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돌프 파랑트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로 절제된 개입과 정교한 디테일을 통해 공간 본연의 결을 되살리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까르띠에와 피아제, 예거 르쿨트르,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하이엔드 브랜드부터 익스페리멘탈 호텔 그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협업해왔다.

계단실 맞은편에 자리한 중앙 홀. 소파와 책장을 배치해 작은 거실 역할을 한다.
파리에서 손꼽히는 부촌 트로카데로 인근의 아브뉴 앙리마르탱. 이 거리에 자리한 아르데코 건물 안에서 두 개의 복층 아파트가 하나로 합쳐졌다. 한 가족을 위한 430㎡ 넓이의 집이다. 앙드레 퓌트망 밑에서 경력을 시작해 2009년 자신의 이름을 건 스튜디오를 연 인테리어 건축가 로돌프 파랑트Rodolphe Parente에게 이번 작업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다시 불러내는 일이었다. 거의 2년에 걸쳐 그는 이 낡은 아파트를 헐지 않고 다시 읽어냈다. 1930년대 파리 아파트만이 가진 비례와 벽난로, 창의 위치까지, 공간이 품고 있는 과거의 기억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과제는 명확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층과 두 개의 시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 것.
1층 현관을 지나면 메인 거실과 다이닝 룸, 주방이 서로 이어지고, 위층에는 메인 침실과 서재, 드레스 룸, 아이들의 방 같은 가족을 위한 프라이빗 공간을 배치했다. 이 집의 중심이자 심장 역할을 하는 것은 두 층을 잇는 조각 같은 원목 계단이다. 리본이 감긴 듯 공간을 가로지르는 이 계단은 조선 기술을 전문으로 다루는 프랑스 공방과의 협업으로 완성했다. 로돌프 파랑트가 직접 디자인한 맞춤 가구들은 프랑스 아르데코의 거장 미셸 뒤페를 비롯해 피에르 잔느레, 피에르 폴랭 같은 전설적 가구 디자이너의 아이코닉한 작품들과 함께 집 안 곳곳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컨템퍼러리 화가 수 윌리엄스Sue Williams와 앤 콜리어Anne Collier, 올리비에 밀라구Olivier Millagou의 작품이 그 사이를 채우며 세련됨과 개성 사이의 팽팽한 균형을 완성한다.
기억과 동시대성, 우아함과 급진성.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로돌프 파랑트의 모든 작업은 이 둘 사이를 이으며 생동감 넘치는 대화를 이끌어낸다. 그가 완성한 앙리 마르탱 프로젝트는 그의 비전이 온전히 도달한 지점이자 파리 아르데코의 유산이 자유롭고 유연하게 오늘의 감성과 만나는 집이다.

메인 거실의 코너 부분. 안쪽에 난 문을 통하면 다이닝 공간과 이어진다.

골드 컬러와 월넛 소재의 조화가 돋보이는 서재 모습.
로돌프 파랑트와의 일문일답
이 아파트에 사는 가족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나요? 손님을 자주 초대하지만 프라이버시도 중요하게 여기는, 아이가 있는 가족이었습니다. 평면 구성이 그 점을 그대로 보여주지요. 1층은 현관과 거실, 키친, 다이닝룸, 서재까지 온전히 접객을 위한 공간이고 2층은 안방과 아이들 방이 자리한 사적인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기존 구조를 지우기보다 드러낸다’는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은 무엇이었나요? 어려운 것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없앨지 정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힘든 것은 1930년대 건축 언어와 맞닿아 있는 이 공간의 영혼을 되살리는 일이었죠. 그것이 재현되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방식이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원래부터 늘 그 자리에 있던 것 같은 느낌, 시대를 초월하면서도 맥락을 존중하는 느낌을 만드는 것이었죠. 겉모습만 흉내 낸 복고풍으로 빠지지 않으면서요.

다양한 소재와 빈티지 피스, 컨템퍼러리 가구의 조화가 돋보이는 다이닝룸.

대리석 소재를 사용했음에도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욕실. 시대를 초월한 소재의 조합을 통해 우아한 분위기를 불어넣었다.

이 집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원목 계단 모습. 마치 리본이 감긴 듯
유려하게 흐르는 구조가 돋보인다.
이 아파트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을 꼽는다면요? 망설임 없이 계단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제작소와 가장 많은 의견을 주고받은 공간이기도 합니다. 사교적인 삶과 사적인 삶을 이어주는 것도 이 계단이고요. 다른 공간들은 눈으로 보고 감상하는 게 중요한 요소라면 계단은 오르내릴 때마다 직접 발로 딛고 몸으로 느끼는 유일한 요소이기에 더욱 애착이 갑니다.
이 계단을 제작하기 위해 특별한 업체와 협업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프랑스 살아 있는 유산 기업Entreprise du Patrimoine Vivant’ 라벨을 보유한 마감 전문 업체입니다. 조선 건조 기술을 응용하는 곳이죠. 바로 그 점이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이들은 일반적인 목공이 아니라 선체 제작의 논리로 작업하며, 고도로 정밀하게 나무를 곡선으로 휘고 조립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동 동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몸짓, 거의 오브제에 가까운 것을 원했습니다. 기술적인 요소를 이만큼 정밀하게 다루면서 동시에 웅장하고 대담하게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좋았습니다. 그들이 만든 계단을 오를 때는 단순히 계단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선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클래식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가 흐르는 메인 침실.

래커 마감과 브라스 손잡이로 클래식함과 모던함을 동시에 갖춘 드레스 룸.
공간의 소재와 컬러 팔레트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게 중요한 것은 소재가 세월을 머금는 방식과 빛을 받아들이는 방식입니다. 나무는 따뜻함과 연속성을 안겨주고, 황동은 방점을 찍어주며, 벨벳은 소리를 흡수해 고요함을 만듭니다. 컬러 팔레트는 부드럽고 스스로를 낮추는 듯한 느낌으로 구성했습니다. 건축과 예술 작품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요. 드러내는 럭셔리가 아니라 은근한 럭셔리인 셈입니다.
피에르 잔느레, 피에르 폴랭 같은 디자이너의 빈티지 가구와 현대미술, 그리고 직접 디자인한 맞춤 가구를 함께 배치할 때 어떤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나요? 저는 절대 시대별로 구성하지 않습니다. 긴장감으로 구성해요. 프랑스 아르데코를 대표하는 미셸 뒤페의 가구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역사적 인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뉴욕 화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컨템퍼러리 화가, 수 윌리엄스의 작품이나 제가 디자인한 가구 앞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봤을 때 시대를 특정할 수 없게 되는 순간 균형이 맞춰진 것이죠.
앙드레 퓌트망과 함께 일한 시간이 이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방식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절제와 디테일에 대한 거의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배웠습니다. 인테리어는 전환부와 손잡이, 문턱으로 평가받는다는 것도요. 그 가르침 덕분에 이 프로젝트에서도 화려함을 좇기보다 이 공간에 진짜 맞는 선택인지를 따지는, 정직한 건축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가구와 작품들로 다양한 시대가 한데 모여 있는 거실 한편. 로돌프 파랑트는 이 긴장감을 균형이라 부른다.
COOPERATION 로돌프 파랑트(rodolpheparen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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