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10월호

다시 만난 꽃게

누군가에게 가을은 단풍이지만, 누군가에게 가을은 꽃게다. 1년 중 딱 두 번, 게는 이 계절에 자기 몸을 가득 채운다.

EDITOR 김민지 PHOTOGRAPHER 김잔듸

랩 다이아몬드로 만든 게자리 팬던트가 돋보이는 목걸이는 도로시.


가을마다 서해 꽃게는 뉴스가 된다. 올해 어획량이 지난해보다 늘지 줄지, 마트마다 얼마에 파는지, 그리고 금어기가 풀리자마자 몰려드는 손님들 이야기까지. 매년 반복되는 이 관심은 어제오늘 생긴 것이 아니다. 게가 밥상 위에서 이만큼 존재감을 가지게 된 데에는 그보다 오래된 내력이 있다.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 시절 쓴 <자산어보>에서 꽃게를 시해矢蟹라 적었다. “크기는 갈게만 하고 등이 높아 바구니를 닮았으며, 왼쪽 집게다리는 유난히 크고 붉은 반면 오른쪽은 작고 검다”라고 묘사했다. 몸 전체에 여러 빛깔이 섞여 알록달록 빛나는 모습을 두고는 거북의 등딱지, 대모玳瑁 같다고 적었다. 옛 문헌에서 게를 기록한 방식을 보면, 게는 찜으로만 다뤄진 재료가 아니었다. 17세기 말 <주방문>과 1680년경의 <요록>에는 각각 게탕이라는 이름의 국물 요리가 등장하는데, 둘 다 무와 함께 끓이는 방식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얼큰한 꽃게탕과는 결이 다르지만, 게의 맛을 국물로 풀어내는 방식이 이미 이 시기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한 조리서에는 게탕이 육개장과 나란히 탕 종류로 분류되어 있어, 게가 오랫동안 국물 요리의 주재료로도 다뤄져 왔음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가장 널리 이어져온 방식은 역시 간장에 삭혀 먹는 것이다. 게를 간장에 담가 삭히는 방식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태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마도 1호선의 목간에는 “게젓 한 항아리를 올린다”는 문구가 남아 있는데, 이 배는 함께 발견된 기록을 통해 1208년 무렵의 것으로 특정됐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 그 기록은 더 구체적이다. 18세기 초 <산림경제>는 술지게미로 게를 절이는 조해법糟蟹法을 소개하고, <규합총서>와 <주방문>, <시의전서>는 저마다 조금씩 다른 절임법을 전한다. 한자로는 해서蟹胥, 해해蟹醢라 불렸는데, 명칭이 여럿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만큼 여러 집, 여러 지역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담가온 음식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장 하나로 게를 삭히는 이 방식은 소금물이나 식초로 절이는 다른 조리법보다 오래 살아남아 지금의 간장게장으로 이어졌다. 간장게장의 영원한 라이벌, 우리가 익히 아는 매콤한 양념게장은 이보다 훨씬 나중인 한국전쟁 이후에야 등장한 것으로, 간장게장이라는 원형에서 갈라져 나온 비교적 젊은 음식이다.

꽃게가 상에 오르는 방식은 간장게장 하나로 그치지 않는다. 살이 오른 수게는 그대로 쪄서 게살의 단맛을 즐기는 꽃게찜이 되고, 등딱지와 내장까지 넣고 끓인 꽃게탕은 얼큰한 국물 요리로 자리 잡았다. 발라낸 살은 볶음밥이나 죽에 넣어 감칠맛을 더하는 재료가 되고, 매콤하게 무친 양념게장은 간장게장과 짝을 이루며 두 얼굴의 밥도둑 문화를 완성했다. 같은 게 한 마리에서 이렇게 다른 요리들이 갈라져 나온다는 사실이야말로 꽃게가 오래도록 밥상 위에서 사랑받아온 이유일지 모른다.


‘기와강’을 이끄는 강민철 셰프.


강민철 셰프가 선보이는 한식, 기와강Kiwagang
간장게장, 젓갈, 동치미…. 웬만한 백반집 메뉴에 있을 법한 이름들이 한식 파인다이닝 코스에 그대로 오른다면 어떨까. 서울 강남에 자리한 ‘기와강’에서는 이 익숙함이 곧 반전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미쉐린 가이드>는 이곳을 두고 “클래식한 한식의 맛에 세련된 감각을 더해 의외의 조합을 균형 있게 완성해낸다”고 평했는데, 그 조합의 정점에 간장게장과 캐비아 젓갈이 있다.

