ÁLVARO SIZA VIEIRA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의 70년

건축보다 땅을, 새로운 형태보다 그곳에 이미 존재하는 풍경을 먼저 바라본다.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는 70년 넘게 낮고 조용한 방식으로 세계 곳곳의 장소와 관계를 맺어왔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주변을 살피는 태도, 그곳에서 시자의 건축은 시작된다.

EDITOR 박이현 WRITER 임나리

파도가 들이치는 바위투성이 해안을 수영장으로 탈바꿈한 ‘레사 다 팔메이라 해변 수영장.’ 1966년 완공됐으며, 2011년 포르투갈 국가 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은 지금도 매년 여름 지역 주민이 수영을 즐기는 실사용 시설이다.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는 1933년 포르투갈 포르투 인근의 항구 도시 마토지뉴스Matosinhos에서 태어났다. 대서양과 맞닿은 해안 마을이 그가 유년기를 보낸 곳이었다. 어린 시절 조각가를 꿈꿨던 시자는 우연히 가우디 건축에 매료된 뒤 방향을 틀었다. 포르투 미술학교(현 포르투 대학교 건축학부)에 진학해 건축을 공부했고, 포르투갈 근대건축의 선구자인 스승 페르난두 타보라Fernando Távora의 사무실에서 실무를 익혔다. 르코르뷔지에를 중심으로 유럽 각지의 건축가가 1928년 발족한 CIAM(근대건축국제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국제 건축계와 교류하던 스승을 통해 그는 세계 건축계의 흐름과 이슈를 일찍 접할 수 있었다. 1954년 포르투에 정식으로 자신의 사무실을 연 시자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와 남미, 미국 등으로 활동 무대를 넓히면서도 70년 넘게 포르투를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비평가들이 그를 동시대 다른 모더니스트와 구별 짓는 지점으로 제일 먼저 꼽는 건 과거를 대하는 태도다. 어느 평론가는 그가 설계한 베를린 주거 단지를 두고 기존 도시 조직과는 잘 엮이지만 길 건너 19세기 건물이 가진 존재감에는 못 미친다고 지적했는데, 시자는 이에 “중요한 것은 폐허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건축사학자 케네스 프램턴 역시 새 건축을 낡고 불완전한 주변의 흔적과 융합하려는 태도를 시자 건축의 중요한 특징으로 짚었다.

시자의 건축을 두고 흔히 시적 모더니즘poetic modernism이라 칭한다. 흰 벽면과 절제된 기하학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의 엄격한 어휘는 그대로 유지하되, 그 위에 빛과 장소에 대한 감각적 교감을 구현하기 때문. 1992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할 당시 심사위원단은 언뜻 단순해 보이는 형태 안에 정교한 숙련이 숨어 있다고 평가했다. 논리와 기능만으로 문제를 풀었다면 나올 수 없는 정서와 감정이 빛과 재료를 다루는 시자의 방식에서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비판적 지역주의’의 대표 주자로 거론된다. 세계 각지에서 유리와 철, 콘크리트로 이뤄진 똑같은 상자 건축을 찍어내던 시절, 그는 같은 재료와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건축이 들어설 땅의 지형과 맥락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다. 어디에 짓든 건물이 아니라 장소가 먼저 보이게 하는 게 시자의 태도였다.

2009년 RIBA 로열 골드 메달,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까지 받으며 세계적 거장으로 칭송받았지만, 정작 그 시절 그의 사무소는 문 닫을 위기에 놓여 있었다. 2012년 포르투갈의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일감이 줄었던 탓이다. 그럼에도 그는 베를린부터 뉴욕까지, 대륙을 넘나드는 건축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에서든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새로운 양식이 아니라 ‘이 땅은 이미 무엇을 품고 있는가’였다.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 대지의 지형과 주변 맥락을 섬세하게 읽 고, 절제된 기하학과 빛으로 장소에 스며드는 건축을 구현해온 건축가. 1933년 포르투갈 마토지뉴스에서 태어나 포르투 미술 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954년 포르투에 건축사무소를 열었다. 1992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했고, 레사 다 팔메이라 해변 수영장, 세랄베스 현대미술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등을 설계했다.


