁자는 동서남북과 중심의 관계로 구조를 확장한다. 익숙한 틀을 조금 흔드는 순간 또 다른 균형이 생긴다.





10 선명해진 장석 패턴, 백골동 판화 정구호

전통 목가구의 구조와 장식에 현대 산업 재료를 결합한 ‘백골동’.


디자이너 정구호는 패션, 공연, 영화, 전시 등 공간과 장르를 넘나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국립무용단의 <묵향>, 서울시무용단의 <일무> 등을 연출하며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왔다. 리움미술관 공간 레노베이션을 총괄했고, 2026년 키아프 서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다.


전시 영화 <황진이> 미술감독 시절 개성반닫이에서 영감을 얻은 정구호는 전통 장석과 플렉시글라스를 결합해 투명한 반닫이 ‘백골동’을 만들었다. 귀한 것을 감추던 가구는 이제 무엇을 귀하게 여길지를 묻는다. 공간 중앙에 백골동 한 점이 놓이고, 삼면의 벽에는 이를 실물 크기로 옮긴 판화가 처음 공개된다.





11 서로 다른 문화가 스며들며 만들어낸 길들여지지 않은 울림 김종완

청담동 쿠킹 스튜디오 살롱 드 쿡. Ⓒ Studio Sim


디자이너 김종완은 브랜드의 철학과 경험을 공간으로 풀어내는 공간 전략 디자이너다. 파리 에콜 카몽도에서 공간 디자인과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고 2016년 종킴디자인스튜디오를 설립했다. 공간 설계부터 가구, 오브제, 음악, 유니폼까지 공간을 이루는 요소 전반을 디렉팅한다.


전시 천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장막이 펼쳐진다. 민화 ‘호피장막도’와 유목민의 텐트, 유럽 살롱의 레이스, 페르시안 러그와 모아레 패턴, 음악과 퍼포먼스가 거리낌없이 뒤섞인다. 이 요소들은 특정한 스타일로 모이지 않고 겹치거나 부딪치며, 천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살롱이면서 텐트인 새로운 풍경으로 만든다.





12 전통의 차실, 단칸 초막 김동현

김동현 대표의 서예 작품이 걸린 로해의 사무 공간.


디자이너 김동현은 한국 차와 공예를 연구하는 로해 대표이자 티 큐레이터다. 미국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의 미술관에서 일한 뒤 귀국했다. 선조 매월당 김시습의 <매월당집>에 기록된 차 생활과 ‘망형忘形’의 정신을 오늘의 차와 공간으로 풀어내고 있다.


전시 김시습의 사유에 뿌리를 둔 ‘망형’은 소박함과 비움, 환대의 차 정신이다. 전시는 너와집을 모티프로 한 단칸 초막과 현대적인 오피스 다실로 이루어진다. 코클과 화로, 다구를 둔 초막 앞 봉당이 손님을 맞는다. 통창 너머 감나무 풍경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차의 시간에 닿는다.





INTERVIEW

종킴디자인스튜디오, 김종완 소장


한남동에 자리한 종킴디자인스튜디오에서 만난 김종완 소장.


‘막’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무엇이었나요? ‘일단 해보는 태도’였어요. 파리에서 오래 디자인을 하면서 논리와 과정을 중시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는데, 한국에 돌아와 10년간 작업하며 다른 힘을 발견했어요. 완벽하게 준비되기 전에 시작하고, 만들면서 고치고, 전혀 다른 것까지 가져와 자기 것으로 만드는 힘이요. 거칠어 보여도 그 안엔 직관과 속도, 대담함이 있죠. 돌아보면 저도 파리의 문법을 한국의 사람과 재료, 문화 속에서 계속 변형해왔어요. 그래서 ‘막’은 제 작업 안에 이미 있던 태도를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울림’이라는 전시 콘셉트는 어떻게 나왔나요? ‘막’을 정교하게 설명하는 순간 ‘막’답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끌리는 것들을 먼저 모았어요. 민화, 기억 속 레이스, 페르시안 러그, 모아레 패턴, 시대가 다른 가구, 음악과 퍼포먼스까지. 억지로 조화시키지 않고 각자의 성격대로 부딪히게 했더니 예상하지 못한 분위기가 생겼죠. 그 울림이 너무 길들여지지 않길 바라며 전시 이름을 붙였습니다.


평소 작업 방식과 다른 점이 있었나요? 모든 요소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엔 그 습관을 일부러 내려놓고 직관을 더 믿었어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함께 두거나,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고르기도 했죠. 올해는 저희의 10주년이기도 한데요. 이번 전시는 회고전이라기보다 앞으로 얼마나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을지 시험하는 작은 실험에 가까워요.



(왼쪽) 이번 전시를 위해 사용된 소재들을 모아놓은 머티리얼 박스. 데다 패브릭이 눈에 띈다. (오른쪽) 민화 ‘호피장막도’에서 영감을 받아 자체 제작한 종킴디자인스튜디오의 전시 포스터.


