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SSI

방돔의 유산을 현대의 언어로, 가이아 레포시

아르데코 양식과 산업디자인에 매료된 콘스탄티노 레포시가 1957년 토리노에 첫 부티크를 열며 메종의 역사를 시작했다. 이후 아들 알베르토 레포시가 가업을 이어받아 입지를 확장했고, 모나코 왕실의 공식 주얼러로서 명성을 쌓았다. 1986년에는 파리 방돔 광장에 부티크를 오픈하며 세계적인 하이 주얼리 하우스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3세대 아티스틱 디렉터 가이아 레포시는 보석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세르티 수르 비드Serti sur Vide’ 세팅을 비롯해 독보적인 미학을 더하며 메종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

EDITOR 이수연

가이아 레포시 21세의 나이로 2007년 레포시에 합류한 아티스틱 디렉터 가이아 레포시. 화가를 꿈꾸며 순수 미술을 전공한 뒤 소르본 대학에서 고고학까지 탐구한 경험은 그녀의 미학적 언어와 문화적 시야를 형성하는 밑바탕이 됐다. 3대째 이어온 레포시는 그녀에게 단순한 가족 사업이 아닌 살아 있는 유산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방대한 아카이브와 장인 정신을 오늘의 감각으로 계승하며, 메종의 미래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기억 속 첫 주얼리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나요? 집에서 작업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아버지의 서재에는 책상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업무를 위한 공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로지 드로잉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아버지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몰래 금고를 열어 그 안에 보관된 작업들을 하나씩 꺼내 들여다보곤 했죠.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완벽주의자였던 할아버지는 오직 밤에만 그림을 그리셨죠. 흥미로운 것은 저희 세 사람이 외모는 물론 손가락의 형태까지 무척 닮았다는 사실입니다. 유전이라는 것은 참 신기합니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아이디어와 감각까지 세대를 넘어 이어지니까요. 할아버지는 제게 수많은 드로잉을 남겨주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1만5000점이 넘는 드로잉을 들여다보며, 세대를 관통해 이어져온 아이디어와 창조적 유산을 생생하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주얼리 가문에서 성장했지만, 곧바로 가업을 잇기보다 미술과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먼저 탐구했습니다. 어릴 적 꿈은 화가였어요. 자연스럽게 순수 미술을 전공했고, 관심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고고학까지 탐구했죠. 당시에는 이미 아버지와 함께 일을 시작한 상태였기 때문에 학문적 탐구가 제 시야를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과거 문명을 연구하면서 주얼리가 인류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와 형태로 존재해왔고, 오늘날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주얼리 바깥의 영역을 깊이 탐구했던 경험은 지금도 제게는 무한한 레퍼런스예요.


‘베르베르’ 컬렉션은 직선 사이 여백을 활용해 시그넷 링을 새롭게 정의한다. ‘베르베르 2-로우’ 링과 더블 링을 착용한 캠페인 이미지.


과거의 유산이 오늘날의 디자인으로 재해석되는 과정을 들려주세요. 역사는 영감의 가장 중요한 토대입니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과거의 코드를 오늘의 시각으로 변주하는 데 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죠. 이러한 과정을 생략한다면 작품은 깊이와 생명력을 잃은 채 단순한 오브제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가문의 유산은 물론, 자신이 속한 분야의 전통을 지켜나가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과거의 맥락을 온전히 품고 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의 디자인에서는 건축과 조각, 현대미술의 조형 언어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주얼리를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가장 먼저 신체를 고려합니다. 몸에 닿는 편안함이야말로 주얼리가 마주해야 할 명확한 현실이니까요. 그다음으로 형태를 깎아나가기 시작합니다. 저와 저희 팀 모두 주얼리를 단순한 장신구가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여겨요. 주얼리를 예술적 오브제로 끌어올리는 과정은 매 순간 도전이지만, 팀원 모두가 이를 기꺼이 즐깁니다. 그래야만 메종의 기술력과 완성도를 가장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레포시의 주얼리에서는 형태만큼이나 여백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치 건축물의 공간처럼 착용자의 피부와 상호작용하면서 완성되는 듯한 인상을 줘요. 제2의 피부처럼 몸에 편안히 안착하는 감각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옷을 입듯 가볍게 닿되, 맨살 위에 보석이 얹어졌을 때 생기는 시각적 대비가 강렬해야 하죠. 단 하나의 명료한 아이디어로 보는 이에게 충격을 주고, 그 자체로 온전한 표현이 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레포시의 지향점입니다. 형태는 미니멀하지만, 그 안에 품은 인상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1957년 이탈리아 토리노에 오픈한 첫 번째 부티크 전경.