바위가 완성한 건축, 레사 다 팔메이라 해변 수영장

‘레사 다 팔메이라Leça da Palmeira’는 시자가 나고 자란 마토지뉴스의 해안 마을이다. 1960년대 초 근처의 ‘보아 노바 티 하우스Boa Nova Tea House’를 작업하던 시기, 걸어서 닿을 거리에 또 하나의 초기작이 시작됐다. 원래 이곳은 수영장이 아니라 그냥 파도가 들이치는 바위투성이 해안이었다. 1959년 시의회가 수영장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진행했는데, 이듬해 수영장과 주변 경관을 함께 고려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때 청년 시자가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변변한 지형 측량 자료조차 없던 시절, 시자는 며칠 동안 해안가를 직접 거닐며 바위의 위치와 높낮이를 일일이 기록하고 발파를 최소화할 설계를 찾았다.
그가 새로 더한 핵심 요소는 바위 사이를 잇는 낮은 콘크리트 벽이었다. 바위와 바위 사이 빈틈에 담장을 두르고 물이 담길 공간을 만들었다. 수영장의 바닥과 옆 벽면 대부분은 원래 있던 자연 암반 그대로다. 당초에는 조수를 이용해 바닷물을 자연스럽게 공급하는 방식이 검토됐지만, 위생상의 이유로 이 계획은 폐기됐고 해수를 여과·순환하는 설비가 도입됐다. 수영장은 도로보다 낮게 배치해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바다 전망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2011년 포르투갈 국가 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은 매년 여름 지역 주민이 실제로 수영을 즐기는, 지금까지도 사용되는 시설이다. 2017년에는 시자가 직접 보수 설계를 다시 맡았고, 이후 진행된 공사 과정에서도 주요 단계에 관여했다.


연륜이 쌓인 나무와 완만한 경사 지형을 훼손하지 않은 ‘세랄베스 현대미술관’.


포르투 보사 지구 주민들을 위한 주거 단지.


시자가 지은 사회 주택의 정점이라 불리는 포르투갈 남부 에보라 지역 ‘킨타 다 말라게이라’의 마스터플랜.


사회를 향한 건축가의 헌신, 사회 주택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에게 건축의 본령은 언제나 ‘가장 평범한 이들의 삶이 깃드는 자리’에 있었다. 시자는 도시의 격차가 만들어낸 소외 계층을 위해 건축이 사회와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을지 늘 고민해왔다. 1974년 포르투갈의 반세기 독재를 무너뜨린 카네이션 혁명 직후 정부는 도시 빈민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건축가들을 현장으로 파견하는 ‘혁신적 주거 지원 프로그램Serviço de Apoio Ambulatório Local(SAAL)’을 가동했다.

시자가 맡은 곳은 포르투 보사 Bouça 지구 주민들을 위한 주거 단지였다. 그는 좁고 비탈진 대지에 4층짜리 듀플렉스 주택동과 주민들이 마주치는 공용 중정을 정교하게 엮어냈다. 주민들에게 소속감을 주기 위해 상부에 두른 강렬한 붉은 띠는 바이마르 시절 사회 주택의 선구자였던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에 대한 오마주였다. 하지만 1976년 SAAL이 종료되면서 공사도 중단됐고, 당시 계획된 128채 가운데 완성된 것은 56채뿐이었다. 미완의 상태로 25년 넘게 방치되는 비운을 겪었음에도 주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지켰다. 결국 2004년 공사가 재개됐고, 시자는 다시 프로젝트에 참여해 2006년 마침내 완공을 매듭지었다.

시자는 훗날 SAAL이 폐지된 뒤 당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들이 주변화됐고 자신 역시 일감을 잃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공백 속에서 그의 활동 무대는 점차 국외로 넓어졌다. 시자는 1980년 서베를린 국제건축전시회Internationale Bauausstellung Berlin(IBA)로 눈을 돌려 ‘슐레지셰스 토어Schlesisches Tor’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누군가 건물 외벽에 남긴 낙서 “봉주르 트리스테스Bonjour Tristesse(슬픔이여, 안녕)”로 인해 다소 낭만적인 이 별칭으로 더 유명해진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의 사회 주택이 이렇게 완성되었다. 두 건물 사이 틈을 메운 신축 건물이지만 외부에서는 세 건물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매끈한 곡면으로 이어지는 게 특징이다.

시자가 건축한 사회 주택의 정점에는 포르투갈 남부 에보라의 ‘킨타 다 말라게이라Quinta da Malagueira’가 있다. 일이 없는 시자에게 에보라 시장이 먼저 제안해 축구장 35개 규모의 버려진 농경지에 1200채 규모의 협동조합 주거 단지를 설계한 대형 프로젝트로, 1977년부터 1997년까지 장장 20년 동안 이어졌다. 원래 관청은 7층짜리 아파트 단지를 밀어붙였지만, 시자는 원점부터 재검토해 2층 이하 저층 고밀도 주거 단지를 계획했다. 시자는 완만한 지형, 옛 수로, 흩어진 바위와 나무, 주변에 무단으로 들어선 집까지 하나하나 관찰하며 원래 땅이 품고 있는 흔적을 살폈고, 그 답을 고대 폼페이 유적에서 찾았다. 지형을 따라 작은 집들이 빽빽하게 유기적으로 들어찬 폼페이의 도시 구조를 모델로 삼아 화려한 랜드마크 건물이 아닌 좁은 골목과 중정으로 촘촘하게 엮인 저층 주거 조직을 계획한 것. 예산 부족으로 상하수도를 땅에 매입할 수 없어 로마 수도교를 닮은 콘크리트 공중 수로를 그대로 드러냈는데, 이는 단지를 통합하는 상징이 됐다.