출발점이 된 민화 ‘호피장막도’에서는 무엇을 발견했나요? 호피보다 ‘가려져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다 보여주지 않으니 안이 더 궁금해지죠. 모든 게 한눈에 소비되는 요즘 공간과 반대로, 관람객이 직접 천을 걷어야 공간이 나타나게 했습니다. 그림을 재현하기보다 ‘가림과 발견’의 구조를 가져온 거예요.


넓이 29㎡, 천장고 2.3m의 사무실을 바꾸는 일은 어땠나요? 정말 작았지만 오히려 좋았습니다. 거창하게 만들기보다 작은 공간에서 얼마나 강한 경험을 만들 수 있을지 시험해보고 싶었거든요. 벽을 세우는 대신 천으로 공간을 덮고, 낮은 천장은 더 낮게 천을 드리웠어요. 텐트나 작은 살롱에 들어온 느낌이죠. 제약을 극복하기보다 공간의 성격으로 바꾼 셈이에요. 가구도 하나의 시대나 스타일로 맞추지 않았어요. 오래 산 집처럼 여행에서 가져온 물건, 오래 쓴 가구, 최근에 산 물건이 섞인 공간을 좋아하거든요. 가구 하나하나가 등장인물처럼 존재하며 서로 만나 새로운 장면을 만들길 바랐어요.


관람객이 어떤 감각을 경험하길 바라나요? 장막을 걷는 순간 잠깐이라도 사무실에 있다는 걸 잊길 바랍니다. 빛의 밀도, 발밑의 촉감, 음악과 사람까지 달라지니까요. 공간엔 소리와 냄새, 온도, 사람의 움직임이 있고, 우리는 오히려 그런 것으로 공간을 기억해요. 누군가에겐 아름답고, 누군가에겐 낯설거나 과할 수도 있죠.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고, 그 후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 하나가 남는다면, 그게 제가 말하는 ‘울림’입니다.



INTERVIEW

소울 윤대현, 김희은 오너 셰프


‘소울’을 이끌고 있는 윤대현(왼쪽), 김희은 셰프. ⓒ 차가연


‘막’이라는 키워드를 처음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김희은) 저희가 지향하는 건 휘뚜루마뚜루의 ‘막’이 아니에요. 파인다이닝 셰프에게 ‘막 하자’는 있을 수 없는 말이니까요. 그래서 ‘막’을 시점으로 봤습니다. 지금 막 뽑은 생면, 막 지어낸 음식처럼 생동감 있게 연출하자는 거였죠.


평소 ‘소울’에서 선보이던 요리와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다를까요? (윤대현) 코어는 거의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같은 사람인데 소울에서는 핏이 좋은 슈트를 갖춰 입었다면, 여기서는 조금 더 캐주얼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거죠. 더 편안하고 대중적인 느낌으로 바뀌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국수도 디테일은 조금 다르지만 소울과 같은 베이스의 육수와 면으로 나가고, 전도 소울에서 나가는 것과 똑같은 뇨키로 만듭니다. 그래서 여기 오시는 분들은 사실 엄청 이득이에요. 소울에서는 반만 한 사이즈를 2배 넘는 가격에 팔거든요.


다섯 가지 메뉴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려요. (윤대현) 저희의 키워드는 ‘새롭지만 익숙함, 낯설지만 특별함’이에요. ‘막, 국수’는 편하게 먹는 막국수에 소울의 철학인 생면을 입혔습니다. ‘에그앤플라워’를 함께 운영해 매일 면을 뽑을 수 있거든요. ‘맛, BUTTER 증편’은 증편을 맛 버터와 곁들여 식전 빵 문화를 녹였습니다. ‘NEW 감자전’은 서양의 뇨키를 재해석한 메뉴인데, 나눠 먹는 문화를 담아 막걸리를 함께 내요. ‘떡살 CAKE’는 소울 농장에서 수확한 잣으로 만든 무스 케이크에 떡살 문양을 입힌 것이고, ‘가을한입’은 호두과자에 사블레, 가나슈, 호두강정으로 레이어를 쌓아 가을의 정서를 담았어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감자전에서 영감받은 ‘NEW 감자전과 막잔 막걸리’. 강원도 메밀가루로 직접 제면한 카펠리니를 활용한 ‘막, 국수’. 떡살 형태를 잣 무스 케이크 위에 올린 ‘떡살 CAKE’. ⓒ 차가연


가장 애정이 가는 메뉴를 하나 꼽아주신다면요? (김희은) 감자전이에요. 보기보다 과정이 복잡하고 맛의 레이어도 많은 메뉴입니다. 광장시장 녹두전처럼 돼지기름에 지져 내요. 바닥에는 들깨 아욜리 소스를 깔고, 피클 역할을 하는 장아찌 렐리시를 올린 다음, 나뭇잎 모양 칩으로 바삭함을 더했습니다. 2019년 오픈 때부터 감자 품종과 농부님을 바꿔가며 다듬어온 메뉴인데, 외부에서 그것도 2배 사이즈로 선보이는 건 처음이에요.