기와강을 만든 강민철 셰프의 전문 분야는 프렌치였다. 미국과 홍콩, 프랑스를 오가며 10여 년간 요리를 익혔고 조엘 로부숑, 알랭 뒤카스, 피에르 가니에르로 이어지는 세계 3대 거장의 주방을 모두 거쳤다. 2021년 청담동에 자신의 이름을 건 프렌치 파인다이닝 ‘강민철 레스토랑’을 열었고, 오픈 1년 만에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 그렇게 3년 차를 맞이할 즈음, 그는 정작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식이라는 분야를 진지하게 탐구하기로 결심한 뒤 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전남 담양. 담양에서 만난 것은 350년 역사를 지닌 기순도 명인의 장독대였다. “한식은 시간의 맛이라고 생각했어요. 제육볶음처럼 간단해 보이는 음식도 고추장과 간장 없이는 완성되지 않고, 그 장들은 이미 1년 전부터 준비된 것들이거든요. 제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300년의 시간을 배우러 간 거죠.” 강민철 셰프는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담양을 찾아 명인과 나란히 장을 담근다. “그렇게 직접 담근 간장을 요리의 주인공으로 세우면 어떨까, 고민 끝에 내놓은 답이 바로 간장게장이었죠.”


전통적으로 젓갈을 만드는 방식을 사용해 담근 캐비아 젓갈. 


게장 간장을 달인 소스에 매리네이드 한 단새우에 캐비아 젓갈과 고추냉이잎, 동치미 육수를 곁들인 메뉴. 



“직접 담근 간장을 요리의 주인공으로 세우면 어떨까, 고민 끝에 내놓은 답이 바로 간장게장이었죠.”

기와강 강민철 셰프


직접 담근 게장과 김부각, 튀긴 셜롯, 트러플 등을 켜켜이 쌓아 만든 ‘간장게장밥과 트러플’. 


게, 장을 만나다

게를 고르는 기준도 까다로움의 밀도가 남다르다. 알이 꽉 찬 암게만 쓰고, 잡히자마자 배 위에서 급속 냉동한 선동 게를 고집한다. 살아 있는 게로 담그는 쪽이 더 신선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박테리아 위험이 커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게장은 매주 새로 담근다. 직접 담근 간장을 달이고 붓는 과정을 반복해 담근 지 5일에서 7일 사이, 가장 좋은 순간에만 상에 올린다.

이렇게 완성한 게장은 ‘간장게장밥과 트러플’이라는 이름으로 한 그릇에 담긴다. 셰리 와인 비니거에 매리네이드한 밥이 초밥의 샤리처럼 바닥에 깔리고, 그 위로 층이 쌓인다. 바삭한 김부각과 튀긴 셜롯, 비린 맛을 다스리는 레몬 겔 한 켜, 간장게장, 다진 트러플과 생트러플, 마지막으로 살짝 두른 참기름까지. 간장게장을 비빌 때 으레 뿌리던 김가루와 참기름의 조합을 기와강은 접시 위에 하나의 구조물처럼 쌓아 올렸다.

게장을 다 먹고 남는 것은 접시만이 아니다. 게를 담그고 남은, 감칠맛이 진하게 우러난 간장 역시 기와강에서는 버려지지 않는다. 사과와 배, 홍고추, 한약재를 더해 다시 졸인 이 소스는 사실상 주방 전체의 간을 맞추는 기준이 된다. 기와강에서 나가는 웬만한 음식은 이 게장 간장 달인 소스로 간을 하는데, 셰프 스스로 간장게장을 두고 기와강이 내는 모든 맛의 가장 큰 뿌리라고 말할 정도다.

간장게장과 함께 기와강의 시그너처 디시로 손꼽히는 메뉴가 캐비아 젓갈이다. 명란젓 같은 젓갈도 결국 생선의 알이라는 생각에서, 캐비아 역시 마지막 터치가 아니라 전통 젓갈의 방식대로 발효와 숙성을 거쳐 완성했다. 초록빛 고추냉이잎 위에 직접 담근 동치미 무와 배, 단새우를 올리고 캐비아 젓갈과 차이브, 작은 새우젓갈로 마무리한 뒤 동치미 국물을 페어링하듯 곁들인다. 이 단새우 역시 게장 간장 소스에 매리네이드한 것으로, 뒤이어 나오는 간장게장과 같은 장 위에서 완성되는 한 쌍이다.

강민철 셰프는 한식의 전통을 그대로 따를 뿐이라고 말한다. 프렌치 셰프가 만드는 한식이라고 하면 테크닉의 결합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최고의 산지에서 찾은 재료가 지닌 본연의 맛을 그대로 구현하는 일이다. 오늘의 메뉴는 그 방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두 접시인 셈이다.

직접 담근 간장으로 매주 새롭게 만드는 강민철표 간장게장.



COOPERATION 기와강(517-2511), 도로시(1833-9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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