2021년 대구에 문을 연 ‘사유원’. 


건축은 끝나지 않는다, 세랄베스 현대미술관
세랄베스는 원래 제2대 비젤라 백작 카를루스 알베르투 카브랄이 1925년부터 1944년까지 조성한 아르데코 저택과 정원의 이름이었다. 1989년 세랄베스 재단이 출범하면서 이곳을 공공 문화 기관으로 전환하며 ‘세랄베스 현대미술관Serralv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건립을 추진했고, 1991년 시자를 만났다. 시자는 이 땅의 주인공은 저택도, 자신의 신축 건물도 아닌 오래된 정원이라고 여겼다. 연륜이 쌓인 나무와 완만한 경사 지형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그는 건물을 낮게 엎드린 듯 앉히고, 지형의 높낮이에 따라 U자형 비대칭 날개 형태로 건물의 덩어리를 펼쳐놓았다.

시자와 세랄베스 재단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9년 시자는 ‘시네마 하우스’를 완성했고, 2021년에는 세랄베스 저택의 복원과 개조 작업을 마쳤다. 2024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알바루 시자 윙’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세랄베스 컬렉션과 건축 관련 전시를 위한 공간, 아카이브 시설 등이 들어섰다. 30년 넘게 한 부지에서 새로운 의뢰가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완결이 아닌 계속되는 여정으로서 건축 프로젝트를 대한 시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2011년 완공한 석조 주택 ‘하우스 인 제주’.


한국에서 완성된 미완의 도면들, 한국과 시자

시자와 한국의 인연은 2005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그에게 아시아 첫 건축 작업을 의뢰하며 시작됐다. 다리를 놓은 건 포르투갈 건축가 카를루스 카스타녜이라Carlos Castanheira였다. 안양을 먼저 답사하고 돌아간 그가 현장의 경험과 분위기를 시자에게 전하자, “누구보다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질문하고, 해석해냈다”고 카스타녜이라는 회고한다. 땅의 정보만으로 설계를 시작하면서 시자는 지형의 결을 놓치지 않았다. 이때 한국 건축가 김준성이 함께했고, 세 사람의 협업은 이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도 이어졌다. 안양예술공원에 지어진 파빌리온은 어느 각도에서 봐도 같은 모습으로 읽히지 않는 곡면 구조로, 지금은 ‘안양 파빌리온’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에게 열려 있다.

4년 뒤 파주출판도시에 문을 연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출판사 열린책들의 홍지웅 대표가 자사의 예술 서적 브랜드에서 이름을 딴 곳으로, 시자는 빈 대지 위에 웅크린 고양이 한 마리를 스케치하며 설계를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그 스케치는 7년 만에 백색 곡면 매스로 완성됐다. 이듬해 용인의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는 연구동 ‘미지움’과 심신 회복 공간 ‘혜초하우스’가 시자의 설계로 들어섰는데, 남쪽 산세에 순응하며 낮게 엎드린 구조가 연구원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시자는 같은 시기 제주에도 두 채의 개인 주택을 지었다. 2011년 완공한 석조 주택은 현무암 지형 위에 낮게 앉았고, 2018년 완공한 티 하우스는 포르투갈 공방에서 목재를 가공해 제주로 실어와 조립한 목조 건물이다.

시자의 오래된 미완의 구상이 한국에서 새로운 형태를 얻은 곳은 2021년 문을 연 대구의 ‘사유원’이다. 이곳에는 2017년과 2019년 완공한 아트 파빌리온 ‘소요헌’과 전망대 ‘소대’가 자리한다. 소요헌은 시자가 과거 마드리드 오에스테 공원에 피카소의 ‘임신한 여인’과 ‘게르니카’를 전시하기 위해 구상했으나 실현하지 못한 프로젝트를 사유원에 새롭게 풀어낸 것이다. 유럽에서 끝내 지어지지 못한 구상이 한국의 산자락에서 비로소 형태를 얻은 셈이다.

목록으로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