올해 파리 방돔 광장 부티크가 개점 40주년을 맞았습니다. 당신에게 방돔 광장은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인가요? 제가 태어난 해에 부티크가 문을 열었습니다. 파리 방돔 광장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하이 주얼리를 위해 조성된 상징적인 공간이죠. 아버지가 이곳에 부티크를 열면서 레포시의 위상이 업계에서 한층 견고해졌습니다. 제게는 하우스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되새기게 만드는 장소이면서,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주어야 할 공간이기도 합니다. 10년 전,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와 인테리어를 리디자인한 이유죠. 진취적인 주얼리 메종으로서, 방문객들에게 동시대적이고 입체적인 공간 감각을 안겨주고 싶습니다.


수많은 컬렉션과 작품 가운데 레포시의 정체성이 가장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피스는 무엇인가요? 한 점만 고르기는 어렵습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끝없이 변주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가장 상징적인 피스를 묻는다면 최초의 ‘세르티 수르 비드’ 링입니다. 완성한 지 불과 4주 만에 판매되었고, 제가 직접 멧 갈라에 착용하고 참석하기도 했죠. 레포시의 방향을 세상에 각인시킨 잊지 못할 순간입니다.


내년이면 레포시가 창립 70주년을 맞이합니다. 뜻깊은 이정표를 앞두고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3대에 걸쳐 축적된 방대한 아카이브를 정리하며, 선대의 유산과 제 작업을 하나로 엮는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기계화로 주얼리 산업이 위축되던 시기를 지나 다시 활기를 찾기까지 메종의 모든 궤적을 함께 겪어왔죠. 주얼리에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했던 열망에는 늘 가족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제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준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묵묵히 손을 보태준 장인들이 있었기에 진심으로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어요.


화이트 골드 밴드 위에 페어 컷 옐로·화이트·핑크 다이아몬드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착시 효과를 내는 ‘세르티 수르 비드’ 링.


곁에서 한결같이 응원하고 믿어주는 존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여정을 이어올 수 있었겠군요.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전, 제게 편지와 드로잉을 남겼습니다. 제가 가업을 잇는다는 게 몹시 자랑스럽다며, 레포시를 잘 보살펴 세상에 널리 알려달라고 다정하게 당부하셨죠. 저는 지금 그 약속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레포시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란 무엇인가요? 디지털 시대일수록 미니멀한 태도와 완벽한 퀄리티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이제 사람들은 양보다 질에 집중하니까요. 과거 렘 콜하스와 함께 파리 방돔 광장 부티크를 리뉴얼할 당시, 그는 쇼핑을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에 비유했습니다. 일본에서 손님에게 돈을 건넬 때 쟁반 위에 올려 정중히 전달하는 태도와 같은 개념이죠. 저는 이러한 맥락에서 ‘콰이어트 럭셔리’야말로 진정한 럭셔리라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품질과 분명한 시그너처를 동시에 갖춰야 하고요.

디자인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시대를 초월하면서도 새로운 클래식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결국 진정한 럭셔리는 절제와 냉정한 판단에서 비롯되지요.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오브제에 고유한 개성이 깃들고, 비로소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작품이 완성됩니다.



COOPERATION 레포시(2118-6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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