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로마에서 탄생한 불가리는 140여 년간 정교한 장인 정신과 선구적인 디자인, 대담한 컬러 조합을 바탕으로 하이 주얼리의 새로운 미학을 제시해왔다. 그리고 그 창조적 유산을 오늘의 감각으로 이어가는 인물이 바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젬 바잉 디렉터를 겸하고 있는 루치아 실베스트리다.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며 쌓아온 시간은 그녀를 젬스톤이 지닌 아름다움과 에너지, 그리고 각기 다른 개성을 읽어내는 탁월한 감식안의 소유자로 만들었다. 불가리의 미학을 새롭게 써 내려가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EDITOR 오경호

루치아 실베스트리 불가리의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겸 젬 바잉 디렉터. 생물학을 전공하는 평범한 여대생이던 20세의 나이에 불가리 보석학 부서에 입사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전 세계 광산과 시장을 누비며 보석 전문가들과 교류했고, 마침내 불가리 가문 형제들만 맡아왔던 젬스톤 구매를 총괄하는 인물로 성장했다.
크리에이티브 겸 젬 바잉 디렉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요? 탁월함과 창의성 입니다. 불가리는 언제나 대담한 컬러, 조각적인 볼륨, 그리고 풍부한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을 모색해왔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 하는 것은 유행을 따르기 위해 창작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헤리티지는 우리의 출발점이자 든든한 토대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창의성을 제한하는 경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풍부한 유산을 기반으로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언제나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새로운 방식의 진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도 불가리 주얼리가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면요? 하이 주얼리는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감정과 아름다움, 희소성, 그리고 작품마다 깃든 장인들의 탁월한 ‘사부아-페르Savoir- faire’를 담아내는 예술적 표현입니다. 이러한 작품은 한 시대를 위한 장식품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가치를 품고 있죠. 불가리의 헤리티지는 결코 정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정신이자 정체성이에요. 불가리는 언제나 로마에 뿌리를 둔 정체성과 대담한 컬러,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 디자인, 그리고 특별한 젬스톤에 대한 애정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대적 감각과 새로운 시각으로 끊임없이 재해석합니다.
전 세계를 누비며 수많은 젬스톤을 만나왔습니다. 가장 먼 저 보는 것은 무엇인가요? 감정입니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완벽한 스톤이라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음을 움직이는 특별한 울림이 없다면, 제게 진정한 영감의 원천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스톤 안에 담긴 에너지와 개성, 그리고 존재감이 느껴져야 해요. 물론 불가리가 스톤을 선택하는 기준은 매우 엄격합니다. 품질과 컬러, 커팅, 조화, 희소성은 물론 전 체적인 캐릭터까지 세심하게 살펴보죠.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어야 합니다. 놀라움을 안겨주고, 창의적인 감각을 일깨우며,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시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죠. 최근 확보한 130캐럿이 넘는 사파이어를 예로 들게요. 현재 차기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위해 작업 중인 스톤인데, 처음 그 사파이어의 커팅과 컬러를 마주한 순간 깊은 감동이 밀려오더군요. 눈물이 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카보숑 에메랄드가 정교한 손길로 완성되어가는 순간.
완성된 하이 주얼리 작품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제작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고도로 복잡한 구조 안에서 유연한 움직임과 균형, 편안한 착용감을 구현하려면 오랜 연구와 탁월한 장인 정신이 필요합니다. 네크리스가 마치 패브릭처럼 부드럽게 흐르도록 만들거나, 중요한 피스가 몸 위에서 관능적이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도록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의 하이 주얼리가 탄생하기까지 스톤과 디자인, 그리고 장인들의 기술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팀과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며 이를 디자인으로 구체화하지요. 이후 작업은 아틀리에로 이어지고, 평면의 드로잉은 장인들의 손을 거쳐 생명력을 지닌 입체적인 오브제로 탄생합니다. 완성된 작품은 마치 처음부터 그 모 습으로 존재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시간과 정교한 기술, 그리고 장인들의 헌신이 숨겨져 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점이 하이 주얼리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에클레티카’의 여러 챕터 중 제작 과정에서 가장 큰 도전이 되었던 작품과, 개인적으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하이 주얼리 작품은 무엇인가요? ‘에클레티카Eclettica’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서로 다른 요소를 자유롭게 결합하고 실험하며,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서로 다른 예술적 언어가 하나의 비전 안에서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다는,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지극히 불가리다운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컬렉션이죠. 가장 도전적인 피스는 오히려 가장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를 고르기 쉽지는 않지만, 먼저 ‘불가리 시크릿 가든’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를 꼽고 싶습니다. 이 작품의 중심에 자리한 파파라차 사파이어는 제가 정말 첫눈에 반한 스톤이었어요. 자연광 아래에서 처음 마주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빛을 머금는 순간 살아 숨 쉬는 듯한 에너지 를 발산했고, 핑크와 오렌지가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다운 균형에 완전히 매료됐죠. 그 순간 이 특별한 스톤을 중심으로 반드시 하나의 하이 주얼리를 탄생시켜야겠다고 확신했습니다. 이를 확보하는 과정 또한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컬렉션에 합류하기까지 1년이 넘는 협상이 필요했죠. 하이 주얼리 업계에서는 탁월한 품질을 지닌 보석을 종종 ‘피닉스Phoenix’라고 부릅니다. 같은 수준의 스톤을 다시 만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기 때문이죠. 그만큼 대체 불가능한 아름다움과 희소성을 지닌 존재였습니다.

26.65캐럿 스리랑카산 핑크-오렌지 파파라차 사파이어 세팅 모습.
오랜 시간 주얼리를 디자인해왔음에도 여전히 창작의 설렘을 안겨주는 영감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예술과 로마, 자연, 여성 그리고 젬스톤 그 자체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얻습니다. 한 점의 회화나 조각, 해 질 무렵 정원의 풍경, 건축물의 파사드를 스치는 빛, 예상치 못한 컬러의 조합까지 모든 것이 창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요. 특히 서로 다른 색채가 예기치 않은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순간, 가장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하곤 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란 무엇인가요? 진정한 럭셔리란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희소성과 아름다움, 장인 정신, 그리고 감성이 조화를 이루며 깊은 진정성을 전달하는 것이죠. 화려함이나 과시를 위한 것이 아니 라,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세대를 거쳐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가치를 품어야 합니다. 또한 저에게 럭셔리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경험이에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브랜드의 철학과 스토리를 직접 전하며 고객들과 교감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저는 불가리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헤리티지와 정신을 고객들과 공유하고, 그들이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브랜드의 세계관을 함께 경험하는 일원으로 느끼도록 하는 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처럼 브랜드와 고객이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고, 서로의 가치와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이야말로 제가 생각하는 가장 본질적인 럭셔리입니다.

‘불가리 시크릿 가든 하이 주얼리’ 컬렉션 네크리스.
COOPERATION 불가리(6105-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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