소울 밖에서 선보이는 만큼 특별히 고려한 점이 있을까요? (김희은) 손님들에게 미쉐린 스타 셰프에 대한 기대감은 충족시키면서도, 합리적인 가격과 충분한 양으로 “잘 먹고 간다”는 만족감을 드리고 싶었어요. 자꾸 욕심이 나서 메뉴가 계속 늘었지만, 덜어낼 건 덜어내고 몰입감 있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만 남긴 게 이번 다섯 가지 메뉴입니다.


민송이, 민들레 실장님과 협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요? (김희은) 오랫동안 디자인을 해오신 분들이라 접시를 고르는 시선부터 남달랐어요. 처음엔 저희가 생각지 못한 양은 쟁반을 추천해주셨는데, 음식을 함께 놓으니 특별하면서도 익숙하고, 익숙하면서도 새로웠어요. ‘새롭지만 익숙함’이라는 저희 철학과 맞닿아 있다 싶어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13 ‘막’ 콘셉트로 재탄생한 카페 차지소, 조화로운 불협화음 세븐도어즈 × 소울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선보인 세븐도어즈의 스타일링 작업.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듀오 민송이, 민들레가 이끄는 세븐도어즈는 리빙과 공간을 중심으로 스타일링, 브랜딩, 전시를 아우른다. 오설록 티하우스, 더현대 서울 식품관, 북촌 설화수의 집 등에 참여했다. 소울은 윤대현, 김희은 셰프가 함께 이끄는 서울 해방촌의 <미쉐린 가이드 서울> 1스타 레스토랑으로, 한식을 기반으로 한 양식 요리를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전시 사옥 카페 ‘차지소’가 ‘막’의 얼굴로 바뀌었다. 세븐도어즈가 전시 기획과 공간 디자인, 비주얼 디렉팅을 맡아 오방색과 막사발을 현대적인 가구와 색채에 과감하게 조합했다. 메뉴는 소울의 두 셰프가 기획했다. 직접 제면한 카펠리니로 만든 막국수, 막걸리로 발효한 증편과 버터, 떡살 모양 케이크처럼 익숙한 재료를 새롭게 잇는다.


 



14 디지털 그라피티로 만드는 순간, ‘막’ 레벨나인

2025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포스터.


디자이너 레벨나인은 김선혁, 김정욱이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으로 기획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연구자가 함께한다. 문화 예술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데이터 기술과 물리적 공간을 결합해 새로운 문화 경험을 만들어왔다. 2025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포스터가 이들의 작업이다.


전시 디자인하우스의 50년을 10년 단위로 나눴다. ‘처음으로’, ‘낯설게’, ‘용감하게’, ‘다시 처음처럼’ 등 각각의 키워드를 그래픽 월에 새기고, 유리장 속 시대별 발간물과 연결했다. 중심에는 디지털 그라피티 ‘Color Shake’가 놓인다. 관람객이 남긴 색과 언어가 겹치며 다음 사람에게 건네지고, 50년의 ‘막’ 위에 또 하나의 시작이 더해진다.





15 다양한 공예 작가와 협업한 전시 속의 전시 구병준

브랜딩과 공간 기획을 총괄한 경주 이스트1779.


디자이너 구병준은 일상의 디자인과 공예, 전통과 미래, 생산과 유통의 접점을 탐구해온 기획자이자 PPS 대표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챕터원을 통해 동시대의 미감을 제안해왔다. 2023 밀라노 한국공예전, 2025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주제관 등을 기획했다.


전시 50인의 공예가에게 주어진 조건은 주먹만 한 크기. 금속, 도자, 유리, 나무로 만든 50점의 작품에 ‘막’에서 길어 올린 50개의 단어가 하나씩 짝지어진다. 서툴고 거칠고 때로는 예상을 벗어나지만, 완벽하지 않기에 다른 것이 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창작자를 응원하는 길은 작품을 사는 것이라는 그의 신념에 따라 모든 작품은 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16 막 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 김양수 × 서영희

(왼쪽) ‘금동관음사유상’과 이우환의 작품을 아우른 설치 전시. (오른쪽)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열린 <코리아 나우! 지금, 한국!> 전시.


디자이너 김양수는 두손갤러리 대표이자 오랜 시간 미술과 디자인을 수집해온 컬렉터로, 고미술부터 국내외 현대미술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의 접점을 탐구한다. 서영희는 패션과 예술, 전통문화를 폭넓게 아우르며 독창적인 장면을 만들어온 스타일리스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전시 ‘막’은 오랜 수행 끝에 불필요한 긴장을 걷어낸 경지다. 한쪽에는 준초이의 ‘사유와 수행의 반가사유상’을, 맞은편에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심장 수술 장면과 알약 십자가를 두어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물질을 마주 세웠다. 그 중심에서는 신상호의 상감분청사기, 이혁의 자화상 등이 고려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흐름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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